타자 인생 3회차! 35화
06. 박유성이 누구야? (3)
“이거 올 해 선인고가 일내겠네요.”
“하하. 아닙니다. 진짜는 전국대회이지 않습니까. 전국 대회에서 잘 하는 팀이 진짜 강팀이죠.”
“다음번에는 좀 살살 해 줘요. 우리도 먹고는 살아야지. 그리고 내일이 신성전이죠?”
“네. 신성 만나서 이번 주도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처럼 너무 방심하다 당하지 말고 잘 준비해요.”
“네. 감사합니다. 감독님.”
경기가 끝나고 덕우 고등학교 최명룡 감독이 뼈있는 덕담을 건넸지만 장태우감독은 딱히 귀담아듣지 않았다.
5경기를 치른 현재 선인 고등학교는 5전 전승을 기록 중인 반면 덕우 고등학교는 벌써 2패째를 떠안았다.
“누가 누구한테 충고질이야?”
자신의 눈앞에서 맥없이 무너진 이관우를 보면서 장태우 감독도 김남훈 수석 코치가 주장하는 이관우 거품론을 받아들였다.
“김 코치. 내일 경기 문제없지?”
“걱정 마십시오. 해준이가 알아서 잘 해줄겁니다.”
“해준이가 해줘?”
“그거 요즘 해준이 녀석이 밀고 있는 유행어입니다. 해준이가 해줍니다. 이러더라고요.”
“하하. 그 녀석도 참 재밌다니까?”
좌완 에이스 김영진 카드는 써 버렸지만 장태우 감독은 마음이 편했다.
다른 학교에 가면 에이스 자리를 꿰찰 우완 에이스, 나해준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해준도 자신의 상대가 신성 고등학교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 영진이 고생이 많네?”
“야. 나하고 선발 순서 바꿔.”
“싫은데? 그러게 누가 1선발하래?”
“너하고 나하고 별 차이도 없잖아!”
“아닌데요? 같은 실력이면 좌완이 먼저인데요? 드래프트도 좌완이 더 잘 뽑히 는데요? 프로 가면 좌완이 연봉도 더 받는데요?”
“X발. 좌완투수 혐오를 좀 멈추라고.”
“꼬우면 너도 오른 손으로 던지던가.”
“넌 신성 전에서 존나 쳐 맞아라.”
“응. 아니야. 절대 안맞아~”
라이벌이자 절친인 김영진이 악담을 쏟아냈지만 나해준은 코웃음을 쳤다.
컨디션이 엉망이더라도 신성 고등학교를 상대로는 질 자신이 없었다.
하물며 공을 던지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지금이라면 퍼펙트 게임도 가능할 것 같았다.
“참. 너 박유성 조심해라.”
“박유성? 아, 요즘 좀 친다는 걔?”
“걔가 그렇게 바깥 쪽 공을 잘 친대요.”
“바깥쪽? 몸 쪽 아니고?”
“이관우가 바깥 쪽 포크 볼 던졌다가 얻어맞고 떡실신 당한 거잖아. 몰랐어?”
“포크볼을 맞았어?”
“이 새끼 아무것도 모르네. 넌 진짜 나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냐?”
김영진이 몸 쪽 승부를 해야 한다며 입에 침을 튀겼지만 나해준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이관우한테 홈런 친 놈 상대로 몸 쪽 공? 구라를 치려면 좀 성의 있게 쳐라.’
그래서 다음 날.
박유성을 상대로 초구에 바깥 쪽 빠른 공을 찔러 넣었는데.
따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타구가 머리 뒤로 사라져버렸다.
2
주말 리그 전반기 서울 A지구 순위(2028년 4월 15일)
1위 선인 고등학교 5승
2위 신성 고등학교 4승 1패
3위 덕우 고등학교 3승 2패
3위 우명 고등학교 3승 2패
5위 성현 고등학교 2승 3패
5위 세명 고등학교 2승 3패
7위 서울 상업 고등학교 1승 4패
8위 서울 중앙 고등학교 5패
선인 고등학교와 덕우 고등학교의 1위 다툼이 될 거라던 서울 A지구는 초반부터 이변이 속출했다.
라이벌 덕우 고등학교를 잡아 낸 선인 고등학교가 5전 전승으로 지구 1위 자리를 굳힌 반면 덕우 고등학교는 신성 고등학교에 이어 선인 고등학교에게까지 패배하며 3승 2패료 공동 3위로 내려앉았다.
그 사이 서울 상업 고등학교를 8대 2로 제압한 신성 고등학교가 4승째를 챙기며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신성 잘 하는데?”
“잘 하긴. 그래봐야 일정빨이지. 상고하고 중앙고를 일찍 만났잖아?”
“덕우는 왜 빼?”
“덕우 전은 우주의 기운이 도왔던 거고. 덕우하고 다시 붙으면 또 이길 수 있을까?”
“쉽진 않겠지.”
“그러니까 호들갑 떨 필요 없어. 시간 지나면 제 자리를 찾아 갈 걸? 나하고 내기해도 좋아.”
6라운드에서 선인 고등학교와 신성 고등학교가 맞붙게 됐지만 지구 1,2위 간의 맞대결이라고 생각하는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대통령배 예선이 한창 진행중이라 원투 펀치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선인 고등학교는 1선발 같은 2선발 나해준을 선발로 고지한 반면.
신성 고등학교는 에이스 카드를 앞서 서울 상업 고등학교전에 써 버린 터라 불안한 2선발 김동화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정 기자. 오늘 술내기 어때?”
“이게 내기거리가 돼?”
“그냥 재미삼아 하는 거지 뭐.”
“그럼 재미삼아 신성에 걸어. 난 선인에 걸 테니까.”
“갑자기 재미없어지네.”
“그러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더치페이 해. 무슨 같은 기자를 뜯어먹으려고 그래?”
경기장을 찾은 기자들은 하나같이 선인 고등학교의 승리를 점쳤다.
그러자 공윤경 기자가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다들 선인한테 뭐라도 받았나?”
“전력 차이가 큰 건 사실이잖아. 너라면 신성에 돈 걸 수 있겠어?”
“물론이죠. 저는 우리 유성이 믿어요.”
지난 덕우 고등학교와의 경기 이후 공윤경 기자는 박유성과 관련한 기사를 세개나 썼다.
그것도 기사화 된 게 세 개고 데스크에서 반려한 것까지 포함하면 더 많았다.
어지간해서는 기사를 가지고 잔소리를 하지 않는 황영철 편집장이 따로 불러서 박유성과의 관계를 캐물었을 정도.
지금도 애정이 듬뿍 담긴 눈으로 3루 쪽 더그아웃을 바라보며 히죽거리는 게 아이돌 쫓아다니는 10대 팬을 보는 것 같았다.
“보는 눈이 많으니까 적당히 해라.”
“적당히 하고 있는데요?”
“그러다 경기 졌다고 또 징징거리지 말고.”
“제가 언제 징징거렸다고 그래요?”
“너 지난주에 경기 보러 가서 나한테 했던 말 똑같이 해 줘?”
“그건 징징거린 게 아니라 아쉬움을 토로한 거잖아요. 진짜 선배는 약팀감수성이 없어요.”
“하아. 이제 하다하다 약팀감수성이야?”
“원래 스포츠는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맛으로 보는 거거든요? 실력대로 결과 나오면 그게 무슨 재미에요?”
“혹시 너 토토하냐?”
“토토는 무슨. 로또도 안 하거든요?”
입술을 삐죽거린 공윤경 기자가 다시 그라운드로 눈을 돌렸다.
잠깐 나영진 기자와 재잘거린 사이 박유성이 검은 색 배트를 들고 대기 타석으로 걸어나왔다.
“선배! 저 배트 말이에요. 저거 엄청 비싸 보이지 않아요?”
“비싸 보이는 게 아니라 비쌀 걸?”
“그쵸? 몰랐는데 유성이네 집이 생각보다 잘 사나 봐요.”
“저거 현민이가 준 배트잖아.”
“현민이요? 설마 송현민?”
“뭐야, 몰랐어?”
나영진 기자가 능청을 떨었다. 그러자 공윤경 기자가 부담스럽게 바짝 붙었다.
“왜 이래? 안 떨어져?”
“다 말 해 주기 전까지는 절대 안 떨어져요.”
“너 그러다 오해 사면 어쩌려고 그러냐?”
“뭐 어때요? 선배도 싱글이고 나도 싱글인데. 그리고 내가 이렇게 예쁜데 선배하고 오해가 되겠어요?”
“예쁘긴 개뿔. 우리 동네 요구르트 아줌마가 더 예쁘겠다.”
나영진 기자가 코웃음을 쳤다.
공윤경이 기자치고 예쁜 건 사실이지만 자신의 스타일인 건 절대 아니었다.
만약에 눈곱만큼이라도 흑심이 생겼다면 처음부터 부사수로 데리고 다니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공윤경 기자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 동네 어디에요? 미스코리아 출신인가? 취재해야겠는데?”
“말을 말자.”
“그러니까 빨리 다 털어 놔 봐요. 네? 말 안 해 주면 경기 끝날 때 까지 이렇게 붙어 있는다?”
“있는다는 반말이고.”
“그러니까요. 네? 네? 네?”
하는 짓이 얄미워서 끝까지 입을 다물까 했지만.
이곳저곳에서 따끔한 시선들이 날아들자 나영진 기자는 어쩔 수 없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헐, 대박. 그러니까 송현민 선수가 유성이를 먼저 찾아냈다고요?”
“미튜브에 유성이 수비 영상이 올라왔나봐. 매니저가 올렸다는데 겁도 없이 송현민하고 비교를 했더라고.”
“오호. 느낌 있네요.”
“느낌?”
“유성이 수비할 때 송현민 느낌 난다고요. 어쩐지, 유니크하면서도 낯설지가 않더라니 송현민이었구나.”
“어디 가서 그런 소리 마라. 송현민 팬들에게 돌 맞는다.”
“돌 맞기는요. 내년 되어 봐요. 아마 송현민 팬들이 먼저 제 2의 송현민이라고 부를 걸요?”
“너 송현민 팬들이 얼마나 극성스러운지 모르지? 말실수 하면 머리카락 다 뽑힌다. 농담 아냐.”
“제 머리카락은 제가 잘 지킬 테니까 걱정 말고 하던 얘기나 마저 해 주세요.
그래서 송현민이 유성이 보러 온 거에요?”
“정확하게는 에이전트가 관심을 가졌던 건데 계약은 안 됐나봐.”
“왜요? 우리 유성이 별로래요?”
“그건 아니고. 현민이 말로는 유성이가 깠단다.”
“와, 대박. 송현민 선수 에이전트 친삼촌 아니에요?”
“아니. 그 양반이 에이전트 맡기 전에 최상규라고 메이저리그 쪽에서 일하다 온 사람 있어.”
“최상규?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공윤경 기자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 뭔가를 떠올리고는 테이블을 내리쳤다.
“아잇, 깜짝이야.”
“선배! 기억났어요.”
“최상규?”
“네. 그 사람 이관우 노리는 거 같아요!”
“이관우? 정말?”
“그렇다니까요? 어제 경기할 때 못 보던 사람이 와 있어서 제가 슬쩍 물어봤거든요. 그랬더니 에이전트라고 경기 보러 왔다고 하던데요?”
“이름까지 밝힌 거야?”
“당연하죠. 저 공윤경이에요. 말 거니까 바로 명함 주던데요?”
공윤경 기자가 당당히 턱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나영진 기자는 공윤경 기자의 자기자랑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렸다.
“이관우를 노리는 것도 말 했어?”
“에이, 그건 말 안했죠. 그런데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요. 이관우가 맞을 때마다 뭔가를 열심히 적더라고요.”
“흠······. 이관우가 메이저리그에 바로 가려나?”
“어제 경기 보니까 어림없겠던데요?”
“그건 모르는 거지. 아직 봄이잖아.”
메이저리그 직행 여부는 결국 시즌 성적으로 판가름이 난다.
첫 번째 전국 대회인 대통령배 예선조차 시작하지 않은 시점에서 이관우의 메이저리그 진출 가능성을 따지는 건 섣부른 짓이었다.
그러자 공윤경 기자가 장난스럽게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그건 모르는 거죠. 그런데 이건 알겠어요.”
“뭘?”
“우리 유성이는 클래스가 다르다는 거? 이관우를 노리는 최상규를 깐 거 보세요. 완전 매력 터지지 않아요?”
“너하고 더 얘기하다간 내 속이 터지겠다.”
나영진 기자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댔다.
이렇게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줄 알았다면 처음에 절대 받아주지 않는 건데.
수습기자로 지내는 3년 간 정상인 코스프레를 한 모습에 완전히 속고 말았다.
그 때 귓가를 울리는 포구성이 사라졌다.
“이제 시작하려나 봐요.”
공윤경 기자가 냉큼 떨어져 경기장 쪽으로 몸을 돌렸고.
나영진 기자도 손바닥으로 팔을 한 번 쓸어낸 뒤에 마운드를 바라봤다.
마운드 위에는 방금 전까지 연습 투구를 마친 선인 고등학교의 우완 에이스, 나해준이 서 있었다.
‘컨디션은 좋아 보이네. 이거 유성이가 쉽지 않겠는 걸?’
나해준은 팀 동료인 김영진, 덕우고 이관우와 함께 서울 지역 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투수였다.
신장은 181cm로 이관우처럼 체격이 크지는 않지만 전성기 오승완을 연상시키는 묵직한 포심 패스트 볼은 알려 줘도 못 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