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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33화 (33/412)

타자 인생 3회차! 33화

06. 박유성이 누구야? (1)

1

“크아아아아!”

홈플레이트를 찍고 일어선 박유성의 입에서는 괴성이 터졌고.

“시파아아알!”

적시타를 얻어맞은 이관우의 입에서는 욕지거리가 터졌다.

아직 3회 초였지만.

마치 오늘 경기의 결말을 보여주는 것 같은 상반된 모습에 기자들은 저마다 감탄을 내뱉었다.

“저 녀석 뭐야? 왜 저렇게 잘 해?”

“쟤가 걔잖아.”

“걔라니?”

“태산 고등학교 김민철 감독 모가지 날린 녀석 아냐?”

“아, 쟤가 걔였어? 어쩐지 잘 하더라니.”

기자들도 지난 신산전에 대해 얼추 들어 알고 있었다.

당시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어서 두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해임된 김민철 감독이 특정 선수 탓을 늘어놓았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였다.

“첫 타석 때 홈런을 쳤을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그러게. 좌타자라 좌완 파이어볼러의 공을 공략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제법 이네.”

“그것도 상대가 이관우잖아.”

“난 솔직히 좌타자 중에 이관우 공 저렇게 잘 치는 놈은 처음 봤어.”

“어디 좌타자뿐이야? 작년에 졸업한 애들도 이관우 앞에서는 쩔쩔맸잖아. 저 녀석, 진짜 물건이라고.”

다수의 기자들은 박유성의 활약에 놀라워했다.

애당초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선수이다 보니 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와중에도 일부 기자들은 이관우를 두둔했다.

“그런데 오늘 이관우 왜 저래? 어디 아픈 거 아냐?”

“그러게. 구속은 나쁘지 않은데 공이 좀 몰리는 것 같기도 하고.”

“가끔 그런 날이 있잖아. 공이 조금씩 몰리는 날.”

“그렇지? 내가 잘 못 본 거 아니지?”

“이관우는 그냥 액땜했다고 생각해야지 뭐.”

“하긴. 오늘 경기보다는 전국 대회가 더 중요하니까. 왕중왕전이야 어차피 올라가는 거지만 전국 대회는 한 경기만 부러져도 끝이잖아?”

“아이고. 뭘 그렇게까지 가? 이관우도 이제 막 3학년이야. 얼마 전까지는 2학년이었는데 부진할 수도 있지.”

이관우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주목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이관우에 버금가는 실력을 가진 선수들은 많지만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좋아 할 만한 체격 좋은 좌완 투수는 이관우 뿐이었다.

하지만 나영진 기자는 언론의 과도한 관심과 기대가 이관우를 망쳐 놓았다고 단언했다.

“박유성이가 잘 했지. 첫 타석에서는 방심한 이관우의 초구를 잡아 당겨 홈런을 때렸고 이번에는 바깥 쪽 공을 무리하지 않고 밀어 쳐서 라인선상에 떨어뜨렸어.”

“보통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더 못 치지 않아요?”

“그런 경우가 많지. 프로 야구 경기에서도 홈런 친 타자가 다음 타석 때 병살치는 경우가 종종 나오니까. 그런데 나는 박유성이 잘 한 것 만큼이나 이관우가 형편없었다고 본다.”

“역시! 선배는 뭔가 다르게 볼 줄 알았어요.”

“뭐냐? 그 돌아이같다는 멘트는?”

“에이. 돌아이가 아니라 유니크죠.”

“돌아이나 유니크나. 암튼 이관우가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니니까 잘 들어.”

“넵! 귀에 때려 넣겠습니다.”

좋은 주식 정보라도 얻는 것처럼 까불어대는 공윤경 기자가 갑자기 꼴 보기 싫어졌지만.

한 입 가지고 두 말을 할 수는 없어서 나영진 기자가 나직이 말을 이었다.

“첫 타석 때 홈런 얻어맞은 건 인정. 상대 데이터가 없었고 박유성이 저렇게 잘 칠 줄은 몰랐을 테니까 자신 있게 승부한 것 까지 억지로 까고 싶진 않아.”

“그렇죠. 사실 박유성이 잘 친 거지 코스도 나쁘지 않았잖아요.”

“그래. 그런데 이번에 3점 내준 건 이관우 책임이 커.”

“역시 아까 그 수비 실책이 문제였죠?”

“아니. 그 이전에 홍선우를 출루시킨 게 문제였지.”

“그건 너무 결과론 아니에요?”

“홍선우는 2학년에 좌타자였어. 지난 경기까지 5번을 쳤지만 이번에 8번으로 내려왔고. 그게 무슨 의미일까?”

“이관우 입장에서는 무조건 잡고 가야 하는 타자란 건 알겠는데 모든 경기가 생각하는 대로 풀리는 건 아니잖아요?”

“말 잘 했다. 세상 일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 하지만 이관우는 기본적인 노력조차 하지 않았어. 홍선우를 상대로 뻔한 승부를 해서 얻어맞은 거야. 반대로 홍선우는 몸 쪽 빠른공 하나만 노리고 들어갔던 거고.”

“개인적으로는 이관우의 공을 친 홍선우가 잘 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은데요?”

“그건 중립적으로 본 거잖아. 철저하게 이관우 중심으로 다시 생각해 봐.”

“이관우 입장에서요?”

“공이 둥글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선수 개개인의 실력 평가는 의미 없어져.

그렇게 따지면 이관우를 보러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올 이유도 없겠지.”

나영진 기자의 지적에 공윤경 기자도 아차싶었다.

주변에서 이관우도 실수할 수 있다고 떠들어대서 자신도 모르게 귀가 솔깃해진 것 같았다.

“그러네요. 이관우 정도면 2학년 좌타자는 무조건 잡고 갔어야죠.”

“그래. 이제 좀 말이 통하네. 애당초 이관우가 경계해야 할 타자는 장태수뿐이었어. 거기에 추가로 힘이 좋은 김병욱 정도?”

“그런데 방심하다 홍선우를 내보냈다는 거죠?”

“실책이 나온 것도 홍선우 때문이지. 이관우가 홍선우를 잡아 냈어 봐. 그럼 실책이 나왔을까?”

“그럴 상황 자체가 없어지겠죠.”

“결과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서부터 어긋난 거야. 더 정확하게는 박유성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거고.”

“갑자기요?”

“홍선우는 8번이야. 홍선우를 내보내면 박유성과 어렵게 승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어야지.”

“아······.”

“결국 저 녀석의 안이함이 만들어 낸 참상이라고.”

박유성이 3회차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나영진 기자는 박유성의 활약상에 이 관우에 대한 아쉬움을 끼어 넣었다.

박유성이 이 얘기를 들었다면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겠지만.

고교 야구만 10년을 넘게 지켜 본 고교 야구 전문 기자의 눈에는 이관우가 박유성에게 말린 게 아니라 자만하다 당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공윤경 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선배도 운이 따랐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냉정하게 말해서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박유성도 자신의 앞에서 안타와 실책이 연달아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을 걸? 물론 박유성이 잘 친 게 맞아. 하지만 전체적으로 봐야 해. 박유성에게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진 거라고.”

박유성을 본 게 오늘이 처음이다보니 나영진 기자는 신중한 평가를 내렸다.

박유성에 대한 기대감과는 별개로 괜히 설레발을 쳤다가 사람 놀리기 좋아하는 공윤경 기자에게 빌미를 제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방금 전 주루 플레이는요?”

“그것도 운이 따랐어. 박유성 타석 직전에 수비 바뀐 거 기억하지?”

“우익수에 민성기 빠지고 박진욱 들어갔잖아요.”

“그래. 민성기는 타격은 좋은데 수비 범위가 좁아. 그래서 코스가 좋은 타구가 나오면 장타를 만들어줄 가능성이 높지.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수비가 좋은 박진욱을 넣었던 건데······ 만약에 박진욱이 좌익수로 갔다면 어땠을까?”

“에이, 그건 너무 억지 아니에요?”

“박진욱은 외야 전 포지션이 가능해. 수비력 하나만으로는 주전급이고. 최명룡 감독이 2학년인 박영진을 예뻐해서 민성기만 바꾼 거지 수비를 보강할 거였으면 박영진도 뺐어야 했어.”

“이제 겨우 3회인데요?”

“그 3회에 주전 외야수를 뺀 게 덕우 고잖아. 내 말은, 박유성과의 승부가 불안했다면 보다 확실하게 대비를 했어야 했다는 거야.”

“수비를 보강할 거면 확실하게 하고 아니면 선수들에게 맡겼어야 했다는 거죠?”

“그래. 뭔가 애매하잖아. 아마 이관우를 바꾸지 못하니까 분위기 환기 차원에서 애꿎은 민성기를 뺀 것 같은데 그게 2학년인 박영진에게 부담이 됐을지도 모르지.”

“아······! 나도 못하면 언제든 교체될 수 있다?”

“타구의 코스가 좋았지만 박영진이 침착하게 수비를 했다면 박유성이 과감하게 3루로 뛰었을까?”

“어렵지 않았을까요? 덕우 같은 강팀은 기본적으로 수비가 좋으니까요.”

“앞서 잘못은 이관우가 했어. 그런데 수비가 바뀐 거야. 프로 선수들이야 이해를 하겠지만 아마추어 선수들은 과연 이해가 될까?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박영진이 허둥댔던 게 이해가 가네요.”

“야구가 괜히 멘탈 스포츠인 게 아니야. 별 것 아닐지도 모를 상황에 전부 영향을 받는다고.”

“그래도 박유성이 홈을 파고든 건 잘 한 거죠?”

“그건 100점 만점에 120점짜리 플레이지. 아까 못 봤지? 슬라이딩을 마치자마자 바로 3루 쪽 더그아웃을 바라봤어. 더그아웃에서 뛰라는 소리가 나오니까 망설이지 않고 뛴 거야.”

“오호.”

“박유성은 처음부터 공이 빠질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거야. 생각하면서 야구를 하는 녀석이라고.”

나영진 기자는 최대한 냉정하게 평가를 했지만.

3년 간 나영진 기자를 따라다닌 공윤경 기자는 나영진 식 극찬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선배가 이렇게까지 칭찬하는 선수는 송현민 이후로 처음인데? 안 되겠어. 내가 먼저 침 발라야겠어.’

공윤경 기자의 시선이 박유성을 찾아 그라운드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다 뭔가를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서, 선배! 덕우고 감독이 나왔는데요?”

“바꿔 줘야지.”

“정말요?”

“그럼? 선발 투수가 3회까지 4실점을 했는데 바꿔야지. 덕우에 투수가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공윤경 기자는 이관우의 교체가 빠르다고 느꼈지만 나영진 기자의 생각은 달랐다.

‘저따위로 할 거면 진즉 바꿨어야 했어.’

만약에 앞서 송구 실책 때 외야수가 아니라 투수를 바꿨다면 어땠을까.

설사 박유성에게 똑같이 안타를 얻어맞고 실점을 했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분위기가 가라앉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관우는 마운드를 내려가면서 까지도 철딱서니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X발! 내가 왜 내려가야 하는데?”

더그아웃으로 돌아 온 이관우는 글러브를 신경질적으로 내던졌다. 그리고는 자신을 말리는 동료들의 손을 뿌리친 뒤에 더그아웃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투덜거렸다.

만약 김석률 수석 코치가 이 꼴을 봤다면 대번에 호통을 쳤겠지만 덕우 고등 학교 코치들은 이관우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관우야. 괜찮아 인마.”

김재영 투수 코치는 한 술 더 떠서 이관우를 달랬다.

잘 하면 메이저리그에 직행할 수도 있고.

최소 프로 구단의 우선 지명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보니 대놓고 특별 관리에 들어간 것이다.

“짜증난다고요.”

“그래. 그래. 오늘 경기는 그냥 잊어 버려라. 재수 없었다고 생각해.”

“하아, X팔. 진짜 못 해먹겠네.”

그렇게 한참을 씩씩거리던 이관우는 최명룡 감독이 다가오자 홱하고 더그아웃을 빠져나갔고.

그 모습을 기자석에서 지켜보던 나영진 기자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진짜 저 놈은 사람 되기 글렀다.”

“와, 저게 가능해요?”

“왜? 몰랐어?”

“얘기는 들었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죠.”

“저 녀석 중학교 때부터 유명했어. 그래서 아무도 안 데려가려고 했고.”

“그런데 어떻게 덕우 고등학교에 들어간 거예요?”

“중3 때 갑자기 키가 컸거든. 그리고 이관우 아버지가······ 덕우고 동창회장이었어.”

“이명진 의원 말이죠?”

“알고 있었어?”

“당연히 알고 있어야죠. 그런데 이명진 의원이 덕우고 동창회장까지 했을 줄은 몰랐어요.”

공윤경 기자도 혀를 내둘렀다.

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덕우 고등학교의 총동창회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총동창회장을 한 덕분에 시의원이 된 거야.”

“그래서 다들 그냥 넘어가는 거예요?”

“자세한 사정은 나도 모르지. 하지만 팀의 에이스라는 녀석의 아버지가 총동창회장 출신이라면 쓴 소리를 하기 쉽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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