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18화 (18/412)

타자 인생 3회차! 18화

03. 비결이 뭐야? (5)

감백호라는 말에 최윤석 타격 코치의 눈이 똥그래졌다.

장차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타자로 꼽히는 송현민도 감백호의 이름값앞에서는 아직 애송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송현민도 기정후와 감백호를 보며 메이저리그에 대한 꿈을 키웠다며 인터뷰때마다 존경심을 드러낼 정도.

“저도 처음에는 헛소리인 줄 알았는데 태산 그룹에서 감백호 야구 재단에 후원을 했나 보더라고요. 학교 방문도 감백호 측에서 먼저 제안했다고 하고요.”

“나 참. 신성은 뭐 하고 있는 거야? 후원 안 하고.”

“신성이야 스타즈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까. 감백호도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갔으니까 쓸 데 없는 오해 살 수도 있고요.”

감백호는 위즈에서 7년을 뛰고 구단의 허락을 받아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

따라서 감백호가 국내로 유턴할 경우 원소속구단인 위즈로 돌아와야 하는데 스타즈를 운영하고 있는 신성 그룹에서 알짱거리면 위즈 팬들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기정후라도 꼬셔 보던가.”

“기정후도 마찬가지죠. 고향 팀에서 뛸 생각도 있다는 립 서비스 때문에 난리났던 거 벌써 잊으셨습니까?”

“그러니까 최 코치님이 힘 좀 써 주세요.”

“송현민 오면 우리 애들도 기가 살 겁니다.”

사방에서 압박을 주자 최윤석 타격 코치도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포스트 시즌 준비하느라 바쁠 텐데.”

정규 시즌을 마친 프로 야구는 현재 포스트 시즌이 한창 진행중이었다.

나눔 리그 플레이오프에서는 2위 랜더스와 3위 타이거즈가 맞붙었고.

드림 리그 플레이오프는 위즈와 베어스 간의 혈투가 펼쳐졌다.

나눔 리그 1위로 챔피언십 시리즈에 직행한 트윈스도 한국 시리즈에 올라가기 위해 만반의 채비를 해야 하는 상황.

그래서 당연히 통화가 안 될 줄 알았는데.

-형님이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다 주셨어요?

통화 연결음이 몇 번 울리기가 무섭게 장난기 가득한 송현민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뭐야, 안 바쁘냐?”

-제가 전화한 거 아닌데요?

“그러니까 안 바쁘냐고.”

-바쁘죠. 훈련 마치고 이제 씻고 나왔는데 왜요? 바빠서 전화 안 받길 바랐어요?

“그런 건 아니고 괜히 방해 될 까봐 그러지.”

-아이고. 됐어요.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했어요?

“다른 건 아니고······ 우리 학교 한 번 와 주면 안 되겠냐?”

-형님네 학교요? 신성 고등학교? 에이, 내가 거길 왜 갑니까. 모교도 아닌데.

송현민의 모교는 덕우 고등학교.

서울 지역에서도 강호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었다.

잠깐 최윤석 타격 코치의 얼굴만 보는 거라면 몰라도 덕우 고등학교를 두고 신성 고등학교를 방문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최윤석 타격 코치도 자신을 향한 코치들의 뜨거운 시선을 더는 외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이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우리 학교에 박유성이라고 물건이 하나 있거든?”

-박유성? 처음 듣는 이름인데요?

“이제 3학년 올라가는 녀석인데 롤 모델이 너란다. 너한테 원 포인트 레슨 받는 게 평생의 소원이래.”

-흠······. 어째 좀 약 파는 느낌인데?

“짜식이 너 인마. 내가 그렇게 가르쳤어?”

-알았어요. 알았어. 그럼 그 박유성인지 뭔지 하는 녀석 플레이 영상 하나 보내 봐요.

“플레이 영상?”

-원 포인트 레슨이더라도 가르칠 수준은 돼야죠. 안 그래요?

“그, 그렇지?”

-설마 학교 오라고 거짓말 친 거 아니죠?

“짜식이. 형을 뭐로 보고. 내가 그럴 사람이냐?”

-암튼 형이 그렇게까지 말 하는 거 보니까 기대가 되네요. 맘 바뀌기 전에 빨리 보내요. 그래야 중간에 짬을 내지.

통화를 끝낸 송현민이 피식 웃었다.

“이 형은 거짓말이라도 좀 성의 있게 하던가. 속아 주고 싶어도 속을 수가 없잖아.”

최윤석 타격 코치와 알고 지낸 지도 벌써 13년 째.

평소 바쁜 거 다 안다며 불필요한 연락은 일절 하지 않던 양반이 이름을 들어 본 적도 없는 후배를 위해 전화를 했다는 거 자체가 솔직히 말이 되지 않았다.

그 때 에이전트 최상규가 다가왔다.

“방금 통화했어?”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전화했으니까 알지. 누구하고 통화했는데?”

“아는 형이요.”

“그렇게 대충 두루뭉술하게 말하지 말랬지?”

“정말 그냥 아는 형이에요. 최윤석이라고 고등학교 야구부 코치인데······?”

“코치인데?”

“제자들 중에 내 팬이 있다고요. 와서 잠깐만 봐 주고 가면 안 되겠냐고 해서요.”

송현민이 슬쩍 최상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최상규가 대번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설마 승낙한 거 아니지?”

“아직 안 했어요.”

“다음에 또 전화 오면 나한테 돌려.”

“그냥 내가 잘 말 할게요.”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덕우고에서 연락 온 것도 거절했어. 너 지금 집중해야 할 시기인 거 알지?”

“알죠.”

“메이저리그에서 자리 잡고 난 다음에 얼굴 팔고 다녀도 늦지 않아.”

“알았어요. 알았어. 무슨 잔소리가 1절로 끝나는 법이 없어.”

괜히 말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은 송현민이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최상규는 송현민이 이런 식으로 가볍게 구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 값 받고 메이저리그 가고 싶으면 내 말 똑바로 들어.”

“알았다니까요.”

“그리고 미튜브에 재미있는 영상 하나 있더라.”

“미튜브요?”

“편집된 영상이긴 한데 너 중견수로 뛰던 시절하고 비슷한 녀석이 하나 있나 봐.”

“그래요?”

트윈스에 데뷔했을 당시 송현민의 포지션은 중견수였다.

팀에서도 송현민을 붙박이 중견수로 키우고 싶어 했지만 주전 유격수가 부상을 당하면서 은퇴하고 용병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겠다던 계획도 실패로 돌아가면서 고등학교 시절 유격수로 뛰었던 송현민이 내야로 넘어오게 됐다.

“영상 깨톡으로 보냈으니까 한 번 봐봐.”

“근데 나 중견수도 잘 했는데?”

“나도 처음에는 코웃음을 쳤는데 걔도 잘 하더라. 아직 고등학생인 거 감안하면 가능성 있어.”

“그래서 미리 침 바르시게요?”

“직접 체크해봐야겠지만 괜찮으면 계약해야지.”

“그냥 나한테 집중하는 게 나을 걸요?”

송현민이 피식 웃고는 최상규가 보내준 링크를 클릭했다.

잠시 후 동영상이 재생됐고.

고등학교 운동장 쯤으로 보이는 풍경이 펼쳐졌다.

‘펑고인가?’

홈플레이트 쪽을 잠시 보여준 화면은 다시 외야 쪽으로 움직였다.

외야에 호리호리하게 생긴 누군가가 서 있었는데.

따악!

묵직한 파열음이 울리기가 무섭게 앞쪽으로 내달리더니 안타 성 타구를 슬라 이딩으로 낚아챘다.

“오올, 제법인데요?”

“계속 봐봐.”

송현민은 최상규가 시키는 대로 영상을 끝까지 확인했다.

그리고 살짝 놀란 눈으로 최상규를 바라봤다.

“어때? 괜찮지?”

“얘 이름이 뭐예요?”

“그것까진 몰라.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채널이라서 문의 메일 보냈는데 답이 없어.”

“다른 건요?”

“다른 거?”

“수비는 잘 하는데 타격도 잘 하는지 봐야죠.”

“그렇지 않아도 나도 영상 기다리는 중인데 소식이 없다.”

“고등학생이겠죠?”

“중학생이면 진짜 사기급이고. 고등학생이 맞을 거야.”

“내 고등학교 시절보다 잘 하는데요 뭘.”

대부분의 스타플레이어들이 그러하듯 송현민도 누군가를 인정하는 데 인색한 편이었다.

하지만 영상 속 수비 장면은 확실히 인상 깊었다.

특히나 수비 잘 한다고 소문난 프로 선수들처럼 여유를 부리는 듯한 움직임이 마음에 들었다.

‘원래 수비는 서두르면 멋이 없지.’

이 정도면 자신이 중견수로 뛰던 시절과 비교해도 크게 부족하지 않을 것 같았다.

“참, 아까 아는 사람이 고등학교 코치라고 했지?”

“아는 얼굴인지 한 번 물어볼까요?”

“아니. 그 사람 연락처 나한테 줘. 내가 대신 확인해 볼 테니까.”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죠.”

“괜히 연락했다가 빌미를 주지 말란 말이야.”

“알았어요. 확실히 거절할 테니까 걱정 마요.”

송현민은 영상 링크를 최윤석 타격 코치에게 공유했다. 그리고 바로 메시지를 덧붙였다.

ㄴ형. 얘 누군지 알아요?

“그냥 내가 한다니까.”

최상규가 못미더운 얼굴로 한 마디 했지만 송현민은 가볍게 무시했다.

최윤석 타격 코치는 약속 당일에 펑크를 내도 너그럽게 이해해 줄 사람.

혹시라도 다시 레슨 이야기를 꺼내면 정중하게 거절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ㄴ너 이 영상 어디서 났냐?

ㄴ에이전트가 연관 영상으로 떴다고 보여줬는데 왜요? 누군지 알아요?

ㄴ얘가 걔야.

ㄴ뭔 소리에요?

ㄴ얘가 내가 말한 우리 학교 학생이라고.

2

“유성아! 너 영상 찍은 거 미튜브에 올려도 돼?”

“내 영상?”

“아까 너 수비 펑고 영상 찍었거든? 이거 내가 제대로 편집해서 한 번 올려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마음대로 해.”

“고마워, 유성아. 나중에 구독자 늘어나면 내가 한 턱 쏠게.”

매니저 황선우가 미튜브를 언급한 건 일주일 전.

프로 신분이었다면 초상권 때문에 안 된다고 잘라 말했겠지만.

고작 펑고 영상으로 인기를 끌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대수롭지 않게 허락했다.

예상대로 황선우가 야심차게 준비한 수비의 신 시리즈는 쫄딱 망했다.

박유성의 수비 영상에 송현민의 프로 초창기 모습을 덧입힌 것 까지는 좋았는데 과도한 멘트가 반발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ㄴ송현민 급 수비? 장난함?

ㄴ진짜 우리 현민 오빠가 만만하나. 개나 소나 걸고넘어지네.

ㄴ그런데 수비 잘 하긴 하는데?

ㄴ저게 잘 해 보이면 님 보는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되는 겁니다.

ㄴ송현민 내야로 전업해서 그렇지 중견수 시절에 날아다녔어요. 아마추어 선수가 비빌 레벨이 아닙니다.

ㄴ딱 봐도 송현민 따라하는 거 같은데 우리가 너그럽게 이해해 줍시다.

ㄴ송현민 따라하려면 송현민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야죠. 사람 좋다고 만만해 보이나?

ㄴ현민 오빠는 다 좋은데 착해 빠진 게 탈이에요.

ㄴ얼굴로 날아온 빈볼 피하고 나서 투수에게 먼저 괜찮다고 손을 들어 보이는 호구 야구선수가 세상에 송현민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ㅠ.ㅠㄴ송현민 호구 역사를 읽다 보면 야구 선수가 아니라 부처 같음.

ㄴ그래서 별명이 송부처잖아요.

ㄴ저기 송현민 팬 여러분?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다른 데 가서 놀아주실래요?

“미튜브는 어때? 잘 되고 있어?”

“아니. 그거 그만하려고.”

“뭐야, 벌써 포기야?”

“미안. 조금 더 공부하고 나서 다시 도전해 볼게.”

박유성은 풀이 죽은 황선우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까 힘내라.”

1회차 시절과 2회차 시절.

황선우는 개인 방송 야구 해설가로 제법 인기를 끌었다.

‘그래도 동기랍시고 내 얘기 좋게 해 준 거 고마웠는데 이번에는 내가 좀 도와 줘야지.’

아마 황선우도 자신과의 추억을 방송 소스로 활용한 것이겠지만.

미래의 개인 방송인과 잘 지내서 손해 볼 건 없다고 여겼는데.

“유성아. 너 송현민이 누구인 줄 알지?”

“대한민국에서 송현민 선배님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그 송현민이 너를 찾는다.”

“······네?”

“선우가 미튜브에 네 영상 올렸다면서? 현민이가 그걸 봤다더라. 너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데?”

송현민과의 인연이 확 앞당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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