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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16화 (16/412)

타자 인생 3회차! 16화

03. 비결이 뭐야? (3)

“도핑 센터에요?”

“여기 말고 이 녀석아.”

“야구 선수는 병원에 안 오는 게 가장 좋은데요?”

“하하. 그래. 내가 말을 잘못 했구나. 병원 오는 일 없게 몸 관리 잘 해라.”

“넵. 감사합니다!”

병원을 나선 박유성은 김석률 수석 코치를 따라 야구 용품점으로 향했다.

명품야구사라는 살짝 촌스러운 이름의 가게였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무섭게 사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어이구, 김 코치님. 오랜만입니다.”

“홍 사장님도 잘 지내셨죠?”

“코치님 덕분에 입에 풀칠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뭐 필요하신 게 있으세요?”

“저 말고 여기 이 녀석이요.”

“오호, 제자입니까?”

“네. 배트가 좀 가볍다고 해서요. 새로 배트를 맞추려고 왔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홍원식 사장이 잠시 안쪽으로 들어가자 박유성이 김석률 수석 코치를 보며 물었다.

“저 배트 필요 없는데요?”

“쓰던 게 안 맞다며? 설마 그 배트 하나로 버티려고?”

“정후 선배님 배트가 저한테는 딱이에요. 인생 배트라고요.”

태산 고등학교전을 끝으로 신성 고등학교 야구부의 공식 일정은 끝이 났다.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같이 훈련을 하고 있긴 하지만 졸업 예정인 3학년이 빠져나가면서 지금은 자체 청백전을 진행하는 게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래서 박유성도 기초 체력을 다지며 타격 밸런스를 맞추는 훈련에 집중했다.

기존에 쓰던 배트들은 후배들에게 나눠 주고.

김석률 수석 코치에게 받은 기정후 배트 하나만 손에 쥐고 휘둘렀는데 농담이 아니라 왜 이 배트를 이제 사용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 정도였다.

하지만 김석률 수석 코치는 프로 선수의 배트에 너무 의존하는 박유성이 걱정스러웠다.

손에 익는 장비도 중요하지만 고등학교 선수가 벌써부터 장비를 타는 것도 좋을 게 없다고 여겼다.

게다가 기정후의 배트는 생각 이상으로 고가였다.

‘저거 한 자루에 100만원이 넘으니까.’

박유성을 위해 몇 자루 더 구매해줄까 해서 가격을 알아봤던 김석률 수석 코치는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대신 아마추어 지도자들 사이에서 가성비 좋기로 소문이 난 명품야구사로 데려왔다.

“자, 이것들 중에서 괜찮은 게 있으면 골라 봐라.”

홍원식 사장이 샘플용 배트 다섯 자루를 가져 와 박유성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박유성이 기정후 배트와 가장 비슷하게 생긴 방망이를 집어 들었다.

“이것보다 조금 길었으면 좋겠는데 가능할까요?”

“가능은 한데 그럼 스윙이 퍼져 나올 텐데?”

“그건 상관 없어요. 그리고 조금 더 무거웠으면 좋겠어요.”

“원하는 무게가 있니?”

“870g 정도요?”

“그렇게나? 네 체격에는 좀 무겁지 않을까?”

“올 겨울에 살 좀 찌울 거라 괜찮습니다.”

“그래?”

홍원식 사장이 김석률 수석 코치를 바라봤다.

보아하니 김석률 수석 코치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올 것 같은데 선수 고집대로 주문을 받아야 할지 난처해진 것이다.

만약 다른 선수였다면 김석률 수석 코치가 따끔하게 한 소리 했겠지만.

“원하는 대로 만들어 주세요.”

“김 코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알겠습니다.”

주문을 마친 박유성은 김석률 수석 코치와 함께 근처 설렁탕집으로 향했다.

“저 설렁탕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그래? 그럼 많이 먹어라.”

“두 그릇 먹어도 되죠?”

“시켜놓고 남기기만 해?”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마세요.”

고등학생 답지 않게 설렁탕 국물에 깍두기 국물을 푸는 박유성을 보며 김석률수석 코치는 헛웃음을 흘렸다.

지난 며칠 동안 익숙해졌다고 여겼는데.

이 녀석은 보면 볼수록 새로웠다.

“그런데 코치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 이 정도는.”

“코치님은 괜찮아도 사모님은 안 괜찮으실지도 모르잖아요.”

“내가 집에서 쫓겨나기라도 할까봐 걱정이냐?”

“괜히 야구부실에서 쪽잠자지 마시고 안전 자산에 투자했다고 말씀하세요.”

“안전자산?”

“두고 보세요. 우선 지명 무조건 따 낼 테니까.”

“아무튼 말은 잘 해요.”

박유성과 김석률 수석 코치가 사제지간의 정을 쌓던 그 시각.

“아무 문제없다고? 확실해?”

도핑 검사 결과를 전해들은 김민철 감독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신성 고등학교 나승균 감독이 대뜸 전화해서 욕지거리를 퍼부었을 때.

김민철 감독은 도핑을 확신했다.

방귀 뀐 놈이 성 낸다는 말처럼 구린 게 있으니까 더 열을 내는 거라 여겼다.

신성 강남 병원에서 검사를 진행하자고 했을 때는 그저 웃음만 났다.

“그러면 내가 쫄 줄 알고? 콜! 어디 누가 이기나 해 보자!”

신성 그룹 산하 병원에서 도핑 결과가 나왔을 때 무슨 핑계를 대려나 궁금한 마음에 잠까지 설쳤는데 도핑이 아니라니!

김민철 감독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아무 이상이 없답니까?”

“그렇다니까.”

“이상하네. 뭘 먹지 않고서야 하루아침에 야구가 늘지 않을 텐데······.”

박유성의 도핑 가능성을 강하게 주장했던 백광식 수비 코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난주에 매니저가 몰래 찍어 온 플레이 영상 속 박유성은 빠른 발 하나만 믿고 까부는 전형적인 아마추어 선수에 불과했다.

수비할 때는 타구 소리로 타구 코스를 판단하지 않고 눈으로 쫓아다녔고.

타격할 때도 공을 강하게 때려내는 게 아니라 일단 맞추는 데 급급했다.

특히나 주루 플레이가 개판이었는데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본 헤드 플레이의 표본이었다.

경기 중에 앞선 주자를 추월하듯 뒤쫓는 장면을 보면서 육상을 해야 할 놈이 야구를 한다며 혀를 찼을 정도.

그런 선수가 고작 며칠 사이에 모든 단점을 완벽하게 고쳤는데 도핑이 아니라면 대체 뭐란 말인가.

‘인생 3회차라도 돼?’

요즘 새로 보고 있는 야구 소설 속 주인공은 인생 3회차를 산다는 이유로 퍼펙트게임을 밥 먹듯 한다지만.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실력이 급상승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금지 약물 말고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도핑 결과를 전해들은 한우열 수석 코치는 이 분위기에 더 이상 동조하고 싶지 않았다.

애당초 박유성의 도핑 가능성은 신산전 패배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억지에 불과했다.

백광식 수비 코치가 지난 경기 영상까지 틀며 호들갑을 떨었고 김민철 감독이 핏대를 세우는 통에 휘말리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따졌을 때 박유성이 도핑 선수만큼의 괴력을 선보인 건 결코 아니었다.

스포츠 종목마다 차이는 있지만 야구 선수들이 도핑을 하는 주된 이유는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수 년 간 훈련을 통해 만들 근력을 단기간에 끌어 올려 성적을 내는 게 주된 목표였다.

실제로 작년에 도핑으로 적발된 선수도 박유성보다 호리호리한 체격으로 장타와 홈런을 뻥뻥 때려냈다.

그러나 지난 신산전에서 박유성은 달랐다.

세 개의 안타 중에 진정한 의미의 안타는 펜스까지 날아간 두 번째 타구 뿐이었다.

첫 번째 안타는 단타였고.

싹쓸이 3루타는 전진 수비를 하던 외야수들의 사이를 꿰뚫고 나온 거였다.

게다가 두 번째 안타도 제대로 힘을 썼다면 펜스를 넘겼을만한 타구였다.

적어도 타격만 놓고 봤을 때 도핑이라고 단정 지을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였다.

수비도 마찬가지.

스타팅이 반 박자씩 느린 건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앞선 연습 경기 때보다 적극적으로 플레이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띠었는데 이건 코칭으로 얼마든지 개선 가능한 결과였다.

마지막으로 번트 타구 때 3루까지 파고든 것도 적극적으로 뛰라는 더그아웃의 주문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웠다.

‘결국 확실한 건 하나도 없었어.’

10대 0이라는 경기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김민철 감독이 패배의 원인을 찾으려 들자 애꿎은 다른 팀 선수를 물고 늘어진 거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그저 경기를 잘 한 것밖에 없는 어린 선수를 말이다.

‘나라도 사과를 해야겠어.’

한우열 수석 코치는 조용히 감독실을 나왔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들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누구지?”

모르는 번호였지만 한우열 수석 코치는 일단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쩌면 전화번호가 바뀐 학부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한우열 코치님 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태산 그룹 비서실입니다.

“······네?”

-회장님이 찾으시는데 잠깐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으십니까?

“회장님이······ 저를요?”

순간 한우열 수석 코치는 머릿속이 멍해졌다.

태산 학원 이사장과도 따로 독대를 한 적이 없는데 태산 스포츠도 아니고 태산 그룹의 회장이라니.

뭔가 헛것을 들은 기분이었다.

-코치님?

“아, 네. 죄송합니다. 말씀하세요.”

-회장님께서 찾으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저를 찾으시는 거 맞나요?”

-네. 이번 신성 고등학교와의 경기 관련해서 한 코치님께 물어볼 게 있다고 하셨습니다.

“연습 경기요?”

-지금 딱히 바쁘시지 않다면 잠깐 들어오시는 게 어떨까요? 차량은 저희가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딱히 격식 차리실 거 없으니까 편하게 오시면 됩니다. 어쩌면 그 모습이 조금 더 점수를 받으실 수도 있고요.

“점수요? 그게 무슨······?”

-자세한 건 회장님 뵈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겁니다.

통화를 마친 한우열 수석 코치는 한참동안 멍하니 핸드폰만 내려다봤다.

그러다 비서의 이야기를 곱씹고는 표정이 바뀌었다.

“그러니까······ 감독님을 경질한다는 건가? 고작 연습 경기 때문에?”

유강찬 전 감독이 신성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패배한 직후 해임됐다는 이야기는 한우열 수석 코치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김민철 감독이 감독으로 선임된 이후 태산 고등학교로 넘어왔기 때문에 자세한 속사정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경기 결과 이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거니 했는데 정말 패배 때문이었다니.

“대체 신산전이 뭐라고?”

한우열 수석 코치는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그 때 감독실 문이 열리고 김민철 감독과 백광식 수비 코치가 나왔다.

“한 코치님. 여기 계셨습니까?”

“집에서 전화가 와서. 그런데 어디 나가?”

“협회 가는 길입니다. 코치님도 같이 가시죠.”

“협회?”

“아무래도 신성 병원이 의심스럽습니다. 신성 고등학교 선수를 신성 병원에서 검사한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 아닙니까? 안 그렇습니까, 감독님?”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어디 이것들이 짜고 고스톱을 쳐? 내 가만 안 둔다.”

“······.”

여전히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김민철 감독과 백광식 수비 코치를 보며 한우열 수석 코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라도 해서 면피하려는 김민철 감독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목숨이 걸린 경기였던 거야.’

그렇다고 해서 김민철 감독을 따라 협회로 쳐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신성 강남 병원에서 명예를 내던지고 일개 고등학교 선수의 도핑 검사 결과를 조작했을 가능성은 0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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