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14화
03. 비결이 뭐야? (1)
1
경기가 끝나고 신성 고등학교 야구부는 학교 앞 돼지갈비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라이벌전이라고 해도 연습 경기라 승리 회식을 하기가 애매했는데 경기를 지켜 본 신성 그룹 관계자가 따로 금일봉을 건넨 것이다.
덧붙여 신상욱 회장이 결과를 보고받고 기뻐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 듣자 나 승균 감독은 입이 찢어졌다.
“배 코치. 잔이 비었잖아?”
“어이구 감독님. 살려 주십시오. 저 이미 취했습니다.”
“약한 소리 말고 잔 들어. 어허! 감독 말이 우스워?”
“그럼 딱 이번 잔까지만 받겠습니다.”
“누구 맘대로 이번 잔까지야? 자, 자! 오늘 마시고 죽자고!”
술고래로 유명한 나승균 감독에게 붙들린 코치들은 하나같이 죽을 맛이었다.
이러다 또 2차 3차까지 끌려갈까봐 겁이 난 것이다.
하지만 나승균 감독은 오늘의 기쁨을 짧게 끝낼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늘 나보다 먼저 집에 가는 사람은 내가 똑똑히 기억할 거야. 알았어?”
코치들에게 차마 말하지는 못했지만.
태산 고등학교에서 김진수를 준비시켰다는 말을 들었을 때 김민철 감독에게 찾아가서 선발을 바꿔 달라고 사정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했다.
자존심 때문에 차마 태산 고등학교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밤에 수면 유도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할 만큼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최 코치. 지금 장난해? 어디서 밑잔을 깔아?”
“감독님. 저 진짜 못 마시겠습니다.”
“그런 안이한 마음으로 어떻게 애들을 가르치겠어? 애들이 못하겠다 그러면 훈련 안 시킬 거야? 잔 말 말고 잔 비워.”
“하아. 네. 알겠습니다.”
최윤석 타격 코치와 배성일 배터리 코치, 신기남 주루 코치가 돌아가며 나승균 감독의 술잔을 받는 동안 선수들은 눈치 보지 않고 고기를 흡입했다.
“이모! 여기 3인분이요!”
“저희도 3인분 더 주세요!”
“야, 다 먹고 시켜!”
“이거 한 번만 구우면 끝이거든? 그리고 고기는 끊기면 맛없거든?”
박유성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야무지게 쌈을 싸 먹었다.
상추 위에 깻잎 한 장을 얹고.
잘 익은 고기 두 점을 양념 소스에 반쯤 담가 올린 뒤 쌈장 조금에 썰린 마늘 두 개, 그리고 밑반찬으로 나온 부추 절임까지 싸서 입 안에 넣으면
“흐음~”
감탄의 콧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그러자 앞에 앉아 있던 장태수가 짜증을 냈다.
“아 진짜 더럽게. 그 소리 좀 안 내면 안 되냐?”
“싫으면 다른 테이블 가던가. 왜 거기 앉아서 난리야?”
박유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상추를 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장태수가 집으려던 고기를 냉큼 낚아채서 입 안에 집어넣었다.
“야이 씨······.”
“음~ 역시 남이 굽던 고기가 제일 맛있어. 지원아. 팍팍 좀 구워라.”
“어, 그래. 유성아. 내가 열심히 구울 테니까 너는 먹기만 해.”
장태수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손지원은 쉴 새 없이 고기를 구웠다.
손지원의 부모가 봤다면 우리 아들 맞냐며 눈을 똥그랗게 떴겠지만.
박유성 덕분에 승리 투수가 된 손지원은 박유성이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불렀다.
물론 안타 하나 못 친 주제에 자신의 옆에서 젓가락을 깨작거리는 장태수는 꼴보기 싫었다.
“태수야. 그거 아직 안 익었다.”
“그러니까 나도 좀 줘! 유성이만 주지 말고.”
“너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 거기 집개 있잖아?”
“난 고기 못 굽는다고.”
“그럼 처먹지 마. 이 새끼야.”
오늘 경기에서 박유성은 만점 활약을 펼쳤다.
총 네 차례 타석에 들어서 싹쓸이 3루타를 포함해 3안타를 때려냈고 3타점과 2득점을 올렸다.
반면 장태수의 성적은 5타석 4타수 무안타에 1타점.
희생 플라이로 박유성을 불러들이면서 체면치레하긴 했지만 손지원이 구워주는 고기를 건드릴 자격은 없어보였다.
그런 손지원의 속내를 읽은 것일까.
박유성이 고기 한 점을 집어 장태수에게 건넸다.
“뭐야?”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기?”
“됐어! 안 먹어!”
“그러게 좀 잘 하지 그랬냐? 명색이 3번 타자인데 홈런 두 개 정도는 쳤어야지. 안 그래 지원아?”
“두 말 하면 입 아프지. 난 세상에 3번 타자가 홈런 못 치는 거 처음 봤다.”
“나도. 아주 태수하고 병욱이 놈 선풍기질에 경기장이 다 시원하더라.”
“진짜 에어컨 튼 줄.”
“둘 다 입 좀 닥쳐 줄래?”
그 때 잠깐 밖으로 나갔던 김석률 수석 코치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터벅터벅 걸어와 비어 있던 박유성의 옆자리에 앉았다.
순간 손지원과 장태수가 동시에 멈칫했지만.
“코치님. 한 쌈 드실래요?”
“됐다. 이놈아. 너나 많이 먹어라.”
“에이, 그래도 성의가 있는데 아 하세요.”
“됐다니까?”
“팔 아파요. 어서요~”
“너 여기다 이상한 거 넣었지?”
“저 먹는 걸로 장난치는 놈 아닙니다.”
박유성은 능청스럽게 김석률 수석 코치에게 쌈을 내밀었다.
마지못해 쌈을 받아먹었던 김석률 수석 코치가 이내 눈을 똥그랗게 떴다.
방금 전까지 먹었던 갈비가 맞나 싶을 만큼 맛이 좋았다.
“맛있죠?”
“뭐 넣은 거냐?”
“자, 보세요. 일단 상추 한 장 올리고~”
박유성은 김석률 수석 코치를 위해 다시 정성스럽게 쌈을 쌌다. 그리고는 다시 싫다는 김석률 수석 코치의 입에 쌈을 밀어 넣었다.
‘이 녀석이 진짜 뭘 잘못 먹었나? 갑자기 왜 이래?’
쌈을 꼭꼭 씹으며 김석률 수석 코치는 박유성을 바라봤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자신의 눈치를 보며 슬슬 피해 다니기 바빴던 녀석이 갑자기 이러니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당혹스러운 건 장태수와 손지원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김석률 수석 코치를 독사라며 질색하던 박유성이 저러니까 소름이 돋다 못해 무서워졌다.
“갑자기 배가 아프네. 화장실 좀 가야겠다.”
“어, 나도. 같이 가자.”
장태수와 손지원이 도망치듯 자리를 뜨자 김석률 수석 코치가 박유성의 앞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너 솔직히 말 해 봐.”
“뭘요?”
“너 혹시 뭐 이상한 거 먹었니?”
“이상한 거요?”
“금지 약물 같은 거 말이다. 혹시라도 뭐 이상한 걸 먹은 적이 있으면 지금 말해야 한다.”
방금 전.
김석률 수석 코치는 태산 고등학교 한우열 수석 코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처음에는 승리 축하라도 해 주려는 건가 싶었는데.
-저희 감독님이 의심을 하시더라고요. 저희도 전력 분석을 한다고 했는데 오늘 활약상은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요.
사설이 길었지만 한우열 수석 코치가 하려던 말은 간단했다.
금지 약물 투여가 의심된다.
신성 고등학교를 위해서라도 도핑 검사를 받게 하는 게 좋겠다.
그러면서 갑자기 실력이 상승해 의심을 산 선수들 태반이 금지 약물에 적발됐다는 예까지 들먹이는데 김석률 수석 코치도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운을 떼 본 건데 박유성은 정작 쌈싸기에 여념이 없었다.
“너 내 말 듣고 있는 거냐?”
“코치님이 걱정하시는 그런 일 없으니까 걱정 마세요.”
“확실한 거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금지 약물 먹고 바로 실력이 좋아지면 전부 메이 저리그 가게요?”
금지 약물마다 성분과 효능이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금지 약물은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확 달라지는 건 결코 아니었다.
짧게는 한두 달, 길게는 반 년 정도의 시간을 거치며 실력을 끌어 올리는데 박유성은 그런 전조증상 자체가 없었다.
‘하긴. 그랬다면 내가 정신 좀 차리고 플레이하라고 잔소리를 하지도 않았겠지.’
김석률 수석 코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손지원이 내려놓았던 집개를 집어 들고 숯불 위에 고기를 올렸다.
“제가 구울게요.”
“됐으니까 먹기나 해라.”
“코치님 고기 못 구우실 거 같은데요.”
“너보다는 잘 구우니까 걱정하지 말고.”
선후배 관계가 철저한 한국 야구계에서 고기 굽는 건 늘 막내의 몫이었다.
가끔 성격 좋은 선배들이 대신 굽기도 하지만 일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 막내들이 자발적으로 집개를 잡는 게 원칙이었다.
김석률 수석 코치도 현역 시절 내내 고기를 구웠다.
막내 시절에는 막내라서 구웠고.
선배가 되고 난 후에는 후배들을 부려먹기 싫어서 구웠으니 박유성 앞에서 큰 소리 쳐도 될 거라 여겼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박유성은 프로 생활만 40년을 해 왔다.
‘갈비 저렇게 굽는 거 아닌데.’
손지원은 알려주는 대로 양념이 타지 않게 잘 구웠는데.
건성으로 대충 고기를 뒤집는 김석률 수석 코치를 보니까 이대로 둬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세요. 제가 구울게요.”
“됐으니까 먹으면서 들어라.”
“구우면서 들을게요.”
“그놈 참. 고집하고는.”
집개를 박유성에게 넘긴 김석률 수석 코치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한우열 수석 코치와의 통화 내용을 전달했다.
“그러니까 도핑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거죠?”
“그래. 괜찮겠니?”
“상관은 없는데 기왕이면 공신력 있는 병원에서 받고 싶어요.”
“공신력 있는 병원?”
“지금 태산에서 졌다고 꼬투리 잡는 거잖아요. 나중에 딴소리 못 하게 하려면 확실한 게 좋죠.”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과거 태산 고등학교에 졌을 때 나승균 감독은 경질 직전까지 갔다.
결혼을 앞둔 나승균 감독의 딸이 커뮤니티에 사정을 올리면서 목숨을 부지하긴 했지만 봉황기 1라운드에서 태산 고등학교를 이기기 전까지 야구부 전체가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아마 태산 고등학교 사정도 비슷하겠지. 한 두점 차이도 아니고 10대 0으로 깨졌으니까.’
박유성에게 싹쓸이 3루타를 얻어맞은 김진수가 강판되자 태산 고등학교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나오는 투수들마다 안타를 얻어맞았고.
중요한 순간마다 실책이 겹치면서 7회에 10대 0이라는 스코어가 만들어졌다.
나승균 감독이 박유성을 비롯한 주전급 선수들을 빼 주지 않았다면 아마 점수는 더 벌어졌을 터.
‘지난번에 3대 1로 졌을 때도 감독을 갈았으니까 김민철 감독도 똥줄이 탈거야.’
현재 김민철 감독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개였다.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하거나.
다른 희생양을 만들어서라도 자리보전을 하거나.
김민철 감독의 성격 상 사퇴보다는 책임을 떠넘길 가능성이 높아 보였는데 설마하니 그 유탄이 자신에게 튈 줄은 몰랐다.
“그런데 코치님.”
“왜?”
“제가 오늘 그렇게 잘 했나요?”
“무슨 얘기를 듣고 싶은 거냐?”
“그냥요. 두 번째 타석에서 홈런도 못 쳤고 마지막 타석도 평범한 플라이였잖아요.”
“그래서? 전 타석 안타를 때리지 못해 성에 안 찬다는 거야?”
“김진수도 아니고 서우현한테 안타 못 친 건 좀 아쉽긴 하죠.”
박유성의 네 번째 타석 때 마운드에 오른 건 2학년 좌완 투수 서우현이었다.
얼굴은 물론이고 이름조차 낯선 상대라 만만하게 봤는데 정작 타구는 평범한 중견수 플라이에 그쳤다.
그러자 김석률 수석 코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게 야구다.”
“네?”
“에이스 투수를 상대로 홈런을 칠 수도 있지만 신인 투수에게 삼진을 당할 수도 있는 게 야구라고.”
“아······.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