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2화 (2/412)

타자 인생 3회차! 2화

01. 인생 3회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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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캐스터 유광철입니다. 오늘은 트윈스와 스타즈, 스타즈와 트윈스 간의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를 중계해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오늘도 제 옆에는 황인국 해설위원께서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황인국입니다.

-길고 길었던 페넌트레이스가 이제 끝이 나는데요.

-그렇죠. 오늘 경기를 끝으로 최종 순위가 결정이 날텐데 나눔 리그는 아직까지도 순위 싸움이 치열합니다.

-현재 랜더스와 스타즈가 리그 1,2위를 확정지은 가운데 트윈스와 타이거즈가 반 경기차입니다.

-이번 시리즈 전까지만 해도 트윈스가 두 경기 반차이로 앞서고 있었습니다만 그제와 어제, 두 경기를 내리 패배하면서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됐죠.

-만약에 트윈스가 오늘 경기까지 스타즈에게 내주게 된다면 3위 자리가 위태로운데요. 그래서인지 박광철 감독이 총력전을 선언했습니다.

-광주 경기 결과를 떠나서 오늘 경기를 잡아내기만 하면 자력으로 포스트 시즌 진출을 확정짓게 되니까요. 경우의 수를 따지기보다 최선을 다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입니다.

2048년 10월 3일.

스타즈의 홈구장, 스타즈 파크에서 트윈스와 스타즈 간의 시즌 마지막 경기가 펼쳐졌다.

랜더스에 4경기 차이로 뒤진 스타즈는 승패와 상관없이 나눔 리그 2위가 확정인 반면 트윈스는 1승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3연전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스타즈에서 봐주기 경기를 할 수도 있다는 말들이 많았지만.

스타즈는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주전급 선수들을 총 동원해 3연전의 두 경기를 잡아냈고.

마지막 경기마저 최선을 다하며 트윈스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다.

8회까지 스코어는 3대 3.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팽팽한 분위기 속에서 9회 초 트윈스의 6번 타자 김남규가 안타를 때려내자 박광철 감독은 곧바로 박유성을 호출했다.

“유성아. 알지?”

“어떻게든 출루하겠습니다.”

“너 요즘 컨디션 좋으니까 좋은 공 안 줄 거다. 절대 욕심 부리면 안 돼.”

“걱정 마세요, 감독님. 야구 하루 이틀 하나요.”

박광철 감독의 지시를 받은 김재석 수석 코치가 그라운드로 올라오자 원정 관중석이 떠들썩하게 변했다.

-아무래도 대타를 쓰려는 것 같은데요.

-아마 박유성 선수겠죠?

-박유성 선수가 변희수 선수를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박유성 선수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중계석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중계 카메라가 3루 쪽 더그아웃을 비췄다. 그리고 잠시 후 장비를 착용한 박유성이 천천히 타석으로 걸어 나왔다.

-현재 대한민국 최고령 타자인 박유성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시즌 타율은 0.315, 3개의 홈런과 59타점을 기록중입니다.

-한국 나이로 치면 내년에 마흔인데요. 어마어마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절친인 장태수 선수는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결정했는데요. 반면에 박유성 선수는 현역 연장을 희망중입니다.

-올 시즌 타격만 보면 한 두 시즌은 더 뛰어도 될 것 같은데요. 관건은 나이겠죠.

비록 선발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3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선수들과 경쟁하는 박유성의 실력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스타즈 벤치도 박유성이 대타로 나오자 곧바로 반응했다.

-아, 스타즈 장철민 감독도 마운드로 향합니다. 설마 투수를 바꾸려는 걸까요?

-글쎄요. 박유성 선수는 좌투수 우투수를 가리지 않고 잘 치거든요? 그보다는 불펜 에이스인 변희수 선수를 믿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장철민 감독. 일단 변희수 선수와 얘기를 나누는데요. 변희수 선수가 공을 꼭 움켜쥐고 있습니다.

-변희수 선수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 여기서 교체당하고 싶지 않겠죠.

-아, 장철민 감독이 그대로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이게 맞습니다. 설사 여기서 얻어맞더라도 스타즈의 순위에는 변함이 없잖아요? 이럴 땐 변희수 선수에게 경험을 쌓게 하는 게 낫습니다.

제법 긴 준비 시간이 끝나고.

박유성과 변희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올 시즌 상대 전적은 3타수 3안타에 홈런 하나.

그 투런 홈런 한 방으로 올 시즌 첫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으니 변희수의 눈매가 굳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박유성은 변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잘 알고 있었다.

‘무사 1루. 내가 몸 쪽 공에 강한 걸 알 테니까 초구는 안전하게 바깥쪽을 찌르겠지. 구종은 포심? 아니,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슬라이더. 그래. 그걸 노리자.’

박유성이 방망이를 끌어당기자 변희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투구판을 박차고 나왔다.

“으아악!”

사람 죽일듯한 기합 소리와 함께 새하얀 공이 바깥 쪽으로 날아들었고.

따악, 하는 파열음과 함께 스타즈 파크가 들썩였다.

-쳤습니다! 박유성 선수가 초구부터 방망이를 휘두릅니다.

-빠졌어요. 3유간을 정확하게 꿰뚫었습니다.

-1루 주자 김남규가 2루를 돌아 3루로! 아아, 다시 2루로 귀루합니다.

-타구가 좌익수 정면으로 굴러갔으니까요. 김남규 선수 걸음 상 3루까지 가는 건 무리였습니다.

무사 1,2루의 기회를 잡은 트윈스 벤치는 곧바로 작전을 냈고.

7번 타자 공필호가 3루 쪽으로 희생 번트를 성공시키자 스타즈 벤치에서도 고의사구 사인이 나왔다.

-이렇게 되면 최영호 선수 앞에서 만루 밥상이 차려지는데요.

-최영호 선수. 앞선 세 타석에서 삼진 두 개와 땅볼을 기록 중입니다. 시즌타율은 0.288 이대로 시즌이 끝난다면 나눔 리그 신인왕이 유력해 보입니다.

-시즌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체력적인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신인왕경쟁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겠죠.

-트윈스의 슈퍼 루키, 최영호 선수가 과연 이 기회를 살릴 수 있을까요?

-글쎄요. 변희수 선수를 상대로 올 시즌 안타가 없거든요? 제가 감독이라면 최영호 선수 대신 대타 카드를 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트윈스는 1승이 먼저니까요.

중계진이 대타를 예상했지만 박광철 감독은 최영호를 밀어붙였다.

박유성 말고는 변희수에게 강한 타자도 없거니와 최영호를 각별히 아낀다는 구단주가 경기장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영호야. 잘 할 수 있지?”

“네. 할 수 있습니다.”

“병살만 치지 마.”

“네. 감독님!”

박광철 감독은 최영호가 오늘 경기의 영웅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스타즈의 불펜 에이스 소리를 듣는 변희수의 공을 때려 내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초구가 바깥 쪽 꽉 차게 들어옵니다. 원 스트라이크.

-빠른 공이었는데요. 최영호 선수가 반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몸 쪽 공을 기다렸던 걸까요?

-그보다는 변화구를 노렸던 것 같습니다.

-투포수, 사인 교환을 끝내고 변희수 선수가 2구를 던집니다. 이번에도 바깥쪽! 149km/h의 빠른 공에 최영호 선수의 방망이가 헛돕니다.

-최영호 선수.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스타즈 배터리에게 끌려 다니면 안돼요.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 낸 변희수가 마운드 뒤로 내려가 로진백을 주물렀다. 그리고는 박유성 쪽을 바라보며 길게 로진 가루를 불어냈다.

‘짜식이 까불긴.’

박유성은 자신만 보면 으르렁거리는 변희수가 귀여웠다.

야구팬들은 선배에 대한 예의가 없다며 변희수를 비난하지만.

1회차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박유성은 기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한 변희수 나름의 어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까불었으니까 벌을 줘야겠지?”

“······네?”

“아니야. 아무것도.”

마찬가지로 1회차 시절 부대꼈던 1루수 최동우의 엉덩이를 툭 때린 뒤 박유성은 1루심에게 타임을 요청했다.

“왜? 뭔데?”

“벨트가 끊어질 거 같아요.”

“도루 할 것도 아니면서 무슨.”

“영호가 장타 치면 홈까지 달려야 하는데 그러다 벨트 끊어지면 책임 지실래요?”

잠시 고민하던 1루심이 양 팔을 들었고.

박유성은 최영호를 향해 벨트를 가져다달라고 주문했다.

잠시 후.

“선배님. 여기요.”

“이번에도 바깥 쪽 빠른 공이다. 고민하지 말고 때려.”

“넵. 감사합니다!”

1루 베이스 선상 중간에서 만난 최영호에게 박유성이 특급 팁을 전했다.

그리고.

따악!

최영호는 다시 한 번 바깥쪽으로 내리꽂히는 변희수의 152km/h짜리 포심 패스트 볼을 때려내며 루상에 있던 주자를 전부 홈으로 불러들였다.

“크아아아아아!”

“영호야아아아아!”

2루까지 치고 나간 최영호의 머리 위로 트윈스 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고.

최영호는 관중들을 향해 어퍼컷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기쁨을 함께 했다.

“짜식. 좋단다.”

홈까지 전력질주하느라 숨이 가빴지만 박유성은 씩 웃었다.

대타로 나가 안타를 때려냈고 최영호의 결승타에 크게 기여했으니 구단에서 약속을 지킬 거라 여겼다.

하지만 경기 직후 만난 김재혁 단장은 딴소리부터 늘어놓았다.

“마무리 캠프 들어가면 박 선수가 영호 전담으로 맡아 봐.”

“전담으로요?”

“그래. 선수 생활은 할 만큼 했잖아? 이제 영호 한 번 키워 보라고.”

“단장님.”

“알아. 아쉬운 것도 알고 조금 더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 그런데 장태수도 은퇴한다잖아? 박 선수도 내년이면 마흔이야. 이제 지도자 준비해야지.”

“저는 약속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구단도 약속 지켜 주세요.”

트윈스로 트레이드 되고 김재혁 단장을 처음 만났을 때 김재혁 단장이 물었다.

“나하고 나이 차이도 많이 안 나는데 이름 부르는 건 그렇고 박 선수라고 할 게요. 괜찮죠?”

“네. 편할 대로 불러 주십시오.”

“그래요, 박 선수. 박 선수는 언제까지 선수생활을 할 생각이에요?”

“방망이 들 힘이 남아 있을 때 까지 타석에 서고 싶습니다.”

“하하. 역시 박 선수답네요. 박 선수야 지금껏 해온 게 있으니까 몇 년 더 현역으로 뛸 수도 있겠지만 구단 입장도 생각해 줘야 해요. 한창때라면 모를까 작년 성적으로는 1군에서 버티는 것도 힘들어요.”

“기회만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니죠. 프로 선수라면 주어진 기회 안에서 최선을 다 해야죠. 안 그래요?”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하죠. 솔직히 박 감독은 상의도 없이 박 선수 데려왔다고 난리에요. 우리가 1차 지명으로 데려 온 선수 알죠?”

“최영호 선수요?”

“그 선수가 우리 박 선수 팬이랍니다. 박 선수 보면서 야구를 시작했다나? 또 박유신 선수를 우리 박 선수가 키웠잖아요?”

“키웠다기보다는 방향성만 제시해줬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래서 박 선수를 데려 온 겁니다. 영호 한 번 제대로 키워 봅시다. 대신에 올 시즌 1군은 보장할게요. 어때요?”

“제가 1군에서 성적을 내면 재계약 해 주시는 겁니까?”

“그럼요. 해 드려야죠. 대신 세 가지 조건을 전부 만족시켜야 합니다.”

“세 가지 조건이요?”

“첫째. 최영호 선수를 신인왕으로 만들 것. 둘째, 3할 타율 혹은 20홈런 둘중에 하나를 기록할 것. 마지막으로 트윈스가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 것.”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그렇다 쳐도 마지막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요. 팀이 가을잔치에 못 나가면 팬들부터 리빌딩 하라고 난리치지 않겠어요?”

“······.”

“우리 박 선수는 파이터즈 떠난 이후로 계속 포스트 시즌을 경험했잖아요? 그런 좋은 에너지를 선수들에게 나눠 줘요. 혹시 압니까? 박 선수 덕분에 트윈스가 5년만에 포스트 시즌에 올라갈지?”

이때 이 말을 녹음이라도 해놨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말을 바꾸는 김재혁 단장을 보니까 화가 났다.

하지만 김재혁 단장은 애당초 박유성과 재계약 해 줄 마음이 없었다.

최영호가 워낙에 박유성 바라기라 박유성을 영입했던 거고 올 시즌이 끝나면 코치로 돌릴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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