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1화
Prologue
1
“유성아. 너 그거 아냐?”
“뭐?”
“타격왕은 국산차를 타지만 홈런왕은 외제차를 몬단다.”
“뭔 개풀 뜯어먹는 소리야?”
“진짜라니까? 안타 백년 쳐봐야 홈런이 짱이다, 이 말이야.”
“닥치고 넌 좀 쳐라. 선풍기질 작작하고.”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 해.”
“너같이 휘둘러서 홈런 못 치면 그게 야구 선수냐?”
1회차 시절 자신의 뒤에서 타점이나 받아먹던 장태수가 이죽거렸을 때 박유성은 코웃음을 쳤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선풍기질만 해대는 타자들이 퇴출 위기에 몰려 있는데 홈런 왕 타령이라니.
저러니 야구가 늘지 않는다고 여겼다.
하지만 10년 후.
골든 글러브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장태수가 FA 대박을 터트렸을 때 X발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장태수가 다이노스로 이적하며 받은 돈은 5년에 120억.
반면 2년 연속 골든 글러브를 수상한 자신에게 소속팀 파이터즈가 제안한 금액은 6년에 90억.
이유를 묻자 단장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유성아. 우리 구단 사정 알잖아. 좀 봐줘라. 설마 돈 때문에 다른 구단 가려는 거 아니지?”
처음에는 이 말을 믿었다.
파이터즈는 프로 구단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만큼 돈을 안 썼으니까.
하지만 나중에 장태수를 만나 들은 얘기는 달랐다.
“파이터즈? 왔지. 거기가 제일 많이 불렀어.”
“뭐? 얼마나?”
“6년에 150억? 근데 마이너스 옵션을 30억이나 끼워 넣더라. 그래서 무시했지. 같은 돈이면 다이노스 가지 뭐 하러 파이터즈 가서 고생하냐?”
“······X발.”
장태수는 5년을 채우고 또 다시 FA 대박을 터트렸다.
4년 계약에 90억.
“100억 이상 받겠다더니 꼴좋다.”
“야, 너도 내년에 시장 나가 봐라. 노장들은 아주 찬밥취급이다.”
장태수가 앓는 소리를 했지만 박유성은 코웃음을 쳤다.
나이가 들면서 장타력이 반감된 장태수와 달리 자신은 9년 연속 3할 타율을 유지했으니까.
서른다섯이 되더라도 구단에서 그 가치를 인정해 줄 거라 여겼지만 구단의 생각은 달랐다.
“얼마요?”
“70억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이. 장난하지 말고요.”
“부족하십니까?”
“······?”
“대신 박유성 선수가 원하는 것처럼 4+2년 계약하겠습니다.”
애당초 6년 계약을 요구했던 건 잘 할 자신이 있어서였다.
스윙 스피드는 떨어졌을지 몰라도 쌓아놓은 경험치를 바탕으로 타격에 눈을 떠가는 중이니까.
어쩌면 최고령 타격왕도 불가능하지 않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FA를 통해 이적한 스타즈는 다르게 생각했다.
6년 계약을 받는 대신 금액은 현실적으로.
결국 오랜 줄다리기 끝에 4+2년에 80억이라는 금액에 도장을 찍어야 했고.
“븅신.”
“닥쳐 X발놈아.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왜 나 때문이야?”
“네가 더 받았어야지!”
“그래. 그건 형이 잘못했다.”
선수 생활이 끝날 때까지 장태수에게 놀림을 받아야 했다.
그러다 2회차를 맞이했을 때.
박유성은 똑딱이에서 벗어나리라 마음먹었다.
“최 코치님. 저도 캠프 데려가주세요.”
“응? 너도? 유성아. 이 캠프는 말이다.”
“알아요. 체중 증량이 목적이라는 거.”
“넌 타격 재능이 좋으니까 그 쪽으로 밀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아시잖아요. 잘 치는 것만으로는 의미 없는 거. 한 방이 있어야죠.”
“흠······. 네 뜻이 그렇다면야.”
과거로 돌아간 박유성은 중장거리포였던 장태수를 홈런타자로 살찌운 최윤석코치의 먹자캠프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장타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잘 맞추기만 하는 타자에서 한 방을 때릴 줄 아는 타자가 되자 많은 게 달라졌다.
“파이터즈의 1차 지명 선수는······ 축하합니다. 신성 고등학교 박유성 선수!”
드래프트 지명 순위가 높아졌고.
“유성아. 넌 바로 1군부터 시작해라.”
팀의 기대치가 높아졌으며.
“6년에 120억 어떻습니까?”
“하아. 그건 좀······.”
“좀 봐 줘요. 파이터즈잖아요.”
20억이긴 하지만 FA 계약금이 올라갔다.
1회차 때보다 홈런을 더 때려낸 장태수가 5년에 140억에 계약한 건 짜증났지만 적어도 똑딱이로 살 때보다는 낫다 여겼다.
하지만 홈런을 쳐낸다고 모두가 홈런 타자가 될 수는 없었다.
“박유성? 까놓고 홈런 타자라기 보다는 중장거리형 타자지.”
“파이터즈 홈구장 탁구장 아니냐? 거기서 홈런 많이 친 걸로 홈런 타자 소리 들으려는 건 욕심이지.”
단 한 번도 30홈런을 넘지 못하면서 평가절하됐고.
에이징 커브를 맞은 이후로는 아예 짐짝 취급을 당했다.
1군 데뷔가 빨라 두 번째 FA 때 7년 150억이라는 대박을 터트렸지만.
“유성아. 짐 싸라.”
“네?”
“너 라이온즈로 가기로 했다.”
파이터즈에서 라이온즈로.
그리고 다시 베어스를 거쳐 히어로즈로.
선수 말년에 저니맨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영혼의 라이벌 장태수에게 더는 쪽팔리지 않기 위해.
자신을 보며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룬 동생 박유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박유성은 자존심을 버리고 다시 정확도 높은 타격에 집중했다.
그 결과 회춘했다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만 38세.
한국 나이로 마흔을 코앞에 둔 박유성에게 기회를 줄 구단은 많지 않았다.
“젠장할. 3회차 없냐?”
남들이 들었다면 미친 거 아니냐며 코웃음을 쳤을 거다.
하지만 2회차를 산 박유성은 다시 인생 3회차가 찾아오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만에 하나 기적처럼 3회차 인생이 주어진다면?
“메이저리그까지 전부 씹어 먹는다!”
이번에는 진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