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32화 (132/163)

우리는-!!(1)

“하···.”

슬프다.

“하아···.”

죽을 것 같다.

인생은 원래 이렇게 힘든 걸까.

“...걷다가 입에 새똥이나 떨어져라.”

걸음마다 똥을 밟고, 들숨에 병을, 날숨에 불운을 얻길.

서 팀장의 사무실에서 나와 제 자리에 앉은 혜원은 입술을 꽉 깨물며 메모장을 띄워 특정인을 향한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혜원 씨? 뭐해?”

“으악!!”

모니터를 노려보며 자신이 아는 모든 저주를 퍼붓던 혜원은 갑작스러운 속삭임에 자신의 귀를 감싸 쥐며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누, 누구? 아, 대리님!”

자리에서 펄쩍 뛰는 와중에 한쪽 손을 놀려 빛의 속도로 ‘Alt-Tab’을 눌러 증거인멸을 시도하던 혜원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인물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대리님, 깜짝 놀랐잖아요. 기척 좀!”

장난기 많은 이 대리 때문에 간 떨어질 뻔 한지가 몇 번인가. 그래도 요즘 서 팀장과 일을 하느라 장난이 좀 덜하더니, 다시 살만한가 보다.

“대리님은 이제 좀 적응하셨나 봐요.”

팀의 리더이자, 회사에서 유일하게 상사라고 할만한 김 과장님의 급작스러운 퇴사 이후, 팀 분위기는 나락 그 차제였다.

특히나 지금 생글거리고 있는 이 대리는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머리카락까지 쥐어뜯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는데···. 지금 웃는 거 보니까 적응이 되었나 보다.

“응? 적응이라니? 내가? 아닌데?”

“...”

대답을 들으니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하하. 내가 지금 적응한 거 같이 보여? 큰일이네. 아닌가? 오히려 좋은 건가? 하하하!”

아무래도 적응된 게 아니라, 미친것 같았다.

“초콜릿 드실래요?”

스트레스에는 초콜릿.

언젠가부터 첫 번째 서랍에 가득가득 쌓이게 된 초콜릿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거···. 혜원 씨 애착 간식 아니었어? 누가 달라 그러면 도끼눈 뜨고···. 히익. 취소.”

“...저보다 더 심한 거 같아서 드리는 거니까, 그냥 받으시죠?”

나를 대체 뭐로 보는지.

조금 째려봤다고 목을 움츠려트리는 이 대리에게 혜원은 초콜릿을 재차 건넸다.

초콜릿 중에서도 몸에 가장 좋다는 다크초콜릿. 그리고 그 안에 가득 채워진 캐러멜 필링. 건강도 챙기고, 스트레스도 푸는 일석이조의 초콜릿이었다.

그만큼 가격도 비싼.

“어어. 고마워. 잘 먹을게.”

“그러셔야죠.”

초콜릿을 받으며 감동한 것 같은 이 대리의 모습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던 혜원은 의자를 돌려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그래서, 보셨어요 안 보셨어요?”

“으응? 뭘?”

“쓰읍. 아까 제가 모니터에 띄워놓은 화면, 보셨냐고요.”

원래 이 대리도 같은 편이긴 했지만, 또 모른다. 요즘 서 팀장이랑 하도 붙어 다니기도 했고, 지금도 표정을 숨긴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밝아진 안색까지는 숨길 수가 없었다.

어디 귀신을 속이려고.

분명 무언가가 변한 게 틀림없었다.

설마, 서 팀장 쪽으로 붙은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오늘부터 이 대리도 저주 대상에 포함 시킬 것이다.

혜원이 잡아 먹을 듯이 이글이글한 눈으로 쳐다보자, 건네받은 초콜릿의 끄트머리를 쥐고 까려던 이 대리는 당연하지 않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새똥이랑 병이 뭐야. 그럴 때는, 들숨에 머리카락을, 날숨에 정력을 잃게 하소서. 이 정도는 돼야지.”

“...허.”

아니네.

아무리 사람이 나빠도 사람을 머리카락 가지고 놀리면 안 된다던 사람이 저러는걸 보니, 서 팀장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면 왜?

생각보다 혜원의 의문은 쉽게 풀렸다.

이 대리의 빠른 설명 때문에.

“혜원 씨, 혹시 산 좋고, 공기 좋고, 물 좋고, 음식 맛있는 곳에서 사는 거 어떻게 생각해?”

그건 바로 미화리 사랑방 공장으로의 이직 제안.

“...?”

하지만 이 대리의 설명에 혜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오해해서였다.

“...대리님, 설마 지금 저한테 결혼하자고 하는 건 아니죠?”

아주 말도 안 되는 오해를.

**

일주일 후.

한울은 이 대리의 전화를 받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크흡.”

[아니, 과장님! 이건 혜원 씨가 이상한 거 아닙니까? 갑자기 결혼은 무슨···.]

“그래서, 다른 팀원들이 오해했다고?”

[네! 다들 이상한 눈으로 저를 보는데···. 제가 아무리 그런 거 아니고, 과장님 회사로 가자는 제의를 하려고 한 거라고 해도 믿지를 않더라고요! 아니 다들 속고만 살았나!]

전화기 속 이 대리는 오해를 받아 억울해 죽겠다고 호소했다.

“뭐, 앞뒤 상황 모르면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겠네. 그래서, 결과는?”

대충 이 대리를 달랜 나는, 결과부터 물어봤다.

그래서, 서 팀장을 엿 먹일 수 있는지 없는지.

아무리 더 이상 그곳에 다니지 않더라도, 일주일에 몇 번씩 전화해대는 (전)팀원들 덕분에 서 팀장에 대한 감정은 아직까지 진행형이었다.

더군다나 팀원들 모두 서 팀장에게 빅엿을 먹인다면, 이쪽으로 온다는 소리니. 나에게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결과요? 당연히 오케이죠! 다들 빅엿에 동의했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혹시라도 다른 식품회사 가고 싶은데 있으면 말하라고 해. 내가 그래도 아직까지 추천 정도는 해 줄 수 있다.”

그렇지않아도 퇴사를 하면서 남겨진 팀원들이 걱정되었는데, 아주 잘되었다.

이참에 다들 배울 거 하나 없는 이상한 팀장 밑에서 고생하는 생활을 청산시키고, 서가(家) 회사보다 나은 곳으로 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훨씬 좋은 선택일터.

[예? 무슨 말씀이세요?]

이 대리는 내 말에 깜짝 놀라 했지만, 아무리 회사에서 나왔다고 해도, 그 업계에서 구른 세월이 얼만데. 아직까지 추천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 혜정 씨가 홀푸드로 가고 싶어 하지 않았었나? 그렇지않아도 지난번에 그쪽 부장님이 연락이 왔는데···.”

팀원들 모두가 한날한시에 퇴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더라도, 우리 공장으로 오는 팀원은 극히 드물 것이다.

이 대리는 원체 힐링이 필요하다고 하고, 서리태에 목을 매서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팀원들은 서울에서 먼 이곳까지 올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이 대리가 설득을 했다지만, 그 방법을 말한 나도 책임이 있으니···.

팀원들이 이직을 결심했다면, 모쪼록 지금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옛 상사의 의무.

다행히 퇴사부터 지금까지 연락을 주시는 동종 업체 담당자들이 많아, 팀원들의 이직 추천은 수월하게 될 것이다.

[과장님? 스탑스탑! 다 괜찮습니다! 추천 안 해 주셔도 됩니다! 저희 전부 다 과장님 공장에 가서 일하기로 했습니다!]

“어?”

이번에는 내가 되물었다.

전부 다 여기로 온다니.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이곳이 어딘가.

요즘에는 카페 사랑방이 SNS를 타고 조금씩 소문이 돌아 방문객이 많아졌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어르신들만 있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마을버스도 하루에 딱 2번 운행하는.

자차로 이동한다고 해도, 시내까지는 꽤 운전을 해야 한다. 그나마 가까운 읍내에도 요즘 사람들이 즐길 거리가 하나도 없는데.

여길 온다고?

“왜?”

[왜 긴 왭니까. 다 과장님이 계셔서죠!]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나 때문이라고? 이 대리···. 설마 팀원들 속인 건 아니지? 이 대리는 여기 와봤잖아.”

상사 때문에 이직을 한다?

그것도 옛 상사 때문에?

오케이. 백번 봐줘서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아예 없는 일은 아니니까.

상사가 다른 곳으로 이직함과 동시에 그 팀이 사라진다면, 팀원들을 모두 데려가는 조건으로 이직하는 사람도 아-주 가끔 있다고 하니.

하지만 그것도 좀 더 좋은 환경으로 이직했을 때 얘기지.

[왜요? 미화리 좋잖아요! 뭐 어때서요!]

“뭐가 어떻긴. 깡시골이라서 그렇지.”

대책 없이 ‘미화리! 좋아!’를 외치는 이 대리의 말에 나는 머리를 짚었다.

[매실도 있고! 저번에 보내주신 매실 액기스 집에 뒀더니 일주일도 안돼서 없어졌습니다! 강 할머니 집밥도 그립고···. 아시다시피, 저희 엄마가 음식 솜씨는 영···.]

미화리가 좋다는 이유가 다 먹을 것과 관련되어 있다니. 머리가 아팠다.

“오케이. 이 대리는 그렇다고 쳐.”

이 대리 어머니의 음식 솜씨라면 이해가 갔다.

딱 한 번, 팀원 중 한 명의 제의로 각자 집에서 도시락을 싸 온 날이 있었는데, 그렇게 간이 이상한 음식은 처음 접해봤다.

간이 덜 된 음식에 뿌려 먹으라며 이 대리의 어머니께서 챙겨주신 소금은, 어째서인지 뿌리면 뿌릴수록 쓴맛이 더해졌다.

알고 보니 그 소금은 일반 소금이 아니라, 몸에 좋은 다이어트 소금이었다고.

몸에 좋은 약이 입에는 쓰다는 속담 체험은 한번으로 족했다.

하지만 이 대리는 그 체험을 매일 하고 있으니···. 이해할만했다.

하지만 다른 팀원들은 달랐다.

“다른 팀원들은 어쩔건데? 여기 한 번도 안 와봤잖아.”

그러니, 일단 이곳이 어떤 곳인지부터 알아보고 결정을 내려도 내리라는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아! 제가 말씀 안 드렸나요? 그래서 이번 주말에 다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장 이장님 말로는 거기 아주 좋은 캠핑 장소가 있다면서요!]

“캠핑···?”

우리 마을에 캠핑 장소가 있었나?

그저 현관문을 열면 마당이 있고, 솥단지가 있는데···. 캠핑을 하러 굳이 산으로 갈 필요가.

“금시초문이다.”

[어? 이장님이 막 옆에 폭포도 있고, 계곡도 있고 산림욕도 하기에 딱 좋다고 하셨는데···. 저 텐트도 샀는데···.]

폭포라···.

저번에 말씀하신 새로 발견했다는 장소를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바로 찹쌀이 목을 틔우기 위한 수련을 했던 곳.

“거기 추울 텐데···.”

이장님의 말대로 폭포는 절경이지만, 찹쌀의 말을 따르면 그 폭포 주변은 낮에도 기온이 굉장히 낮다고 했다.

낮에만 가는 이장님도 폭포에 갈 때면 두꺼운 점퍼를 가지고 갈 정도. 그렇지 않아도 마을 자체가 고도가 높아 평균 기운이 다른 곳보다 낮은데···.

[괜찮습니다! 저희 아직 젊습니다!]

뭐, 젊다고 하는데 어찌 말리랴.

설마 폭포 근처에 텐트를 치진 않겠지. 어린애들도 아니고. 생각하는 다 큰 어른인데 말이야.

“그래. 텐트까지 샀다는데···. 내가 말리면 안 되지. 와라.”

얼어 죽지 않게 두꺼운 외투 잘 챙기고.

밥은···. 일단 말은 해 두지.

**

저녁을 먹은 시각.

보통 때라면 라면 잠자리에 들기 전, 일과를 마무리하는 시각이었지만, 어쩐지 미화리 마을회관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호호호. 어찌 그리 말을 잘하십니까.”

“음마? 내 이치로 맛있는 약밥은 처음 먹어본다!”

하하하.

호호호.

즐겁게 웃는 소리가 마을회관 안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더 드이소. 많이 해왔심더.”

“그럼 사양 않고···! 아이고 맛있다! 근데 그짝은 누군교?”

“...맛있나? 집에서 밥은 안 먹더니만.”

“으허헉!”

마을 사람이 아닌, 처음 본 사람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따봉을 날리던 미화리의 유일한 체험농장주(主) 김찬명 할아버지는, 어느새 옆으로 와 한기 서린 목소리로 말하는 마누라, 이명옥의 모습을 발견하고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새로 온 사람들도 있는데 고만해라. 아아. 마이크 테스트. 잘 들립니까?”

“어? 어어.”

“잘 들린다!”

강 할머니가 마이크를 잡자, 어수선하던 마을회관이 잠잠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인 걸 확인한 할머니는, 마이크를 들었다.

“오늘 다들 뭐 때문에 모인지 알제?”

“어! 안다!”

강 할머니의 질문에, 마을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화답했다.

무엇을 기대하는지, 사람들의 눈은 하나같이 반짝였다.

별이 박힌 듯, 아니. 반짝임을 넘어 희번덕거리는 좌중의 모습을 확인한 강 할머니는,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선창했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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