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52화 (52/163)

< 찾았다! (4) >

“헐.”

나는 인터폰 화면 위에 비친 박준혁과 멧돼지의 꼴을 보곤 얼른 대문을 열어주었다.

끼익.

대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박준혁과 멧돼지는 터벅터벅 내 앞마당으로 걸어 들어왔다.

“어서 나가보자! 컁!”

거실에 있는 큰 창을 통행 그들이 앞마당을 가로질러 집으로 오는 걸 발견한 노을이 현관문을 향해 호다닥 달려갔다.

띠리릭.

노을의 뒤를 따라간 나는,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오늘도 내 노래는 훌륭했다! 꽤액!”

나와 눈이 마주친 찹쌀이 날개를 퍼덕거리며 가슴 깃을 부풀렸다.

찹쌀의 반응을 보니 노래를 마음껏 부른 모양. 하지만 찹쌀의 노래를 풀로 들은 것 치고는 박준혁과 멧돼지, 둘 다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 모습?”

차마 그 꼬라지라고 말할 수 없어 그 모습이라고 순화를 하긴 했지만, 이 둘의 상태는 모습보다는 ‘꼬라지’가 더 잘 어울렸다.

“그게 말이죠, 형님···.”

머리부터 발끝까지 쫄딱 젖은 박준혁이 입을 열었다.

“혹시···. 우리 집에 오기 전에 너 혼자만 개울가에 빠졌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뽀송한 멧돼지와 달리 어디 물에 푹 빠졌다 나온 모양새에 혹시나 물어봤지만, 다행히도 박준혁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됐다. 조금만 기다려. 스테이크 다 구워놨으니까 그거 들고 가.”

“네···.”

평소 같았으면 ‘스테이크! 감사합니다! 형님!’ 하며 호들갑을 떨었어도 10번은 더 떨었을 텐데. 저렇게 축 처진 걸 보니 멧돼지 목욕시키기가 정히 힘들었던 모양.

“...꿀범벅도 좀 줄테니까 단 거 먹고 힘 좀 내. 강 할머니는, 괜찮으셔?”

툭 치면 픽하고 쓰러질 것 같은 박준혁의 모습에 멧돼지의 몫으로 만든 꿀범벅을 조금 덜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할머니는···.”

“뭐야?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지?”

할머니라고만 내뱉고는 말을 흐리는 박준혁에 나는 찹쌀이를 보았다.

어차피 멧돼지와는 말이 통하지 않고, 박준혁은 넋이 반은 빠져나간 것 같으니, 이제 남은 건 아직까지도 가슴 깃을 부풀린 채 노을에게 자랑을 하는 찹쌀밖에 없었다.

[...개운하다! 꽈악···?]

내 시선을 느낀 찹쌀이 눈을 껌뻑거렸다.

자랑하느라 내 말을 듣지 못한 모양.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하는 찹쌀에게 박준혁을 보며 눈짓하자, 눈치 빠른 노을이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었다.

[컁! 같이 있던 사람들의 귀는 괜찮은 거 맞냐?]

내가 박준혁에게 한 질문과는 조금···. 다르긴 했지만, 어쨌거나 박준혁을 제외한 나머지 어르신들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질문이었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자, 찹쌀이 파닥거리던 날개를 접고 박준혁의 머리 위에 앉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항상 귀를 막으며 ‘오늘도 막지 못했다···. 컁!’ 따위를 외치는 노을의 허락도 떨어졌겠다.

곤란한 얼굴을 하며 조용히 귓속에 솜을 집어넣던 한울도 일이 있다며 텃밭으로 갔겠다.

오랜만에 마음껏 노래를 부를 기회를 가진 찹쌀은 오랜 시간 갈고 닦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꽈아아악! 꽤애액! 꽥! 꽥!]

소음공해와 비슷한 데시벨 수준인 찹쌀의 노래가 강 할머니 집 앞마당 앞을 가득 메웠지만, 아쉽게도 찹쌀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이는 멧돼지밖에 없었다.

“꾸에에에엥!”

매일 아침저녁으로 구르며 꼼꼼히 묻혔던 진흙이 씻겨져 나가는 것도 서러운데, 찹쌀의 노래까지 듣게 된 멧돼지가 서러움 섞인 울음소리를 내뱉었지만, 찹쌀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예술을 모른다 꽉!’

모두가 소음이라고 부르는 찹쌀의 노래는 사실 극한의 단련을 통해 정점에 이른 힐링쏭이였다.

귀에 좋게 들리면서 마음의 안정감을 주는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세상에 많았다.

물론 찹쌀이 부르는 노래처럼 체력이 회복되는 효과는 없었지만, 어쨌든 마음의 안정은 되었으니.

[꽤객! 꽤객! 괘개개객!]

그렇기에 찹쌀은 평범한 힐링쏭을 거부했다.

종달새가 지지배배 예쁜 울음소리를 낼 때, 찹쌀은 폭포수를 만들어내 그 아래에서 앉아 득음을 시도했다.

[꽤애애액!!]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첫째로, 커다란 자신의 목소리에 주변에 있는 식물들이 시들었다.

‘컁! 적당히 해라!’

두 번째로는, 노을의 방해였다.

귀가 예민한 여우 정령은 시도 때도 없이 와서 잔소리해댔다.

‘너 때문에 식물들이 이상해진다!’

노을은 식물들을 빠르게 자라게 해, 열매를 맺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때때로 찹쌀은 노을과 협력하며 숲속에 있는 동식물들을 관리하곤 했는데, 주로 노을은 동물들을 위해 식물들의 열매를 맺게 했다면, 찹쌀은 노래를 불러 다친 동물들을 치료하곤 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고 했나.

동물들에게만 적용되던 찹쌀의 노래가 폭포수 밑에서 계속되자, 노을이 키워낸 식물들이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중복된 능력에 식물의 생장 속도가 미친 듯이 빨리 되어 시든 것 같았다.

‘그냥 평소처럼 불러라 컁!’

노을은 그런 찹쌀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조언했지만, 찹쌀은 자신이 원하는 경지에 오를 때까지 포기할 수 없었다.

‘꽈악! 나는 아무렇게나 불러도 회복이 되는 노래를 부를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다!’

“어···. 찹쌀아, 미안한데, 그···. 박준혁이 가고 난 후에 생긴 일들을 좀 얘기해줄래?”

자꾸만 길어지는 찹쌀의 역사에, 굉장히 지쳐 보이는 박준혁과 멧돼지를 평상에 앉힌 후, 찹쌀을 달랑 들어 주방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박준혁에게서 등을 보이며 뒤돌아섰지만, 혹시 모를 만약을 위해서 나는 복화술을 시도했다.

“꽈악 잠시만 있어봐라! 거의 다 끝났다!”

별로 효과는 없었다.

내 요청 이후에도 찹쌀의 일대기는 레스팅이 끝난 스테이크를 여러 소스와 함께 포장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호에에 어지럽다···.”

끊임없는 찹쌀의 수다에 노을이 두통을 호소했다.

“자, 찹쌀아 이거 먹어.”

나는 귀를 보호하기 위해 꿀범벅을 하나 집어 찹쌀의 부리에 넣어주었다.

“...? 맛있다! 하나 더 주라! 꽉!”

진작에 이럴걸.

꿀 범벅이 된 단호박 한 조각에 찹쌀의 입이 다물어 졌다.

얼른 하나를 더 달라고 보채는 찹쌀에게 손바닥을 펴 진정하라는 사인을 보낸 나는, 이번에는 고구마를 집어 들고 찹쌀을 보았다.

“꽈악!”

날개를 퍼덕거리며 제자리에서 뒤뚱거리는 찹쌀에게 조건을 걸었다.

“자, 찹쌀아 이제 네 일대기는 이해했어. 그러니까, 아름다운 노래 말고 아무렇게나 불러도 힐링이 되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단련했고, 성공했다는 소리지?”

“맞다 꽉! 정확하다!”

찹쌀이 예전에는 노을보다 노래를 더 잘 불렀다는 게 선뜻 이해는 가지 않지만, 찹쌀의 일대기를 끝내기 위해 나는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고구마가 들린 젓가락을 흔들었다.

“잘 알겠어. 찹쌀아. 자, 그럼 이제 어르신들 이야기를 좀 해 볼까?”

“그럼 그걸 주는 거냐? 꽈악?”

“그럼. 당연하지.”

나는 여태까지 음식을 가지고 정령들에게 인색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할머니는 항상 말씀하시곤 했다. 먹을 거로 서럽게 하는 건 인간말종이라고.

그러니, 나는 노을과 찹쌀을 위해 멧돼지와 박준혁을 보낸 뒤 또 따로 꿀범벅을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별일 없었다! 멧돼지가 계속 버둥거리길래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꽈악!”

“그래? 그런데 준혁이는 왜 저렇게 젖은 거야?”

“그건 박준혁이 멧돼지한테 옷을 입히다가 갑자기 넘어져서 그렇다 꽉!”

그러니까, 찹쌀의 말을 종합하자면, 멧돼지는 찹쌀의 노래가 시작되고 몸부림을 치다 찹쌀의 꾸짖음에 얌전해 졌다는 거고.

박준혁도 멧돼지의 목욕이 다 끝날 때까지는 멀쩡했지만, 강 할머니가 급하게 준비한 멧돼지 전용 옷을 입히다 지레 겁을 먹어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하필 그곳이 물을 가득 담은 대야가 있던 곳이었다는 것.

“푸히힛! 겁쟁이다 겁쟁이!”

“여자 사람도 그렇게 얘기했다 꽈악!”

“오케이. 무슨 소리인 줄 알았어. 찹쌀아 설명 고마워. 이거 다 찹쌀이거다. 고생했어.”

“꽈악! 별거 아니다!”

꿀범벅이 가득 담긴 접시를 건네주자, 날개를 파닥거리며 꿀범벅에 코를 박는 찹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나는 둘을 달래러 가볼까.”

객관적인 찹쌀의 상황설명도 들었겠다, 침울해진 둘을 달래야 할 때였다.

**

한편, 한울의 앞마당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대화가 한창이었다.

“멧돼지야.”

“꾸엥?”

“아까는 놀라서 미안. 너도 놀랐지?”

“꾸엥꾸엥.”

“그래. 고마워. 넌 참 덩치처럼 마음이 넓구나.”

“꾸엥!”

“그런데, 돼지 후각이 개보다 더 낫다고 하던데···. 너도 돼지구나?”

“꾸엥···?”

“흐흐흐. 우리 이제부터 친하게 지내보자고.”

“....”

박준혁의 낮은 웃음소리에 멧돼지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멧돼지의 동물적인 감각이 비상벨을 울린 탓이었다.

“둘 다 오래 기다렸지?”

“꾸에에에엥!!”

묘하게 반짝거리는 박준혁의 눈동자를 본 멧돼지는 뭔지모를 오싹한 감각에 홀로 오돌오돌 떨다, 한울의 등장에 안도의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박준혁에게서 벗어났다.

“...? 갑자기 왜 이래?”

나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내게로 달려와 바로 앞에서 멈춘 멧돼지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물었다.

“꾸에엥···.”

울 샴푸로 목욕을 한 멧돼지의 털은 제법 부드러웠다. 울 샴푸는 강 할머니의 아이디어였다. 멧돼지의 머리를 쓰다듬던 나는 손에 걸리는 핑크빛 무언가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푸흡.”

“꾸엥?”

멧돼지는 왜 그러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선 저 멧돼지를 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미화리 산골 마을이 꼭 TV에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 할머니의 의지에 따라 멧돼지가 뽐내던 진흙이 묻은 뻣뻣한 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남은 건 뽀송뽀송함을 자랑하는 부드러운 털.

“누가 보면 집에서 키우는 애완돼지인 줄 아는 거 아냐?”

그도 그럴 게, 강 할머니의 의지는 멧돼지를 울 샴푸로 씻기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뽀송한 털을 자랑하는 멧돼지의 목에는 핫핑크색의 리본이 목걸이 형태로 걸려있었다.

리본도 평범한 리본이 아닌, 하얀색 망사 같은 게 풍성하게 달려있어, 그 존재감을 과시하는 중이었다.

[눈이 부시다! 컁!]

심지어 핫핑크 왕 리본 가운데는 커다란 보석이 박혀있었는데, 햇빛에 반사된 보석의 빛은 정확하게 멧돼지의 얼굴을 향해 발사되고 있었다.

“확실히. 이제 아무도 겁먹고 도망가지는 않겠어.”

보석을 박은 핫핑크색 왕 리본도 모자라,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리본 색과 비슷한 꽃무늬 복대를 두르고 있는 멧돼지는 정말이지, 무해해 보였다.

심지어 복대에는 ‘미화리 복돼지’라고 적혀있었다.

“아니, 강 할머니는 저걸 언제 준비하신 거래?”

“멧돼지 다 씻기고 나서, 수건으로 닦아주는 사이에 집에 들어가시더니 만들어서 나오셨습니다.”

“하긴. 강 할머니 손 빠르신 건 유명하지.”

“참고로 저 복대는 원래 바지였는데, 멧돼지가 불편한지 움직이질 않아 강 할머니가 복대로 만들었습니다.”

“아. 오케이.”

말은 저렇게 덤덤하게 하지만, 멧돼지에게 바지를 입히기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야생 그 자체라 집에 들이기도 힘들었던 멧돼지를 이렇게 꽃돼지로 탈바꿈시켜놓은 건 정말이지 인정해줘야 했다.

“아, 강 할머니로부터 전언이 있습니다.”

고생했다고, 포장한 스테이크를 손에 쥐여주자, 박준혁이 인사를 꾸벅하고 대문 밖을 나서다 말고 깜빡했다며 다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어. 뭔데?”

“그, 멧돼지 목욕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방송사가 올 때까지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

멧돼지야, 큰일 났는데?

“꾸에에! 꾸엥!”

멧돼지가 고개를 격하게 흔들었지만, 박준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전언을 전했다.

“그리고···. 저희도 옷을 맞출 거라고 합니다.”

“어?”

“멧돼지와 비슷한···. 순해 보이는 거로···.”

“설마···. 아니지···?”

멧돼지를 보고 웃던 나는, 어딘가 해탈한 듯한 표정 박준혁의 얼굴에 다시 한번 멧돼지의 복대를 노려보았다.

핑크빛이 찬란한 꽃들이 활짝 핀 복대는 눈이 아릴 정도로 화려했다.

아니,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강 할머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