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288화 (288/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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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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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길로틴이 사라져서 조금은 살만해지는 줄 알았는데 설마 더한 녀석이 나타나다니 빌어먹을……”

악몽이 따로 없는 부대 시찰 1일차를 간신히 버텨낸 조지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자신의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나이가 어려서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젊은 혈기에 취해서 정의감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죠. 그런 게 아니라면 오늘처럼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나오겠습니까?”

류안의 페이스에 완전히 말려버린 사단본부는 불과 하루 만에 영혼까지 털려버리는 굴욕을 경험하고 말았다.

가장 먼저 대형사고가 터져버린 장소는 역시 기지대대 병사들의 오일룩(oil look)사건.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지만 제군들이 어째서 창고에 감금되어 있었는지 설명할 사람은 없나?]

[……]

샤워를 마치고 어디에서 구했는지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소집된 병사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지. 상관이라 동료들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대놓고 고자질을 할 사람은 없겠지. 좋아, 그렇다면 지금부터 한 사람씩 헌병사단장과의 비밀면담의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고……후후후후후후.]

웅성웅성

설마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파헤치려고 할지는 꿈에도 몰랐던 5사단의 간부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특히나 이미 구속당하는 게 기정사실이 되어버린 기지대대장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혼백이 빠져나가버린 것처럼 절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리는 상황.

그나마 남아있는 희망이라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병사들이 문제가 발생해도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돌은 척, 현실에 절망하고 불의와 타협해서 류안에게 아무것도 대답해주지 않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나빠도 지나치게 나빴다.

‘니들이 어디 말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지 두고 보자.’

그렇게 작정하고 용안과 프로파일링의 능력으로 면담상대를 단숨에 꿰뚫어버리고는 맞춤형으로 농락을 시작하는 멘탈리스트 류안.

[맥카시 병장! 제군의 짐을 수색한 결과, 군내 기밀문서와 반입금지물건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게다가 정식으로 인가받지 않고 군수상점에서 불법으로 구입한 병기들이 생활관에 굴러다니고 있더군. 이게 무슨 상황인지를 한 번 설명해 보겠나?]

[그, 그게 그러니까……]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변명할 말도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군. 제군을 비롯한 기지대대의 병사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반란모의로 기소되었다. 군법에 따라서 최소한 200년은 가석방 없이 냉동감옥에 들어가게 되겠지. 혹시 보석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면 20만 골드로 전역처리를 해줄 수도 있지만……]

[말도 안 됩니다! 겨우 이런 일로 그런 터무니없는……]

[말이 되고 안 되고는 제군이 아니라 군법이 결정하는 것이다. 보아하니 자신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는 모양이군. 후회는 영창에서 하도록……끌고 가!]

그 외침에 헌병대원들이 달려와서 양팔을 잡아당기자 그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실감했는지 절박한 표정으로 애걸해오기 시작했다.

[하,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헌병사단장님! 정말로 몰랐습니다. 저는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잠깐!]

병사가 방 밖으로 끌려 나가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타이밍까지 애를 태우다가 스톱을 외치는 류안.

[제군의 말은 이번 사건의 주동자가 따로 있다는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 말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즈, 증거는……]

[없다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다.]

[저, 저는 없지만 제가 아는 녀석 중에서 증거를 가지고 있는 녀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녀석이 쉽게 입을 열지는……]

그리고 당근이 필요한 상대에게는 거침없이 당근을 흔들어줬다.

[만약에 제가 비밀을 누설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알아채고 보복해올 게 뻔합니다. 설마, 지금까지 다들 바보라서 참고 견뎌왔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소원 수리함이니, 핫라인이니……그런 번지르르한 거짓말에 속아서 신고한 애들이 어떤 꼴을 당했는데……]

[보복이라면 아무것도 무서워 할 필요가 없다. 제군도 사법거래나 증인보호프로그램이라는 말은 들어보기는 했겠지?]

[네, 그렇습니다만……]

[내가 찾아온 이유도 바로 그런 혁신적인 사법거래시스템을 시험해보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그러니 이 계약서에 사인한다면 제군이 만에 하나라도 보복을 당할 염려는 없을 테지.]

그렇게 말하면서 넘겨주는 계약서를 받아들고는 꼼꼼하게 살펴보다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부르르 떨며 되물어왔다.

[이게 정말입니까?]

[거짓말이라면 이번에는 나를 고발하도록……]

[하, 하겠습니다. 아니, 하게 해주십시오! 시켜만 주시면 저 빌어먹을 새끼들을 모조리 지옥으로 보내버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당근이나 채찍에 상관없이 단순하게 류안에 대한 소문을 듣고 맹목적으로 귀순(?)해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런 식으로 다양하게 구워삶은 결과 무려 100%에 이르는 기지대대의 병사들이 5사단본부의 거의 모든 장교와 부사관을 집단으로 고발해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들이 밝힌 오일룩(oil look)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았다.

[그러니까 기지대대의 병사들은 방문 준비를 한 게 아니라 모두 다 밤새도록 유류를 운반하는 작업에 동원되었다는 소리지?]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작업이 막바지에 도달했을 무렵에 졸음을 참지 못한 병사가 워커 조종을 실수하는 바람에 창고 하나가 터져버려서……]

‘다른 시기도 아니고 하필이면 내가 방문하기 직전에 급하게 유류를 처리하려고 하다니……뭔가 냄새가 나는군.’

계속해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어지는 조치 또한 수상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흔적을 지우라고 했다고?]

[그렇습니다! 보급대대장이 욕설을 쏟아내면서 헌병사단장님이 방문하기 전까지 기름 자국이 하나라도 남아있으면, 모두 영창으로 보내버리겠다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래서 식사도 거르고 병사들이 전부 달라붙어서 간신히 작업을 마쳤습니다만……]

‘빌어먹을 놈들……’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유독물질이 포함되어있는 오일을 뒤집어쓰고 간신히 작업을 끝마친 기지대대의 병사들.

수송차량에 태워져서 간신히 생활관으로 돌아와서 좁아터진 샤워실의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류안이 방문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번에는 기지대대장이 찾아와서 그들을 모두 창고로 밀어 넣어 버렸다.

[생활관에 흔적을 남기면 안 된다고 짐은 시설대대의 병사들이 챙겨서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닥치는 대로 쓸어 담는 바람에 짐이 섞이고, 망가지고, 없어지고……제 경우에는 어머님의 유품마저 사라져버린 상황이라……]

거기까지 말하던 병사는 새삼스럽게 감정이 복받치는지 울컥하면서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시종일관 무덤덤한 태도로 이야기해왔지만 계속해서 말하다보니 사실상 노예나 다름이 없는, 어쩌면 노예보다도 못한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류안은 유류운반 작업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그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기지대대장과 보급대대장을 1차적으로 구속시켜버렸다.

거기에 기지대대 병사들에게 고발당한 사람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사실상 사단본부 전체가 그의 손아귀에 떨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는 모든 혐의를 부정하면서 자신은 모르는 일이었다며 발뺌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단순하게 책임문제를 따져서는 구속은 시킬 수 있어도 파멸시켜버리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뭐, 그것도 결국에는 시간문제기는 하지만…….

그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더 많은 부정행위를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고, 계속해서 시찰을 진행하면서 몰이사냥을 즐기는 류안.

조지가 준비한 코스를 모조리 무시해버리고는 자신이 직접 사단본부를 돌아다니면서 그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조지 준장님은 사단본부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태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데도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시는 겁니까?]

[그, 그게 그러니까……끄으으응.]

군인복무규율을 외우지 못하는 군인들, 자신의 업무를 병사보다도 모르는 장교들과 부사관, 작동하지 않는 고철덩어리 마장기에 시험 작동 중에 폭발해버리는 병기들, 창고에 쌓여서 아무런 의미도 없이 썩어가고 있는 보급품과, 죽은 쥐가 섞여 들어가 있었던 사병식당의 스프, 아무리 다시 헤아려도 총계와 맞지 않는 장비, 몇 차례나 점호를 실시해도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는 실종된 군인들.

그야말로 폭풍처럼 사정없이 몰아치는 팩트폭력에 시찰을 마무리할 무렵에는 거의 넝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전시상황, 전시상황이라서 워낙 정신이 없다보니 부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정규군과 교전을 펼친 기록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 적의 잔당세력이 의외로 만만치가 않아서……]

[잔당세력이라……예를 들면 카리그 시티 같은 경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 그, 그 장소는……]

5사단이 3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장소를 거론하자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 동요하는 조지.

[뭐, 시간도 늦었으니 1일차 시찰은 이쯤에서 종료하도록 하죠. 내일도 잘 부탁드립니다. 준장님……]

마치 악마처럼 사악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류안의 모습을 떠올린 조지는 오한을 느끼면서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녀석이 어리고 막무가내일지는 모르겠지만……적어도 보통 새끼는 아니야. 해봐야 얼마나 하겠냐고 얕봤는데……아무래도 보험을 들어놔야 되겠어. 적어도 그 두 가지는 절대로 들켜서는 안 돼. 카리그 시티의 학살과……”

앞으로의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장 아끼는 부하와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는 조지였지만, 그는 꿈에도 모르는 사실이 하나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가 류안에게 고스란히 도청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레드폭스의 새로운 도청 장치가 정말로 굉장한데? 아니……이 경우에는 교장이 대단하다고 말해야 되나?”

============================ 작품 후기 ============================

큭, 추석연휴인가...

모두들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제가 지금 정신이 좀 없어서 쪽지 답장은 내일 처리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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