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285화 (285/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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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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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민주주의를 가장 덜 좋으면서도 덜 나쁜 정치체제라고 이야기했다.

민주주의는 항상 포퓰리즘에 영합해서 빵과 서커스로 대중들을 현혹시키는 선동가들이 권력을 차지할 수 있는 위험과, 무능하고 우매한 다수의 대중들이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중우정치로 전락할 수 있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대척점에 있다는 전제주의는 어떤 단점을 가지고 있을까?

플라톤의 경우에는 앞선 근거로 민주주의를 비난하면서 가장 훌륭한 정치체제는 그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철인이 나라를 통치하는[철인통치]야말로 최고의 정치체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철인이 초인으로 진화하고 초인이 인공지능으로 진화한다고 그래도 전제정치는 절대로 피해갈 수 없는 비난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누군가에게는 최고의 정치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최악의 정치]가 되어버린다는 필연성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면 민주주의는

[술 담배는 몸에 해로우니까 오늘부터 금지합시다!]

라고 주장하면

[술과 담배가 없으면 이 더러운 세상을 무슨 낙으로 살아가라는 거냐!!]

라는 반대세력이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그 사회가 민주주의의 원칙에 충실할수록 소수자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더 좋은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가게 된다.

문제는 그 논의가 부먹파와 찍먹파의 대립처럼 적어도 수십 년에서 수백 년, 어쩌면 우주가 끝날 때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답답함이 문제.

반면에 전제주의의 경우에는

[어리석은 닌겐들은 들어라. 술, 담배는 몸에 해로우니까 오늘부터 술과 담배를 즐기는 사람들은 모두 사형!]

라면서 자신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불도저로 깔끔하게 밀어버릴 수 있는 정치체제.

당연히 술과 담배라면 질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이겠지만 불도저에 깔려버리는 사람들에게는 지옥이라는 것이, 플라톤이 주장하는 어떤 철인이 나타나서 올바르게 결정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최악의 결정이 되어버린다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류안은 오늘[철인]이 되려고 하고 있었다.

***

율리안을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한 원정대는 총 9개의 군단을 운용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1군단은 뇌신과 페가수스의 항공 전력을 앞세워서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나머지 8개 군단은 각각 동대륙과 서대륙에 강하해서 지상 작전을 펼치고 있는 상태.

류안이 근거지로 삼고 있는 동대륙 방면의 총사령관은 율리안이 새롭게 임명한 로버트 중장이라는 인물이다.

나이는 48세로 장군 중에서는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하며 최근에 권력을 잡은 공화국의 두 젊은 영웅들과 비교하면 대단할 게 없는 인물이지만, 무난한 실력에 다루기도 무난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로봇 같은 인물이었다.

반면에 서대륙 방면의 총사령관은 독고다이의 골칫덩어리.

올해 62세의 나이로 율리안과 같은 대장계급을 가지고 있는 카디우스 장군은 최근에 권력을 잡은 두 사람을 누구보다도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이도 어린 녀석들이 전쟁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총사령관에 헌병사단장이라니 웃기고 있군. 이 카디우스님께서 진정한 전쟁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

그렇게 말하면서 서방군 전체를 멋대로 자신의 휘하로 편입시켜버린 상황.

‘기량이나 실력 자체는 나쁘지 않아. 그래서 더 커다란 골칫덩어리라는 소리지……’

카디우스는 자기단련과 규율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로 자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극기 훈련이야말로 모든 태만과 사리사욕을 씻어버릴 수 있으며, 병기가 없으면 맨손으로 싸워서라도 적들을 쓰러트릴 수 있는 불굴의 정신이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었다.

‘총이 없으면 맨손으로 싸우면 되다니……도대체 어느 나라에 사는 여왕님이냐?!!’

물론, 그런 극기정신이나 노익장. 훈련을 중요시하는 자세는 칭찬할만한 것이었고 그의 지휘능력이나 부대가 상당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는 했다.

문제는 부하들에게[헝그리 정신]을 유난스럽게 강요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이 그 또한 엄청난 방산비리와 횡령에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을 가지고 있다는 것.

‘하지만 심증은 있어도 증거가 모자라서 개입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지……’

류안의 전임자였던 길로틴 또한 과거에 카디우스에게 거래를 제안하며 동시에 엔포서로 뒷조사를 펼치는[당근과 채찍]전술을 펼쳤지만 결과는 실패.

[감히 비천한 준장 나부랭이가 뭐라고 참견해오는 것이냐!!]

그가 건넨 제안은 호통과 함께 내쳐져버리고 말았고 첩보행위로 의심되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찾아내서 처형해버리는 터무니없는 방법으로 보안을 유지했기 때문에, 엔포서도 그가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심증을 가지고 있을 뿐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게다가 드림이터에 연루되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연맹의 관계자들마저 쫓아버리는 패기를 발휘하는 카디우스.

[감히 민간인들 주제에 군사구역을 돌아다니다니 언어도단! 네놈들이 가볍게 공개해버리는 사진 한 장이 100만 장병의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냐!!]

라고 외치면서 종군기자와 연맹의 고위 관계자들의 출입을 막아버렸고 자신이 관할하는 지역의 민간통신마저 차단해버렸기 때문에, 그가 장악하고 있는 서대륙 점령군이 어떤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궤도상에서 내려다보는 아르고스 시스템의 단면적인 정보를 유추해 볼 때 서대륙 점령군이 민간약탈이나 학살, 노예거래 같은 만행을 여기저기에서 저지르고 있다는 정황을 포착할 수 있을 뿐.

현재의 군법으로는 아무리 율리안이 권력을 잡았다고 그래도 증거불충분으로 카디우스를 고발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

‘하지만 내부고발자 특별보호법이 통과된다면 이야기가 180도 달라지지……’

오직 내부고발자의 신고만으로 현행하는 모든 군법을 초월해서 부대 전체를 개조시켜버릴 수 있는 막강한 특권을 가지는 특별보호법.

만약에 이 법이 통과된다면 조금 심하게 말해서 이등병이 민원을 넣는다고 그래도 원정대 전체를 장악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터무니없는 권한을 가질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터무니없이 강력한 권한을 가지기 때문에 특별보호법을 발동시키기 전에 철저한 사전조사와 검증이 필요하지만, 카디우스 장군의 휘하에서 일어난 내부고발은 고발자들이 전원[불행한 사고]를 당하면서 어둠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특별보호법이 발효된다면 고발자의 신원이 철저하게 보호되기 때문에 그런 비극이 두 번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터.

‘서방군의 전체 병력이 800만이라고 했지? 특별보호법만 잘 이용하면 팔란티오 행성의 서대륙 전체를 한 번에 집어삼킬 수도 있지만……어쩔 수 없이, 율리안의 말대로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나가야 되겠지. 그게 바로 민주주의의 느린 변화라는 거니까……’

현재 내부고발자 특별보호법은 논의 자체도 없었던 것으로 취급당하면서 기각당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율리안은 현존하는 법과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서 류안에게 내부고발자 특별보호법을 실험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주었다.

[현재 18구역에 주둔하고 있는 2군단 5사단에 대한 평가는 지독하기 이를 데 없다. 민간학살은 물론이고 인신매매, 납치, 강간, 마약거래며 방산비리……사단장부터 일개 사병에 이르기까지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찾아내는 게 어렵다고 할 정도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군사법정에서 자신들이 저질렀던 만행이 생계형 범죄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의구현이 시급하군요!]

[……어째서 그 정의구현이라는 말을 그렇게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맞는 말이다. 사단을 해체시켜버릴 게 아니라면 누군가가 나서서 구조조정을 해야 되는 상황이지.]

율리안은 그런 5사단을 위해서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 두었다.

‘하여간에 머리 하나는 좋다니까……’

류안이 감탄하는 원정대 총사령관의 꼼수는 다음과 같았다.

[저희들이 죄를 짓고 싶어서 지은 게 아니라……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라는 5사단의 주장에

[그렇습니까? 그렇게 힘들었다니 참으로 안타깝군요. 그렇다면 여러분을 위해서 특별히 추가예산을 지원하겠습니다. 하지만 대신에……국민들의 소중한 혈세가 공정하게 집행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특별감사팀을 파견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헌병사단장인 류안 소장님이십니다.]

[……네? 자, 잠깐만요. 이, 이게 아닌데……]

그야말로 미운 놈에게 떡을 하나 준 다음에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서 조교, 능욕, 망가!를 시켜버리겠다는 소리였기 때문에 당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던 상황.

게다가[특별감사]라는 이름으로 터무니없이 강력한 구조조정 권한을 넘겨주었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벌써부터 두 사람이 짜고 내부고발자 특별보호법을 실험하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5사단의 범죄 사실이 너무나도 명확했기 때문에 겉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마지못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

결국, 자신들의 발언을 철회하고 범죄사실을 인정하며 현행법대로의 처벌과 보석금을 지불하겠다며 항복을 선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정하고 감행되는 특별감사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류안의 5사단 방문 당일.

[필-승!!!!!]

고막이 찢어져버릴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울려오는 경례소리와 먼지하나 없이 거울처럼 빛나는 사단본부의 입구 바닥.

단체로 결벽증에 걸렸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윤기가 흐르는 군복들을 주름 한 점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차려입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거수경례를 해오는 군인들을 바라보면서 류안은 의미심장하기 이를 데 없는 사악한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후후후후후후. 그러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사단장의 꼽질을 한 번 시작해 보실까……”

============================ 작품 후기 ============================

지난 편의 마지막과 이번 편의 마지막이 비슷하게 끝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눈의 착각입니다.

참고로 이 메세지는 강령술로 소생한 좀비에 의해서 작성되...순대곱창 존맛! 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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