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277화 (277/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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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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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대의 개혁안을 작성한 류안은 압바우의 궤도 사령부까지 직접 찾아가서 율리안에게 결재를 부탁했다.

펄럭, 펄럭.

“……”

아무런 감흥 없는 표정으로 그것을 살펴보는 그♀.

툭.

톡톡!

정독을 마치고 책상 위로 개혁안을 내려놓은 율리안은 그 서류를 가볍게 두드리면서 류안의 얼굴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러자 곧바로 통역(?)을 시작하는 부관.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보라고 하십니다.”

“설명드릴 수 있는 내용은 모두 개혁안에 적혀있습니다. 소관의 짧은 식견으로는 이 이상의 첨삭은 사족에 불과하다고 사료됩니다만……”

[합리적이지 못하군. 다시 써오도록 하게.]

그러자 더 이상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음성변조기를 통해선 단숨에 기각해버리는 그.

평범한 사람들이 듣기에는 자신의 육성으로 말하는 것 같은 목소리지만, 평범함이라는 단어는 예전에 초월해버린 류안에게는 그 미세한 차이가 확실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율리안이 여자가 되어버린 사실은 그렇게 오랫동안 숨기지는 못하겠군.’

자신의 제안이 기각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걱정을 앞세우면서 가면을 고쳐 쓰는 류안.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은 그는 정중한 태도로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개혁안에 대해서 보다 자세한 설명을 원하신다면 부하들을 물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총사령관님과 단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만……”

“총사령관님께서 다시 제출하라고 하신 말씀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소장님?”

성질 더럽게 생긴 장교가 그렇게 말하면서 반감을 드러냈지만, 율리안은 손을 들어서 그를 멈춰 세운 다음에 부하들에게 밖으로 나가있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불만에 가득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기더니,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이 들을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는 뒷담화를 시작하는 부하들.

[젠장, 최연소 장성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면이나 쓰고 다니는 주제에 총사령관님께 맞먹으려고 하다니!!]

[소문으로는 대학은 근처도 못 가본 중졸에 밑바닥 범죄자 출신이라고 하던데……하여간에 저런 밑바닥 사회부적응자가 소장님으로 출세하는 세상이라니, 전쟁 만만세지?! 큭!]

[조용히 해, 쓰레기들아. 그래도 녀석이 재빠르게 대처하지 않았으면 총사령관님께서 광신도 새끼들에게 해코지를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니들이 엘리트 육사 출신이면 다야? 대장님의 호위대 새끼들은 손 한 번 못 쓰고 나가떨어지고, 총사령관님께서 구출되기 전까지는 위치도 파악하지 못했던 한심한 새끼들이……]

[젠장, 도대체 너는 누구 편이냐?]

[누구 편이라서 이런 말을 하겠냐? 개자식아!]

[야, 야. 적당히 해, 새끼들아! 우리들끼리 싸워서 어쩌겠다는 거야?!]

그 대화를 듣고 있다가 피식하면서 웃음을 터트리는 류안.

“여전히 부하들에게 사랑받고 있으시군요. 아니, 기분 탓인지 예전보다 훨씬 더 숭배 받으시는 기분이 듭니다마나……”

“……”

그의 놀림에도 불구하고 별다르게 대꾸를 하지는 않는 율리안.

잠시 후에,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소파로 옮겨 앉은 두 사람은 상당히 평화로운 모습으로 차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휴우, 역시나 최고 사령관님답게 차도 고급스러운 것을 마시는군요. 향기가 엄청나게 좋은데……브랜드가 뭡니까?”

“……단순한 녹차다.”

“아, 그렇군요.”

짤막했지만 목소리 변조를 해제하고는 자신의 육성으로 대답해주는 율리안.

어떤 심경의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TS를 통해서 여자가 된 다음부터는 류안과 사석에서 이야기를 할 때면, 가끔씩 패턴을 벗어나는 짤막한 대답을 해주기 시작했다.

‘뭔가, 아무에게도 길들여지지 않은 희귀동물을 조련하는 기분이 든다는 말이지.’

여러 가지로 복잡한 심정으로 그(♀)를 바라보면서도 자신의 리비도를 통제하면서 정신을 통일시키는 류안.

잠시 후, 강제로 입술을 빼앗아버리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억누를 수 있었던 그는 한 번 기각당한 개혁안을 다시 제출하면서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길게 끌 시간이 없습니다. 가능하면 지금 당장 개혁안에 사인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불가不可”

“어째서입니까?”

“모험을 감수하기에는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

‘역시나 그런 이유였군.’

지금이 평시상황이라면 그 또한 아무런 망설임 없이 개혁안에 사인을 해줬겠지만, 현재는 언제 적들이 총공격을 감행해올지 모르는 전시상태.

[슈퍼백신으로 말기암에 대항한다]는 발상은 기본적으로는 나쁘지 않았지만, 문제는 양쪽이 치고박고 싸우다보면 가장 중요한 환자가 사망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 율리안의 지적이었다.

‘확실히 지금 상황에서 지휘체제를 다시 한 번 분열시킬지도 모르는 개혁안을 추진하는 것은 자살행위일지도 몰라. 하지만……’

쿵!

“하지만 저는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정당하고도 유일한 단 하나의 방법이 존재한다면……우리 원정대가 진정한 개혁을 통해서 민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의로운 군대로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류안의 강력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의 율리안.

그의 주장대로 원정대의 상부가 율리안을 중심으로 하는 지휘체제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은 팔란티오 행성의 주민들은, 쥐구멍에도 볕이 들 날이 찾아왔다고 생각하면서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 호소에 응답하기에는 엄청나게 많은 문제를 떠안고 있는 것이 원정대의 실정이었다.

그리고 그 근간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지상부대에 만연하고 있는 부정부패와 악폐습.

“귀관의 개혁안에서 몇 가지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기본급여 재조정과 복리후생 강화, 민관협력 강화와 정기적인 감사 시스템의 도입, 부정부패 처벌 강화, 현지 주민들과의 관계 개선 정책들……하지만 이 개혁안은, 아니, 귀관이 핵심으로 강조하고 있는 이 개혁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내부고발자 특별보호법이라니……귀관은 원정대를 통째로 날려버릴 생각인가?”

“자신들이 속한 조직의 비리를 고발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목숨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그들의 호소를 목숨을 걸고 보호해줄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제정신이 아니로군.”

류안이 주장하는 내부고발자 특별보호법의 골자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았다.

현재 지상부대에 만연하고 있는 문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그것을 끼리끼리 덮어주면서 은폐해버린다는 사실이다.

비록, 예전과는 다르게 부정부패에 대한 처벌이 엄격해지고 여러 가지 시스템이 개선되면서 상부와 매스컴의 눈치를 살피고는 있었지만, 한 번 도적질의 맛을 본 군사조직이 쉽사리 그 유혹을 떨쳐내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

여전히 [대부분]이라고 표현할만한 숫자의 지상부대는 상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비리와 횡령을 당연한 관행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무고한 시민들을 약탈하고 노예사냥과 인신매매, 장기매매까지 손을 뻗으면서 범죄조직보다 더한 만행들을 태연스럽게 저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어둠이 존재하면 언제나 정의감에 넘치는 빛 도한 존재하는 법.

그런 목불인견의 참상을 눈앞에서 경험하고 있는 군인들 중에서는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들이 속한 조직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문제는 이렇게 고발을 하더라도 정의가 실현되기는커녕 부대 자체가 예전보다 막장으로 변해버리고 고발을 실행한 사람도 배드엔딩으로 끝나버리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었다.

“현존하는 시스템으로는 익명으로 고발을 한다고 그래도 익명성이 보장되지를 않습니다. 게다가 고발자에 대한 보호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가해자는 가해자대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분노한 상태로 부대로 돌아오게 됩니다. 게다가 그 가해자는 십중팔구 고발자의 상관인 경우가 많은데, 그런 사람과 계속해서 군생활을 해야 한다면 고발자가 어떤 상황에 처하겠습니까? 게다가 한 명의 고발로 부대 전체가 초토화되어버리는데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어버리니 정의감으로 상황을 개선하려고 고발을 실행한 사람이 오히려 천하에 죽일 놈으로 변해버리는 것이 원정대의 현실입니다!”

“나 또한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니요, 율리안 대장님께서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실 겁니다. 분명히 올바른 것은 자기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세상 전체가 삐뚤어져서 적으로 느껴질 때의 좌절과 절망이라는 녀석을. 제가 알기로는 대장님께서는 태어나서 한 번도 그런 고립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

류안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어버린 율리안이지만 잠시 고민을 하고 난 다음에도 고개를 흔들면서 그의 의견에 반대의사를 밝혔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부고발자 특별보호법은 너무 과격한 개혁안이다. 점진적으로는 조금씩 도입하면서 추진할 수는 있다고 그래도……세부내용이 발표된다면 발표되는 것만으로도 원정대, 아니. 방위군 전체가 들고 일어나서 반발을 할 게 틀림이 없네. 그것이 아무리 정의에 가까운 법안이라고 해도 소수를 위해서 발표되는 법안이라면 다수의 반발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니까.”

***

한 편.

율리안과 류안이 생각보다 긴 토론을 나누고 있을 무렵에 탈리아는 최근에 13구역 밀리안 대학교에서 오픈한 상점가를 돌아다니면서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소곤소곤

[저기, 정조대가 하나 필요해서 구입하려고 하는데……괜찮은 물건이 있나요?]

[물론이죠, 손님! 그런데……혹시 직접 착용하실 건가요?]

[아니요, 남자친구한테 착용시켜주려고 하는데 기왕이면 우주괴수가 물어뜯어도 끊어지지 않을만한 튼튼한 녀석으로 부탁드려요.]

[호호호호! 농담도 잘하셔라. 우주괴수가 물어뜯어도 멀쩡하려면 여기가 아니라 우주공방을 찾아가셔야죠!]

[농담 아닌데……]

남자친구를 위해서 특별한 선물(?)을 알아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실례하겠사와요!]

“좋아, 정조대는 구입했으니까 다음으로 필요한 물건은 초소형 위치추적장치인데……”

깡총, 깡총!

[저기, 잠시만 실례하겠사와요!]

복잡한 상점가 속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를 무시하면서 자신의 볼 일을 마치기 위해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버리는 탈리아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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