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274화 (274/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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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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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속에 갇혀버린 페어리 자매는 유리병을 두드리면서 계속해서 항의해오고 있었다.

통통통!

[군법의 수호자인 헌병사단장이 부하를 마음대로 감금해도 되는 겁니까?!]

[옳소! 지금이라도 풀어주지 않는다면 용병조합에 신고할 겁니다!! 배상금을 무지막지하게 뜯어내버릴 테니까 각오하라고요!!]

‘도대에 왜 이렇게까지 돈을 밝히는 거야?’

전투드론 조종사로서의 실력은 나무랄 데가 없지만 현재로서는 대단한 전력이 되지 못하는 그녀들의 항의에 류안은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사실, 용병들이나 부하들의 임금에 관련한 문제에서는 한 번도 인색한 적이 없었던 그.

다양한 성과금 제도를 비롯해서 상황이 좋아질 때마다 꾸준하게 계약서를 갱신해왔기 때문에, 페어리 자매를 제외하면 월급에 대해서는 누구도 지금처럼 악착같이 구는 부하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뭐, 지금까지는 이래저래 바쁘다보니 무시하고 넘어왔지만……이쯤에서 한 번은 따끔한 맛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한 류안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으스스한 조명으로 분위기를 잡으면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하지.”

[갑자기 분위기 잡아봤자 하나도 안 무섭거든요!]

[옳소! 하지만 갑자기 볼 일을 보고 싶어서 그러는데, 프라이버시는 존중해 주시면……]

“재잘재잘 시끄러운 모기들이군. 너희들은 자신들이 카티아에게 잡혀온 일이 단순하게 변덕스러운 고양이의 장난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이건 모두 인과응보의 정당한 순리에 따르는 처벌일 뿐이야! 너희들은 행복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지. 그러므로 지금부터[행복한 쥐]의 실험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류안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눈치를 읽지 못한 이나가 질문해 왔다.

[……야근수당은 주시는 건가요?]

“그런 것은 없어! 참고로 니들이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 같은데……쉽게 말하자면 니들은 영창에 갇힌 거야! 노 페이(pay), 노 게인(gain)!! 전역날짜도 고스란히 사라져버리는 시간과 정신의 방에 갇혀버린 셈이지!!”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안 돼! 무급노동이라니 이건 꿈이야! 절망이고, 악몽이야! 세상의 종말이나 마찬가지라고!!]

영창행이라는 말에 간신히 상황을 깨닫고는 절규하는 자매들.

그제야 비로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린 류안은 그녀들을 실험용 케이지로 옮겨놓고, 실험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2개의 액체와 연결된 튜브를 케이지로 밀어 넣었다.

평범한 물과 개다래 페리뇽의 원액이 섞여있는 두 종류의 물.

“둘 중에 사용하고 싶은 물을 사용하라고……식사는 제시간에 꼬박꼬박 제공해주지. 그럼 나중에 보자고, 제군들!!”

[저는 도리토스랑 닥터 페퍼가 없으면 일상생활을 못 한다고요!]

[이, 이제부터라도 잘 할테니까 여기에서 꺼내주세요!!]

쿵!

절규하는 그녀들을 무시하고 케이지를 방음모드로 전환해버린 류안은 시간이 경과하기를 기다리면서,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서류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

“신선한 서류가 왔어요!!”

쿵!

상쾌한 목소리로 자신의 책상에 새로운 서류더미를 올려놓는 아우라를 바라보면서 퀭한 눈동자로 힘없이 대답하는 류안.

“아, 젠장……차라리 그냥 나를 죽여라.”

“대장님이 돌아가시면 일은 누가 해요? 자, 자! 제가 어깨를 주물러드릴 테니까 힘내서 가보자고요!!”

꾸욱, 꾸욱!

“효과도 없는 어깨안마가 아니라 하반신을 주물러줬으면 좋겠는……아야야야야! 아퍼, 아퍼? 어떻게 이게 아프……그런데 엄청나게 시원한데?”

별다른 신체능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안마기술만으로 프로모션을 마친 자신의 신체를 가지고 노는 그녀의 솜씨에 신세계를 경험하는 류안.

잠시 후, 차까지 한 잔 마시고 나자 기묘하게 맑아져버린 정신으로 다시 서류를 처리하기 시작한 그는 겸사겸사 멀티태스킹으로 책상 위에 있는 휴대용 게임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 집중력을 서류작업에만 쏟아주시면 안 될까요?”

“미안하지만 이것만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어! 지금 당장 접속하지 않으면 랭킹이 떨어져버리는 게임들이 5개나 있거든……젠장! 아니, 이 빌어먹을 게임은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겨룰 수 있는 게임환경을 만들겠다고 큰소리치고 새로운 핵 프로그램을 캐쉬로 판매하고 지x이야?! 오호라, 재력도 실력이라는 소리지? 그래도 내 돈은 절대로 못 가져간다, 이런 도적같은 새끼들……서비스를 종료하는 순간까지 기본캐릭의 실력만으로 무일푼 랭킹 1위를 유지해주마!!”

“……짠돌이.”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화사하게 웃으면서 대답하는 아우라였지만 게임 속에서는 류안의 그런 악전고투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의 악플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아, 요즘은 뜸해서 기회가 생기는 줄 알았더니. 졌네, 졌어! 역시나 핵과금 핵쟁이야!!]

[이야! 기본 스킨으로 무과금 코스프레하고 다니는 인성 좀 보소. 이 게임은 원래 현질 아니면 심해에서 자맥질하는 게임 아니었나요?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데 올마이티가 아니라 빌딩 오너님이라고 아이디를 바꿔야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운영진들은 핵이 아니라고 하던데……]

[웃기는 소리 하네. 보나마나 한통속이겠지. 랭커들한테 과금을 유도하려고 자기들이 심어놓은 녀석이라거나……아니면 게임회사 사장 아들이라던가, 그런 거 아니겠어?]

[이제부터 나는 그 녀석만 보면 돈 좀 달라면서 구걸하고 다닐 거야. 오?! 떴다! 올 마이티님 돈 좀……젠장, 차단당했네.]

헨드릭에게 게임실력으로 완벽하게 밀려버린 다음부터는 아무리 바쁜 순간이라도 게임에 할애하는 시간을 소홀히 하지 않는 류안.

그것도 재미 위주보다는 난이도가 높고 실력자들이 많은 악명 높은 게임만 플레이하고 다니면서, 코어 게이머들 사이에서 자신의 악명을 착실하게 쌓아올리고 있었다.

“뭐……지금까지 제가 모셔온 분들 중에서는 업무처리속도가 가장 빠르고 탁월하시니까 크게 참견하지는 않겠지만……그래도 가능하면 자신의 업무에 충실해주세요. 상황이 상황이니까 말이죠.”

“알고 있어! 젠장, 엔포서들의 잔당과 로젠 바이스를 처리하는 문제는 유리와 엑스, 로제가 잘 진행하고 있고……루치아가 죽음을 추격하는 작업도 좋은 느낌으로 진행되고 있군. 잭이 빠져서 걱정했던 군사들의 훈련 문제도 하우저가 잘 처리해주고 있고 말이야. 이제 남아있는 문제는 밀리안 대학교 개교 문제와, R&D자금의 충당, 자치령의 인프라 확장 및 생산라인의 원자재 공급 및 자금 부족에……궤멸 당해버린 정보조직을 초석부터 일으켜 세워야 되고, 원정대와 주민들 사이에 분쟁 해결에, 원정대의 방산비리와 횡령, 각종 사건사고를 해결하기만 하면……젠장, 세상천지에 골칫덩어리가 모조리 모였군. 정말 최고야!!”

권력이 재편되면서 지휘체제가 완전히 바뀌었으니 어느 정도의 진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막상 처리해도, 처리해도 끝없이 밀려들어오는 서류더미의 공세를 감당하려니 머릿속이 혼미해지는 류안이었다.

더 큰 문제는 여기에서 나열되는 일들이[당장 처리해야만 하는 시급한 문제]만을 간추리고 간추린 거라는 사실.

그리고 이 작업들의 데드라인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내가 파비안이라면 뇌신이고 나발이고 지금 당장 전군을 일으켜서 총공격을 감행할 거야.  그리고 그에 대한 명성이 사실이라면……지금 쯤 120% 공격 타이밍을 가늠하고 있겠지.’

비록, 부패한 군인들을 몰아내면서 지휘체제를 재편했다고는 하지만 원정대는 이제 막 희망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한 형편이었고, 적들은 뿌리의 깊이조차 확인을 할 수가 없는 단단한 거목이었다.

쉽게 말하면 계란으로 바위치기.

그나마 다행이라면 율리안은 정말로 말귀를 잘 알아듣는 상관이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오퍼레이터의 권한을 대대적으로 강화시키는 한편으로, 최전선의 유능한 엘리트 지휘관들을 위주로하는 [선보고, 후조치]시스템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시스템이 지켜지느냐, 안 지켜지느냐가 결정되는 것은 언제나 환경에 관한 문제였다.

‘방위군이 만든 종래의 시스템도 자신들의 FM을 충실하게 지켰다면 우주군이 부럽지 않은 강군으로 명성을 떨쳤을 거야. 문제는 언제나 그런 규칙들이 무시당하는 게 방위군의 생태라는 점이지……’

지금은 독방에 죄수로 투옥되어있는 길로틴의 경우에는 군기를 유지하기 위해서[신상필벌]을 자신의 원칙으로 삼았다.

물론, 겉으로는 처벌과 규율의 화신처럼 군림하면서도 뒤쪽으로는 호박씨를 까고 다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그가 방문한 부대는 풀 한포기도 남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철저한 감사와 악명 높은 처벌수위로 유명했던 그.

반면에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고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군인들을 발굴해서 헌병대로 스카우트한다던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좋은 대우와 영웅대접(물론, 대단한 대접은 아니었고 방위군이 발행하는 신문에 취재기사가 실린다거나 모범병사로 표창되는 수준이었지만)을 통해서 사기를 끌어올리는 쇼맨십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의 신상필벌은 근본적으로 치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원정대에서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한 조치였다.

[길로틴 준장의 방문을 통보받은 부대는 그 무시무시한 명성으로 인해서 잠시 동안 세상에서 가장 모범적인 부대로 탈바꿈한다. 그의 방문은 대통령이 방문하는 것만큼이나 권위적이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며, 그를 영접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 병사들만이 아니라 부대장까지 나서서 부대 전체를 미싱질하고 평탄화하며 결벽증 환자들처럼 준비를 마치지만……길로틴이 아무리 군기를 주입해주고 떠나더라도, 부대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버리는 데는 불과 일주일이 걸리지 않는다.]

부정부패의 자생력이 지나치게 강해서 외과수술만으로는 도저히 정답이 나오지 않는 말기암같은 방위군.

길로틴이 원정대를 무시하고 엔포서라는 조직을 강화시킨 이유도 방위군을 개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지만, 범죄자, 밑바닥 출신들이 가득한 트라이엄프 부대를 최정예 군대로 변화시킨 경력을 가지고 있는 류안은 조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부정부패가 자생력이 강한 암세포라고 한다면 이쪽은 맞불작전으로 자생력이 강력한 백신으로 대응해주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라고……길로틴! 너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원정대를 개혁해서 놀라운 강군으로 재탄생시킬 테니까.“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의 사상을 뿌리부터 부정해주기로 결심한 그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서류작업을 마무리하면서, [행복한 쥐]의 실험 결과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미안하지만 잠시만 나가주면 안 될까?"

"싫은데요?"

"……"

============================ 작품 후기 ============================

아우라에게도 언젠가는 정의구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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