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0 ----------------------------------------------
지상편
***
길로틴을 몰아낸 류안은 율리안과 아네타와 협상을 벌여서 원정대를 삼두체제로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대장님의 진급에 관한 문제는 저한테 맡겨주세요.]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는 아네타였지만 속으로는 힘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진급.
이번 사태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누가 뭐라고 그래도 류안이었지만 루퍼트 일파는 물론이고, 바키 대통령까지 쿠테타나 다름이 없는 이 상황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마크넬 원수를 대신할 수뇌부를 파견할 테니 율리안 대장은 현상을 유지하며 명령을 기다려라.]
심지어는 이런 명령까지 내려오면서 율리안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심복이라고 할 수 있었던 류안은 별을 달기는커녕, 대령으로 진급하는 일도 불투명해진 상황이었다.
‘정치에 좌우되는 전쟁이라니……젠장, 더러워서 그냥 다 때려치우고 우주군으로 임관해야 되겠다.’
급기야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에 아네타가 가져온 소식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축하드려요! 대장님, 3계급 특진으로 헌병사단의 사단장으로 취임하게 되셨어요.]
[……네?]
[후후후후. 이래보여도 제가 돈 버는 일하고 정치질이라면 제법 일가견이 있거든요.]
[도대체 어떻게……]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잠시 얼떨떨해져버린 류안이었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가 본국을 어떻게 설득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제가 한 일은 간단해요. 율리안님과 대장님께서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사이가 좋지는 않다고 양쪽 진영으로 거짓 정보를 흘렸거든요. 그리고 대장님의 세력이 율리안님을 견제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양념을 쳤더니 나머지는 알아서 해결해주더라고요.]
간단하게 말해서 류안은 율리안의 대항마로 선택되었다는 뜻.
그것도 내부감찰권을 가지고 있는 헌병사단의 사단장이라는 직급을 주는 걸 보니 제대로 한 판 붙어보라는 의도가 다분하게 들어간 인사배치였지만, 사실 현재의 류안은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으면 있었지 서운한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어떤 해프닝으로 인해서[죽음]에 대한 조치가 완벽하게 자신의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다음부터는 더욱더.
[본국에서는 현재 양쪽 진영 모두가 율리아님의 지나친 성공을 경계하고 있어요. 그래도 일단 원정대에 새로운 수뇌부가 파견되는 것은 어떻게든 저지했지만……이 사실을 명심해주세요. 그들이 아무리 관대한 제안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sarbrp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가온 공화국에 존재하는 현대판 골품 제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전생에 미국만 하더라도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이라며 대놓고 주류 지배계급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소위[상류층]이라고 불리는 사회를 형성해서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상황.
가온 공화국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아서 sarbrp라는 긴 단어를 묶어서 기득권과 피지배층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 불편한 현실이다.
sarbrp가 무엇의 약자냐면
school factions(학벌)
area(지역)
religion(종교)
blood relation(혈연)
race(인종)
property(재산)
율리안만 하더라도 그가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는 그의 아버지가 비상류계급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상류층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서자나, 사생아로 취급하면서 대놓고 무시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그런 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서 그가 원정대로 다른 일을 꾸미는게 아닐까 의심당하는 상황이었지만.
반면에 순도 100%의 상류층 아가씨들인 레베카와 아네타의 경우에는 공주님으로 대접받으면서 여기저기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한다.
‘내 경우에는 학벌……이 될 리가 없고, 지역이나 종교, 혈연도 안 되고……그래도 인종 하나는 되는구나. 재산도 노력하면 가능할 것 같기는 하지만……이런 빌어먹을 녀석들.’
그렇게 생각하면서 무심코 자신의 계급을 따져보다가 자신이 불가촉천민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하는 류안.
물론, 현재의 성공은 율리안의 기록을 돌파하는 최연소 기록으로 공화국 드림을 현실로 이루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쓸모가 없어지면 언제든지 치워버릴 수 있는 소장 나부랭이]라는 것이다.
‘sarbrnp고 나발이고 언젠가는 모조리 갈아엎어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임무를 수행하기 전에 먼저 잠깐의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
“그러면 일단 누구와 먼저 놀아볼까?”
리스트로 만들어진 공략대상들을 바라보면서 무한하게 펼쳐지는 상상의 나래에 입꼬리를 들어 올리는 류안.
‘오랜만에 재회한 제시카 대령님도 괜찮고……마스터 카프도 조금만 노력하면 넘어올 거 같고……으음, 유리 브라스도 포상을 주기는 해야 되는데. 로제와 엑스를 불러다가 더블 플레이를 즐겨볼까? 아니면 이참에 건방진 페어리 자매를……율리안 귀요미. 헉! 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율리안, 율리안, 율리안, 율리안, 율리안……’
“코끼리(?)는 생각하면 안 돼!!”
순식간에 자신의 머릿속을 지배해버리는 거부할 수 없는 그♀의 치명적인 매력으로 절규하는 류안.
얼굴을 감싸 잡으며 자신의 성욕을 향해서[흑염룡은 바보야! TS밖에 모르는 바보!!]를 외치던 그는, 몰래카메라의 동작감지센서가 요란하게 울려대는 것을 바라보면서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냥, 냥! 냥냐냥! 냐냐냐냥, 냥냐냥!]
그 곳에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탈의실로 들어오는 카티아의 모습이 포착되고 있었다.
“좋아!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는 고양이 누드씬보다 좋은 게 없지.”
그렇게 말하는 그는 변질자의 표정으로 하악거리는 숨을 거칠게 뿜어대면서 카메라를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눈치 채지 못한 체 무방비하게 알몸이 되어버리는 카티아.
[으음……옷들이 원래 이렇게 작았었냥? 혹시 대장냥이가 했던 말처럼 조금 통통해졌을지도……아, 아니다 악마냥!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냥! 카티아냥이는 지금도 깃털처럼 가볍다냥!]
“후후후후. 현실을 부정해도 소용없다고 동물귀 아가씨……먹기(?)좋게 피둥피둥 살이 오른 엉덩이가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지.”
정글에서 이 야생의 들고양이 소녀를 생포한지도 벌써 수개월.
그동안 다양한 수법으로 카티아를 타락시켜온 류안은 그녀가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는 생쥐조차도 사냥할 수 없는 나약한 집고양이로 변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물론, 신체능력이 약해지거나 보기 흉할 정도로 뚱뚱해진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영양실조라고 생각될 정도로 깡말랐던 몸매를 잘 먹이고, 잘 키워(?)서 보기 좋은 글레머로 체형을 바꿔버린 상태.
덕분에 신체능력도 향상되었고 영양상태도 더할 나위 없이 극상의 컨디션을 유지시키고 있었지만, 류안은 THE 류안냥이와 대장냥이라는 두 개의 얼굴(?)로 인셉션을 사용하면서 그녀의 심리상태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종하고 있었다.
현재 그녀의 심리상태를 설명하자면……
‘냐아아아앙……살이 찌는 건 싫은데 개다래 페리뇽과 정키치킨의 유혹을 거절할 수가 없다냥! 이게 다 지나치게 친절한 THE 류안냥이와 대장냥이가 나쁜 거다냥! 바보, 바보……두 냥이들은 카티아밖에 모르는 바보들이다냥!’
‘큭! 이런 마성의 심장폭행범 같으니라고……’
카티아의 귀여운 행동으로 광대뼈가 아파질 때까지 아빠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던 류안.
하지만 그녀의 재롱잔치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냐아아아앙! 바지의 지퍼가 잠가지지를 않는다냥! 건방지다냥!!]
부우우욱!
[냥?!!]
끙끙거리면서 지퍼를 잡아당기다가 급기야는 엉덩이 부분이 터져버린 바지.
“이예이!!”
그 광경을 바라보던 류안은 환호성을 지르면서 곧바로 녹화버튼을 누르면서 동물귀 소녀의 굴욕을 자신의 하드디스크로 저장하기 시작했다.
[아, 아무도 못 봤겠지냥?]
자신의 추태가 누군가에게는 가보로 영구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는 상태로 얼굴을 감싸 쥐며 부끄러워하는 카티아.
[냐아아아아! 누가 봤다면 절대로 시집가지 못할 거다냥! 카티아는 돼지 고양이다냥!!]
‘괜찮아! 내가 평생동안 책임지고 길러줄 테니까!!’
꼬리를 부풀리면서 좌절해버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렇게 맹세한 류안은 이번 기회에 그녀를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최종계획을 실행하기로 결심했다.
곧바로 몰래카메라에 장착된 마이크를 키면서 목소리를 가다듬기 시작하는 그.
“크흠, 크흠……어디에선가 살이 뒤룩뒤룩 찐 돼냥이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냥?! 아니다냥!! 카, 카티아는 돼냥이가 아니다냥!! 그, 그런데 대장냥이는 어디에서 말을 하는 거다냥?!]
혼란스러워하는 그녀를 애써 무시하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태연스럽게 말을 이어나가는 류안.
“아, 아. 사단장이 알립니다. 최근에 자신의 사료를 제대로 먹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면서 개다래 페리뇽이니, 정키 치킨 같은 불량식품으로 배를 채우는 불량한 고양이 소녀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카, 카티아는 아니다냥!]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격렬하게 도리질을 치면서 부인하는 카티아.
하지만 류안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욱 더 목소리를 높이면서 그녀의 죄책감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영양밸런스는 물론이고 예쁜 몸매를 만들어주는 비싼 고급사료를 아무렇지도 않게 버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인데, 더 지독한 건 그 불량한 고양이 소녀가 살만 뒤룩뒤룩 찌는 불량식품을 섭취하면서 자신의 옷을 망가트리고 있다고 합니다. 사단장은 그 소식을 듣고 정말로 가슴이 아팠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불량 고양이에게도 아직 선한 마음이 남아있다면 자수하세요, 부모님이 울고 있습니다!!”
[냐앙?!!!]
엄청난 충격으로 할 말을 잃어버리고는 멍하니 서있던 카티아.
그녀가 사단장실로 울면서 찾아오는 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이렇게 착하고 귀여운 고양이를 괴롭히다니...
제가 쓰면서도 ㅋ마음이 굉장히 아팠습니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