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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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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가 류안을 붙잡은 이유는 이번 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였다.
‘똑똑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멍청한 실수라……확실히 할 말이 없어지는 말이군.’
루베스라는 AI와 안드로이드에 대한 정보를 들었을 때 그는 1000년 전의 권력자들처럼 그 기술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주목했다.
‘만약에 이 AI를 우리 부대의 전술 오퍼레이터로 배치한다면 유라디스 은하에 적수가 없어질 텐데.’
그가 유라디스 은하의 전쟁에서 가장 한심하게 느꼈던 부분은 유능한 부하들 위에 무능한 상관들이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야전사령관과 오퍼레이터의 관계.
‘만약에 현대전이 오퍼레이터가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시스템이었다면 워게임과 비슷한 프로그램은 벌써 옛날에 개발되었을 거야.’
하지만 유라디스 은하의 전쟁 상식은 오퍼레이터는 단순하게 서포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그들이 최대한 빠르게 전황을 분석해서 상황을 분석해서 보고해도 총사령관이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다시 명령을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번거로운 절차를 가지고 있었다.
‘1분 1초가 생사를 좌우하는 전쟁터에서 그게 도대체 무슨 시간낭비야?’
머리 위로 폭격이 떨어진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후퇴를 요청했더니 노안에 귀머거리 야전사령관이 틀니를 찾아 헤매고 있더라.
상황이 이런 지경이니 부대가 전멸할 처지에 놓였는데도 상부로부터 명령을 받지 못한 현장지휘관들이 자신의 재량으로 후퇴를 명령하지만, 그렇게 생존해도 나중에는 상부의 명령을 위반하고 전선을 이탈했다는 이유로 군사재판에 세워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우리의 적은 우리의 상관이라는 병사들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니까.’
하지만 루베스라는 AI가 사실이라면 더 이상은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사람은 실수를 저질러도 기계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물론, 그 말대로 기계가 정말 100% 완벽할리는 없고 최악의 경우에는 어느 게임의 사이코 로봇처럼 16분의 1피코초마다 사람을 죽이려고 시도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의 실수를 태연스럽게 저질러버리는 인간과의 신뢰도를 비교한다면 어느 쪽을 신뢰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것이 인간의 사고능력을 초월해버린 기계라고 한다면 류안이 아니라 제갈량이 살아서 돌아온다고 그래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전략가일수도 있다.
아니, 1000년 전에 소실해버린 안드로이드 제작기술까지 확보할 수 있다면 전쟁의 주체가 인간에서 안드로이드로 바뀌게 될 것이다.
‘사소한 단점(?)이 있다면 은하의 주인마저 기계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점이지만……’
하지만 아우라는 그런 생각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논리적으로는 AI를 가지고 싶다는 대장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어요. 불이 화재를 일으킨다고 불 자체를 없애버리자고 주장하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죠……하지만 그런 바보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요. 그 차이를 이해하시나요?”
“뭐, 지금 당장은 불가능해도 나중에 더 많은 권력을 얻어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꾼다면……”
“슈발츠 제국의 황제도, 펜져스들도 승산이 없다고 생각해서 포기해버린 사업이에요. 그리고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라디스 은하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아니, 어쩌면 다시 루베스같은 AI가 등장한다면 그 때보다 더 크게 들고 일어날 거예요. 어째서 그런지 아시나요?”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런가?”
“바로 그거예요!”
정답이라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안도하고 말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점점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전 은하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극빈층의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가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그들이 AI 안드로이드의 등장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가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죠.”
“맞아, 그랬었지.”
아우라의 말에 자신이 간과하고 넘어갔던 사실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심각한 표정으로 변해버린 류안.
사람들은 흔히 달동네나 가난한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회 대부분의 범죄는 슬럼가에서 일어나고, 길거리에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의 시체가 유기되는 장소가 빈민가라는 장소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잔인해지는 사람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천성이 사악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지나치게 열악하다보니 먹이사슬이 지나치게 야만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가 있었다.
게다가 슈발츠 제국은 아주 오래 전부터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도록 그들을 살기 어렵고, 가난하게 만드는 것을 통치의 기본 정책으로 사용해 왔다.
[삶에 여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줄 테니 사람을 죽이라고 제안한다면 그 말을 따를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에게 같은 제안을 한다면 그는 기꺼이 사람을 죽이고 당신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권력과 권위는 통치대상이 가난하면 가난해질수록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다른 누가 아니라 헨드릭 황제가 꺼낸 말이다.
‘열등감 덩어리의 중2병 꼬맹이가 또……’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이 세상에는 언제나 임계점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법이죠. 그리고 AI의 안드로이드의 등장은 극빈층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마지막 희망마저도 짓밟아버리면서, 그들을 폭발시키고 말았어요.”
과학자들과 권력자들은 안드로이드가 누구도 굶주리지 않는 풍족한 세상을 만들 거라고 선전했지만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사실, 굳이 안드로이드의 도움을 빌리지 않아도 유라디스 은하에서 창출되는 부는 전 은하의 사람들을 풍족하게 먹여 살려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정설이지만……어쨌든, 다양한 미디어로 낙원추방의 실상을 목격해버린 사람들에게는 정부발표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때 당시에 조금만 더 현명하게 행동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면 결과가 180도 달라졌을지도 몰라요. 하지만……그 때의 사태는 유라디스 은하에 지워질 수 없는 상처를 남겨버렸고 AI 안드로이드라는 건 사람들에게 깊숙한 트라우마로 남아있어요. 그것이 천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고 희석되거나 크게 달라졌을 거라는 기대를 하시면 안돼요.”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하게 알겠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1000년 전의 사건이 현대에 무슨 영향을 주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과학의 발전방향과 관습까지 깊숙하게 영향을 준[낙원추방]이라는 사건의 영향력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단 적인 예로 그의 전생에서만 해도 중동과 미국이 충돌할 때마다 천년을 묵은 십자군 전쟁과 지하드라는 이름을 꺼내드는 것이 일상다반사였고, 역시 천년은 훌쩍 뛰어넘는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의 원인이라거나, 한국인들이 당나라 군대라던가 임진왜란이라는 단어를 무심코 뱉어내는 것도 모두 다 역사와 관습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라는 것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괜히 존재하는 말이 아니에요. 대장님이 앞으로 훌륭한 리더가 되시려면 단순하게 이익을 쫓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으로 일어날 파장에 대해서 끊임없이 계산하고 대비하셔야 해요. 저는 이번 강의에서 그것을 가르쳐드리고 싶었어요.”
“……그렇군.”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기 때문에 류안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유라디스 은하에 한 성공한 CEO가 있었다.
학위를 몇 개나 가지고 있는 화이트 칼라에 IQ가 180을 넘어가는 천재 중의 천재.
하지만 그는 회사의 영업이익을 내기 위해서 추운 지방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던 싸고 질 좋은 방한복의 가격을 2배로 올리자고 말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분노하며 항의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일어나면서 컴플레인이 끊이지를 않자, 결국에는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쫓겨나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틀렸을까?
“계산으로만 보면 회사가 불매운동과 컴플레인을 무시하고 방한복의 가격을 2배로 올렸을 때의 영업이익이 그 손실을 만회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 CEO는 서민의 친구라고 불리던 제품의 가격을 2배로 올리자고 주장했고, 피도 눈물도 없는 악덕 기업가라는 오명을 쓰고 업계에서 추방당하고 말았죠. 물론, 그렇다고 원가도 건질 수 없도록 가격을 반으로 깎고 서민들에게 인심을 사며 장기적인 이윤을 추구하자는 제안을 했어도 정신 나갔다는 소리를 듣기는 마찬가지였겠지만…… 혹시 그런 생각을 하신 건 아니죠?”
“크, 크흠.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잠시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려 본 류안은 아우라의 일침에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강력한 권력에는 그에 동반하는 책임이 따른다.
과거에는 그 말에 그렇게 강한 구속력을 느끼지 않았던 류안이었다.
비록 예전에도 13구역과 15구역의 중심세력을 배후에서 조종하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지역을 관리하는 대리인은 따로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180도 다르다.
***
쿠구구쿵, 쿠구구쿵, 쿠구구쿵!
군악대가 드럼을 울리는 소리에 맞춰서 수천, 수만의 의장대의 발소리가 대지를 두드려 댔다.
형형색색의 정복을 차려입은 원정대의 장교들과 부사관들, 그리고 마그누스 자치령의 고위인사들이 파도처럼 일어나면서 직립부동의 자세를 갖춘다.
지이이이잉-
개인의 관선으로 지급된 아시모프 수송선의 문이 열리자 새하얀 원피스와 월계수관을 쓴 소녀들이 비둘기를 풀어 날렸고, 수많은 수행인원들에 둘러싸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체 차렷!]
처처처척!
[류안 소장님을 향해서 경례!]
[필승!!!]
쿵!
천지를 뒤흔드는 군인들의 경례소리와 뒤이어서 터져 나오는 군악대의 음악 소리.
부하들과, 시민들, 그리고 자치령의 고위 인사들의 환호소리와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가운데 하얀색 정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연단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의 이름은 류안.
길로틴과 엔포서를 대신해서 원정대의 40만 헌병대를 통괄하고 원정대와 팔란티오 행성의 내부감찰권한을 차지하게 된 독립치안유지부대, 트라이엄프 헌병사단의 새로운 사단장이었다.
============================ 작품 후기 ============================
옛날 영화에 이런 말이 있더라죠.
영웅으로 죽거나 오래 살아서 악당이 되거나.
따, 딱히 류안이 악당이 된다는 건 아닙...크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