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262화 (262/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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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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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단계는 부정이었다.

두 번째 단계는 분노.

세 번째 단계는 거래.

그리고 네 번째 단계는……

치지지지직!

[국민신뢰도 1위를 자랑하는 가온공화국의 유일한 방송 가온 TV에서 아침 8시를 알려드립니다. 잠시 후, 우리 공화국의 위대한 영도자이신 바키 대통령의 훈화와 함께 아침 뉴스를……]

[친애하는 공화국 국민 여러분……]

[첫 번째 뉴스부터 비극적인 소식을 전해드리게 되어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어제 모두가 사랑하는 대통령 각하의 애완동물인 ‘햄’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온 국민들의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치지지지직! 툭!

“오랜만에 아들과 오붓하게 아침식사를 하는 데 TV가 너무 시끄럽구나.”

“……”

‘이런 게 현실일 리가 없지.’

식탁에 마주앉은 여성을 바라보는 율리안은 악의가 느껴지는 연출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어버렸다.

처녀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그녀는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의 어머니 마가렛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후후후후. 보아하니 검술사범인 페트릭 선생님이 교육은 제대로 하는 모양이구나. 아무렴, 모름지기 사내아이라면 돌처럼 과묵해야 한다. 절대로 아버지처럼 쓸데없이 재잘거리다가 실패자로 떨어지지 말거라, 율리안.”

‘……환상 속에서도 어머님의 악취미적인 밥상머리 교육은 여전하군요.’

그에게는 언제 들어도 두드러기가 올라오는 것 같은 설교였지만 심호흡으로 차분하게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명심해라, 아들아. 이 세계는 20%의 사람들이 80%의 부를 창출해주기 때문에 유지되는 거란다. 어떤 어리석은 사람들은 롱테일의 법칙이라느니 뭐니 떠들어대며 나머지 80%에 대한 가치를 말하지만, 그건 80%의 돼지들이 떠들어대는 자기변명에 불과하……”

소통 없이 끊임없이 자신만의 주장을 이야기하는 마가렛의 모습은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 놀라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태생부터 상류층의 부유한 집안의 아가씨로 태어난 어머니.

그리고 가난한 이상주의자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아버지.

연애시절에는 그런 반사회적이고 시대의 풍운아 같은 야성적인 모습이 순진한 한 명의 여성을 사랑의 포로로 사로잡는데 성공했지만, 야반도주와 과속으로 만들어진 두 사람의 결합은 결국 비극으로 끝나버렸다.

[어째서 그런 짓을 저지른 거야! 어째서……당신 때문에 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어! 당신 때문에 우리 집안이 완전히 망해버리고 말았다고!! 정의? 이상? 민중? 인권?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사람들은 오직 권위와 권력에만 복종한다고……그런데 왜……왜, 당신은 불만 한 마디도 들어주지 않고 죽어버리는 거야……]

그렇게 울부짖은 마가렛은 장례식 이후로 아버지의 동료라고 찾아왔던 사람들을 모두 쫓아버리고 말았다.

이후로도 사회운동이라면 치를 떨면서 율리안을 자신의 울타리 속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방식대로 키워내기로 결심한 그녀지만, 사실 그를 성장시킨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바로 아버지의 그림자였다.

[너의 아버님은 훌륭한 사람이셨단다.]

[아버지처럼 맑고 곧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구나.]

[내가 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라는 건 어머니에게는 비밀로 하거라.]

그녀가 칭찬했던 검술 선생부터 가정교사, 하녀, 집사, 심지어는 집안으로 드나드는 식료품 납품업자들까지.

모두 다 마가렛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는 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를 가르쳐주었다.

‘어머니는 모르셨지만 위기의 순간마다 나를 구해준 사람들은 집안이나 권력, 배경에 관련된 사람들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신세를 졌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숭고한 희생이었어……’

그의 빠른 출세가 출신이나 집안, 학력의 도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한물 가버린 상류층의 자제로서 언제나 무모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었던 임무를 도맡아야만 했던 율리안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중들의 지지와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공화국이 썩을 대로 썩어버렸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선하지도, 착하지도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양심을 포기하고 악독해지지 않으면 살아남기도 어렵다는 사실도……그래서 나는 어머님의 말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위로 올라가기로 결심했지.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어도 최소한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것이 바로 고고하신 공화국의 왕자님께서 하시는 생각이로군요? 권력을 잡고 아버지의 이상을 실현시키며 결국에는 이 불쌍한 어머님을 구원하고 싶다……이거야 원,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입니다. 흐아아아암! 아, 지금 흘린 눈물은 절대로 하품 때문이 아닙니다. 크크크큭!”

갑작스럽게 나타나버린 광대의 조롱에 상념에 빠져있던 율리안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눈매를 가늘게 떴다.

후우우우웅!

곧바로 라이트 세이버를 휘둘렀지만 마치 잔상을 공격하는 것처럼 허무하게 빠져나가버리고 말았고, 눈앞에 있는 마가렛은 두 사람 전부를 인식하지 못하는지 여전히 설교를 늘어놓고 있었다.

“하하하하! 진정하십시오. 율리안님……처음에는 냉정하시던 분께서 2단계를 지나고 난 다음부터는 유달리 폭력적으로 변하셨습니다? 물론,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긍정적인 모습이지만……어머님이 말씀하시는데 무례하신 거 아닙니까?”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길이나 열어라.’

율리안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광대는 능청스러운 미소를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이번 과제는 마가렛 여사님의 역할이 엄청나게 중요하답니다. 그러니까 한 번 속는 셈치고 계속해서 들어보시죠. 바로 지금부터 시작될 이야기야말로 이번 도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니 말입니다.”

“……”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율리안은 포기하고 얌전하게 자리로 돌아가서 앉았다.

“……그나저나 말이 나와서 말인데, 아들아. 얼마 전에 어떤 사람에게서 어째서 네가 그렇게 더러운 개구리 인형을 들고 다니는지를 전해들을 수 있었단다.”

“!”

생각하지도 못한 지적에 살짝 당황하기는 했지만 이것이 허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빠르게 평정심을 회복시키는 그.

율리안의 상징으로 불리는 개구리 키홀더 인형[로티]는 농아출신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고아원의 한 소녀가 선물해준 물건이었다.

“정말로 훌륭한 연기였구나, 아들아! 사람들은 모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이 어머니의 눈을 속이지는 못했지! 우매한 대중들을 다루는 솜씨가 제법이더구나. 후후후후……”

[아, 정말이지 이 부분이 가장 좋습니다. 율리안 중장님!]

“……”

마가렛의 말에 깨방정을 떨면서 추임새를 넣는 광대의 행동이 약간 거슬렸지만 과장스럽게 떠들어대는 것과는 다르게, 그 때까지만 해도 그가 동요해야만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다음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런데 말이야. 율리안……아무리 대중들을 속이기 위해서라지만 그렇게 더럽고 비천한 아이에게 그렇게까지 호의를 베풀 필요는 없지 않았니?”

“!!”

깜짝 놀란 율리안이 무슨 말이냐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자 태연스럽게 대답하는 그녀.

“놀라지 말거라, 아들아. 이 어미는 그저 그렇게 더럽고 비위생적인 장소가 우리들의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참을 수가 없더구나. 그래서 약간은 번거로웠지만[청소업자]들의 손을 빌리기로 했단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그런 행사에는 신경을 쓰지 말렴. 특히 그 괘씸했던 꼬맹이와는 두 번 다시는 만나지 않을 테니 너는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쿵!

벌떡!

“……웃기는군.”

율리안은 더 이상은 들어줄 가치도 없다는 것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하지만 그런 그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테이블에 발을 올리고는 느긋하게 커피를 음미하는 광대.

“으음! 아주 좋습니다. 아킬레스 건을 자극받는 사람들의 향기는 언제 맡아도 매력적이군요. 지금까지 어떤 사람들은 건드려도 꼼짝도 하지 않으시던 분께서 고작해야 농아 소녀 하나가 다쳤다는 이야기로 안절부절못하는 꼬락서니라니……”

“……”

“혹시 로리콘이십니까?”

후우우우웅!

문답무용으로 날아드는 공격에 맞춰서 이번에는 율리안의 코앞으로 순간 이동한 그는 소름끼치도록 진득한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좋은 사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인정하기는 싫겠지만 어머님께서 하시는 말은 모두 현실에서 벌어진 일들입니다.”

“헛소리!!”

후우우우웅!!

“당신은 그 이후로도 꾸준하게 고아원에 기부금을 보냈지만……그 돈은 한 번도 그 장소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중간에서 어머님이 가로채버렸기 때문이죠! 주소지와, 고아원의 이름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당신이 기억하는 그 아이들은 더 이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 명도 남김없이 청소부들에게 끌려가서 [처리]당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의 어머님께서 저지르신 일입니다!!!”

“개소리 지껄이지 마!!!”

쾅!!!

분노에 찬 율리안의 공격은 테이블을 박살내면서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일대를 삼켜버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 그의 발밑이 꺼져버리면서 작고 검은 손들이 튀어나오면서 그를 사로잡고 밑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아파요……중장님. 너무나도 아파요……]

[청소업자들이 우리들을 보고 나무토막이라고 말하면서 웃어요. 나무토막이 뭔가요? 저희들은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인데……]

[어째서 구해주시지 않는 거죠? 어째서?]

[……아저씨들이 말하는데 우리들의 목숨은 누군가에게 새로운 생명이 되어줄 거라고 말해요. 눈이 없어지거나 수술실에 들어가는 건 약간은 무섭지만……그렇게 말한다면 조금 더 참아 볼게요. 그러니까 율리안 중장님도 조금 더 웃어주세요. 제 소중한 친구가 곁에 있잖아요……]

“안 돼……”

힘없이 사라져버리는 그 손들이 전부 다 아이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율리안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을 붙잡으려고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그 대신에 그를 사로잡은 것은 마치 밴시처럼 소름끼치는 모습으로 변해버린 마가렛이었다.

[자랑스러운 내 아들. 너는 절대로 나를 벗어날 수 없단다……그러니까 영원히 나와 함께 하자꾸나. 사랑하고 있단다, 아들아……]

그 벗어날 수 없는 악몽과도 같은 요람에 율리안의 눈동자가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축하합니다. 중장님. 아무래도 5단계로 진행하실 준비가 되신 것 같……어라?”

율리안의 상태를 바라보면서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어나가던 광대는 갑작스러운 이변을 감지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더워서 죽을 것 같았는데 내일은 더 덥다니!!

참고로 작품 후기는 낙서장 비슷한 거니까 크게 신경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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