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260화 (260/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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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헨드릭 황제라니……그냥 미친놈인줄 알았는데 제대로 미친놈이잖아?!’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정체와 계획을 나불나불 떠들어대는 아틸라, 아니 헨드릭 황제.

[말도 안 되는 그런……]

놀라기는 곁에서 듣고 있던 브륜힐트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이, 이럴 리가 없다. 저 남자는 분명히 발할라 도전에 실패해서 다른 존재로 환생했을 텐데……]

웬만해서는 동요하지 않는 그녀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표정으로 굳어있는 것을 보니 눈앞의 남자가 헨드릭 황제라는 주장은 사실로 보였다.

‘유라디스 은하를 거의 통일할 뻔 했던 남자가 이번 사건의 배후라니……그렇다면 다시 살아나겠다는 말은 율리안에게 빙의하겠다는 소리인가?’

만약에 그 가정이 사실이라면 이번 대결은 단순하게 율리안을 잃어버리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야말로 유라디스 은하의 운명이 걸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일전.

다시 태어난 헨드릭 황제가 신화처럼 전해지는 그의 능력을 반에 반만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면 팔란티오 행성의 전쟁은 우주군이 개입한다고 그래도 가망이 없다.

아니, 사하스 연맹 자체에 가망이 없다고 말해야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권력다툼으로 사분오열되어 내전을 치르고 있는 슈발츠 제국이 진정한 황제의 귀환으로 일치단결하게 될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태를 비유하자면 미국 공화당에서 아브라함 링컨이 부활해버리는 사건이라고 할까.

민주당이 어떤 방법을 동원한다고 그래도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대선후보가 나와 버리는 것처럼, 헨드릭 황제는 자신을 반대하는 진영들에게 대재앙이라는 표현으로도 모자란 악몽 같은 존재다.

오죽하면 연맹의 가맹국들 중에서도 대놓고 그의 동상과 사당을 만들어서 국가적으로 신봉하는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을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가 되살아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돼!’

눈앞의 상대가 바로 그 전설적인 황제라는 사실에 위기감을 느낀 류안은 정신을 차리고는 본격적으로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원래 약속했던 것과는 말이 다르잖아? 내 돈은 어디로 갔어! 내 영지는, 내 작위는?!]

[부귀영화를 약속한 토벌대의 대장은 우리들의 신뢰를 져버렸다. 던전은 기회의 땅이 아니라 단순하게 먼지로 뒤덮인 볼모지에 불과했고 거기에 세계의 멸망을 준비하는 악의 무리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그대의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군. 이거야말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버린 상황이 아닌가? 그동안의 성과를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토벌대를 지원하는 일은 조금 더 고려해야 되겠군.]

토벌대에 투자한 귀족들, 성공보수를 약속받은 용병, 군인, 모험자들, 그리고 세계연합의 간부들이 모두 다 던전 토벌의 성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을 쏟아냈다.

아니, 단순하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이 과격하게 폭주를 시작했다.

[크, 큰일입니다! 대장님……토벌대를 후원하기로 약속한 귀족들이 갑자기 투자금을 내놓으라고 집단으로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토벌대의 병사들 중에서 일부가 진지를 이탈해서 민간지역을 약탈하고 있습니다! 영지를 약탈당한 작센 영지에서 항의가……]

[세계연합에서 사문회에 출두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광장에 엄청난 규모의 대중들이 몰려들어서 토벌대에 반대하는 시위를 펼치고 있다고 합니다!]

마치 머피의 법칙이 나비효과처럼 작동되면서 연쇄적으로 악재를 만들어내는 황당한 상황.

‘이건……절대로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야. 누군가가 배후에서 사주하지 않고는 이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날 리가 없어!’

“민중들은 참으로 멍청하기 이를 데 없어. 누군가의 말처럼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양떼들이나 다름이 없지. 그래서 늑대가 나타나서 뒤에서 짖으면 눈앞에 낭떠러지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집단으로 뛰어들거든……그래서 그들에게는 길을 인도해 줄 목자가 필요한 거야.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지.”

아니나 다를까 류안이 경험하는 사건의 배후에는 자신에게 있다는 것처럼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이는 헨드릭 황제.

“시끄러우니까 조금 닥쳐주지 않을래? 예전에도 그랬지만 너는 꼭 게임을 주둥이로 하려고 그러더라. 사내새끼가 과거의 일을 가지고 아직까지도 궁시렁궁시렁……”

“!!”

정곡이 찔렸는지 단숨에 눈매가 날카로워지는 그.

“너도 명색이 프로게이머 나부랭이라면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이번에야말로 실력으로 나를 압도해 봐! 게임에 집중하라고 멍청아!!”

“……좋아.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건방진 입을 놀린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그렇게 외친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해서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30분의 준비시간 동안에 계속해서 밀려닥치는 클레임과 트러블을 해결해가던 류안은, 그 시간 동안에 자신의 진영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진영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간에게 우호적인 몬스터나 모험가들을 이용해서 방해공작을 펼칠 수 있는 히든 커맨드가 숨어 있었어……그렇다면 헨드릭도 같은 방법을 사용했겠군!’

헨드릭이 어떻게 사태를 악화시켰는지 실마리를 찾아낸 그는 곧바로 이런 사태를 만들어낸 배후를 찾아내는 동시에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탁!

SS급의 게임능력과 초절기교로 배가시킨 극한의 멀티태스킹으로 상황을 처리해가는 류안.

반면에 헨드릭은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기는 했지만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손놀림을 보여주는 그와는 다르게 손의 빠르기는 의외로 느긋해 보였다.

하지만 그 움직임의 본질을 꿰뚫어 본 브륜힐트는 식은땀을 흘렸다.

[……터무니없군. 그대의 능력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저 남자의 실력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아무리 심연의 악마가 되어버렸다고는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자가 한 분야에 저렇게까지 정통할 수가 있다니……]

[안 그래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는 중이야.]

두 사람이 진심을 발휘해서 정면으로 충돌한 지 불과 3분.

류안은 자신의 상상을 초월하는 상대방의 실력을 깨닫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패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버리다니……’

높은 자유도와 복잡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전략시뮬레이션인 만큼 경험치의 차이가 치명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설마 기본적인 실력마저도 이렇게 철저하게 밀려버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늘부터 토벌대의 모든 지원을 완전히 중지한다! 뿐만 아니라 류안 대장을 파면하고 그의 재산을 모조리 몰수하도록 하겠다!!]

[전쟁, 전쟁이다! 더 이상 던전이 세상을 멸망시킨다는 헛소리를 믿을 필요는 없다! 세계연합 자체가 단순한 허상에 불과하다! 우리들은 더 이상 불합리한 국제조약에 연연하지 않고 전 세계를 정복할 것이다!!]

토벌대의 해산, 이어지는 세계연합의 붕괴와 지상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게임의 시스템 상으로는 단순하게 견제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게 어려운 스파이를 사용해서. 상대방의 진영을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박살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실력이었다.

급기야는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전략적인 단계에서부터 이길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해버린 류안.

하지만 동시에 SS급 게임능력에 적수를 발견하지 못하고 공허함을 느끼고 있던 승부사의 기질이 되살아나는 것 같은 기분도 느끼고 있었다.

‘하하하하하! 굉장해, 정말로 굉장하잖아. 헨드릭! 세상에 이렇게 게임을 잘하는 게 가능하다니……이런 발상을 하는 게 가능하다니! 더 보여줘,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줘, 더욱 더 나를 놀라게 해 봐, 헨드릭!!’

자신의 눈을 휘둥그러지게 만드는 헨드릭의 실력에 눈동자를 반짝거리는 류안.

어느 새 그는 이 승부에 걸려있는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고 철저하게 게임에 몰입하고 있었다.

반면에 헨드릭은 상대방을 철저하게 능욕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자 불쾌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하는 거냐, 올 마이티……이렇게까지 압도적인 실력차이를 보여줬으면 GG를 선언하는 게 프로게이머잖아! 구차하게 나오다니 무슨 속셈이냐, 더 이상은 나를 실망시키지 말고 깔끔하게 포기해라. 올 마이티!!’

전생에 자신을 절망하게 만들었던 상대를 철저하게 때려눕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만족스럽기는커녕,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쾌함을 느끼는 헨드릭.

설상가상으로 류안이 게임에 놀라운 속도로 적응하면서 점점 더 거세게 저항해오자 그동안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열등감과, 분노, 검고 혼탁한 감정들이 울컥하면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절망해라, 올 마이티! 쓰러져라, 쓰러져! 전생에 내가 느꼈던 좌절감과 울분을 느끼면서 구차하게 울부짖으란 말이다!! 내가 너 때문에, 내가 너 때문에, 내가 너 때문에 어떤 일들을 경험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쾅쾅쾅쾅쾅!!

[토벌대가 전멸하면서 3차전은 던전 마스터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토벌대가 전멸하면서 4차전은 던전 마스터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쿠구구구구궁!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지면서 지상세계에는 어두운 구름과 사나운 바람, 전쟁으로 인한 기아와 질병, 불신과 절망이 만연하면서 세기말적인 암울한 분위기를 뿜어내게 되었다.

이 게임의 기본적인 룰에 따르면 어느 진영이라도 패배를 경험할수록 위기의식이 고양되기 때문에 npc들이 토벌대나, 던전마스터에게 더욱 더 많은 지원을 해주는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헨드릭의 방해공작으로 모든 희망이 사라져버린 디스토피아로 변해버린 지상세계는 멸망이라는 단어가 자신들의 코앞에 도달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해결책을 찾아낼 수 없자 집단 히스테리에 사로잡히면서 최후의 한 사람까지 죽고 죽이는 배틀로얄의 광기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게임은 끝났어.’

지상세계의 모든 상황을 손바닥에서 들여다보고 있던 헨드릭은 지상에 살아남은 모든 생명체가 힘을 합쳐서 던전을 공격한다고 그래도, 류안이 어떤 컨트롤을 보여준다고 그래도 자신에게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그대로 손을 떼어버렸다.

“이제야 알겠나? 올 마이티! 네가 발할라에 도전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생과는 완전히 입장이 바뀌어버렸다는 사실을……나는 이미 옛날에 너를 초월했고 그 이후로도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로 오랫동안 이 광기의 소굴에서 실력을 갈고 닦았다. 그러니 이제 네 모든 것을 바치고 영원히 사라져라! 올 마이티!!”

헨드릭의 호통에 그도 자신의 상황을 깨닫고는 잠시 동안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놀랍게도 류안은 그 순간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입을 열었다.

“하하하하하! 그래. 졌다, 졌어……게임에서 이렇게 압도적으로 패배해 본 건 어린 시절에 성질머리 더러운 프로게이머 지망생 형한테 패배해보고 처음이다! 그동안 열심히 했구나, 아틸라! 아니, 헨드릭!”

“……”

“하지만 내가 상황이 불리하다고 포기할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그러니까 나를 날려버리고 싶다면 마지막 숨통을 끊어버리기 전까지 철저하게 때려눕혀! 그게 진정한 프로게이머들 사이의 경기방식이고 기본적인 예의라는 거다. 이 대가리만 커버린 중2병 꼬맹이 새끼야!!”

“!!”

마지막 5차전에 돌입하기 직전에 류안은 지상에 남아있는 거의 모든 생명체를 규합하면서 지금까지 만든 토벌대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단합된 군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숫자는 헨드릭의 던전 방어병력에 100분의 1도 미치지 못하는 전력이었고 전황은 더 이상 기울어질 수 없을 정도로 기울어져버린 상황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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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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