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258화 (258/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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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어떻게 내가 올마이티라는 사실을 알아보는 거지?’

유라디스 은하에서도 사용하는 게임 아이디기는 했지만 자신의 정체를 아는 게이머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기 때문에, 류안은 자신의 정체를 꿰뚫어보는 것 같은 남자의 태도에 기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누구십니까?”

“내가 누구냐고……아! 그러고 보니 지금 모습이라면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군! 하지만 너무 쉽게 가르쳐주면 재미가 없지. 한 번 맞춰보라고……크하하하하하하하!!”

‘일단 미친놈이라는 사실은 확실하군.’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이마를 치면서 웃어젖히는 남자.

한숨을 쉬면서 문득 시선을 돌리고 있으려니 자신의 경기석 선반으로 등반해서 올라오는 손바닥 사이즈의 귀요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낯익은 얼굴.

“……브륜힐트?!”

[쉬잇! 조용히……일단은 기척을 숨기는 술법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가능하면 모르는 척 외면해라.]

경악하는 외침에 재빠르게 검지를 입술로 가져가면서 조용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그녀.

‘내 브륜힐트가 피규어일리 없어.jpg’

[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저 녀석은 뭐고……너는 왜 그렇게 핥아주고 싶은 사랑스러운 피규어. 아, 아니! 요정으로 변신해서 살금살금……]

사진을 찍는다거나 스커트 속의 리얼리티를 확인해보고 싶다거나 이곳저곳을 만지면서 완성도를 확인해보고 싶은 리비도가 솟아올랐지만, 류안은 흑염룡의 충동을 최대한으로 억누르면서 작은 목소리로 소란을 떨었다.

[아, 알았다. 하나부터 차근차근 대답해 줄 테니……치마를 올리지 마!]

물론, 모든 성욕을 억누르지는 못했지만.

꾸욱, 꾹! 꾹!

[하읏! 초, 초절기교로 그런 장소를 만져버리면……]

‘신선한데?’

조그마한 브륜힐트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초롱초롱한 콜렉터의 눈동자를 빛내보이자, 그녀는 이내 포기한 사람처럼 한숨을 쉬면서 그의 손길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대가 갑자기 이런 장소로 소환된 이유는……큭! 저, 저 남자와 그대의 능력이 충돌하면서 경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경합이라니……그러면 설마 저 녀석도 미니게임을 사용한다는 말이야?!]

[아니, 저 남자의 능력이 게임에 기반을 둔다는 사실 자체는 같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 세계의 구성 원리와 기본 골자는 극과 극을 달리는 정반대의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하앙!! 그, 그대가 도전의 대가로 받아가는 것이 행운이나 축복이라면……저 남자는 저주와 증오, 그리고 원념과 망집으로 이루어진 결정체를……저, 적당히 하지 못하겠느냐!]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내내 성희롱을 당해버린 브륜힐트는 길길이 날뛰면서 류안을 다그쳤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그녀의 사소하고도 선명한 동작 하나하나에서 발견하는 감동(?)을 만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미니사이즈 발키리라니……그런 건 반칙이잖아!’

[그래서……저놈의 정체는 뭔데?]

[심연의 악마다.]

‘심연의 악마라니……’

어디를 봐도 단순하게 인간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남자의 모습에 류안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차라리 펜져스들이 더 악마처럼 보이는데?]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는 말아주기를 바란다. 저래보여도 발할라의 신들마저도 토벌을 포기해버린 존재니까……]

[발할라의 신들 한심해!!]

[……]

류안의 디스에 브륜힐트의 눈동자가 날카로워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는 한 술 더 뜨면서 은근슬쩍 그녀를 도발해 나갔다.

[솔직하게 말해봐. 1대 1로 싸워서 승리할 자신이 없으니까 그렇게 깜찍한 피규어……아, 아니. 미니사이즈로 몸을 숨기는 거지? 후후후후.]

[무슨 꿍꿍이로 하는 말인지는 이해하겠지만……내가 저 남자에게서 몸을 숨기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불가침조약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니 계속해서 나를 우롱할 생각이라면 이대로 떠나버려도 상관은 없다만……]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

재빠른 태세전환으로 브륜힐트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류안은 그 이후로도 몇 가지 유도심문을 반복하면서 심연의 악마들에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1.전투능력만 보면 발할라의 신들은 심연의 악마들을 완벽하게 압도한다고 한다.

2.먼 옛날에 심연의 악마들이 저지르는 행패를 보다 못한 신들이 정의구현을 명목으로 전쟁을 선포했다.

3.대부분의 승리는 신들이 가져갔지만 그들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심연을 공략하는 일은 실패로 돌아갔다.(말이 좋아서 실패지 라그나로크 이래로 처음으로 경험하는 대패였다고 한다.)

4.심연의 승리로 기고만장해진 심연의 악마들이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신들을 괴롭혀대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불가침조약을 체결해주고 그들의 존재를 묵인하기로 결정했다.

‘작은 고추가 어지간히도 매서웠던 모양이군.’

남의 일이라면 거만하기 이를 데 없는 발할라의 신들이 당했다고 고소하게 여길만한 사건이었지만, 그 덕분에 유라디스 은하의 역사가 막장으로 흘러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어딘가 씁쓸해지는 순간이었다.

“슬슬 게임을 시작해 볼까? 올마이티!”

“좋아! 내 정체를 알면서도 무슨 배짱으로 도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기회에 내가 누구인지 똑똑하게 가르쳐 주지!”

남자의 외침에 호기롭게 받아친 류안은 곧바로 경기석으로 나타나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아 쥐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비록 발할라의 신들에 비하면 약하다고는 하지만……녀석들의 강함은 보통이 아니다. 게다가 녀석들은 모두 다 한 가지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비정상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장담하는데 녀석들의 특기분야를 만만하게 봤다가는 당하는 건 오히려 그대가 될 것이다.]

[……알았어. 일단은 주의하도록 할게.]

그렇게 대답하는 그였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이번 대결에서 걸린 상금은 다른 누구도 아닌 율리안.

류안은 미니게임의 능력으로 그를 구원하기를 원했고 심연의 악마는 그 반대의 소원을 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대결에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면 율리안을 나락의 도약에서 무사히 구해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은 상황.

심연의 악마가 어떻게 자신을 알아봤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지만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남자를 구출하려는 게 보상이라는 사실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이번 일의 보수는 확실하게 받아내도록 하겠어. 율리안!’

쿠쿠쿠쿵!

[지금부터 경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5, 4, 3, 2, 1……

두 사람이 대결하는 게임의 타이틀은[랜스 앤 실드]라는 전략시뮬레이션이었다.

게임의 진행방식은 제목대로 한 명은 던전 마스터가 되어서 수비대를 지휘하고 한 명은 던전을 공략하는 토벌대를 지휘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수를 교환하지 않고 심연의 악마는 방어, 류안은 공격으로 역할이 정해졌기 때문에 류안은 곧바로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준비 시간은 30분……1차적인 문제는 그 시간동안에 얼마나 강력한 토벌대를 만들어 내느냐가 관건이로군.’

가볍게 살펴본 튜토리얼에 따르면 이 세계에서 던전이라는 개념은 내버려두면 지하세계를 오염시켜서 종국에는 지상세계마저 멸망시켜버리는 종말의 파괴 장치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 사는 장소가 어디나 그렇듯이 이곳의 사람들도 다양한 이해관계와 정치, 군사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전 세계가 힙을 합쳐서 지원하기로 결정한 던전 토벌대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래서 토벌대를 강력하게 만드는 방법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각국의 정상들을 설득해서 지원을 받아내는 것.

‘이 정도는 별 거 아니지……’

그렇게 생각한 류안은 가볍게 몸을 풀면서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하려고 했지만, 그 순간에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던 심연의 악마가 무시할 수 없는 말을 입에 담았다.

“로드 스타가 아니라서 정말로 안타까워. 그렇지 않아? 올 마이티……”

“너……도대체 정체가 뭐야?”

“글세? 앞서도 말했지만 순순하게 가르쳐주고 싶은 생각은 없어. 하지만……만일의 하나라도 네가 나를 만족시킬 수 있을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내가 누구인지도 알아보게 될 거야.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보라고……올 마이티! 크크크큭, 크하하하하하하!!”

심연의 악마에게 도발당한 류안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자신의 실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분량이 적어서 죄송합니다.

출장 때문에 밖에서 정신없이 쓰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가끔씩 코멘트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글쓴이는 눈치가 지나치게 빠른 사람들을 싫어해요...크흠. 노, 농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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