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7 ----------------------------------------------
지상편
[갑자기 이게 무슨 짓입니까?]
헌병들에게 둘러싸인 스피아가 그렇게 외쳤다.
[잠시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협조라고요? 당신들은 총구를 겨누면서 협조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모양이죠!?]
[물러서십시오!]
철컥!
‘들킨 건가?’
일촉즉발의 험악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찬탈자의 손잡이를 붙잡는 류안.
여차하면 언제라도 뛰쳐나갈 수 있게 마음의 준비를 갖췄지만 다음 순간에 헌병들 사이에서 나타난 인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진정해, 머저리들! 주인님이 계시는 장소에서 도대체 무슨 행패를 부리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길로틴 준장님!]
‘길로틴?!’
“길로틴?!”
터무니없는 이름이 튀어나오자 여기저기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지만 헌병대원들에게 경례를 받는 인물은 길로틴이 아니라 한 명의 여성이었다.
[실례했어요, 스피아 씨. 그런데 주인님은 어디에 계시는 거죠?]
[그, 그게 저기……]
그녀의 정체를 알아보고 스피아가 당황하는 가운데 그녀의 정체를 알아챈 류안이 밖으로 걸어나오면서 외쳤다.
“유리 브라스!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는 거야?!”
***
그 시각.
압바우 위성의 크로멧 평야.
“소집된 대원들의 숫자가 조금 적은 것 같군.”
“정말로 죄송합니다. 브라운 중대와 찰리 중대가 소집에 응하지를 않아서……”
길로틴의 질문을 받은 제시카는 송구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녀석들은 어디에 있지?”
“민간인 대기실로 이동한 것 같습니다.”
“……두 중대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임은 나중에 물어보도록 하지. 대원들에게 전달해라! 율리안 중장을 제외하고 2기지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한 마리도 남김없이 소각한다, 예외는 없다! 모조리 쓸어버려!!”
“……”
[네, 알겠습니다!]
무자비한 명령에 복명복창한 엔포서들의 군대가 일제히 진군을 시작했다.
긴급소집으로 동원한 병력은 약 3만.
오리하르콘으로 덮인 이 위성은 팔란티오 행성에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중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병사들은 모두 우주복 같은 역할을 해주는 특수한 배틀슈츠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에 맞서는 로젠 바이스의 병력은 불과 3천.
쿠구구궁, 쿠쿵! 쾅!
2기지의 방어포탑을 작동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들이 고용한 펜져스 지휘관이 이끄는 제국군 용병대를 영격에 내보냈지만 병력의 양이나 질, 모든 면에서 엔포서들의 적수는 아니었다.
쿵! 쿵! 쿵! 쿵! 쿵!
[레오파드 부대 전진! 중무장 보병들은 마장기를 엄폐물로 삼아서 후위를 따른다!]
[적 포탑의 공격으로 인한 마나실드 손상률은 5%! 적이 집중 포화를 쏟아 부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지점까지 500, 490, 480……]
[주시자들은 뭘 하고 있나? 허공으로 삽질하지 말고 전술지원으로 적의 포대부터 날려버리라고 그래!!]
[타피르(tapir맥)편대에서 리트리버의 분석이 도착했습니다! 적 기지의 상공으로 기묘한 중력장이 발생하고 있어서 타피르들의 리니어 캐논과, 주시자의 전술지원이 무용지물이라고 합니다!!]
“중력장이라고?”
순식간에 박살낼 수 있다고 믿었던 적들이 상공에 특이한 방어장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길로틴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자 곧바로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서 상황을 정리해주는 제시카.
“적들이 사용하는 중력장은 압바우 위성의 오리하르콘을 매개체로 증폭시킨 마법결계의 일종으로 보입니다.”
“호오, 그렇군. 그래서 해결책은 뭐지?”
“네!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마법진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오벨리스크를 파괴시키면 자연스럽게 해제된다고 합니다. 그 외에는 반중력 폭탄으로 중화시키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하하하하! 그거 마침 잘 되었군. 그렇지 않은가, 부관!”
“네, 그렇습니다.”
제시카의 보고를 들은 길로틴은 박장대소를 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녀석들이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오만방자하게 일을 벌였을까 고민했는데……기껏해야 구시대의 낡아빠진 술법에 의존하는 것이었나? 그렇다면 그 착각과 함께 2기지의 잔해 속으로 모조리 묻어주도록 하마! 단델리온 미사일을 준비시켜라!!”
[네, 알겠습니다! 알파에서 라파엘로 부대로 명령 하달! 라파엘로 부대는 지금 즉시 단델리온 미사일을 준비하라, 타격 좌표는……]
통신장교의 목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의자에 앉아서 느긋하게 전황을 지켜보고 있던 길로틴은 부동자세로 서있는 제시카를 바라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보면 볼수록 감탄이 터져 나오는 처자란 말이지. 블랙해머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최근에는 지나치게 감정적이다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어……반면에 그녀는 마치, 그래.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모든 면에서 완벽해! 가능하면 이런 처자가 나이브 녀석을 보좌해주면 좋겠는데. 그 녀석은 도박에 빠져서 정신을 팔고 있으니……’
대다수의 사람들은 장기말로 취급해버리는 그지만 그녀의 경우에는 며느리 감으로 보이기 때문인지 어딘가 물렁하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다.
덕분에 제시카가 류안과 비밀리에 연락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오 있던 상황.
“무슨 용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시선을 느낀 그녀가 고개를 돌아보면서 질문하자 길로틴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답했다.
‘혹시……류안과의 일을 들킨 건 아니겠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제시카는 도둑이 제 발을 저리는 것처럼 불안함을 느끼면서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켜버리고 말았다.
사실, 그녀의 입장에서 길로틴의 부관만큼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자리도 없었다.
염원하는 승진도 이루어지고 실력도 평가를 받아서 출세를 보장받은 것 같은 탄탄대로.
하지만 그와 적대하고 있는 류안과의 관계는 털면 털수록 먼지가 피어나올 수밖에 없는 친밀한 관계였기 때문에, 자신의 과거를 조사당할 당시에는 당장에라도 영창피아노의 연주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혀버렸다.
길로틴도 그 당시에는 상당히 의심하는 눈초리였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순식간에 의심을 풀어버린 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에서는 그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나날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시카는 용기를 내서 계속해서 자신의 연인이자 생명의 은인인 류안을 위해서 엔포서의 기밀 정보들을 빼돌려주고 있었다.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브라운 중대와 찰리 중대가 도착한 장소를 바라보면서 염원하는 그녀.
‘며느리로 삼고 싶군. 엉덩이도 순산형이야……도대체 단점이 뭐지?’
‘공화국의 희망인 율리안 중장님과 류안 대장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내겠어. 최악의 경우에는 길로틴과 동귀어진을 하는 한이 있더라고……’
두 사람의 동상이몽이 점점 더 깊어져만 가는 가운데 단델리온 미사일이 분리되면서 뿜어져 나오는 반중력 폭탄들이 2기지의 상공으로 분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
“후방부대로 잠입한 것 까지는 좋은데……전황이 지나치게 일방적이군. 이래서야 길로틴의 사령부로 접근하려고 그래도 방법이 없잖아?”
[아아아아! 정말로 죄송해요, 주인님! 부디 이 쓸모없는 암캐를 매도해주세요!! 저 녀석들이 배틀 슈츠로 무장하고만 있지 않았어도……]
“아니야. 덕분에 살았어! 고마워 유리, 너는 정말로 최고의 부하야! 이런 재간둥이 같으니라고……”
[하으으으윽!! M녀에게 매도가 아니라 칭찬세례를 퍼부어 대다니 이런 뼛속까지 잔인하고 사랑스러우신 악마 같으신 분! 하악, 하악! 조금 더……조금 더 저를 상대해주세요! LOVE ME!!]
뚝!
부담스럽기 이를 데 없는 구애(?)행위로 깔끔하게 통신을 종료해버린 류안은 두 세력의 전투를 바라보면서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아우라의 배신이나 제국의 공격.
그 이외에 다양한 변수로부터 클라크를 보호하기 위해서 지상에 남겨놓은 유리 브라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명령을 가볍게 무시해버리고 더 이상의 방치 플레이는 네이버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를 대면서 특공대와는 별도의 루트로 압바우에 잠입해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겸사겸사(?)헌병대의 2개 중대를 암시와 최면으로 세뇌시켜버린 그녀.
덕분에 중대 격납고에서 재규어를 비롯한 마장기와 배틀슈츠, 그리고 400명에 이르는 엔포서 대원들을 공짜로 전력으로 추가한 류안은 발할라 커뮤니티의 전사들과 연계해서 길로틴의 후방부대로 잠입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길로틴의 사령부 주변의 경계가 지나치게 철저합니다. 발할라 커뮤니티에서는 뭔가 좋은 해결책이 없으십니까?”
[……집행자 함대의 초장거리 사격을 이용하면 길로틴의 기동사령부나 주시자를 파괴하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해요. 하지만……사령부에는 협력자가 있다고 말씀하셨죠?]
“우리 편을 보호하는 것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 아닙니까? 그나저나……대량학살병기 밖에는 현재의 상황에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니……발할라 커뮤니티의 대원들도 의외로 쓸모가 없네요. 기대했는데……”
[뭐, 뭐라고요? 어떻게 그런 심한 말씀을……크흠! 애초에 잠입 작전을 예상하고 맞춰서 투입한 전력이라고요! 저희들이 작정하고 나서기만 하면 그 정도는……]
“뉘에, 뉘에. 원래부터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는 법이죠. 이쪽에서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후속처리라도 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상!”
[아오! 뭐 저런 얄미운……]
뚝!
아네타가 분해서 날뛰도록 골려주고 일방적으로 통신을 종료해버린 류안은 키득거리면서 장난스러운 웃음을 터트리다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돌변해버렸다.
“좋아……여기까지 진행했으면 남은 건 운이 따라주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갈리는 일이지. 길로틴을 죽이고 드림이터를 확보하고 율리안을 구한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늘의 도움을 빌리는 수밖에 없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곧바로 미니게임을 발동시키는 그.
“나와라 브륜힐트!! 이 빌어먹을 세계의 모든 행운을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해주마! 미니게임 스타트!!”
쿵!
평소보다 텐션이 올라간 류안이 호기롭게 외치면서 고유능력을 발동시켰지만 그 순간부터 벌어지는 일들은 그가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HERE COMES A NEW CHALLENGER!!]
“뭐, 뭐야?”
쿠쿠쿠쿠쿠쿠쿵!
평소와는 다르게 세상이 단순하게 정지해버리는 것을 넘어서며 얼어붙는가 싶더니 갑자기 콜로세움처럼 이상한 장소의 경기석으로 순간 이동해버린 류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브륜힐트!!”
허공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외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다음 순간에 반대편에 위치한 경기석에서 나타난 사람이 자신을 발견하더니 엄청난 목소리로 광소를 터트려 나가기 시작했다.
“세상에 맙소사 이게 누구야……올 마이티잖아? 하하하하하!!!!! 드디어, 드디어 내 소원이 이루어졌어! 이루어졌다고……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 작품 후기 ============================
걱정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하루 누워서 쉬었더니 많이 좋아졌네요.
사실 주인공이 떡타지 주인공답지 않게 방치하고 있는 여자들이 제법 있는 편이죠.
어서 회수해야 할 텐데...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