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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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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가 보낸 편지는 아우라의 말처럼 러브레터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차라리 복잡한 기계의 사용설명서라고 하면 믿을 수 있는 수준이랄까.
잠재된 힘이 깨어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억(아르카리우스와 청사조를 섬기는 무녀)들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는 그녀의 지식보유량은 뻥 좀 치면 아카식 레코드, 조금 하향시키면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 정도의 규모는 될 것이다.
덕분에 설명충에서 초 설명충으로 진화해버린 그녀.
그녀가 쓴 장문의 편지를 요점만 정리해서 채팅문으로 변환시키면 다음과 같았다.
1.게슈탈트 붕괴의 올바른 이해.
류안: OMG! 탈리아에게 걸려있는 저주가 도대체 뭐야?! 진행률이 100%가 되어버리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루치아몽: 진정해 NOOB.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는 장담할 수 없어.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이외에 경우라면……
류안: 경우라면?
루치아몽: 안전장치 없이 나락의 도약을 하게 될 거야.
류안: !! 그 말은 설마 탈리아가 펜져스가 되어버린다는 소리야?!
루치아몽: 그나마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봐야지. 너도 소문은 들어봤을 테니 어느 정도는 알고 있겠지만……나락의 도약은 일반인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견뎌낼 수 있는 만만한 의식이 아니니까.
십중팔구 죽거나 나쁘다는 수준이 아니다.
수학적으로 따지면 대략 1/무량대수 정도의 성공확률.
마치 그림의 떡처럼 아무리 가챠를 돌려봐도 얻을 수 없도록 조작되어있는 캐릭터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탈리아가 펜져스가 되어버린다는 사실만으로도 끔찍했지만 그나마 그렇게 되는 게 나은 결말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류안은 콘트라베이스의 혼백을 꺼내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류안: 애초에 나락의 도약이라는 게 뭐지? 심연의 악마들은 도대체 뭐하는 녀석들이야!
루치아몽: 아버지의 지식을 살펴봐도 심연의 악마들이 정확히 어디서, 무슨 목적으로 나타났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락의 도락에 대해서 설명하자면……좋은 것만 빼면 뭐든지 들어있는 랜덤 박스라고 표현할 수 있지. 물론, 거기에서 튀어나오는 끔찍한 재앙덩어리를 보고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한 마디로 게슈탈트 붕괴가 일어나는 것은 무슨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막아야 한다는 소리였다.
2.치료법
류안: 휴우……그래. 그러면 치료법은 뭐야?
루치아몽: 다양한 방법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부작용이 적고 좋은 방법은 그녀가 프로모션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대가 영혼의 괴리를 없애버렸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말이지.
류안: 프로모션이라……환골탈태로는 불가능해?
루치아몽: 환골탈태로도 진행률을 낮출 수는 있지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순식간에 다시 재발해버릴 테니 크게 의미가 없다고 봐야겠지.
류안: 젠장!
환골탈태도 충분히 어려운 과제였지만 프로모션은 급이 다른 노가다의 경지다.
천재조차 평생을 노력해도 도달하기 어렵다는 경지.
그녀에게 가장 뛰어난 능력은 S급의 사격능력으로 그것도 역시 평범한 사람들은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비범한 능력에는 틀림없지만, SS급과는 하늘만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
하물며 게슈탈트 붕괴의 진행속도를 생각하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오직 하나.
불가능이었다.
류안: 다른 방법은 뭐지?
루치아몽: 다른 방법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타인의 심상세계에 개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영능력을 지닌 존재들이라면 해결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로젠 바이스라던가, 천족이라거나……
류안: 가능성이 있는 존재들이 아니라 확실하게 사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를 원해.
강력한 영능력을 지닌 존재라는 말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발키리들이지만 스쿨드는 다른 성계에 있었고, 브륜힐트의 사정도 여의치는 않아서 가능하면 다른 방법 동원하고 싶었다.
그러자 그런 생각을 읽은 것처럼 정확하게 원하는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그녀.
루치아몽: 완벽한 해결사를 원한다면 우연스럽게도 근처에 딱 한 명 모든 조건에 들어맞는 존재가 있지.
류안: 그게 누구야?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이름을 확인한 류안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아우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갑작스럽게 미안하지만……며칠 동안 자리를 비워야 되겠어. 그래서 부탁이 하나 있는데……”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한숨을 내쉬는 그녀.
“휴우……취직하자마자 이렇게 부려먹는 직장은 조금 곤란한데.”
“성과금은 확실하게 지급해주지.”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
잠시 후.
FEMDOM여전사들에게 키스마크로 범벅이 되어 넝마로 끌려온 클라크는 류안이 내미는 가면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금가면이 좋아, 은가면이 좋아?”
“그것보다 슬슬 전역시켜주시면 안 될까요?”
“우와 소름! 너 지금 병장 나부랭이가 전역날짜를 세고 있었던 거야? 어디 한 번 독립부대장의 합법적인 직권남용으로 이등병부터 다시 시작해 볼래?”
“아오 씨……”
투덜거리면서 욕지거리를 뱉으면서도 대타로 뛰는 동안 류안이 가진 권력의 무서움을 실감할 수 있었던 클라크는 얌전하게 가면을 착용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실재로 처리해야 되는 일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면 부대의 모든 대소사는 아우라가 결정을 내릴 거야. 너는 웬만하면 나서지 말고 아우라가 지시하는 대로 행동하기만 하면 돼.”
“……아무리 그래도 고용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은 사람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주시는 거 아닙니까?”
잭과 스피아에 대한 일을 떠올렸는지 클라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지만 류안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가 배신한다면 내 안목도 거기까지에 불과했다는 거야. 그리고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수 있는 시기에, 그럴만한 역량을 가진 인물을 방치한다는 건 내 폴리시가 허락하지 않아. 투자를 한 만큼 확실하게 뽑아먹어야지!”
“적당히 만족하셔도 괜찮을 것 같은데……”
여전히 쓸데없는 한 마디가 많은 클라크였지만 류안은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주고 탈리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인재를 소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하들이 달려올 동안에 발착장으로 걸어간 그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인생이라는 게 참 재밌어……어제의 적이 오늘은 동료가 되고. 친구는 적이 되기도 하잖아? 설마 이런 시기에, 이런 방법으로 당신과 결판을 내야만 하는 상황이 올 줄은 몰랐어. 길로틴……”
루치아의 편지에 마지막 부분에 적혀있는 해결사의 이름은 바로[드림 이터]였다.
***
“6사단과 트라이엄프 부대가 15구역을 제압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으음……아무래도 단순하게 운이 좋은 애송이는 아니었던 모양이군.”
창가로 비치는 우주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마크넬은 부관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번에 세운 전공을 근거로 율리안 중장이 다시 한 번 그를 대령으로 진급시키는 추천서를 제출했는데 어떻게 처리할까요?”
“21세에 대령이라니……아무리 전쟁영웅이라지만 편애가 지나치군. 이번에는 그의 공적보다 자치령군의 활약이 컸다고 하지 않은가? 게다가 6사단의 그, 누구였지……맞아! 미헌 대령이라는 사람의 공로도 컸다고 들었는데 그의 진급심사도 의회에서 부결된 것으로 알고 있네. 그런 와중에 그를 진급시켜버리면 아무래도 형평성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나?”
“그러면 율리안 중장의 제안은 기각하도록 하겠습니다.”
“적당히 처리하게.”
마크넬 원수의 대답에 들고 있는 노트로 무엇인가를 기록해가는 부관.
“그러면 저는 이만……”
“잠시만 기다리게.”
“무슨 일이십니까?”
“이번 진급심사 명단에 코코넬 중령이라는 남자의 이름은 올라오지 않았나?”
“코코넬 중령……이라면 어디에 소속되어있는 장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3군단이네. 3군단 4사단의 군수부대에 소속되어 있다고 들었지.”
그의 말에 소형단말기를 통해서 인사기록을 검색한 부관은 그 이름을 발견하고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발견했습니다. 확실히 제압구역의 후방보급기지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나오는군요.”
“그래, 그 친구의 이름은 진급심사 명단에 올라오지 않았는가?”
“……대단히 송구스럽지만 현재 코코넬 중령은 진급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게다가……그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현재 군수물자를 빼돌린 횡령혐의로 헌병대에 구속되어 조사중입니다.”
쿵!
“그게 도대체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대, 대단히 실례스럽지만 코코넬 중령의 혐의를 살펴보니 증거가 굉장히 확실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중재를 원하신다면 저에게 중령과의 관계를 말씀해주시는 편이……”
마크넬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본 부관은 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고는 그렇게 입을 열었다.
“크, 크흠! 뭐, 그렇게 대단한 관계는 아니지만……그 친구의 부친에게는 여러 가지로 신세를 졌다네. 말하자면 자식 같은 사이라고 할 수가 있지! 음, 그렇고말고! 친구의 아들이 누명을 썼다는 데 걱정을 하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가 아닌가?!”
“네, 네! 물론입니다……”
부관의 비굴한 대답에 만족한 그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좋아. 알아들었으면 곧바로 길로틴 준장에게 통신을 연결하도록 하게. 약간 융통성이 모자란 친구기는 하지만……적당히 타이르면 알아서 처리하겠지. 아, 그리고 진급심사 명단으로 이름을 올리는 것도 잊어버리지 말고!”
‘……도대체 얼마를 처먹어서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는 거야? 젠장, 더러워서 나도 어디에다가 청탁이라도 넣어봐야지 원……’
부관은 그렇게 말하면서 통신단말기를 들고 헌병대로 연락을 취하려고 그랬지만 중간에 멈춰버리고 말았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멈출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바로 그 길로틴이 엔포서를 이끌고 노크도 없이 들이닥쳤기 때문이었다.
쿵!
“죄송하지만 코코넬 중령에 관한 문제라면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그렇게 군대를 좀먹는 기생충 같은 녀석들은 보이는 대로 터트려 죽이는 것이 참을 수 없도록 즐겁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건 당신 같은 쓰레기도 마찬가지야. 마크넬 원수……”
“상관의 집무실을 허락도 없이 쳐들어와서 무슨 소리를 지껄이나 했더니……제정신이 아니로군. 경비병! 경비병들은 뭘 하고 있나?! 지금 당장 들어와서 이 정신 나간 작자를 구금해라!!”
분노한 그가 호통을 치면서 명령을 내렸지만 당장에 달려왔어야 정상인 경비병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다.
“후후후후. 아무리 불러도 소용없습니다. 원수……이제 당신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은 옆에서 얼어붙어있는 얼간이를 제외하면 한 사람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왜냐면 너에게는 이제부터 새로운 명령을 내려주는 주인님이 생길 테니까!!”
“그게 도대체 무슨 정신 나간……크으으윽!!”
다음 순간에 검은 연기가 마크넬을 덮쳐버리는가 싶더니 푸른색의 눈동자가 조금씩 붉은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히이이이익!”
그 섬뜩한 광경에 공포에 질려서 주저앉아버리는 부관을 무시하면서 그가 자신에게 복종하기를 기다리는 길로틴.
잠시 후.
몽롱한 표정으로 변해버린 마크넬이 그의 앞으로 무릎을 꿇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주인님.”
============================ 작품 후기 ============================
에이, 다들 사람에 대한 믿음이 많이 부족하시군요.
저는 가족들이 제가 여기에서 글을 쓰는 걸 모르고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제발 그래야 할 텐데.
농담이고 제가 글을 쓰는 걸 가족들이 모른다는 이야기는
제가 여기에서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걸 모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19금 노블레스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는 않으니까요. 크흠.
별 생각없이 쓴 후기인데 설명이 부족해서 뭔가 오해하신 모양이네요. ㄷㄷ
제가 동물귀 미소녀 모에라는 사실을 부모님이 알아차리면...
um...
지금까지 트라이엄프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앞으로도 사랑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