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247화 (247/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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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

류안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복면을 썼다.

“안녕하세요, 류안 대장님.”

그리고 1초 만에 들켰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별로 어렵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어깨를 으쓱하는 아우라의 모습에 잠시 동안 고민하던 그는 쓰고 있는 복면을 벗어버렸다.

“……”

“왜 그러십니까? 그렇게 멍한 표정으로……”

“………………어, 음. 네? 아! 죄, 죄송해요. 그런 소문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크흠.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참(charm)의 능력을 전력으로 발휘했는데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에 이성을 되찾아버리는 그녀의 평점심에 류안은 저절로 감탄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우라]

직업: 취업준비생

나이: 27세

신체능력

체력: 80/80 마나: 350/350 신성력 50/50

근력: 24 민첩: 30 지력: 99 매력: 89

학력평가: S급

필기숙련도: A급

가장 숙련된 도구: 소형 단말기

비서능력: S급(회계의 달인, 훌륭한 러닝메이트)

특수능력: 종합 컨설턴트, 치어리더, 서포터, 리스트럭팅, 60개 언어와 128개 자격증 보유.

컵 사이즈: C컵(톱과 언더의 차이 16.5cm)

밑가슴 둘레: 70cm

유륜 크기: 약간 작음

특징: 없음

성향: 질서, 합리, 공정, 보수, 안정, 가정

현재의 감정: 호기심, 취직에 대한 갈망

신성력: 50/ 50

영혼불의 세기: 활발함

몰두하고 있는 테마: 직장, 결혼, 집.

당신에 대한 호감도: 50

‘신체능력은 일반인 수준인데 엄청난 능력자로군. 게다가 몰두하고 있는 테마들이나 보유하고 있는 능력들이 마치……’

[어떤 반도의 흔한 취준생]이라는 게시글을 저절로 떠올리게 만드는 능력치를 확인한 류안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고는 눈가를 어루만졌다.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거죠?”

“합격입니다.”

“……네?”

[호감도가 일시적으로 대폭 상승했습니다.]

합격이라는 말 한 마디에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시스템 알림을 확인한 류안은 기세를 타면서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 말들을 줄줄이 읊어나가기 시작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신을 고용하겠습니다. 연봉은 400골드(한화 4억)……아니, 500골드로 시작해서 1년치 연봉은 선불로 지급하고요. 성과에 따라서 보너스를 지급하겠습니다. 경력을 인정해서 수습기간 없이 정규직으로 대우해드리고요, 4대 보험과 사내숙소 및 삼시세끼 무료 제공 및 임금조정과 노사협상의 자유를 보장해드립니다. 그리고 자소서에 기술한 내용들 이외에 본사에 어필하고 싶은 경력이나 특기분야가 있으면 아무거나 상관없으니 마음대로 말해주세요.”

[호감도가 일시적으로 MAX를 기록했습니다!]

[아우라가 당신의 등뒤에서 비쳐오는 후광을 목격합니다!]

[새로운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구원자.”]

[새로운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새로운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넌 감동이었어.”]

[새로운……]

계속해서 들려오는 시스템 알림음과 감정변화의 상관관계를 증명하듯이 아우라는 처음의 의연하고 당당했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태연함을 가정하려는 듯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바닥으로 안경을 딱아내려고 시도하는 그녀.

“가, 갑작스럽게 도, 도대체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손톱만큼도 이해하지 못하겠네요. 애, 애초에 포로를 심문하는 장소에서 제대로 된 절차도 없이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게, 게다가 저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여자가 아니라고요. 겨, 겨우 그 정도의 조건으로 저를 회유하려고 하시다니 코웃음만 나오네요……흐, 흥!”

“그렇군요.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안타깝지만 본사와 귀하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으로……”

“누가 거절한다고 그랬어요?! 사람이 왜 그렇게 성급하게……아차!”

자신도 모르게 펄쩍 뛰어버린 아우라는 류안의 의미심장한 미소를 발견하고 뒤늦게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후후후후. 아무리 이성적이고 똑똑한 사람이라도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걸 제시받으면 허점을 드러낸다는 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능력이잖아, 루치아!’

방황하는 갈대처럼 파악하기 힘들다는 what women want를 순식간에 해결해주는 용안의 활용법에 류안은 입꼬리가 승천하는 것을 억누르지 못했다.

“앞에도 말씀드렸지만 근로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협상은 계약을 맺은 이후로도 차근차근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이쪽으로 진영을 갈아타는 게 어떻습니까? 아우라 양.”

“……그럴 생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는데……이런 식으로 기습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아직도 조금 전에 일어난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가 않지만……좋아요! 당신을 위해서 일하도록 할게요!”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을 보조해 줄 비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완벽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아우라를 영입하는데 성공한 류안은 때 아닌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때의 그는 모르고 있었다.

능력만 보고 영입해버린 그녀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를…….

팔란티오 행성에서만 수십 번이 넘게 누군가의 보좌관, 또는 비서로 활약하다가 해고당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아우라의 별명은 [미스 둠DOOM]이었다.

***

잠시 후.

독방에서 빠져나온 아우라는 어디에서 마련했는지 정장으로 갈아입고 모습을 드러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대장님.”

“후후후후.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비서님.”

하반신이 저절로 흐뭇해지는 아름다운 여비서를 바라보며 음흉한 웃음을 터트리는 류안.

“……여전히 손이 빠르구나 서방님이여. 독방으로 들어가고 30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벌써부터 의기투합한 모습이라니.”

“흥! 보나마나 또 귀축 같은 방법으로 꼬드겼겠죠.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이라고는 게임과 하반신의 욕구를 해결하는 것 밖에는 없는 사람이 도대체 무슨……”

승승장구하는 그의 모습에 심기가 뒤틀렸는지 루치아가 지켜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노골적인 적대심을 드러내는 엑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응징한 사람은 놀랍게도 아우라였다.

“죄송하지만 트람이엄프 부대에서 당신의 지위가 어떻게 되시죠?”

“……갑자기 뭘 물어보는 거야?”

“당신이 대답할 수 없는 사안이라면 대장님에게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녀의 위치는 어떻게 되나요?”

갑작스럽게 화살이 돌아오자 류안도 잠시 말문이 막혀버렸다.

“으음……그게, 그러니까……명확한 지위가 있다고 보기에는 그렇고 우리 편이라고 보기에도 그렇고……일시적인 휴전관계에 있는 적이라고나 할까? 편리하게 이용해먹고 있는 포로라고 해야 되나.”

[흥, 언젠가는 반드시 죽여 버리고야 말겠어.]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갑작스러운 지방방송이 울려퍼졌지만 그녀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 마디로 노예라는 말씀이군요?”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그렇지.”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대답한 아우라가 갑작스럽게 루치아를 향해서 다가가자 그녀는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나에게는 무슨 용무지?”

“……드라코니안은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하다고 들었는데 제 착각인가요?”

“호오……별다르게 능력도 없는 인간이 단숨에 내 정체를 알아보다니 대단한 눈썰미로군. 그래, 그대의 말대로 우리들에게 자존심이라는 단어를 제외시키면 남아있는 게 그렇게 많지는 않지.”

“……그러면 당신의 배우자가 저렇게 지독한 모욕을 당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겉모습만 보면 인간이나 다름없는 루치아의 정체가 드라코니안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웠는데,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인간관계까지 파악해버리자 그녀는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류안을 바라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서방님이 말해준 것인가?]

[아니, 그런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는데……]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핫 리딩과 콜드 리딩이니까 그렇게까지 놀라실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제 질문에는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면 좋겠군요. 부탁을 들어주실 건가요?”

“으음……좋아, 말해주도록 하지. 원래대로라면 서방님에 대한 모욕은 나에 대한 모욕이니 찢어 죽여도 시원치가 않은 사태라고 볼 수 있지만……얼마 전에 서방님으로부터 거리를 두자는 제안을 받아서 말이다. 뭐, 좋게 표현하면 서방님의 상황을 이해해주기로 한 거고, 나쁘게 표현하면 시험해보기로 결심한 참이다. 서방님의 능력이 시원치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고 죽을 때까지 독수공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할까?”

“……!! 그,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후후후후. 새장 속에서의 생활은 도무지 적응하기가 힘들어서 말이다……부디, 열심히 발버둥쳐서 나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다오. 서방님♡”

“♡를 붙여도 하나도 안 귀여워! 이런 루치아패스 같으니라고……”

겁먹은 류안은 오들오들 떨면서 그렇게 외쳤지만 아우라는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차분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과연, 루치아님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대장님은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는 분이신만큼 단순하게 개인의 역량으로만 평가를 받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무릇, 지도자라고 하면 개인의 능력보다는 부하들의 역량이 합산되어 평가를 받는 것이 정당하겠죠. 그러니까 루치아님께 말씀드리고 싶은 말은……미력하지만 저의 능력과 행동거지를 합산해서 대장님의 평가를 수정하는 건 어떠신가요?”

“아우라……양?”

갑작스러운 발언에 류안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루치아는 웃음기가 사라져버린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흐음, 그 말은 네 역량을 플러스하면 서방님이 나를 만족시켜 줄 수 있다는 소리인가?”

“대장님의 권위를 지켜주신다면 얼마든지 만족시켜드리겠습니다.”

“……큭, 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 좋다, 좋아……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억. 그리고 120년이라는 세월 동안에 수많은 존재들과 만남을 가졌지만 힘없는 인간이 이렇게까지 흥미를 끄는 건 처음으로 목격하는군! 내가 전투가 아닌 다른 방면으로 사냥감으로 삼고 싶은 인물은 그대가 처음이다! 아우라여!!”

“과분한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순식간에 루치아의 인정을 받아낸 아우라는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를 표시하고는 당당하게 엑스의 눈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뭐, 뭐야?”

“하찮은 노예주제에 자신의 입장을 파악하세요. 이번에는 특별히 자신의 입장을 자각하라는 뜻으로 눈감아 드리겠지만 두 번째는 없습니다. 대장님이 용서해도 제가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

그렇게 호통을 치는 아우라의 등 뒤에는 조금 전까지의 무관심한 태도와는 180도 달라진 루치아가 눈동자를 노란색으로 빛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한 마디 항변도 하지 못하고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크, 크흠. 잘 해주기는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상황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만드는 건……”

엑스를 정말로 죽여 버릴지도 모르는 아우라의 태도를 확인한 류안이 소심한 목소리로 참견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따끔하기 이를 데 없는 질타였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대장님!! 대장님은 현재 팔란티오 행성에서 3번째로 거대한 세력을 이끌고 있는 수장입니다! 그런 분께서 부하도 아닌 포로에게 무시를 당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아무래도 안 되겠군요. 이번 기회에 제 모든 능력을 발휘해서라도 당신을 진정한 지도자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하루 24시간 곁에서 따라다닐 테니까 각오하세요!!”

“오오오오! 잘한다, 아우라! 나 또한 전력으로 협조할 테니 우리들이 힘을 합쳐서 류안을 진정한 남자 중에 남자로 다시 만들자구나! 하하하하하!!”

“……네?!”

비서와 사무실에서 단 둘이.avi를 찍을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던 류안은 자신이 순진한 양이 아니라 사나운 호랑이를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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