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243화 (243/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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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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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한 밤, 어두운 새벽.

25구역의 고지대 외곽 검문소에서 대기하고 있던 헌병들은 감시카메라에 예고도 없이 나타난 화물트럭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야 저건, 민간차량으로 보이는데……길이라도 잃어버렸나?”

“레지스탕스에서 보낸 지원물자일지도 모르지 말입니다. 위에다가 한 번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됐어. 상황전파를 똑바로 안한 놈들이 잘못이지. 전시상황에서는 선조치 후보고 몰라? 일단은 우리들의 선에서 적절하게 처리하자고, 적절하게……”

적절하게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중사는 건수를 잡았다는 듯이 탐욕스럽게 입맛을 다셔보였기 때문에, 곁에서 듣고 있던 병사는 묵묵하게 총기를 챙기면서도 속으로는 욕지거리를 퍼부어 대었다.

‘빌어먹을 새끼. 적당히 좀 하지. 또 지랄이네.’

최근 들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는 원정대의 민간약탈 문제가 붉어지면서, 상부에서 공문이 내려온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검문소의 병사들을 향해서 으름장을 놓았다.

“애들아! 어떤 식으로 하는지는 잘 알지? 니들은 분위기만 잡아주면 되는 거야. 분위기만……솔직하게 말해서 우리 같은 밑바닥 인생들이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한 몫을 잡아보겠냐?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라! 알았지?”

“네~알겠습니다!”

각자의 위치로 이동한 헌병들이 약간은 늘어지는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화물차량의 크기를 떠올린 중사는 간만에 챙길 부수입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잠시 후.

쿠웅!

철컥, 철컥, 철컥!

화물차량이 검문소에 도착하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헤드라이트의 불빛을 직사하며 총기를 조준해 들었다.

[시동 꺼! 라이트 켜!]

[손바닥이 잘 보이도록 양손을 들어라! 응하지 않을 경우에는 즉시 발포하겠다!!]

컹컹! 컹컹!

확성기로 소리를 높이면서 군견까지 대동하고 나서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어딘가 껄렁해 보이는 화물트럭의 운전사는 단순하게 시동을 껐을 뿐, 다른 지시를 무시하며 어디에서 개가 짖느냐는 표정으로 풍선껌을 씹어대었다.

태연스럽기는 조수석에 있는 남자도 마찬가지.

“저 새끼들은 뭐야?”

[발포할까요?]

“아니야, 됐어! 보아하니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인데……헌병대의 미친개한테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가르쳐 주지! 니들은 방아쇠만 잘 붙잡고 있어라, 혹시라도 수상한 짓을 해버리면 곧바로 사살해 버려!!”

[알겠습니다.]

중사는 부하들에게 그렇게 지시를 내리고는 짐짓 험악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운전석의 창문을 거칠게 두드리며 윽박질렀다.

쾅쾅쾅쾅!

“경고 못 들었냐. 새끼들아! 지금 당장 라이트 켜고 밖으로 튀어 나와! 정말로 뒤지고 싶어?!”

지이이이잉.

하지만 그런 협박에도 불구하고 트럭운전사는 운전석의 창문을 내렸을 뿐이다.

“니가 이 검문소 책임자냐?”

“그래! 바로 내가 검문소의 책임자인 미하일로프님이다! 네놈들은 뭐냐, 계속해서 검문소의 지시를 무시하다니 정말로 죽고 싶은 거냐?!”

그런 협박에도 불구하고 트럭에 앉아있는 남자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치더니 껄껄거리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하하하! 들었냐, 제스. 아무래도 이번 내기에서 승리한 사람은 나인 것 같군! 공화국의 군인들은 입만 살아있는 허풍쟁이들이라는 소문이 사실이었어!”

“제길……설마, 이렇게까지 한심한 놈들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뇌신이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보니 군대 전체가 현실감각을 잃어버린 건가?”

“무, 무슨 소리들을 지껄이는 거냐? 네놈들……”

아직도 상황파악을 못한 미하일로프 중사가 목소리를 더듬으며 항변했지만 다음 순간에 차량의 내부에서 기묘한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성문聲紋 카피를 완료했습니다.]

“전원 사……”

“늦었어, 멍청아!”

푸슉!

라드라는 남자는 그렇게 외치는 것과 동시에 품속에서 소음기를 장착한 권총을 꺼내들어 그의 미간을 겨냥하고 발포해 버렸다.

털썩!

단말마의 비명조차 남겨놓지 못하고 통나무처럼 쓰러져버리는 미하일로프 중사.

[저, 전원 사격!!]

철컥, 철컥, 철컥!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란 병사들이 그제야 부랴부랴 장전을 시작했지만, 어둠 속에 숨어서 그들을 겨냥하고 있던 사람들의 대처가 한 발 빨랐다.

툭! 투투투투투툭!

후라이팬에 콩을 볶아대는 것 같은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면서 검문소의 병사들이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슈우우웅!

[검문소에 남아있는 적들을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처리해라!]

동시에 스텔스 위장을 풀고 모습을 드러낸 해골마크의 병사들이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이면서 검문소를 제압해 나가기 시작했다.

깨갱, 깽!

그러는 와중에 군견들까지 한 마리도 남김없이 살해당하자 운전석에 앉아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라드라는 남자의 인상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쳇, 사람새끼라면 몰라도 개들이 무슨 잘못이람? 그냥 우리 기지로 데려가서 잘 키우면 될 것을……하여간에 이래서 시집을 못 간 노처녀 히스테리가 무서운 법이라니까.”

[지금 뭐라고 지껄였지, 라드?]

“크흠?!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에스메랄다 아가씨!! 그게 그러니까……아! 고, 고향에 두고 온 여자 친구의 별명이 노처녀입니다. 노처녀. 그래서……”

[호오? 귀관에게는 따로 교제를 하는 여성사관이 있다고 들었는데 고향에 두고 온 여자 친구라니 그녀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군. 그나저나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여성에게 ‘노처녀’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건 실례라고 생각되지 않나?]

“물론입니다! 아가씨!!”

[그런 의미에서 자네에게는 특별한 정신교육이 필요해 보이는군. 이번 작전이 끝나면 내 방으로 찾아오도록. 그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개조시켜 줄 테니까……]

“히이이익! 그, 그것만은 제발……”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자세는 그런 게 아닐 텐데?]

“y, yes, ma'am!"

[후후후후, 좋다. 오랜만에 팔딱팔딱한 젊은 남자와 단둘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기대되는……크흠, 이상이다.]

에스메랄다의 마지막 독백을 들어버린 라드는 세상이 끝나버린 것 같은 참담한 표정을 지었지만, 곁에서 통신을 듣고 있던 제스는 우스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가로막고는 끅끅거리면서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크크크큭, 아, 아가씨의 특별 지명이라니……이, 이런 부러운 녀……”

“닥쳐. 그 이상 떠들어대면 친구고 나발이고 죽여 버린다.”

“아니야, 나는 그냥 친구가 진정한 사나이로 태어나는 걸 순수하게 축복해주고 싶……푸흡!!”

“크아아아악! 너 죽고 나 죽자! 이 빌어먹을 새끼야!!”

이후로도 에스메랄다가 이끄는 잠입부대는 25구역의 고지대 검문소들을 질풍처럼 빠르게 공략해 나갔다.

그것은 라인데커가 이끄는 주력병력이 원정대의 포병사단까지 진군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3군단은 첫 번째 검문소가 제압당하고도 무려 5시간이 경과하도록 아무런 이변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활약을 펼칠 수 있던 배경에는 개전 초기에 3군단을 지지하던 25구역의 레지스탕스 문월의 민심이 다시 제국에게로 돌아서버린 것에 있었다.

[저희들이 파악하고 있는 3군단의 초병대응체계는 이것으로 전부입니다. 부디 그 더러운 위정자들을 몰아내고 저희들을 구해주십시오, 에스메랄다 님!]

[님이 아니라 아가씨라고 불러라.]

[네? 하지만 어떻게 봐도 아가씨라고 부르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히익! 아, 알겠습니다. 아가씨!!]

전제주의자들을 몰아냈더니 악마가 찾아왔다.

그런 표현이 어울리는 원정대의 횡포로 민심을 대변하는 레지스탕스 조직들이 그들을 버리고 다시 제국군에 협조하려는 현상은, 비단 25구역만이 아니라 팔란티오 행성의 전체에서 일어나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라인데커는 그런 민심을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민중들의 마음을 어떤 식으로 사로잡느냐가 관건이다. 거기에 민주주의나, 전제주의 같은 프로파간다를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대단한 전과를 거둘 수 없지. 중요한 건 어느 세력이 그들에게 더 사람다운 삶을 제공해 주느냐는 것……그리고 그것을 실현시켜 줄 수만 있다면 저 위에서 신처럼 군림하는 병기조차 단순한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 법이란다.]

[후후후후! 아버님의 말씀으로 좋은 것을 배웠어요! 한 마디로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남자가 원하는 걸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라는 말씀이군요! 좋아요, 저도 이번 전쟁을 계기로 최고의 신랑감을 사로잡고야 말겠습니다!!]

[……끄응, 아, 아비 된 입장으로서는 그냥 적당한 남자를 골라서 하루라도 빨리 정착했으면 좋겠구……]

[천만에요! 연애는 자유롭게 즐긴다고 그래도 신랑은 최고의 남자를 골라야만 하는 법이죠! 그런 의미에서 25구역을 재패하면 15구역으로 진군하는 건 어떤가요? 거기에 율리안님과 비교될 정도로 잘생긴 류안이라는 남자의 엉덩이가 그렇게 섹, 아니 괜찮은 신랑감이라는데……츄르릅, 어맛! 저도 모르게 침이……호호호호!!]

[……]

40줄에 이르도록 미남이라면 사족을 쓰지 못하면서 탐욕을 드러내는 자신의 딸, 에스메랄다의 모습에 라인데커는 노익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도록 급격하게 주름이 늘어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버리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며칠 동안 소흘했던 점 죄송합니다;;

복귀하고도 분량이 조금 시원찮지만 최대한 열심히 쓰려고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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