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2 ----------------------------------------------
지상편
****
뇌신이 모습을 드러낸 이후로 대부분의 펜져스들은 파비안이 이끄는 심해함대로 복귀를 마쳤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지상에 남아있는 제국군들은 원정대에 맞서서 사력을 다해서 맞섰지만, 제공권을 장악하고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그들에게 연전연패하며 후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저, 적들의 공격이 지나치게 강력합니다. 전하! 부디 주력부대의 지원과 행성방어병기의 사용 허가를 내려주십……크으으윽!”
쿠구구궁!
25구역의 지역책임자인 다인은 벙커를 뒤흔들어버리는 적들의 공격에 신음을 내질렀다.
하지만 화상통신의 너머에서 요청을 받은 파비안은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한가로운 모습으로 턱을 괴고 앉아서는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기해라.]
“하, 하지만 이대로라면 25구역의 가우스 캐논 포대가 전부 다 적들의 손아귀로 떨어져버릴 것입니다! 최후의 보루인 행성방어병기마저 잃어버린다면 저희들에게는 남은 희망이……”
[25구역은 절대로 함락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나?]
“현장책임자로서의 입장을 말씀드리자면 그렇게 낙관적으로 보기에는……”
[누가 네놈을 현장책임자로 임명했다는 말이냐? 무능하기 짝이 없는 데프 같은 녀석 같으니라고……]
“소, 소관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그렇게 대답하던 다인은 자신을 덮어오는 거대한 그림자를 발견하고 뒤돌아섰다.
“갈喝!!!”
쾅!!
“히이이이익!”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사자후 같은 호통소리에 놀라서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바닥으로 주저앉아버린 그.
거의 3m는 되어 보이는 배틀 슈츠로 전신무장을 하고 있는 거인이 자신의 눈앞에 서있었지만, 가슴에 그려져있는 엠블럼을 발견하고는 단숨에 그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라인데커 장군!! 이곳에는 도대체 어떻게……장군님께서는 26구역의 수비를 담당하고 계셨던 게 아니었습니까?”
그의 질문에 라인데커는 안면부를 개방하는 것과 동시에 새하얀 수염을 드러내면서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하!! 26구역을 넘보던 쥐새끼들은 바로 어제 한 마리도 남김없이 전멸시켜버렸소! 지금은 경애하는 왕제전하의 명령을 받들어 그대를 지원해주기 위해서 밤새도록 질주해 왔지!!”
웃음소리만으로도 지하벙커를 흔들어대는 것 같은 착각을 만들어내는 박력도 압권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가 꺼낸 이야기들이었다.
‘26구역이라면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25구역만큼이나 전황이 암울하다는 평가를 받던 전쟁터가 아니었던가? 그런 장소를 제패해버리고 지원군까지 보내오다니……’
불요불굴의 라인데커.
비록 펜져스 출신은 아니었지만 바이스 출신의 군인으로 현재의 지위까지 올라 철벽의 수비를 자랑한다는 노장군의 패기에, 다인은 전신으로 소름이 돋아 오르는 것 같은 전율을 느껴나가고 있었다.
[휴식없이 계속해서 싸우는 건 여러 가지로 부담이 될 텐데. 감당할 수 있겠는가? 장군.]
자신과는 다르게 정중한 태도로 염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파비안.
하지만 노익장의 기운이 충만해있는 그는 양손의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면서 가슴을 두드리며 자신감을 과시해 보였다.
“오오오오오오!! 물론입니다, 경애하는 왕제 전하! 이 늙은이에게 모든 것을 맡겨 주시면 25구역에 들어온 쥐새끼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도록 하겠습니다!!”
[후후후후. 좋다. 그대에게 25구역과 26구역의 모든 군대를 통솔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도록 하지. 건투를 빈다……노장군.]
그렇게 말하면서 통신을 종료해버리는 파비안이었지만 다인은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으로 라인데커를 보좌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현재 25구역을 공격하고 있는 원정대는 3군단 소속으로 레지스탕스들까지 합쳐 120만이라는 대군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성가신 적들은 25구역의 모든 장소를 타격할 수 있는 고지대를 장악하고 있는 포병사단들의 존재.
수만 대에 이르는 장사정포들이 쉴 새 없이 포격들을 쏟아내는 것만으로도 지옥이 따로 없었지만, 그들 중에서도 가장 큰 골칫덩어리는[벙커 버스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고성능 유도 미사일들을 장비하고 있는 다연장 미사일 연대가 문제였다.
“벙커 버스터의 공격으로 언더 월드의 수많은 군사기지들이 쑥대밭으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떻게든 녀석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산악강습부대를 몇 차례나 투입시켰지만 적들의 방어가 너무도 단단하고……무엇보다도 저 뇌신이라는 병기 때문에 대군을 파병할 수가 없습니다!]
자연현상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기상통제장치의 존재는 제국군이 지상 작전을 감행하는 데 엄청난 리스크를 안겨주고 있었다.
행여나 대열을 갖춰서 집결하기라도 한다면 아르고스 시스템을 24시간 감시하고 있던 주시자들이 곧바로 상황을 전달해주고는, 허리케인이나 극저온의 블리자드 스톰을 만들어내서 휩쓸어 버리는 상황.
주시자들의 궤도포격들을 마나 실드나 강 같은 자연지형물을 이용해서 피해가는 것이 가능했지만, 뇌신의 경우에는 언제 어떤 상황이라도 정찰보고를 받은 좌표로 자연재해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서 약점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나마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는 기술은 정령과학의 일종인 pec(processing environment change)기술을 사용해서 작전지역의 자연변화를 억제시키는 것.
“하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pec장비로는 고지대로 뇌신이 개입하는 걸 막아낼 수 있는 시간이 2시간 정도에 불과합니다. 겨우 그 시간 동안에 적들의 방어를 뚫어낸다는 건……”
다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말꼬리를 늘여나갔지만 라인데커는 환하게 웃으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충분하고도 남겠군!”
“자, 장군님의 역량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적의 방어는 보통이 아닙니다. 그것을 겨우 2시간 안에 뚫어낸다는 건……”
“하하하하하! 물론, 적들의 방어를 뚫어내는 것은 2시간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르지.”
다행스럽게도 그의 대답이 자신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다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러면 곧바로 다른 작전을 고안해내는 것이……”
“다른 작전이라니 무슨 소리인가? 나는 자네가 시도했던 것처럼 산악강습부대를 이끌고 들어가서 적의 포대를 쓸어버릴 생각이라네!”
“하지만 조금 전에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정면 돌파는 바보 같은 선택입니다! 겨우 2시간만으로는 적들의 방어를 뚫어내는 일조차……”
“누가 2시간 동안에 적들의 방어를 뚫겠다고 했는가?”
“네?”
다인이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어보자 라인데커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어보이면서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작전을 이야기해줬다.
“pec를 사용하는 것은 진군할 때와 후퇴할 때의 아군들을 뇌신에게서 보호해주는 역할만으로 충분하다네! 나는 적들과 대열을 갖춰서 총탄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정예부대원들과 함께 적진으로 돌진해 들어가서 적들과 병기와 병기의 우열을 가리는 백병전을 시도할 생각이라네! 그렇게 하면 적과 아군이 어우러질 테니 pec를 가동시킬 필요가 없겠지! 설마, 뇌신을 조종하는 자들이 아군을 희생시키면서 자연재앙을 만들어내지는 않겠지. 그렇잖은가, 다인?!!”
“자, 장군님께서 직접 백병전을 감행하겠다는 소리십니까?!”
아무리 자신감이 넘친다고 해도 눈먼 총알 한 방으로 목숨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체력과 마나를 급속하게 갉아먹어버리는 백병전(이라고 읽고 개싸움이라고 읽는)은 웬만해서는 회피하는 것이 현대전의 룰이라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노익장을 과시하는 라인데커는 2개 지역을 총괄하는 총사령관이라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직접 돌격대장의 노릇을 감수하겠다면서 큰소리를 치는 상황.
그가 이끄는 볼케이노 부대가 원래부터 견고한 수비로 유명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백병전이나, 돌파력에 대한 평가를 들어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다인은 급하게 되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26구역에서는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적들을 몰아내신 겁니까? 그곳에서도 적들이 뇌신의 지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물론, 그곳에서도 같은 작전으로 해결을 봤지!!”
그 대답에 그는 완전히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한 편, 26구역에서 4군단이 대패했다는 소식을 들은 율리안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적의 저력을 얕잡아보면 안 되니 함부로 공격하지 말라고 주의를 보냈것만……’
라인데커라는 명장의 소문을 알고 있었던 그는 4군단장에게 공격을 서두르지 말라고 주의를 보냈지만, 공명심에 찬 그는 공격을 서두르다가 적의 함정에 빠져서 백병전의 난투극 끝에 부하들과 함께 전사해버리고 말았다.
이어서 25구역이 위험해질 것은 자명한 일이라서 마찬가지로 주의를 보냈지만 고지대를 점령하고는 득의양양해진 3군단장 역시도 충고를 무시하기는 마찬가지.
‘이대로 가면 적들에게 반격의 실마리를 만들어주게 된다.’
길로틴의 협박으로 떠밀리듯이 뇌신을 발동시키기는 했지만 어찌되었든 그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필승의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파비안을 쓰러트리는 것이지만, 그가 틀어박혀있는 대왕 조개는 아르고스 시스템으로도 위치를 잡아낼 수가 없는 최첨단 기동요새.
그래서 차선으로 선택한 전략이 바로 속전속결이었다.
엔포서들의 정보력으로 미리 파악해놓은 적의 군사기지들을 최대한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하면 많이 파괴시켜버리는 것.
그렇게 적들의 군사적인 능력의 총력을 최대한 깎아내어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하더라도 대등한 싸움, 이상을 해내는 것이 목표였지만 문제는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된 지휘관들이 승리에 도취되어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하면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오늘 오전에 팔란티오 행성의 41구역을 점령하고 있던 5군단이 민간도시를 약탈한 것으로 알려져서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상부의 묵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3군단의 하이스 소장이 수천 명의 전쟁포로를 무참하게 학살해버리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팔란티오 행성 각지의 점령지에서 레지스탕스들의 항의가 빗발치는 가운데……]
연합의 종군기자들이 취재를 하면서 봇물이 터지듯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원정대의 만행들.
하지만 이런 보도마저도 표면에만 불과할 뿐.
아직 승리를 쟁취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복자의 기분에 도취된 지휘관이며, 사병들이 옛 시절의 전제군주들처럼 향락을 탐닉하며 약탈을 벌이기 시작하며 문제가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다.
그것이 멸망으로 가는 카운트다운이라는 사실도 눈치 채지 못한 체.
============================ 작품 후기 ============================
지난 편을 보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은데...
로제의 성격이나 주인공이 로제를 대하는 태도가 그렇게 크게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주인공이 아직 트라우마를 극복한 게 아니거든요.
저건 일종의 ntr을 위한 연극같은 거라서...뭐, 나중에 진행되는 스토리를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되실 겁니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