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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그런 그가 세희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온 주변에 파다하게 퍼진 소문이었다.
풍문에 의하면 그녀의 가드가 우진의 생각보다 단단하다는 모양이라서, 그는 작업의 명수라는 소문에 걸맞게“장수를 잡으려면 말을 쏴라.”는 격언을 실천하면서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것을 위해서 그는 세희의 인맥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언니동생커뮤니티]를 포섭하기 시작했으며, 막대한 뇌물공세와 감언이설로 주변 인물들의 환심을 얻어내어 이른바 [오작교]를 건설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가 꾸미고 있는 최종 플랜은 그렇게 거절하기 힘든 분위기를 만들어낸 타임에서 이벤트로 고백식을 거행하는 것.
이 작전의 악질적인 측면은 그렇게 로맨틱하고 두 사람의 사이가 기정사실처럼 굳어진 상태에서 세희가 거절이라도 해버린다면, 자신의 주변 인물들에 의해서 콧대가 높고 싸가지가 없다는 평판으로 마녀사냥을 당해 지금까지 쌓아올린 평판이 무너져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놀랍게도 그런 우진의 속셈을 전부 다 파악하고 있었다.
[하아, 인맥사회라는 게 참 거지같지 않냐? 꼴에 과대라고 언니, 언니하면서 대접해줬더니 무슨 상전 행세를 해버리고 말이야……이번 과모임에 참석하지 않으면 보이콧을 하시겠다고? 정규 과모임도 아닌 주제에 웃기고 있네……내가 그 우진인가 뭔가 하는 제비새끼의 이빨에 홀라당 넘어가버린 걸 모를 줄 알고?]
[……안 가도 괜찮겠어?]
[내가 약 먹었냐? 그 자리로 나가버리면 보나마나 그 제비새끼가 마이크를 들고 “어찌 합니까~”를 외쳐대고, 과대년이랑 동기년들이“사귀어라! 사귀어라!”그러면서 합창지랄을 해댈 게 뻔한데……젠장, 이렇게 된 이상에는 가족들 중에서 한 명을 죽여서라도 위기를 벗어나야지. 재당숙모님, 죄송해요. 이름 좀 빌리겠습니다……비록, 정말로 존재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렇게 넉살좋은 세희의 선방으로 우진의 1차 시도는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그는 얌전하게 물러나기는커녕 더욱 더 노골적인 방식으로 그녀를 압박해가면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되어버렸다.
‘생각해보니까 게임승부해서 패배하는 것보다 분한 기분이 들었던 적은 그 때가 처음이었지.’
그렇게 계속해서 같은 일이 반복되자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질투와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류안은,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의 적을 쓰러트리기 위한 전략을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진은 올마이티가 본격적인 승부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체 그에게로 다가와서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 진짜 환장하겠네! 신후야, 네 소꿉친구는 왜 그렇게 까탈스럽냐?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이렇게까지도 열심히 대쉬했는데도 넘어오지 않았던 여자애는 태어나서 처음이다……그런 의미에서 부탁하는 건데……소꿉친구인 네가 조금 도와주면 안 되겠냐?]
[열 번 찍어도 넘어가지 않는 나무라면 포기하시죠? 포기하면 편합니다.]
[하하하, 이 녀석이 농담도……미안하지만 그렇게 못해주시겠다. 형도 이번에는 진심이거든……그러니까, 응? 제발 부탁 좀 하자. 내가 너희들이랑 친하게 지내면서 여러 가지로 도움도 많이 줬잖아. 친구 좋다는 게 뭐야? 네가 조금만 도와준다면 정말로 수월하게 풀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노골적으로 NTR을 부탁해오는 그였지만 각오를 다지지 못했던 류안이라면 그의 노림수에 넘어갔을 것이다.
당시에 류안의 입장이라는 것은 우진의 압박에 지친 세희가 와서 푸념을 늘어놓는 오아시스 같은 개념.
비록 그것이 연애관계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게 사실이기는 했지만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고, 그가 어떤 식으로든 떨어져나가는 것이 그녀를 공략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한 사실이었다.
우진은 연애경험 한 번도 없었던 쑥맥인 류안이 어설픈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두 사람의 사이에 간섭하지는 않겠다고 대답해주기를 기대했지만, 그가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강한 올마이티의 승부욕에 불을 질러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형님에게 협력하는 일은 이번 생이 아니라, 몇 번을 환생한다고 하더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왜냐면 저도 세희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우리 소꿉친구끼리 귀엽게 썸 좀 타면서 연애질 좀 해보겠다는데, 거기에서 더러운 수작질로 훼방 좀 놓지 마시고 좋은 말로 할 때 꺼져주시죠. 어떻게 그렇게 싫다고 힘들어하는 애한테 발정난 개새끼처럼 달려드시는 겁니까? 그 나이 처먹고 대학생 새내기를 괴롭히려고 정치질에, 협잡질이라니……남자로서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너 이 새끼, 지금 뭐라고 그랬어?]
갑작스러운 폭언을 들어버린 우진이 얼굴을 붉히면서 흥분한 기색을 내비치자 그는 비꼬는 표정으로 웃어보이면서 대꾸해 주었다.
[분명히 제대로, 똑바로 말씀드린 것 같은데 벌써부터 가는귀라도 먹은 겁니까? 이래서 발정난 개새끼들은……]
[이 새끼가!!]
퍽! 퍽! 퍽! 퍽!
류안의 도발에 완전히 넘어가버린 그는 그대로 달려들어 와서 자신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좋았어. 완벽하게 계산대로……기는 한데. 젠장, 더럽게 아파 죽겠네!’
평생 동안 게임연습만 하면서 변변찮은 호신술조차 배워본 적이 없었던 그에게는 체대출신의 건장한 남자가 휘두르는 폭력이라는 건 그야말로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눈물, 콧물, 등등을 전부 다 흘려가면서 한참동안이나 추하게 일방적으로 얻어맞다가 간신히 이성을 되찾은 그로 인해서 멈춰진 주먹질.
그제야 자신이 지나쳤다는 사실을 깨달은 우진은 헛기침을 하면서 사과를 해오기 시작했다.
[……크흠, 미, 미안하다. 신후야. 형이 잠시 흥분을 해가지고……너, 너도 사내새끼라면 오늘 일어났던 일은 서로에게 없었던 셈 치자. 그까짓 여자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크게 일을 벌여버렸다고 그러면 너도 족팔리고, 나도 쪽팔리잖아? 응? 형이 잘못했으니까 개새끼한테 물렸다고 생각하면서 화 풀……]
[언제는 진심이라고 하시더니 순식간에 그까짓 여자라고 부르는 게 무슨 속셈이었는지를 충분히 파악하고도 남겠네요. 젠장, 더럽게 아파 죽겠네……참고로 저한테는 그까짓 여자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주인님이시거든요? 그리고 뭔가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그러는데……사람을 문 개새끼가 갈 장소는 보건소밖에 없어요. 세계랭킹 1위의 프로게이머를 시합 전날에 두드려 패다니……아주 본때를 보여드리죠.]
[자, 잠깐만 기다려봐, 신후야……내가 잘못했어. 신후야!!]
그제야 상황의 심각함을 깨달았는지 우진은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버리면서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애걸복걸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 사람의 실랑이를 발견하게 된 사람들은 올 마이티가 행사진행 스태프에게 얻어맞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경악하면서 몰려들고 말았다.
류안이 입은 부상의 판정은 전치 사주.
특히나 프로게이머의 생명이라고 볼 수 있는 왼쪽팔의 어깨가 탈골되면서 뼈에 금까지 가버리는 바람에,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어버린 프로팀의 분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기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직원들의 관리를 어떤 식으로 하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겁니까? 이걸 도대체 어떻게 책임질 생각이에요?!]
[저, 정말로 죄송합니다! 물의를 일으킨 스태프에게는 지금 당장 중징계를 내리고, 우승상의 3배를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부디 화를 가라앉히시고 침착하게……]
[침착? 지금, 침착이라고 하셨어요? 우리 팀의 간판스타가 지금 개처럼 얻어맞고 4주를 쉬게 생겼습니다! 그 친구의 여름 행사일정이 어떻게 잡혀있는지는 아시는 겁니까? 그 동안 예정되어 있던 광고 촬영이며, 행사들이며, 각종 이벤트들이 모조리 날아가 버리게 생겼어요! 그중에 청와대나 국제게임협회의 초대행사도 끼어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까? 그걸 고작 돈 몇 푼 쥐어주고 끝내겠다고요?]
프로팀 대변인의 엄포를 들은 주최측의 책임자는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서는 손발이 닳도록 용서를 빌어대기 시작했다.
[……아, 알겠습니다. 원하시는 일이라면 최대한 선처하겠으니 제발……]
[아, 됐고……이번 일에 대해서는 우리 회사의 법무팀에서 철저하게 대응해줄 테니까 각오 똑바로 해! 그 친구의 팬들이 전 세계에 몇 명이나 존재하는지 알아? 여론에 이 사실을 흘려주면 뭐라고 떠들어대는지 한 번 지켜보자고!!]
[그, 그것만은 제발……]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어나가자 우진이 직장에서 해고당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고, 형사처벌에 이쪽 업계로는 두 번 다시는 발을 들일 수 없도록 블랙리스트의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일을 지나치게 키워버리면 행사를 주최한 측에도 피해가 발생해버리기 때문에, 크게 공론화를 시키지는 않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조용하게 넘어가기로 결정했지만 류안은 그를 거기에서 용서해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 상태로 경기에 출전하겠다고?]
[예정대로 모든 경기를 출장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세팅만 잘 해 놓으면 한손으로도 경기를 할 수 있겠더라고요. 솔직하게 말해서……제가 없으면 프로리그에서 많이 곤란하시잖아요?]
[그, 그렇기는 하지만……이미 합의하고 적당히 덮어주기로 주최측과는 이야기를 마쳐놨는데, 다쳐버린 네가 그런 모습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류안은 그의 생각을 이해한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차피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다쳤다고 소문난 거, 누구 때문이라고는 말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이런 모습으로 출장했는데도 승리하기라도 한다면……우리 팀에게는 여러 가지로 좋은 동기부여와 어필이 되지 않겠어요?]
그의 제안을 들은 코치는 잠시 동안 손익을 계산하는 듯이 궁리를 시작하더니, 이내 상부와 연락을 주고받고는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보라는 답변을 내려주었다.
류안이 참가하게 된 경기는 라이벌 구단과의 순위를 걸고 싸우는 단두대 매치.
그를 원탑으로 삼아서 수준급의 랭커들을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프로팀과, 세계랭킹 2위를 대장으로 최상위권의 랭커들을 보유하고 있던 라이벌 구단의 대결은 언제나 박빙의 매치를 자랑하며 과거에 모 대학들이 연례행사로 펼치던 라이벌 대전만큼이나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경쟁전이었다.
하지만 그 날의 경기는 재수가 없었는지 라이벌 구단의 선봉으로 나온 랭커가 위세를 떨치면서, 그가 소속하고 있던 프로팀의 선수 4명을 연속으로 꺾어버리고 말았다.
물이 오를 대로 올라버린 그의 실력으로 모든 사람들이 올킬을 예상하는 가운데 구원타자로 등장하게 된 사람이 바로 올마이티.
[잘 들어……오늘 저 녀석은 아무래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적당히 팬 서비스나 해주다가 어려워질 것 같으면 무리하지 말고 게임을 던져. 그냥, 올 마이티의 상태가 괜찮았으면 막아낼 수 있었다는 인상만 심어주면 되는 거니까……]
감독의 지시를 들은 류안은 별다른 대답 없이 웃어 보이면서 자신의 경기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를 보조하기 위해서 경기석 옆자리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세희였다.
[승리의 여신님이 여기 계시네.]
농담에도 불구하고 굳어버린 표정으로 대꾸해오는 그녀.
[……제비새끼 이야기는 들었어. 어쩌자고 그렇게 무모한 짓을 벌인 거야. 멍청아!]
[그거야 뭐,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 무리쯤은 할 수도 있는 거지. 왜 그래?]
[조, 좋아하는 여자라고? 장난하지 말고……]
[장난 아닌데?]
[……]
간신히 끄집어낸 고백에도 불구하고 세희의 표정이 뚱한 상태를 유지하는 바람에 기껏 끌어올린 용기가 달아나버릴 것 같았지만, 류안은 절벽에서 뛰어내린다는 심정으로 기세와, 허세를 끌어올려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보기로 결심했다.
[역으로 올킬할게!]
[……뭐라고?]
[로, 로드 스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저쪽에 있는 애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게임을 잘한다는 녀석들이거든? 그, 그런데 내가 한 손으로 저 녀석들을 모조리 쓰러트리겠다는 소리야. 그, 그러니까 너를 위해서……]
[뭐라는 거야, 이 멍청이가……내가 그런 말을 들으면 어머나 세상에! 감동이야! 그러면서 품속에라도 안겨줄 거라고 생각했어? 그 역겨운 제비새끼도 제비새끼지만……너도 말이야, 연애를 하고 싶으면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라는 말이야! 적어도 기세에 맡겨서 고백해오기 전에는 좋아한다는 어필 정도는 보여주라고……그래야, 나도 생각을 정리하고 준비할 거 아니야. 이 벽창호 새끼야!!]
[준비할 시간이라면 줬어.]
[……뭐라고?]
[유치원 시절에는 네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줬지만 말이야. 그리고 그 이후로 내 인생에 존재해온 것은 오직 게임이 전부였어……그러니까, 네가 나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기준도,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도 게임이 전부야. 그러니까 내가 승부를 진행하는 동안에 곁에서 똑바로 지켜봐 줘. 이게, 올마이티라고 불리는 강신후라는 인간의 모든 거니까]
그리고 잠시 후 경기석을 제외한 무대의 조명이 꺼지면서 관람석에서 수천명이 질러대는 우레같은 환호성들이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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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과거회상편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분량조절에 실패한 글쓴이, 이대로 괜찮은가?!
등등의 자아비판을 스스로 해가면서 다음 편으로는 반드시 마무리를 짓도록 하겠습니다. 흐규흐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