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236화 (236/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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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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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희와 류안이 처음으로 만난 것은 기억하기도 어려운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일이다.

당시에 그가 다니고 있던 유치원에서는 재롱잔치를 앞두고 여자애들이 나풀거리는 한복을 입고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빛이 존재하면 그림자가 따라오는 법.

치마가 등장하자 치마 들추기의 달콤한 유혹에 사로잡혀버린 남자아이들은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여자애들을 습격해서 충격과 공포의 테러행위를 자행하기 시작했다.

[가라, 어둠의 자식들아! 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어린양들에게 진정한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줘라!]

[오오오오오!]

[꺄아아악, 선생님! 남자애들이 미쳐 날뛰고 있어요!!]

[이 녀석들이!]

[비, 비겁하게 선생님을 소환하다니……정정당당하게(?)싸우자!]

그리고 그렇게 물고불리는 치열한 격전이 반복되는 와중에 장난감을 가지고 블록 쌓기 대역사를 실천하고 있었던 류안은, 그런 속세의 풍경을 한심한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남자 공대장을 향해서 소란을 일으키는 이유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다.

[시끄러워서 집중을 못하겠네. 아니, 도대체 여자애들의 팬티를 훔쳐보는 게 뭐가 좋다고 그렇게 난리를 떨어대는 거야?]

[후후후후. 이런, 이런. 이래서 레고밖에 만지지 않는 동정 풋내기들은 안 되는 법이라니까? 잘 들어라, 꼬맹아……여자애들의 스커트 속에는 네가 평생 동안 블록들을 쌓아올려도 도달할 수 없는 환상의 보물이 숨겨져 있지. 그건 하찮은 팬티와는 격이 다른 물건이야. 사나이의 인생이라는 것은 그 내용물을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로 갈려지는 거라니까?]

[그, 그런 거야?]

지금까지 믿어왔던 자신의 가치관이 뒤흔들리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듣고는 그대로 설득당해버린 류안.

며칠 후, 어둠의 자식들에게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상을 접하고는 완벽하게 세뇌되어버린 류안은 공대장의 명령에 따라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려고 하고 있었다.

[자, 가서 아직까지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철벽녀를 쓰러트려! 실패해도 쓰러지지 마, 좌절하지 마.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다!!]

[우오오오오!!]

그리고 그렇게 타겟으로 정하고 달려 들어간 대상이 바로 세희였다.

[뭐, 뭐하는 짓이야? 꺄아아악!]

촤아아아악!

하지만 지나치게 흥분해버린 나머지 치마를 들쳐 올리다가 그것을 찢어버린 류안.

참고로 팬티에는 귀여운 곰돌이가 그려져 있었다.

[서, 설마 했던 정면 돌파를 시도하다니 이런 무시무시한 녀석! 강신후 이병, 네 녀석의 숭고한 희생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겠다! 아악! 선생님들의 습격이다. 도망쳐!!]

그리고 그 사건을 문제로 그는 부모님을 소환당해버리고 말았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초, 초범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이런 시베리안 허스키 같은 꼬맹이가 죄를 지었으면 손발이 닳도록 빌어야지. 너 같은 녀석들이 제일 악질적이라는 거 몰라? 확 그냥, 산타클로스 대신에 망태 할아버지를 소환해버릴까 보다.]

[마, 망태 할아버지만은 제발!]

[괜찮아요, 선생님. 애들이 다 그러면서 크는 거죠! 원래 덮치면서 싹트는 사랑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걸 전문적인 용어로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했던가?]

[그걸 가해자의 부모님께서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 부모에 그 자식이네요. 자, 일단은 한복의 견적부터 알아보시고 생각해보세요!]

[까짓 거 애들이 입는 한복이 비싸면 얼마나 비싸다……허걱! 이런 씨 없는 수박 같은 녀석 같으니라고! 어디 할 짓이 없어서 여자애들을 덮치고 다녀?! 지금 당장 손발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엎드려서 빌지 못해? 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아빠처럼 되고 싶은 거야?!]

[후에에엥! 잘못했어요!!]

철썩, 철썩!

[후에에엥! 잘못했어요!!]

기억을 떠올리다보니 아름답게 간직하고 싶었던 추억들이 지나치게 생생하게 떠오르는 바람에 입맛이 씁쓸해지고 말았지만,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 대범하게 용서를 해준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세희의 어머니였다.

[괜찮아요, 선생님. 신후 어머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애들이 크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죠……한복은 제가 새로 마련할 테니까. 대신에 아이들의 문제해결은 저에게 맡겨주세요. 좋은 생각이 있거든요.]

[어머나, 조금 사시는 모양……아, 아니. 자상하시기도 하셔라! 호호호호! 꼭 그렇게 부탁드릴게요, 세희 어머님.]

‘어머니 맙소사!’

부끄러움은 자신의 몫이 되어버리는 그 행동에 기억을 떠올리던 류안은 창피함으로 몸부림을 치고 말았다.

잠시 동안 간신히 진정시킨 끝에 다시 한 번 추억들을 떠올리는 그.

어쨌든 그렇게 무난하게 이루어진 합의의 대가로 세희의 어머니가 요구했던 내용은 류안이 세희와 단짝 친구가 되어달라는 내용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세희가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

[이야기는 들었지? 오늘부터 너는 내 노예……가 아닌, 단짝친구야! 그러니까 이제부터 블록 쌓기나 전쟁놀이처럼 위험하고 야만적인 장난들은 그만두고, 저쪽에서 소꿉놀이를 즐기자! 내가 손톱하고 발톱에 예쁘게 봉숭아물도 들여주고, 멋지게 리본도 달아줄게! 가자, 죠세피느!]

순식간에 애칭마저 달아져버린 류안은 그 무시무시한 제안에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이, 이런 비겁한……수치를 주느니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여라!]

[반항하면 선생님한테 이를 거야! 선생님이 망태 할아버지를 소환할 수 있는 능력자라는 거 몰라? 이미 합의도 끝났는데, 계약을 위반하면 위약금을 얼마나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망태할아버지랑 평생 행복하게 살고 싶어?!]

[크으으윽! 고, 공대장!]

[미안하다. 류안 이등병……생각 같아서는 어둠의 자식들의 힘을 모조리 끌어 모아서라도 구출해주고 싶지만……지난번에 징벌방에 들어갔던 상처가 욱신거려서 말이지. 건투를 빈다, 이등병! 그리고 이제는 안녕이다! 사나이주제에 나약한 소꿉놀이 같은 장난에나 어울리다니, 두 번 다시는 남자애들에게 말을 걸지 마. 이 더러운 호모 사피엔스야!]

믿었던 공대장마저 그를 배신해버리자 류안은 OTL의 자세로 엎드려서 절규해버리고 말았다.

[으아아아악! 어, 어째서 내가 이런……나는 그저 꿈을 찾아서 질주했을 뿐인데!]

[후후후후. 걱정하지 말고 누나에게 몸도 마음도 바치려무나. 엄마가 그러는데……괜찮은 남자애는 어릴 때부터 확실하게 조기 키잡을 시켜놔야 된대. 그러니까 내 취향대로 예쁘게 물들여줄게, 죠세피느!]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류안은 유치원을 다니는 내내 세희의 애완동물 취급을 당하면서, 여자아이들의 무리에 청일점으로 본의 아닌 하렘(?)생활을 만끽하게 되었다.

훗날, 초등학교로 올라간 다음에도 그 생활의 후유증으로 야생의 남자애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잊어버린 그는 무리에서 떨어져서 혼자서 외롭게 방황한 끝에, 현실을 집어던지고 게임세계로 귀의하게 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

어쨌든 그런 인연을 시작해서 초등학교를 거쳐서 중학교로 진학하는 순간까지로 세희와의 교류는 어느 정도 이어졌지만, 그것이 연인관계로 발전하지는 못하고 고등학교로 진급하는 대신에 본격적인 프로게이머로서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녀와의 관계도 거기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이 재회한 것은 류안이 20살이 되었을 무렵.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본격적으로 로드스타의 대회시즌에 참석하게 된 류안은, 그 때부터는 이미 올 마이티라는 별명으로 전성기를 맞으면서 각종 대회를 휩쓸어대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의 대부분을 게임만 하면서 살아왔으니 제대로 된 연애도 한 번 해보지 못했던 그.

그래도 방송분장을 해주는 코디라던가, 진행도우미, 방송관계자, 등등의 여자사람들과 대화를 주고받을 기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서 썸을 타려고 마음먹으면 아예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쑥맥이 따로 없었던 그는 연애세포라는 것이 아예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의 앞에 구원처럼 다시 나타난 사람이 바로 세희.

[안녕, 죠세피느. 오랜만이다. 짜식……]

[어, 어버버……누, 누구신데 저한테 말을 거시는 거예요? 종교라면 안 믿습니다! 도를 깨우치지도 못했어요!]

낯설기 이를 데 없는 아름다운 미모의 행사진행도우미가 갑작스럽게 아는 척을 해오자, 류안은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인 위험에 노출당한 초식동물처럼 방어자세를 갖춰보였다.

[얘가, 뭐라는 거야? 오랜만에 만났다고 주인님도 몰라보는 거야? 나 세희잖아, 세희!]

[……거짓말하지 마! 내가 아는 세희는 주근깨 빼빼마른 빨간머리……아, 아니. 평범이었어! 아무리 현대사회의 화장변신술과 성형마술이 발전했다고 그래도 이런 모습으로 나타날 리가 없다고! 마귀야 물러가라!]

[그런데 그게 현실로 일어났습니……아, 아니. 정말로 나 맞거든?! 이 자식이 어디서 갑자기 사람을 변신괴물로 취급하……크흠, 소, 솔직하게 말하면 화장을 조금 진하게 하기는 했지만……아니, 그러니까 내 말의 요점은……이 자식이?]

그렇게까지 이상적인 재회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세희는 존재감이 옅었던 과거의 모습과는 다르게, 몰라보게 아름다우면서도 털털하고 솔직한 성격으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자신과는 다르게 엄청나게 어른스러워져 있었다.

학비를 벌기 위해서 프로리그의 행사진행도우미 아르바이트를 신청했다는 그녀는 싹싹하기 이를 데 없는 성격으로, 순식간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

로 유명한 인기인이 되어버렸다.

[너는 무슨 여자애가 그렇게 술이 강하냐? 설마하니 술고래라고 불리는 사회자 형님을 대작으로 꺾어버리다니……설마 위장 속이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건……]

[뭐라는 거야? 이 중2병의 만년 꼬맹이가……설마 했는데, 20살에 중반이 넘어갔는데도 소주 한 잔을 못 마셔서 사이다로 희석시켜 먹는 놈은 처음으로 봤다. 어떻게 중학생 시절에서 변한 게 없냐?]

[훗, 남자라는 생물은 원래 낭만이라는 이상향을 쫓아서 끝없이 황무지를 떠돌아다니는 고독한 늑대인 법이야. 그 심정을 여자들이……]

하지만 그렇게 아옹다옹하면서 나누어가던 그녀와의 대화는 갑작스럽게 끼어들어오는 불청객에 의해서 중단되어버리고 말았다.

[세희야, 잠시만 괜찮을까?]

[아, 우진 선배님. 네, 괜찮아요. 신후야! 미안한데 먼저 가 봐. 나는 잠시 선배님하고 할 이야기가 있어서……]

어린 시절과 어른의 차이점은 소꿉친구와의 둘 만의 세계를 유지하기에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세계가 지나치게 넓고,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이다.

우진이라고 불리는 그 남자는 세희와 마찬가지로 행사진행을 돕는 스태프로 활동하고 있었고, 자신과는 다르게 잘생긴 외모와 커다란 키, 시원스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는 부럽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행사진행도우미처럼 외모가 중요한 여자스태프들과 자주 사귀는 사이로 발전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오랫동안 사귀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혼자서 지내는 기간이 3일을 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가벼운 성격으로 유명했다.

덕분에 여자들과는 별로 인연이 없었던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는 형님처럼 떠받들여지는 측면도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이 관계를 맺었던 여자들과의 음란한 썰을 상세하게 풀어주기 때문이었다.

============================ 작품 후기 ============================

어제오늘 일이 바빠서 조금 급하게 썼습니다!

후기는 또다시 여기서 씨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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