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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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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를 쓰러트렸을 때 류안은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사나운 기운들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발견하고, 전투태세를 풀며 원래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를 확보하고 은신처로 데려와 병상에 눕혔을 때는 지나치게 약해지는 맥박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의사를 부를 필요도 없이 빠른 속도로 회복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한숨을 돌렸다.
그러면서 동시에 오만가지 생각이 밀려들기는 했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녀의 약속.
[나를 정면으로 싸워서 쓰러트릴 수 있다면 내 반려가 되는 걸 인정해 주지!]
처녀를 접수하면 드래코니안 나이트로 승급할 수 있는 1+1의 특전을 가지고 있는 루치아.
일단 쓰러트리기만 하면 기절한 상태에서 범해버려도 상관없다는 게 조건이었기 때문에, 류안은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그녀를 그대로 덮쳐버리고 싶은 유혹에 휩싸였지만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한 끝에 반드시 정신을 차린 다음에 대가를 받아내기로 결심을 굳혔다.
‘24시간 싸우지 못해서 안달이 난 사람을 데리고 있을 수는 없어……전투광인 그녀를 통제하려면 반드시 싸움보다 더 좋은 게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줘야만 해. 자고 있을 때 처녀를 접수했다가는……그녀는 두 번 다시는 성교를 하지 않으려고 할 거야.’
최악의 경우에는 끝없는 사냥을 위해서 자신의 곁을 떠나버릴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류안은 그녀를 억제할 수 있는 목줄을 채워놓기로 단단히 결심을 했다.
물론, 그녀가 다시 한 번 이성을 잃어버리고 폭주를 시작한다면 그런 계산은 허사로 돌아가 버리는 거지만, 드라코니안 나이트로 승급하는 욕심보다는 그녀 자체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그는 도박을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운명을 시험하기 위해서 루치아가 정신을 차린 병실로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루, 루치아 씨……정신이 들었습니까?”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건 분명히 기분 탓이다.
“오, 류 서방님이 아닌가?”
3일간 기절해 있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으로 쾌활하게 손을 흔들어오는 그녀.
그를 반쪽이가 아니라 서방님이라는 새로운 호칭으로 불러오는 모습이 일단은 폭주상태는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었지만, 류안은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얼어버리고 말았다.
“……어, 저기……내 기억으로는 분명히 마나구속장치가 존재했던 것 같은데.”
“아, 그거? 미안하지만 갑갑해서 소멸시켜 버렸다. 이거야 원……뭐처럼의 자유를 되찾았는데 또다시 묶어버리다니 서방님도 너무하지 않느냐?”
터무니없는 사실을 태연스럽게 말하면서 웃어 보이는 모습이 마치 저승사자가 지옥으로 손짓하는 것처럼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 동행하고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
“죄송하지만 저는 이만 나가볼게요.”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비겁하게 혼자서 도망치는 건 용납할 수 없단다, 엑스.”
“그, 그래……혼자서 도망칠 수는 없지. 어떻게든 내가 시간을 끌어볼 테니 부디 그대만은 이 자리를 살아서 빠져나가기를 바란다. 류안,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대를 만나서 행복했……”
“쓸데없이 비장하게 사망플래그를 세우지 마세요. 젠장, 갑자기 라스트 배틀에 돌입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다니……”
“오오오오! 라스트 배틀이라니, 역시나 서방님은 눈치가 빠르군! 좋았어, 지금 당장 전투 준비를……”
“안 싸워!”
싸움이라는 단어에 순식간에 화색이 돌면서 눈동자를 빛내던 루치아는 류안의 일갈에 순식간에 시무룩해져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식은땀을 흘리는 그.
“뭐, 좋아……일단은 여러 가지로 무사한 것 같아서 다행이네. 사실은 물어보고 싶은 내용들도 다양하게 존재하지만……일단은 과거의 응어리부터 깔끔하게 풀어내도록 하자고.”
“……과거의 응어리라고?”
루치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류안은 그녀를 바라보면서 의기양양하게 손가락 3개를 펼쳐보였다.
“3분이야. 설마, 이제 와서 약속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다른 소리를 하지는 않겠지?”
“……기억하고는 있지만……지금 와서 그 이야기를 하는 건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이미 그대와 싸워서 패배했으니,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하지만 류안은 그녀가 뒷말을 이어나가기 전에 재빨리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이건 내 자존심이 걸린 중요한 문제야! 애초에 전투에서 싸워 승리하는 건 내 전공이 아니었어. 나는 반드시 이번 싸움으로 너에게 승리를 쟁취해내고야 말겠어, 루치아!”
“……솔직하게 말해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아, 서방님께서 그렇게 진지하게 도전해오는데 아내 된 도리로서 무시할 수는 없지. 하물며 그것이 승부에 관련된 이야기라면……후후후후. 좋아, 약속대로 3분의 시간을 줄 테니, 어디 한 번 직성이 풀릴 때까지 해보라고!!”
호기롭게 외치는 루치아의 대답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인 류안은 로제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지금부터 루치아와 일생일대의 승부를 펼쳐야 되니까 엑스를 데리고 물러나 주십시오. 아, 그리고 혹시라도 그녀가 도망치거나 수상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감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로젠 바이스의 팔라딘 출신인 그녀는 엑스에게는 천적이라고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엑스는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로제는 일말의 망설임도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그의 손등을 붙잡으며 부드러운 입술을 가져다가 대었다.
“알았다, 그대를 위해서라면 이 한 목숨을 바쳐서라도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지. 부디 그대에게도 무운이 따르기를……”
“네, 네……가, 감사합니다.”
그녀의 행동에 류안이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 말까지 더듬어대자, 루치아는 눈동자를 빛내면서 그 모습을 예의주시하다가 두 사람이 밖으로 빠져나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은근한 목소리로 질문해 왔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그녀를 어려워하는 거지? 보아하니 서방님에게 푹 빠진 것 같은 모습이던데……”
“아, 아니……사실은 그게 나도 잘 모르겠어.”
“보아하니 그녀의 행동이 서방님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모양이로군.”
“트라우마라고? 그럴 리가! 나에게는 정신 보호 능력이……”
“후후후후! 트라우마라는 건 이성과는 상관없이 감정에 직접적으로 호소해오는 경우도 있는 법이지. 정신이라는 게 그렇게 단면적으로 작용을 하는 물건은 아니거든……뭐, 그래도 자기 자신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서방님은 그래도 양반인 편이지.”
‘내가 로제에게 트라우마를 느끼고 있다고?’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류안 스스로도 로제를 대하는 것이 껄끄럽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씩은 그녀가 오글거리는 대사들을 뱉어내는 것도 사실이기는 했지만, 평소의 그였다면 “여기사 능욕! 하악, 하악!”이라고 외치면서 당장에 덮쳐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
당당한 태도에 비하면 체격 자체는 그렇게 크지 않아서 정글 레인저들처럼 팸돔 스타일이 아니라, 늘씬하게 잘 빠진 운동 모델 같은 스타일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잘록한 허리며 매력적인 골반, 풍만한 가슴골을 보유하고 인심 훈훈한 S라인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평소의 그였다면 덮쳐도 진작 덮쳐야 정상이었다.
‘젠장……흑염룡은 가라고 외치는데 어째서 나는 달리지 못하는 거지? 왜 로제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거냐, 젠장……’
자기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귀축으로서의 프라이드(?)에 깊은 상처를 받으면서 욕지거리를 내뱉는 류안.
사실, 그가 3분의 승부를 들먹거리면서 굳이 로제와 엑스를 내보내버린 이유도 다른 여자는 망설이 없이 덮쳐버리면서, 정작 언제든지 OK라는 그녀를 안아주지 못했다가는 그녀에게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줘 버릴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물론, 과거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루치아 3분 요리에 도전하고 싶은 열망도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과거에 S급 성교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불감증이나 다름이 없는 그녀를 느끼게 만드느라고 엄청난 시간을 소모해야만 했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때와는 다르다……3분 안에 루치아를 쓰러트려버리고야 말겠어! 그리고 내 안에 잠들어있는 짐승을 깨우는 거다!!’
그렇게 각오를 다진 류안은 그런 자신을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여유롭게 턱을 괴고 있는 루치아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예전에 약속했던 대로 나는 정확하게 3분 동안 마사지를 진행할 거야. 물론, 싸움의 승패는 가려졌으니까 마사지가 끝났다고 그래서 리벤지로 돌입하지는 않겠지만……맹세하는데 이 시간 동안에 나는 너에게 전투의 고양감을 뛰어넘는 쾌락을 선물해 주겠어. 그러니까 앞으로는 무의미한 싸움 대신에 이쪽으로 욕구를 해소시켜라, 루치아!”
“하하하하하! 서방님이 무슨 의도로 3분을 제안해오나 그랬더니……뭐, 좋겠지. 그런 내기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이겠어. 하지만 그런 조건이라면 나도 원하는 게 있는데 말이야……”
“좋아, 무슨 조건이라도 들어주겠어.”
“호오? 내용이 뭔지를 물어보지도 않고 자신만만하군.”
“그 말대로야. 만에 하나라도 패배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하하하하! 좋다, 좋아……모름지기 이 루치아의 서방님이 될 그릇이라면 그 정도의 패기는 보여줘야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진심으로 맞서겠어, 어디 한 번 전력으로 솜씨를 발휘해보도록!!”
루치아의 도발에 류안은 초절기교로 활성화시킨 손가락을 까딱거리면서 중얼거렸다.
“간다, 루치아! 저장되어있는 이성은 충분한가?!”
============================ 작품 후기 ============================
이번 편도 죄송합니다;;
사실은 이게 연참을 하려고 미리 확보해 둔 분량이었는데 오늘 지방으로 급하게 장례식에 참석할 일이 생겨버리는 바람에...
지금 살짝 정신이 없어서 후기는 스킵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