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226화 (226/291)

0226 ----------------------------------------------

번외편, 역습의 용밀레

***

“후후후후후.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마침내……마침내 손에 넣었다! 마이 프레셔스!!”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를 억누르지 못한 류안은 자신의 손에 들어온 용밀레 소프트의 게임을 들어 올리면서 만세를 불렀다.

[그렇게 귀축스러운 게임을 좋아하다니……]

“닥쳐! 지금까지 고생이란 고생은 다 시켜먹고 정의구현을 해주지 않는 이 미니게임이 나쁜 거야!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제일 악랄한 건 너야, 이런 불량 발키리!!”

[부, 불량……]

류안의 매도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처럼 멍하니 중얼거리는 브륜힐트.

그녀의 주변에는 용밀레 소프트에서 만들어낸 수많은 양산 미니게임 소프트가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지난번에 그가 플레이했던 용밀레 퀘스트를 시작으로 2, 3, 4, 5의 스트레이트로 이어지는 넘버즈, 시퀼, 프리퀼, 리부트, 리메이크 등으로 우려먹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세계관에 장르만 바꿔서 출시한 시뮬레이션이나 FPS, 심지어는 온라인 MMORPG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사골도 여기까지 우려먹으면 전부 녹아버려서 맹물만 떠다니겠다! 니, 그 이전에 도대체 이 게임을 만들어낸 발할라 세계의 사람들은 어떤 멘탈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게임을 팔아주는 거야?’

게임성 자체만으로는 그럭저럭 재미있다는 부류에 들어갈 만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시리즈의 가장 악랄한 부분은 용밀레 퀘스트에서 등장한 만악의 근원 잉여신과 쓰레기 같은 민폐 동료들이 시리즈마다 등장하며 용사들을 괴롭힌다는 사실이다.

어지간한 진성M이라도 견뎌내기 힘든 온갖 모욕과 배신, 속임수 같은 악랄한 일을 웃으면서 저질러버리는 악마 같은 NPC들이 매 시리즈마다 떵떵거리면서 잘 먹고 잘 사는 현실보다 잔인한 현실.

동기부여가 잘된다는 이유로 그 시리즈를 몇 번이나 클리어한 류안은 마침내 이성을 잃어버리고 폭발하고 말았다.

“끄아아아아악! 젠장, 이런 빌어먹을 잉여신과 쓰레기 같은 팔라딘, 사제, 무투가 년놈들!! 더 이상은 못 참아, 이제 당하고만 살지 않겠어!! 나에게 이 녀석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미니게임을 내놔!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정의구현을 해주고야 말겠어!!”

[복수는 아무것도 낳지 않는다. 하물며 사적인 복수심에 사로잡혀서 정의구현을 실천하다니 어불성설……]

“안 내놓으면 너에게 정의구현을 하겠어!!”

[……지금 준비하겠다.]

류안의 서슬 퍼런 외침에 재빠르게 태세전환을 사용한 브륜힐트가 얌전하게 그가 원하는 미니게임을 가지고 왔다.

관리자의 특권을 사용해서 혹시라도 모를 함정카드를 체크한 그는 그것이 자신이 간절하게 원하던 게임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피워 올렸다.

“후후후후후. 두고 보자, 잉여신. 빌어먹은 NPC 트리오……지금까지 쌓인 울분과 원한을 고스란히 돌려주마!”

[가상의 존재들에게 그렇게까지 감정을 드러내다니 한심……]

“지금 뭐라고 했어?”

[아, 아무것도 아니다.]

브륜힐트의 소심한 투덜거림을 응징한 류안은 곧바로 미니게임을 시작했다.

잠시 후, 화면이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옥좌에서 모습을 드러낸 대마왕이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대사를 다시 한 번 읊조리기 시작했다.

[호오, 그대와 같은 남자는 처음이로군. 어떤가? 내 편이……]

“되겠습니다!”

[……아, 아직 아무런 제안도 건네지 않았는데.]

“닥치고 세계의 절반이나 내놔라! 그러면 밉상 맞은 여신과 간도 배알도 없는 용사, 그리고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몰살시켜주지!!”

[그, 그렇게 무시무시한 소리를 지껄이다니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냐?!]

“너야말로 그 따위 나약해빠진 소리나 지껄이니까 용사들에게 매번 학살당하는 거지! 도대체가 세상을 멸망시킬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왜 매번 그놈의 최종병기를 만들어서 시간을 허비하는 거야? 닥치고 군대 지휘권이나 내놔! 그러면 내가 다크사이드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테니까!”

[이, 이런 무엄한……크아아아악!]

계속해서 한심한 소리를 지껄이는 대마왕을 그 자리에서 살해해버린 류안은 그의 왕관을 빼앗는 것과 동시에, 옥좌를 빼앗아서 그 자리에 올랐다.

이런 터무니없는 행동이 가능한 이유는 이번 미니게임의 거의 무한대의 자유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 자신이 브륜힐트의 관리권한을 이용해서 이번 미니게임을 지난번에 플레이했던 용밀레퀘스트 1가 완벽하게 연동시켰기 때문이기도 했다.

현재 그의 랩은 999.

용밀레 퀘스트 1을 클리어하면서 대마왕을 일격에 쓰러트려버렸을 때의 장비와 스테이터스, 스킬들을 고스란히 계승한 상태에서 시작했을 뿐만이 아니라 잉여신을 비롯한 모든 NPC들이 그에 대한 기억과 평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덕분에 류안이 대마왕을 쓰러트리고 자신이 그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은 일파만파로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전직 용사가 인류를 배신하고 대마왕의 자리에 올랐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경기가 불황인 것도 내가 직업을 가지지 못한 것도 전부 다 그 빌어먹을 전직 용사 때문이라니까?!]

[될성부를 놈은 떡잎부터 알아본다고……우리 마을을 몬스터들의 습격에서 구해주었을 때도 뭔가 아쉬운 눈치더라고! 감히 용사주제에 약초 하나만 줘도 감사한 줄 알아야지……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는지 원……]

[그나저나 조만간 대대적인 마왕군의 침략이 있을텐데 어떻게 하지?]

[걱정할 필요가 어디에 있어? 보나마나 우리 여신님께서 새로운 노예, 아니 용사들을 소환해서 잘 처리해 주겠지. 그나저나 여관 이용료를 얼마로 책정해 놔야 용사들을 잘 등쳐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후후후후. 우리 마을의 유일한 무기점을 운영하는 무기상의 패기를 보여주지! 목검보다 대미지가 1 높은 청동검을 300골드에 팔아치워 주마!]

[그 정도로 되겠어? 널리고 널린 약초밭에서 제일 쓰레기 같은 하급품을 50골드에는 팔아치워 줘야 진정한 사나이의 패기라고 할 수 있지! 그 호구새끼들은 그렇게 팔아도 좋다고 사가는 녀석들이니까……]

하지만 마을의 주민들이 기대하는 [용사특수]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아무리 기다려도 용사들이 물건을 사러 오지를 않잖아?]

[그, 그러게 말이야.]

[옆 마을에서도 용사들이 가게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성화던데……뭔가가 이상해! 여신님에게 물어보러 가자고!!]

아무리 기다려도 호갱들이 찾아오지 않자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여신상의 앞으로 몰려들어서, 기도를 통해 용사들이 상점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단순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몰랑, 나는 지금까지 하던 대로 용사들을 다른 세계에서 소환해 왔거든? 그러니까 나머지 문제들은 너희 비천한 인간들이 알아서 하라고……돈 세기도 바쁜데 내가 그런 일까지 신경을 써야 돼?]

여론이 나빠졌을 때나 여신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일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던 그녀가, 자신들을 뽑아준 인간들을 홀대하는 모습은 어딘가 데자뷰가 느껴지는 것이었지만  그녀의 말에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물러나버린 마을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용사들을 찾아가서 왜 상점을 이용하지 않는지를 물어보었다.

그들의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돈이 있어야 이용을 하죠.]

[돈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필드에 나가면 널리고 널린 것이 몬스터들이니 그런 몬스터들을 때려잡아서 한 푼, 두 푼 열심히 모아오면 되는 것을! 하여간에 요즘 젊은 것들은 열정이 없어요, 열정이……]

[하, 마을 주민들이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다니 정말이었네. 아니, 요즘 저랩 필드에 몬스터들이 어디에 있어요? 고랩 필드까지는 들어가야 몬스터 얼굴이라도 구경할 수 있드만.]

[그러면 고랩 필드로 들어가면 되는 일이 아닌가?]

[아니, 그것도 저랩 구간에서 장비랑 레벨을 올려야 가능한 소리지. 이 아저씨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저랩 구간이 씨가 말라버렸는데 다짜고짜 고랩 지역에 들어가라니 스펙이랑 경력이 무슨 땅을 파면 솟아나오는 줄 아나……고랩 지역에 들어가기를 원하면 국가 차원에서 지원이라도 좀 빵빵하게 해주면서 그러던가……용사라고 멋대로 소환해놓고는 이게 뭐하는 짓들이래?]

[그러게 말이야……]

[큭, 이런 근로의욕이 모자란 백수새끼들 같으니라고……]

저랩구간의 몬스터가 씨가 말라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마을주민들은 더 이상 용사특수를 누릴 수 없자, 마침내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마왕성으로 몰려가서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지역상권 물 먹이는 저랩 몬스터 독과점이 왠 말이냐?! 필드 몬스터들을 돌려내라!]

[돌려내라! 돌려내라!]

그리고 류안은 짧은 말로 그것에 대응했다.

“그게 도대체 뭔 개소리야?”

대마왕을 무서워하지 않고 자신을 찾아와서 아우성을 치는 사람들에게 류안은 자신이 예전의 호구 대마왕과는 다른 진정한 악이라는 사실을 차분하게 가르쳐 주었다.

[예쁜 여자들은 하렘으로! 남자새끼들은 싸그리 잡아다가 노예새끼로 만들어 버려!!]

[꺄아아아악! 마, 말도 안 돼! 정통 RPG에서 19금 다크 판타지를 실천하는 마왕이라니!!]

[장르는 개척하는 거야!!]

[시, 신장르에 눈떠버려!!]

사로잡은 남자들은 누더기 옷과 족쇄를 채워서 몬스터들의 수발을 들며 죽을 때까지 부려먹고, 여자들은 예쁜 여자들에 한정에서 자신의 할렘에, 나머지는 시녀로 삼아서 역시 부하들과 자신의 시중을 들도록 명령을 내린 류안.

그는 저랩 필드존의 수많은 몬스터들이 보유하고 있던 골드와 아이템들을 몰수하고 그것을 팔아서 마련한 자금으로 군대를 양성하며, 저랩 몬스터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철벽의 이상향을 만들어 냈다.

막대한 자금을 아낌없이 사용해서 전쟁준비를 갖춘 그는 평야에 끝없이 도열하고 있는 자신의 막강한 군대를 바라보면서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어나가기 시작했다.

“네놈들의 실수는 가장 큰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 용사들을 개무시했다는 거야. 뭐,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린 여신이나 인간계의 권력자들이 용사들에게 적극적인 지원을 해준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썩을 대로 썩어빠진 녀석들이 이제 와서 태도를 바꿀 리가 없지.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해도 말이야.”

꿈도 희망도 없는 용밀레 퀘스트의 세계를 지나치게 잘 파악하고 있는 류안은 단순하게 무력으로만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철저하게 무너트릴 계획을 세워나갔다.

“조금만 기다려라, 잉여신, 그리고 쓰레기 같은 NPC놈들. 네놈들이 만들어놓은 그 부패한 사회라는 것이 얼마나 무너지기 쉽고 나약한 것인지를 철저하게 가르쳐 주마. 자신들의 의무를 그저 용사들에게만 떠넘기고 그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주마!!”

[우오오오오오!!]

그의 외침에 반응한 몬스터 군단이 기치창검을 흔들어대며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전향한 인간들과 용사들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의 회유와 설득에 넘어와 충성을 맹세하고, 마왕의 권능을 사용해서 타락시켜 다크 나이트로 재탄생한 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진군하라 전사들이여 첫 번째 숙청의 대상은 빌어먹을 성기사 녀석이다!! 그 녀석의 부인들을 제일 먼저 NTL해주마!!”

사적인 원한을 해소하기 위해서 휘둘러진 지휘봉이 가리켜지는 방향을 따라서 헤아릴수도 없는 많은 몬스터의 대군이 진군을 시작해 나갔다.

============================ 작품 후기 ============================

이번 편이 풍자로 보이신다면 120% 눈의 착각입니다.

분기를 타기 전에 잠시 쉬어가자는 의미에서 준비한 미니게임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