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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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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의 한 복판에 존재하는 섬.
팔란티오 행성의 심장 타리잔.
그리스의 도시를 연상시키는 이 지역은 새하얀 대리석 석조건물들이 모형정원처럼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 도시가 깨끗한 녹색의 바다와 어우러지며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경치를 자아냈지만, 사실 이 지역의 사람들이 하얀색을 고집하는 이유는 낭만적인 이유와는 거리가 먼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역대 총독들의 무덤과 헨드릭 황제의 사당이 존재하는 신성한 장소.
그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신성과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 지역에는 오직 대리석을 가공한 석조시설물만이 건설될 수 있었고, 이 도시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눈만 드러내놓고 전신을 감싸는 Totenhemd(수의)라는 새하얀 옷을 차려입어야만 했다.
예외가 허락되는 것은 종교 행사나 의식을 주관하는 사제 계급의 로젠 바이스들과, 행성의 총독 이상의 계급을 가지고 있는 펜져스 계급의 권력자들뿐이었는데 그들도 제한이 존재하는 것은 마찬가지라 오직 검은색의 정복만을 차려입을 수 있었다.
이 지역에는 로젠 바이스들에게 허락을 받지 않으면 펜져스들이라도 무기를 소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는데, 덕분에 군대도 없을 뿐만이 아니라 성지 순례의 개념으로 지역 자체가 열려져 있어서 Totenhemd를 차려입으면 소속과 신분을 불문하고 자유로운 출입이 허락되는 장소였다.
쉽게 말하면 제국이 지배하기는 하지만 바티칸처럼 자치적인 성향이 강한 dmz(비무장지대)같은 장소라고나 할까.
예전에도 언급했지만 이 장소에서 공식적인 군사작전을 펼치는 것은 행성 전체의 지지를 잃어버리는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류안은 로스탐과 소수의 인원만을 데리고 트라이져 강습함으로 타리잔 외곽의 상공까지 접근해 들어갔다.
[현재의 스텔스 장비로는 이 이상의 접근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여기에서 작전을 시작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좋아, 여기에서 내려줘. 엑스와 둘이서 금방 다녀올 테니까……”
[대장님도 알고 계시겠지만 뇌신이 발동하기 전까지는 사령부로 귀환하셔야 해요. 2사단에서 내려온 명령대로 시행하려면 여유시간이 겨우 2시간 밖에는 없어요……그러니까 서둘러서 인질을 구출해서 돌아와 주세요.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시고요……]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레드폭스.”
걱정하는 그녀를 안심시킨 류안은 파일럿 슈츠의 위에 순례자로 변장하기 위한 Totenhemd을 걸치고는 엑스와 함께 강하장치로 발걸음을 옮겼다.
“둘이서만 데이트라니 두근거리네요.”
“나는 네가 배신할까봐 가슴이 두근거리는데……알지? 혹시라도 다른 마음을 먹었다가는 개성이고 나발이고 개인의사가 없는 육노예로 만들어버릴 테니까 각오하라고!”
“어머나!”
두려워하기는커녕 발그레하면서 좋아하는 모습에서 불안감이 몰려왔지만, 이번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녀에게 의지하는 방법밖에는 없었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
‘영체화를 사용할 수 있으면 나 혼자 잽싸게 들어가서 루치아를 구출하면 되는데 말이야……하필이면 의식을 실행하는 장소가 수도원이라니……’
영체화를 이용해서 편하게 루치아를 구출하려던 계획을 가지고 있던 류안은, 제시카에게 받은 좌표를 지도에서 확인하고 그녀가 잘못된 장소를 전달해준 것이 아닐까 몇 번이나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황당해하는 것은 그의 곁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구경하고 있던 엑스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맙소사! 파비안님의 정보를 캐고 다니는 쥐새끼들이 어디에 숨어서 활동하나 했더니……로젠 바이스들의 본거지인 수도원이 비밀 기지라고요?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어쩐지 아무리 조사해도 꼬리가 발견되지 않더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녀답지 않게 흥분하는 모습에 류안이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무슨 소리냐면……우리 죽음의 천적들이 바로 저 로젠 바이스라는 녀석들이거든요. 연맹에서는 천족 정도는 와야 조심하면서 움직이게 되지만……저 녀석들은 우리를 볼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아주 심플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제압해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저 미친 광신도들을 때려잡을 때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실체화로 상대하고는 하죠. 장담하는데 영혼 상태로 녀석들에게 덤벼드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예요……]
‘젠장……’
로젠 바이스들이 천족과 비슷한 영매능력을 사용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위협적인 존재라는 정보는 처음으로 접하게 된 류안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어내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길로틴이 어떻게 로젠 바이스들을 포섭했는지 궁금했지만 수도원의 지하를 은신처로 제공받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레이더를 피해갈 수 없을 드림 이터까지 뽑아내는 작업을 진행한다면 보통 관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가정을 뛰어넘는 더 어둡고 비밀스러운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의 계획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엔포서와 로젠 바이스들이 연합해서 지키고 있는 수도원을 어떻게 공략 하냐는 것.
‘이럴 때 스피아가 곁에 있었다면……’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실행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잠입과 침투에 특화된 그녀의 능력이 아쉬워지는 상황이었지만, 이번 작전은 아네타에게는 비밀로 진행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도움을 빌릴 수는 없었다.
작전을 고민하는 도중에 그의 생각을 읽었는지 갑작스러운 제안을 건네오는 엑스.
[곤란하시면 제가 도와드릴까요?]
[네가 도와주겠다고?]
[네, 적의 적은 친구라는 속담이 있잖아요. 저로서도 그 드림 이터라는 악마가 돌아다니면 여러 가지로 입장이 곤란해지거든요. 게다가 저희 죽음의 일원들은 애초부터 로젠 바이스들과는 사이가 별로 안 좋다고요. 이번 기회에 녀석들을 도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협조해드리지 못할 이유도 없죠.]
[으음……아무래도 인셉션을 당하는 기분인데.]
[……인셉……뭐라고요?]
[아무것도 아니야. 좋아, 네가 그렇게까지 나온다면 한 번은 믿어보도록 하지……대신에 허튼 수작을 부렸다가는 이번에는 정말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까 각오하라고.]
[그 말씀은 저를 죽이겠다는 뜻인가요?]
[가능하면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 중에서 하나는 조금 위험한 녀석이 하나 있어서 말이야.]
류안이 생각하는 비장의 수단은 바로 그람이었다.
리엑터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출력이 약해지지만 풀파워로 사용한다면 맨몸으로도 수도원 하나를 날려버리기에는 충분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계산대로라면 루치아와 자신은 무사할지도 모르지만 엑스의 전투력을 생각하면 영체화로 대피한다고 그래도 휘말려서 소멸하기에는 충분한 위력.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엑스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자신을 믿으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다시 현재.
Totenhemd을 차려입은 그녀는 당당하게 수도원의 정문을 두드렸다.
철컥.
[누구십니까?]
눈만 드러나는 조그마한 창을 열어서 경계하는 눈초리로 질문을 던져오는 수도사.
“펜져스의 지그문트 소위입니다. 사교님께 부례浮禮의 의식을 받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만 실례해도 괜찮을까요?”
[……]
대답은 없었지만 잠시 후에는 철커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굳건하게 닫혀져있던 수도원의 문이 너무도 쉽게 입구를 개방해 왔다.
“안쪽으로 들어오시지요. 자매님, 나락이 그대의 앞길을 축성하기를……”
“감사합니다. 형제님, 나락이 그대의 앞길을 축성하기를……”
수도사는 두 사람을 안쪽으로 들이고는 따라오라는 듯이 앞장서서 걸으면서 안내해 나가기 시작했다.
내부에는 길로틴의 부하로 짐작되는 엔포서들이 Totenhemd과 무장을 하고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기 때문에 불안감과 의구심이 커져나갔지만, 자신이 됐다고 말할 때까지 절대로 질문하지 말고 따라오라는 것이 그녀의 요구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용하게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수도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엑스.
“수도원 내부에 순례자들이 제법 많군요.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 저 분들은……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찾아오신 미라 사교님의 손님들입니다. 소위님께서 신경 쓰실 일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외부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노골적으로 수상한 광경을 은근하게 돌려서 질문했지만,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면서 뻔뻔스럽게 대꾸해오는 수도사.
‘치외법권이라는 건가? 펜져스와 로젠 바이스들이 기본적으로는 사이가 별로 안 좋다더니 사실인 모양이군.’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공존관계에 있으면서도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이해관계의 충돌로 반목하고 있다는 로젠 바이스들과 펜져스.
심연의 악마들 중에서도 상위계급에 속하는 펜져스들의 명령이 아니면 쉽사리 따르지 않는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에, 엑스의 말이나 길로틴이 그들을 매수한 방법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던 류안이지만 알력관계가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나서야 약간이나마 안심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수도원의 내부로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에 갑작스럽게 그녀에게 질문을 던져오는 수도사.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은……역시나 그것입니까?”
“네, 정말로 어렵게 구한 상등품 중에서도 상등품입니다. 사교님께서도 틀림없이 만족하실 거라고 장담합니다.”
“호오, 그 정도입니까? 이거 참……소위님께서 그렇게 장담을 하시다니 갑작스럽게 호기심이 솟아오르는군요……”
‘……애들이 갑자기 무슨 역적모의를 꾸미는 거지?’
아주 잠깐 동안 안심했다가 순식간에 수상하기 짝이 없는 대화가 들려오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그람을 발사해버릴 뻔한 류안이었지만 필사적으로 자제심을 발휘하면서 참을 인자를 새겨가며 인내한 끝에 마침내 사교가 거처하고 있다는 방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미라 사교님은 이 안쪽에 계십니다. 그러면 저는 이만……”
안내를 마친 수도사가 발걸음을 옮기자 순간적으로 단 둘만이 남았기 때문에 류안은 재빠르게 그녀에게 작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상등품이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별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나저나 지하로 들어갈 방법을 찾으려면 누군가에게 질문을 해야만 되는데……제가 길 안내를 제대로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세요?]
[그건……그렇군.]
엔포서들을 초대한 사람이 다름 아닌 미라 사교라고 했으니 여기까지 인도한 것만 해도 엑스는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해줬다고 볼 수가 있었다.
[좋아, 그러면 당장에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 미라 사교인지 뭔지를 단숨에 족쳐버리고……]
[죄송하지만 저는 이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을 거예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기까지는 괜찮았지만 사교들은……죽음의 정체를 꿰뚫어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아마 제가 들어간다면……순식간에 눈치를 채고 비상알람을 울릴 거예요.]
[그렇다고 나 혼자서 들어가라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혼자서 들어가도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속고만 살았어요?]
[……]
아무리 봐도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를 외쳐올 것 같은 권유에 류안의 눈매가 한없이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한참을 고민하다가 베트남을 포기했습니다.
9박 10일짜리인데 너무 길어서 못 가겠더라고요...
대신에 조만간 한 2~3일 정도 연재를 쉬고 자체 휴가를 가지기로 결심했습니다.
음, 당장 오늘부터 쉬고 싶...크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