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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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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 컴퍼니는 스캔 사와 마찬가지로 우주군 산하에서 우주선의 엔진과 마나운용장치를 납품하는 계열사들 가운데 하나다.
자유무역행성 둠드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 회사는 창립한 지 불과 3년 만에 우주군의 납품을 따내는 기업으로 성장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연맹주식시장에 상장하는 등 스캔 사에 필적하는 규모를 가진 회사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설마 그 회사를 이끌고 있는 사람이 아네타 본인이라니……’
유라디스 은하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얼핏 떠오르는 뉴스기사가 사실이라면, 제시워즈 가문의 일원이었던 그녀는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에 독이 든 초콜렛을 먹고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한다.
그 때부터 발할라를 시작했다고 가정해도 그녀가 가지고 있는 여건의 한계를 생각하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그 많은 일들을 동시에 해냈다고 보기가 어려웠다.
믿어지지 않는 아네타의 역량에 류안이 의문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자, 그녀는 그런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면서 답변을 해왔다.
“제가 가지고 있는 고유능력은 발할라 커뮤니티라고 해요. 전생에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업무에 종사하면서 자연스럽게 경영과 스카우트에 관한 역량들을 쌓아나가다 보니, 이런 능력을 얻게 되었죠. 덕분에 저는 사진만 봐도 누가 발할라의 도전자이고 아닌지를 파악할 수가 있어요.”
“뭐 그런 사기 같은 능력이……”
“후후후후. 억울하시면 전생에서 직업 선택을 잘 하셨어야죠.”
“성교 능력과 게임 능력이 뭐가 어때서 그렇습니까?”
“누가 뭐래요? 후후후후후후후.”
“그렇게 나오신다면 스카우트 제안을……”
“죄송해요, 계약의 추가 옵션으로 외로우면 살아갈 수 없는 거유 토끼귀 미소녀들의 소프랜드 자유이용권을 드릴 테니 제발 그것만은……”
“훗, 제가 그런 저속한 제안에 흔들릴 거라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예입니다. 부디 고용주님, 아니 사모님이라고 부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호호호호! 기왕이면 주인님이라고 부르면서 구두를 핥아주세요!”
“진심입니까?”
“아, 아니에요. 물론 농담이니까 절대로 시도하지 마세요. 가면도 벗지 말고요……알았죠?”
M남으로서의 기질을 자극받은 류안이 눈동자를 빛내면서 질문을 던지자 그녀는 급격하게 당황하면서 손사래를 치기 시작했다.
덕분에 SS급의 성교 능력의 도움을 빌려서 그녀를 자신의 수중으로 떨어트리는 게 어떨까하는 충동이 무럭무럭 솟구쳐 올랐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손자병법의 말처럼 그녀의 역랑을 모르는 상태에서 함부로 덤벼들기에는 여러 가지로 상황이 불리했다.
어쨌든 그녀가 그렇게 다방면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전부 다 발할라 커뮤니티라는 능력 덕분이었다.
학연, 지연, 혈연보다 무섭다고 알려진 발할라 도전자들과의 연대를 이끌어내며 그들의 도움을 빌려서 낙하산과 로비, 협상을 통해서 성공에 성공을 거듭해온 그녀.
아네타에게 가장 큰 자산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은 대의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단결시켜놓은 트리니티라는 조직이기는 했지만, 우주군 내부에서 그녀를 후원해주고 있는 세력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 이름도 발할라 파벌.
“스캔 사의 배후에 존재하는 우주군의 강경파는 가온 공화국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상당히 오랫동안 준비를 해왔어요. 그들은 우주군의 70%를 넘게 장악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그 기반이나 힘도 강력하기 이를 데 없죠. 하지만 우리 발할라 파벌도 잠재력에서는 그들에게 뒤지지 않아요……더 많은 도전자들과의 연대를 끌어낼 수만 있다면 상황을 역전시키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죠!”
그러면서 그녀는 이번 경쟁입찰이야말로 가온 공화국을 구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자, 강경파들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설명해 줬다.
‘몸값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건 좋은데 잘못했다가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게 생겼군.’
아네타가 제시한 조건이 나중에 나온 제안인 만큼 벤 체스터보다 나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사정을 듣자 단순하게 몸값을 비싸게 쳐주는 쪽으로 신변을 맡기는 일이 곤란해져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정보가 필요해. 일단은 두 세력이 경쟁입찰을 어떻게 진행하는지를 지켜보면서 정보를 수집하는 편이 좋겠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류안은 고개를 아네타의 조건을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질문을 던졌다.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뭐든지 물어보세요! 같은 식구가 되어주신다면 더 은밀한 대화도 환영이지만요……”
‘은밀한 대화라……’
크오오오오오!!
그 부분에서 방어력이 높아 보이는 검정색 스타킹을 장비하고 있는 그녀의 각선미가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유혹에 넘어가버릴 뻔한 류안이었지만 필사적으로 리비도를 억누르면서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발할라 커뮤니티라는 능력으로 제 정체를 일찌감치 파악하고 두 사람을 파견했다면……어째서 조금 더 일찍 저에게 트리니티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보내오지 않은 것입니까?”
“그건……”
그 질문이 약간은 난감했는지 시원스럽게 대답해주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고민하는 표정으로 말꼬리를 늘려나가던 그녀는 이내 한숨을 내쉬면서 진신을 이야기해줬다.
“……그 부분에서는 솔직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요. 하지만……이 사실만은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타이밍이 공교롭게도 당신에게 이용가치가 생겨서 개입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사실, 저희들이 당신을 쉽게 영입하려는 시도를 하지 못했던 것은 당신이 그레이(gray)이기 때문이에요.”
“그레이라고요?”
생소한 단어에 고개를 갸우뚱하자 그녀가 추가적으로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길게 설명 드리면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발할라의 도전자라도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과, 어중간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예요. 아시다시피……저희 조직의 특성상 어떤 도전자들은 트리니티가 반정부조직이라는 사실 때문에, 같은 도전자들과 연대하기보다는 정부에 팔아넘기려고 하는 부류의 사람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도전자를 영입하는 일에는 언제나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게 되죠……특히나 당신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분은 섣부르게 판단을 내리기가……”
‘……으음, 솔직하게 할 말이 없기는 하군.’
그동안 걸어온 행보를 되돌아보면 좋은 일을 할 때는 좋은 일을 하다가도 나쁜 일(주로 성욕)에 관련된 일이라면 용서가 없는 무자비한 행보를 걸어온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그녀의 입장이라고 해도 섣부르게 스카우트 제안을 꺼내는 일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모르기는 몰라도 상황이 이렇게 다급하게 전개되지 않았다면 그녀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스카우트 제안을 꺼내는 것은 조금 더 나중에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아네타님의 생각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이 지금까지 저를 속여 온 일까지 용서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저는 두 사람을 신뢰했고 그들의 노력에 걸맞은 대우를 해줬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다른 사람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을 부하로 둘 정도로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대장님……아니, 류안 중령님께는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이번 일은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잭은 그렇게 말하면서 담담하게 그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눈치였지만, 스피아는 상당히 많은 미련이 남았는지 안절부절 못하는 눈치였다.
“이번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입니다. 대사님과 일행이 머무르실 숙소는 저희 쪽에서 제공해드릴 테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쉬시기를 바랍니다. 저도……여러 가지로 해결할 일이 많으니까요.”
류안은 그렇게 말하면서 오랜만에 재회한 한 인물과의 대화를 고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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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이번에도 실패라니……엔포서의 능력이 겨우 이것밖에는 안 된다는 소리냐? 겨우 일개 대사와의 대화까지도 감청에 실패하다니……”
아직까지도 6사단의 헌병본부를 차지하고 감청시도를 하고 있던 길로틴은 분통을 터트리면서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슬슬 철수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비록 류안 중령이 죽음을 하나 처리했을지는 모른다고 하지만 지상에서 오래 머무르시는 건 별로 현명한 생각이……”
“그런 건 알고 있다! 하지만……이대로 내버려두면 류안 그 자식은 분명히 우주군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는 것이냐? 팔란티오 행성에서 우리들이 시도하고 있던 작전이 모조리 역풍으로 돌아온다는 소리다! 그렇게 되면 행성만 날아가는 게 아니라 공화국 전체가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 절대로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절대로……”
“……”
분노해서 날뛰는 길로틴의 모습에 제시카는 자업자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돕는 것이 곧 공화국을 위한 일이라는 사실은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방법은 틀렸을지도 모르지만……현재의 공화국의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길로틴의 방식 밖에는 정답이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서는……류안, 당신이라면……이 암울한 상황에서 다른 길을 찾아내실 수 있었을까요?’
이제는 연락하는 일도 어려워져버린 그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제시카는 기도하는 것처럼 조용하게 눈을 감으면서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2사단의 궤도사령부로 귀환하도록 한다.”
“……준장님?”
“우주군이 개입한다면 더 이상 우리들에게는 일각의 여유도 없다.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남은 시간은 3일……가능하면 그때까지는 참고 기다리려고 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은 어쩔 수 없지. 뇌신을 발동시킨다!”
“하지만 율리안 중장이 그 작전을 받아들일까요?”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실력행사로 나가는 수밖에……”
그렇게 이야기하는 길로틴의 모습에서는 시퍼렇게 날선 귀기鬼氣가 서려져 있었지만, 제시카는 그런 상황에서도 그가 최악의 선택을 내리지는 않았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루치아라는 여자아이에게서 드림 이터를 뽑아내려고 하는 그 정신 나간 계획은 시도하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아. 만약에 거기까지 진행해버리면 정말로 연맹의 눈 밖에 나버리고 말 텐데……’
하지만 그녀의 기대는 다음 순간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블랙 해머! 너는 지금 당장 엔포서들을 이끌고 루치아에게서 드림 이터를 뽑아내는 작업을 실행해라! 그리고 궤도사령부에 머물고 있는 연맹의 관계자들과 위치를 파악한 펜져스들을 모조리 드림 이터의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팔란티오 행성을 떨어트린다! 더 이상은 빌어먹을 류안 녀석이 활약할 수 있는 장면을 만들어주지 마라, 아니, 아예 드림 이터를 사용해서 녀석을 끝장내버려도 좋다!!”
“알겠습니다!!”
광기어린 그의 외침으로 지금까지는 조용히 전개되어 나가던 팔란티오 행성의 전쟁이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