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212화 (212/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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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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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디스 은하에서 대부분의 처음은 전부 다 경험했다고 생각하는 류안이었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생글거리고 있는 보라색 올림머리의 미녀처럼 여러 가지로 자신의 뒤통수를 때린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렇게 열렬하게 바라보시면 곤란한데……”

연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양볼을 감싸 쥐면서 발그레하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기선을 제압하려고 열심히 노려보면 노려볼수록, 앵두처럼 사랑스럽고 탐스러운 입술이라던가, 핥아주고 싶은 시원스럽고 새하얀 목덜미라던가, 보면 볼수록 빠져 들어가는 바닥없는 호수 같은 눈동자라던가, 움켜잡고 얼굴을 파묻어서 영원토록 부비부비를 해대고 싶은 발칙한 가슴이라던가.

‘어딘가 못생긴 구석이 있을 거야. 그래야 되는데……젠장, 음흉스러운 남자들만 상대하다보니 이런 부작용이……’

하필이면 그의 정신을 맑고 청아하게 만들어주는 엑스는 촉수에게 지나치게 오랫동안 능욕당한 나머지, 탈진해서 기절해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반면에 흑염룡은 새로운 뉴 페이스를 만나자마자 언제 진정되었냐는 듯이 아랫도리를 뻐근하게 만들면서 채근해오는 상황.

하지만 자신의 가정이 사실이라면 3번의 면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대화는 이번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찾아오신 용건이 무엇입니까?”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런 답정……크흠, 시험하실 생각이라면 이쯤에서 돌아가셔도 괜찮습니다. 대사관의 호위 임무는 책임지고 확실하게 해드리도록 하죠. 아, 그리고 스피아와 잭 두 사람은 모두 해고니까 오늘 저녁까지 짐 싸서 떠나도록 해. 그리고 위약금도 청구할 생각이니까 각오하도록 하고……”

“어맛, 제 딴에는 호의로 붙여드린 사람들인데 너무하시네요.”

“호의는 속내가 없어야 호의라고 부르는 거겠죠. 죄송하지만 배신자들을 감싸줄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배신하기 전까지는 배신자라는 사실을 알아도 감싸줄 의향이 있었지만요.”

류안이 그렇게 말하면서 스피아를 노려보자 눈동자가 흔들리면서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반면에 잭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으면서 무덤덤한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동요만으로도 상당히 의외였는지 아네타가 탄성을 내질렀다.

“굉장하시네요! 설마하니 스피아 중위를 여기까지 흔드시다니……그녀의 충성심은 우리 조직에서도 손가락에 들 정도로 대단한데 말이죠.”

“오, 오해십니다. 아네타님. 저는 절대로…….

“괜찮아요, 스피아. 여자라면 사랑에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도 그럴 것이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것이 여자라는 생물인걸!!”

“아니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노, 놀려대지 마십시오! 치이잇!”

새빨개진 얼굴을 가리면서 허둥대는 스피아의 반응에 류안과 아네타는 한 마음, 한 뜻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그녀를 궁지로 몰아넣어갔다.

조금만 더 밀어붙였다면 그녀가 울면서 도망치는 진귀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잭이 헛기침을 하면서 분위기를 환기시켰기 때문에 두 사람도 장난이 지나쳤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추궁을 중단했다.

그리고 류안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장단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식은땀을 흘렸다.

‘위험해……이 여자, 파장이 지나치게 잘 맞잖아.’

당황하기는 아네타도 마찬가지였는지 창피한 듯 발그레하면서 입을 여는 그녀.

“흠흠,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만……뭐, 어쨌든 시험당하는 게 싫으시다면 이쯤에서 제 정체를 알려드릴게요. 저는……”

“가온공화국 최고의 반정부조직인 트리니티를 이끄는 혁명의 여신 아네타양이 아니십니까?”

“……알고 계셨나요?”

“스피아 정도의 실력자를 파견할 정도의 조직이라면 얼마 없으니까요. 지금까지는 후보에 올려놓은 수준이었지만……설마 당당하게 본명으로, 그것도 외교 대사로 부임해서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후후후후. 가문의 이름이 워낙에 대단하니까요. 눈앞에서 제가 반정부 조직의 수장이라고 말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다니까요?”

그녀의 말에 류안은 자신도 모르게 태클을 걸고 말았다.

‘대기업 총수의 딸이 혁명놀이를 하고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냐?!’

아네타 제시워즈라는 이름에서 조건반사처럼 떠오르는 건[제시워즈 마트]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다국적 대기업의 이름이었다.

공화국의 국내에서 재계서열 1위를 꼽으라면 정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가온 공사가 대표적으로 마나, 전기, 금융, 주택, 도로, 주류, 담배, 수자원, 철도 등의 공공사업들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현재는 그 대부분이 민영화가 이루어지며 연맹에게 넘어가버리고 말았지만)경쟁자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했지만, 2~3위를 가리자고 하면 항상 거론되어지는 이름이 제시워즈 그룹이다.

그 덩치도 어마어마해서 단적으로 비교하면 벤 체스터가 CEO로 있는 스캔 사의 몇 배는 큰 규모와 자금동원력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라고 할까.

문제는 스캔 사의 경우에는 우주군을 등에 업고 치타처럼 시장변화에 재빠르게 대처하면서 과감한 투자로 성장을 거듭하는 반면에, 제시워즈 그룹은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는 코끼리처럼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면서 여러 가지 사업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경영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받고 있는 것은 벌써 200년째 회사운영권을 붙잡고는, 경영권을 독식하고 있는 제시워즈 일가의 무능과 부패가 첫 번째로 손꼽히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홀로 승승장구하며 능력을 과시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후계서열 15위에 빛나는 아네타 제시워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후계서열 15위다.

그것도 첩이나 측실의 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4~5위도 아니고 15위의 이름을 어떻게 기억하겠냐?! 그보다 자식을 몇 명이나 낳아대는 거야, 그 대기업 총수는!!’

“후후후후. 사실 트리니티는 저의 포켓머니(용돈)으로 만든 사조직이랍니다.”

“이런 더러운 부르주아 같으니라고……”

“당연히 농담이죠. 아무리 그래도 포켓머니로 반정부조직을 만드는 사람이 어디에 있……아, 크흠. 뭐, 꼭 없다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트리니티는 제가 피와 땀과 포켓머니의 노력으로 일구어낸 조직이라고요!”

“결국에는 사용했다는 소리잖아. 얼마나 많은 거냐? 포켓머니!”

“억울하면 금수저로 태어나세요. 헤헷!”

“……큭, 후계서열 15위인 주제에 이 무슨 뻔뻔함이냐…….”

주거니 받거니를 하면서 끊임없이 잡담을 이어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에 스피아는 물론이고, 잭까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버리고 말았다.

“아네타님은 발할라의 도전자십니다. 저만이 아니라 스피아, 그리고 트리니티의 조직원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도전자에 포함되어 있죠.”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걸 이렇게 경솔하게 말해버리면 어떻게 해?”

스쿨드가 말했던 판도라의 상자를 떠올린 류안은 반사적으로 주변을 경계하면서 그렇게 지적했지만, 아네타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를 안심시켰다.

“누가 들을까봐 걱정하시는 거라면 그럴 필요는 없어요. 제가 이래보여도 트리니티의 수장이라고요? 설마, 벤 체스터보다 보안의식이 허술해 보이시나요?”

“으음,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나오시는 것 치고는 제가 작정하고 당신들을 국가내란죄로 체포해버려도 꼼짝없이 당하실 것 같은데……”

그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질문하자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득의양야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대꾸해오는 그녀.

“후후후후. 설마 제가 류안 중령님의 전투능력을 모르고 찾아왔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스피아와, 잭, 그리고 저까지 힘을 합쳐서 달려들어도 당신에게는 상대도 되지 않겠죠. 그러니까 이번 한 번만 눈감고 넘어가주시면 안 될까요!”

“결국에는 봐달라는 소리잖습니까!”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외치면서 태클을 걸어버린 류안이지만 확실히 그녀가 방문해서 찾아온 타이밍은 노린 것처럼 절묘하기는 했다.

하필이면 그가 우주군에 임관하기로 결심을 굳힌 순간에 찾아와서 의표를 찔러버렸을 뿐만이 아니라, 판도라의 상자 패널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엑스도 때마침 촉수들에게 괴롭혀져 탈진해서 쓰러져버린 상황이었다.

그 외에 자신의 집무실에 설치해놓은 길로틴의 도청 장치들을 어떤 수단으로 무력화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발할라의 도전자일 뿐만 아니라 그런 도전자들의 리더라면 트리니티라는 조직 자체가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역량을 지닌 집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찾아오신 겁니까? 뭐, 찾아오신 타이밍이나 정황을 보면 대체적으로 감은 오지만……저는 혁명 놀음이나 발할라 도전자의 동창회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뭐, 제가 어려운 시절에 도와주신 일은 감사하다면 감사하지만 말입니다……”

중대 규모의 군대를 꾸릴 시절에 잭과 스피아처럼 걸출한 인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현재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지령을 내린 사람이 아네타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였다.

“그건 우주군에 임관하실 생각이기 때문인가요?”

“누구에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그렇습니다.”

류안은 그렇게 말하면서 스피아를 가볍게 째려보았다.

‘세상에 믿을 놈들 하나도 없다더니 잭도 그렇고……정말로 나를 배신해?’

뜻을 함께하던 발할라의 동료들이 전부 죽었다면서 온갖 감언이설로 자신을 속여 온 잭의 거짓말도 거짓말이었지만, 배신하면 자신과의 관계가 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스피아가 정말로 자신을 배신하고 우주군과의 회담내용을 아네타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이 그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마치 오랫동안 공략한 끝에 자신에게 데레를 보여주게 만든 츤데레 여주인공이 다른 남자한테는 너무나도 쉽게 데레데레를 보여주는 기분이랄까…….

그녀도 어지간히 찔리는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며 고개를 돌렸지만 아네타는 그 모습마저도 재미있다는 듯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입을 열었다.

“정말이지 이야기대로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신 분이로군요. 하기야 우주군처럼 좋은 조건을 제시해오는 집단의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하는 게 쉽지는 않죠. 아무리 그게 이기적이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해도 말이에요……사람이 이득보다 대의를 추구하는 것은 위인전에 나오는 영웅들의 이야기처럼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리죠? 그렇지 않아요?……세상에서 올바름이라는 단어를 추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실 생각이라면 그만……”

거기까지 말하면서 자리를 일어나려고 하던 류안은 다음 순간에 튀어나오는 아네타의 말에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올바르면서도 훨씬 더 많은 이득을 얻으실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게 무슨……”

“우주군의 스카우트 제안을 대행할 수 있는 집단은 스캔 사만이 아니에요. 벤 체스터가 우주군과 연맹 전체의 비호를 받는 것처럼 떠들어대기는 했지만, 우주군도 통일된 의지를 가진 조직은 아니라는 소리죠……그리고 그들에게 반대 입장에 선 회사가 존재하고 있어요. 바로 우리 트리니티의 의지를 대변하는 클라우스 컴퍼니가 당신의 경쟁 입찰에 참가할 생각이에요. 이 우주에 진정한 정의를 가져오기 위해서 말이죠……”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아네타의 제안에 류안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후후후후. 독자님들의 통수를 때리는 것은 언제나 즐겁군요.

참고로 내일은 휴재입니다. 왜냐면 학기 마무리하느라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거든요.

그러니까 한 번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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