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211화 (211/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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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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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처럼 지나가버린 벤 체스터가 알려준 내용은 언젠가 길로틴이 이야기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고스란히 일어나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연맹에서 파견한 감사단이 가온 공화국의 군대가 팔란티오 행성을 공격하는 도중에 국제조약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는 정황과 증거물을 확보했으며, 그것을 빌미로 우주군이 전쟁에 개입하겠다는 소리였다.

“연맹은 이번 전쟁을 우주군의 손으로 마무리하고 팔란티오 행성을 제국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킬 생각입니다. 그리고 마그누스 자치령처럼 자유를 원하는 현지인들에게 독립정부를 구성할 기회를 줘서 연맹에 참가시킬 예정이죠.”

‘하지만 그런 짓을 저지르면……’

팔란티오 행성에 모든 것을 올인했던 가온 공화국은 재정 적자를 만회하지 못하고 파산할 게 뻔했다.

뿐만 아니라 팔란티오 행성도 말이 좋아서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는 거지, 우주군의 도움을 빌리는 순간부터 사실상 식민지나 다름이 없는 내정간섭에 시달리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물어보셔도 괜찮습니다.”

“이미 공화국의 군대가 부정을 저지르고 있는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면 제가 연맹을 위해서 해야 되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류안의 질문에 벤 체스터는 너무도 당당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우주군을 위해서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가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

터무니없는 제안에 탈리아는 물론이고 스피아와 아트리에까지 움찔하면서 당황하는 기색들이 역력했다.

하지만 스카우트 제안을 받은 시점에서부터 이미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류안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해 나갔다.

‘젠장,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빌어먹을 정치질과 음모는 어느 집단에서도 끊이지를 않는군.’

말이 좋아서 내부고발자라는 거지 벤 체스터가 원하는 역할은 류안이 연맹과 우주군을 대신해서 총대를 메고, 원정대의 부정행위를 고발하는 국제재판의 증인으로 나서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증거가 증거니만큼 저희 측에서 직접 공화국을 고발하고 나서도 충분한 승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저희들이 앞장서서 나섰다가는 오해를 하게 될 세력들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겠죠.”

‘오해가 아니라 사실이니까 그렇지.’

돈을 받고 팔란티오 행성을 가온 공화국에 팔아넘긴 연맹이 국제조약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공화국의 행사를 제지하고 나선다면, 가맹국들의 질타를 받게 될 것은 불을 보듯이 뻔했다.

“하지만 공화국에 떠오르는 영웅이신 류안 중령님께서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국제재판에 고발을 하신다면 훨씬 더 그럴 듯한 그림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조국을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방위군의 부정행위를 바로잡으려고 나서신다면 말입니다……”

“우주군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나서 그런 짓을 저지른다면 세간의 평가가 그렇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을 텐데요.”

류안의 지적에 벤 체스터는 예상했다는 듯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냐면 중령님께서 재판에 나오시는 순간에 전 연맹의 국제여론은 중령님의 결단을 칭송하게 될 테니까요……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우주군의 스카우트 제안과 지원이 없다면 썩어빠진 가온 공화국의 상부를 고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지가 않습니까?”

‘그건 내가 상부를 고발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때나 그런 소리지……’

썩어빠진 공화국의 부정부패와 비리에 류안이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손으로 권력을 잡아서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런 불의들을 눈감아온 것이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개혁했다고 떠들어대는 방위군의 예산 문제만 봐도 한심스럽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라서, 방위군의 간판스타라고 떠들어대는 율리안이 지휘하는 2사단은 가장 많은 예산을 집행 받고 공정하게 운영되기로 유명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사단조차 원래 예산에 10%정도 밖에는 받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비리와 횡령이 만연해 있었다.

특히나 자신의 사비를 털어서 발품을 팔며 군대의 보급품과 병기를 구입해 본 경험을 가지고 있는 류안은, 자신이 직접 구입한 병기들과 방위군의 상부에서 지급해 준 병기의 납품 단가를 비교해보고는“이런 도둑놈의 새끼들이 이 따위 짓을 저지르면서도 무슨 전쟁을 하자는 거야?!”라고 소리치면서 분통을 터트렸던 경험들이 허다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썩어빠진 국가라고는 해도 류안에게는 제 2의 조국이었던 만큼 손톱만한 애국심은 남아있었기 때문에, 노골적이기 이를 데 없는 벤 체스터의 제안이 불편하게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은 말씀하시는 내용을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약간은 당황스럽기까지 하군요. 공화국의 군인에게 그렇게 당당하게 상부를 배신하라는 듯한 권유를 건네시다니……”

“후후후후. 그렇게 받아들이신다면 저희들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류안 중령님께서는 현명하게 대처하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 나누었던 이 부분의 이야기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대화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벤 체스터는 마치 경고하는 것처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구슬 모양의 기계장치를 두드려 보였기 때문에, 류안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잘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을 드릴 테니……오늘은 이쯤에서 이야기를 마치는 것이 좋겠군요.”

“좋습니다. 저도 중령님께서 당장 결정을 내리실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오늘은 이쯤에서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충고를 드리자면, 자신이 어느 편에 서야할지를 모를 때에는 승리하는 쪽에 서십시오.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연의 이치이자 처세술이라는 겁니다……”

벤 체스터가 떠나고 아니나 다를까 탈리아를 비롯해서 스피아나 아트리에까지 불만을 터트려대며 그의 예의 없는 행동이나 우주군의 방식을 비난하면서 떠들어댔지만, 류안에게는 오히려 그렇게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내면서 협박 같은 메시지를 남겨주는 쪽이 머리를 차분하게 식혀주면서 냉정을 되찾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상태가 된 것이 이미 스카우터에게 프로파일링을 당해버린 게 아닐까하는 두려움까지 몰려왔지만, 어쨌든 우주군과 적대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뒷배가 든든하고 이번 계획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연맹이 원하는 진짜 먹잇감은 팔란티오 행성이 아니라 가온 공화국이다.

그 때문에 바키대통령과 무능한 행정부를 뒤에서 조종하여 나라의 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내몰았고, 지금처럼 최후의 희망마저도 용서 없이 짓밟아버릴 수 있는 치밀한 계획을 준비해 왔다.

만약에 류안이 이 제안을 거절하고는 정의감에 사로잡혀서 그들의 음모를 떠들어대며 연맹을 비난하고 나선다면, 십중팔구 국제여론은 물론이고 공화의 언론까지도 그를 외면하면서 고립시킬 것은 명약관화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그를 끝장내버릴 수 있는 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경고한 것은, 누구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던 ‘죽음’을 생포한 정보까지 손아귀에 쥐고 있는 것으로 자명해진 일.

‘태도를 보아하니 조용하게 입을 다물고 넘어간다면 굳이 협박이나 강요를 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지만……대신에 나에게 건넸던 제안들은 전부 다 무효가 되어버리고 말겠지. 공화국과 함께 침몰하는 것을 내버려두고……’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이야말로 우주군에 임관하는 것이 자신의 몸값을 가장 비싸게 부풀려서 팔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만약에, 그가 내부고발자로서의 역할을 받아들인다면 우주군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행동한다는 제약은 생기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자유로운 조건 속에서 날개를 펼치게 될 거라는 사실은 자명했으니까.

게다가 우주군이 노리고 있는 게 가온 공화국이라는 큼직한 먹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협상을 통해서 팔란티오 행성 전체의 자치권을 보장받지는 못하더라도 그가 기반으로 삼고 있는 15구역과 마그누스 자치령의 권익을 지킬 수 있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가온 공화국이 몰락한다고 그래도 내 기반을 보전할 수 있다면 나쁜 이야기는 아니야. 스캔 사의 역량이라면 제르너 가문은 물론이고 청풍명월이나 레드폭스의 학교까지 보호할 수 있겠지……아니, 교장님은 내가 지켜줄 필요가 없나? 이미 가온 공화국의 궤멸적인 상태를 알고 계시니까…….’

벤틀리에 대한 생각도 얼핏 스쳐지나가기는 했지만 기억 속에서 조용히 아웃시켜버린 류안은, 저울에서 약 70~80%정도는 우주군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무게추를 가중시키고 있었다.

‘제시카 대령과 루치아는 길로틴의 헌병본부를 공격해서 빼돌리면 되겠고……레베카는 바키의 딸이니까 별다른 문제는 없겠지만……레베카는 구하더라도 바키 그 빌어먹을 새끼는 분노한 군중들에게 산채로 던져주고 싶은데……애초에 나라꼴이 이 모양, 이 지경이 되어버린 것은 전부 다 그 독재자 새끼 때문이잖아? 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 부채들을 떠안으면서 국민들을 구원해야 돼?’

산업혁명은 옛날에 끝났고 새로운 기술이나, 새로운 부를 창출해내는 방법이 과도기에 도달해버린 공화국의 현재 상황에서는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게 그렇게 많지가 않다.

팔란티오 행성처럼 타겟이 되는 행성을 아사상태에 빠질 때까지 착취하거나, 안 그래도 착취당할 대로 착취당하고 상당수가 무기를 들고 일어나버린 국민들을 더 악랄하게 착취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부정부패와 비리가 만연해있는 권력층과 대기업의 총수들에게 정의구현을 하고 사회를 과감하게 개혁하지 않는 이상은 전부 다 불가능에 가까운 망상이었지만, 민주주의를 수호하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올라가기에는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가 너무도 거대하고 암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래, 여기에서는 눈 딱 감고 우주군에 임관하자. 아예 벤 체스터에게 요구해서 팔란티오 행성의 공략 작전을 내가 직접 지휘하게 해달라고 그러지 뭐……그 편이 훨씬 더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고 출세도 빨라지고 말이야.’

긴 고민 끝에 그렇게 결정을 내린 류안은 그에게 받은 연락처로 통신 단말기를 사용해서 연락을 보내려고 했지만, 다음 순간에 그를 찾아온 3번째 방문자가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전달받고는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대대장님! 지금 대대본부의 입구에 마그누스 자치령에 부임하신 신임 대사님께서 당도하셨습니다.]

“뭐? 연락도 없이 벌써 도착하셨다니……아, 아니지. 알았으니까 일단은 통과시켜드려. 지금 곧바로 마중하러 갈 테니까……”

원래대로라면 스카우터와 마찬가지로 착륙장에서 마중했어야만 하는 외교대사가, 갑작스럽게 대대본부의 입구로 당도했다는 소식을 들은 류안은 부하들을 이끌고 허겁지겁 그녀를 마중하러 나갔다.

“처음 뵙겠습니다. 류안 중령님……제 이름은 아네타 제시워즈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자, 잘 부탁드립니다.”

화사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악수를 건네 오는 신임 대사는 검은 정장에 차분하게 정돈되어있는 보라색의 올림머리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매력적인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하지만 류안이 말을 더듬은 이유는 단순하게 그녀가 미녀라는 사실 때문은 아니었다.

아네타의 곁에서 그녀를 수행하고 있는 2명의 군인들이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잭……거기에 레베카라고? 도대체 너희들이 왜 신임 대사와 함께하고 있는 거야?’

자치령에서 군대를 훈련시켜야 하고 있어야 하는 잭이 자신의 눈앞에 서있는 것도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율리안과 함께 2사단의 궤도사령부에 있어야 하는 레베카가 그녀를 경호하고 있는 것도 당황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자신과 눈을 마주치자 대답 없이 얼굴을 붉히면서 시선을 돌려버리는 그녀.

일단, 그가 걸어놓은 영혼의 각인은 건재해 보였다.

“레베카양은 잠시만 바깥에서 대기해주시면 좋겠네요. 류안 중령님과 집무실에서 긴밀하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절도 있게 경례하면서 물러나는 레베카를 뒤로하고 류안은 의구심에 휩싸여서는 잭과 함께 그녀를 자신의 집무실로 안내해 왔다.

“다시 한 번 환대에 감사드려요. 공화국의 떠오르는 영웅이신 류안 중령님과 함께 행동하게 될 것을 생각하니 여러 가지로 기대가 되네요……후후후후.”

평소였다면 유혹하는 것 같은 미녀의 웃음소리에 “저도 여러모로 기대가 됩니다.”라고 대답하면서 맞대응을 할 그였지만, 외면하려야 도저히 외면을 할 수가 없는 잭의 존재감에 결국에는 의문을 토로하고 말았다.

“죄송하지만……제 부하와는 어떻게 동행하게 되신 겁니까?”

“아, 잭 대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잭……대위요?”

난데없는 계급장에 눈에서 레이저를 쏘며 잭을 노려봤지만, 그는 철면피를 깐 것처럼 일말의 당혹감도 없는 무표정으로 그것에 대응해 왔다.

‘너 이 새끼, 혹시 방위군에서 복직시켜준다고 유혹해서 배신하고 갈아탄 거냐? 이건 계약 위반이야, 계약 위반! 나중에 위약금을 천문학적으로 뜯어줄 테니까 각오하고 있어……’

하지만 그의 그런 마음을 읽었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입을 열면서 대답해오는 잭.

“죄송하지만 대장님. 저는 처음부터 이 분의 지시를 받고 당신에게 접근한 겁니다.”

“……뭐?”

“그리고 그렇게 접근한 것은 저 혼자만이 아니었습니다.”

뚜벅뚜벅.

다음 순간에 류안의 옆에 서있던 스피아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조용하게 걸어가서 아네타의 곁으로 다가가서 진영을 바꿔버리고 말았다.

통수에 통수.

순식간에 자신이 가장 신뢰하던 부하 2명이 배신하는 광경을 목격해버린 류안은, 다음 순간에 천둥처럼 들려오는 아네타의 이야기를 듣고는 가장 큰 충격과 분노에 휩싸이며 절규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저는 사실 남자입니다.”

“젤나가 맙소사, 말도 안 돼!!!!!!!!”

세상이 끝난 것처럼 울부짖는 그의 모습에 살짝 당황해버린 아네타는 고개를 귀염게 갸우뚱하면서 잭을 향해서 귓속말로 속삭여 나갔다.

[농담 치고는 별로 재미가 없었나요?]

============================ 작품 후기 ============================

17kb이라니 젤나가 맙소사...

아네타가 누군지 이름만 듣고 정체를 알아채시는 분들은 정말로 대단하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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