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209화 (209/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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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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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뺨맞고 어디에서 눈을 흘긴다는 말처럼, 류안에게 당한 길로틴의 분노는 6사단 헌병대대를 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빌어먹을 은혜도 모르는 후레자식 같으니라고! 범죄자 부대에서 오늘내일하던 녀석을 여기까지 키워줬더니 뭐가 어째?”

쾅!

대대장의 CP를 점거하고는 책상을 걷어차며 깡패처럼 행패를 부려대는 길로틴과, 그런 그에게 마치 왕을 대하는 신하처럼 엎드려서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헌병대장의 초라한 모습.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에서 펼쳐진다고 보기에는 터무니없이 수직적인 상하관계가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광경이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실행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지나치게 자연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젠장,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하필이면 길로틴에게 찍히다니 이대로 냉동감옥으로 떠나겠구나. 여보, 찰스야……못난 아빠라서 미안하다.’

그의 행패에 눈물까지 찔끔거리는 헌병대대장.

상위부대의 최고지휘관이 연락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왔으니 영접준비가 소홀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미리 연락을 받고 만전의 준비를 갖춰놨다고 해도 현재의 길로틴을 만족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가 방문한 지 불과 10분 만에 7명에 가까운 대대원들이 군기불량으로 즉결처분을 당했고, 엔포서들이 마치 군사작전을 펼치는 것처럼 행정반과 보급반, 심지어는 사병들의 내무실까지 쳐들어와서 이 잡듯이 꼬투리를 잡아대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런 폭거에도 불구하고 어디에다가 길로틴의 행사에 감히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남아있는 방법은 그저 엎드려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방법 뿐.

“닥쳐, 이 무능한 새끼야! 군대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할 네놈들이 전부 다 이 모양 이 꼴이니까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하는 거다! 관행이 어쩌고, 여건이 어째? 누구보다도 규율을 지켜야 하는 새끼들이 그 따위 변명을 지껄여?!!”

쾅!

길로틴이 집어던진 재떨이가 지근거리에서 박살나자 찍소리도 하지 못하면서 움츠러드는 헌병대대장.

모든 것이 끝장났다는 생각에 절망감으로 하늘이 노래지는 착각을 겪고 있는 그에게 어느 사이엔가 다가온 제시카가 귀띔으로 그를 구원해 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준장님께서 지금 심기가 불편하셔서 그러는 거니 나중에 이성을 되찾으시면 제가 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덕분에 하늘이 환하게 밝아지는 착각에 사로잡힌 그는 눈물이 핑그르르 도는 것을 느끼는 헌병대대장은 그녀를 올려다보며 감격해버리고 말았다.

‘이 분이 여신인가?’

그렇게 한 남자를 또다시 자신의 신도(?)로 만들어버린 제시카는 헌병대대장을 다독거려서 밖으로 내보내고는 흥분하고 있는 길로틴을 진정시켜 나갔다.

“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준장님. 아직 우주군이 그에게 어떤 제안을 할지는 확정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운이 좋으면 그렇게 심각한 사태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도……”

“하! 총명한 줄 알았더니 젊은 녀석들이 생각하는 건 전부 다 거기에서 거기인 모양이군. 태평하기 이를 데 없는 율리안도 그렇고 녀석들이 얼마나 악랄한 녀석들인지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우주군은 절대로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아! 녀석들이 이번 상황을 단순하게 스카우트 행위만으로 끝낼 것 같으냐?! 젠장……그 자식은 계획대로 죽음에게 살해당했어야 하는 건데……”

우주군의 스카우터가 류안에게 관심을 보인 것은 그가 13구역을 중대 하나로 해방시킨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단지 그 시점에서 개입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전쟁을 진행하는 국가의 인재를 빼돌리는 행위는, 가맹국들의 자치권을 침탈하는 행위기도 했거니와 그런 리스크를 무릅쓰고 영입하려는 시도를 할 정도로 그가 대단한 인재라는 판단을 내리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가온 공화국의 정부와 간을 보면서 그를 주목하고 있었지만, 그런 우주군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은 류안이 [그람]을 사용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설마 녀석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능력을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게다가 무슨 수단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의 일원까지 쓰러트렸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가? 고작 몇 달 사이에 그런 괴물이 되어버리다니……아니, 어쩌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숨기면서 조롱하고 있었던 것인가? 젠장……”

우주군은 류안을 스카우트하기 위해서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번 일을 벌였다.

그리고 그렇게 작정하고 나온 이상은 자신들이 투자하는 것 이상의 대가를 받아내려고 할 것이 틀림없었다.

다름 아닌 가온 공화국 자체에게서…….

“녀석의 집무실에 장치해놓은 도청장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나?”

“네, 도청장치만이 아니라 감청팀 또한 대기하고 있습니다.”

“좋아, 부관의 말대로 일단은 스카우트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지켜봐주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길로틴의 눈동자는 타오르는 불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류안, 네놈이 어째서 이 타이밍에 루치아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하는 것들을 모두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만약에 네놈이 주제를 모르고 과분한 대가를 바란다면 그때는……’

***

한 편, 길로틴이 자신의 집무실에 감청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해낸 류안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하여간에 저 양반은 자신의 수법에 발전이 없어요. 집음기랑 도청장치를 사용하는 감청이라니 무슨 냉전시대 스파이들도 아니고……보아하니 얌전하게 루치아를 내놓을 생각도 없어 보이는데. 결국에는 실력행사로 나가는 수밖에 없나?’

제시카로부터 그가 루치아의 심상세계에 봉인하고 있는 드림 이터라는 악마를 자신의 사역마로 만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들은 류안은, 그 과정에서 루치아가 살해당할 거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이번 제안을 꺼냈다.

‘루치아의 전투능력과 용안이라면 엑스는 물론이고 남아있는 죽음의 일원들에게 대항하는 카드로는 충분하고도 남겠지. 거기에다가 그동안 미뤄왔던 드라코니안 나이트로 진화하는 특전까지 차지할 수가 있잖아? 이번 기회에 팔란티오 행성을 씹어먹을 수 있는 전력을 만들어주지…….’

거기까지 생각을 하던 류안은 일단은 길로틴이 자신의 요구에 대해서 검토할 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일단은 감청 시도를 알면서도 눈감아주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에 선착장에 우주군을 상징하는 화려한 휘장이 수놓아진 사절단의 배가 착륙 신호를 보내왔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트라이엄프 부대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허, 우주군의 스카우트 제의라니 대장님이 출세하기는 출세를 하셨네. 네버랜드에서 창녀들하고 어깨동무하면서 낄낄거리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우주군에 임관하는 게 뭐가 그렇게 큰일이라고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떠는 거야?]

[멍청한 새끼야, 너는 뉴스도 안 보냐? 시험을 봐서 우주군에 임관하는 거랑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말이야. 게다가 이번 영입은 야구로 치면 대장님이 FA권한을 얻는 거나 마찬가지라고……물론, 어디까지나 우주군이 연맹을 움직여서 만들어낸 판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우와, 이 새끼 엄청나게 똑똑한데? 어떻게 그런 걸 다 아는 거지?]

[내부기밀이니까 물어보지 마. 그나저나 대장님이 영전하시면 우리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부대를 해체해버리는 건……]

[에이 설마……함장에 취임하시면 승무원이나 해병대로 차출해서 우주군에 데려가시겠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승무원 좋아하고 있네. 자격증도 없는 우리 같은 범죄자 출신의 돌대가리들을 대장님이 뭐가 아쉬워서 승무원으로 데려가시겠냐? 젠장, 기껏 제대로 된 부대에서 돈 좀 만져보나 했더니……빌어먹을.]

[너무 그렇게 비관하지 마. 아직 대장님이 우주군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들인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혹시 알아? 대장님께서 우리들을 전부 다 고용해주실 지도 모르는 거고……그 분이 여자관계는 너저분해도 의리 하나는 끝내주잖아.]

[그건 그렇지만……그래도 우주군이라니?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실감이 나지를 않는데……]

부대원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호의적이었지만 우주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피부로 실감되지를 않는지, 혼란스러워하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반응은 자치령이나 카슬란 조합, 주변 지인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온갖 사람들이 그에게 연락을 보내오면서 의중을 물어보느라 난리도 아니었다.

[설마 자치령군의 사령관직을 때려치우고 우주로 가려는 건 아니겠지?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주게, 응? 자네와 내 사이가 아닌가……]

[크흠, 대장님. 사실은 제가 오랫동안 대장님을 흠모해오고 있었습니다. 숨겨왔던 나의……]

[뭐, 자네라면 알아서 현명하게 판단을 내리겠지만……호, 혹시 신형 전함을 받기라도 하면 한 번 뜯어보게 해주지 않겠는가? 예전부터 꼭 한 번 전함을 뜯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그리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얼떨떨해하는 것은 아일라의 허락을 받고 잠시 동안의 외출허가를 받고 격리시설을 나온 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스카우터로 방문하는 사람이 천족의 피가 섞여져 있는 스캔사의 CEO인 벤 체스터라는 사람이라는데? 왜 우주군의 스카우터가 대기업의 CEO인 거야? 게다가 천족의 피가 섞여져 있다면 크로이츠 법국의 사람 아니야?”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 건 알겠는데……뭐, 자세한 내용은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면 감이 올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남자 친구의 체면 구기지 말고 얌전하게 있어. 알았지?”

“으, 응. 얌전하게 있을게.”

중요한 자리라는 자각은 있는지, 정장 차림에 평소와는 다르게 긴장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한 그녀.

이번 면담에서 류안과 동행하는 사람은 경호원인 스피아와 아트리에, 그리고 류안에게 촉수로 휘감겨져서 영체화를 한 상태로 보이지 않게 능욕당하고 있는 죽음(현재는 엑스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과 탈리아가 함께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절단의 배의 문이 열리면서 긴 금발머리와 안경, 새하얀 슈츠를 차려입은

미남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꺄아아아아악!

그 모습에 터져 나오는 여자들의 환호성.

[나 저사람 잡지에서 봤어! 모델이자 패션 디자이너인 청년 CEO잖아!]

[벤 체스터님 이쪽으로 손 좀 흔들어주세요!!]

‘젠장, 또다시 여자들의 환호성을 휘어잡는 남자새끼의 등장이라니……좋아, 나도 기세에서 질 수는 없다. 가면을 벗어던……’

하지만 그의 심리를 간파한 아트리에와 탈리아가 양쪽에서 그의 손을 붙잡으면서 나직하게 경고해 왔다.

“하지 마. 체면 구기지 말라고 했잖아…….”

“부디 중요한 자리에서는 체통을 지켜주십시오. 대장님……”

“쳇……”

불특정 다수의 여자들에게서 환호성을 들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또다시 놓쳐버린 류안이었지만, 벤 체스터는 사람들의 환대를 능숙하게 받아들이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에게로 다가와 정중하게 인사를 해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류안 중령님. 우주군의 스카우터이자 스캔사의 CEO인 벤 체스터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바쁘신 와중에도 면담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보잘 것 없는 능력을 높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하하하! 실력도 실력이지만 겸손하기까지 하시니 더욱 더 마음에 드는군요. 부디 이번 면담에서 서로 간에 만족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았으면 좋겠군요.”

유쾌하게 웃으면서 류안과 악수를 나누던 벤 체스터는 그 상태에서 그를 끌어안고는, 귓속으로 조그마한 목소리로 의미심장하게 속삭여왔다.

[당신과는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특히나 ‘죽음’을 생포하신 일에 대해서는 꼭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군요.]

============================ 작품 후기 ============================

휴재하고 싶다....

지금도 휴재하고 싶지만 더 격렬하게 휴재하고 싶다...

아, 그냥 혼잣말입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흑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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