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1 ----------------------------------------------
지상편
“재미있는 상황이라고?”
카프의 반문에 류안은 차를 들이마시며 가볍게 뜸을 들였다.
“이 뒷이야기를 말씀드리기 전에 한 가지만 질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만약에 카프님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을 잡는다면 무엇을 하실 겁니까?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자신이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해도 된다면 말입니다……”
“나는……”
그의 질문에 한동안 팔짱을 끼고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들면서 선언하듯이 외쳤다.
“소고기를 실컷 먹고 싶다!!”
“……그리고요?”
“소고기에 맥주를 곁들여서 질릴 때까지 먹고 싶다!”
‘드워프냐?!’
하이엘프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주제에 자신의 소원은 오직 소고기를 사먹는 게 전부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그녀.
덕분에 절대 권력을 잡으면 사회적으로 말살당해도 할 말이 없는 이런 추악한 짓들이나, 저런 추악한 짓들을 마음껏 저지르는 게 소원이었던 류안은 그녀의 순수하고도 눈부신 소원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힘들어졌다.
“크흠, 그게 전부라면……”
“그리고……”
본론으로 들어가려다가 다시 운을 띄우는 카프에게 먼저 말하라는 제스처를 취해보이는 그.
“전 은하에서 가장 크고 강한 마장기를 만들어보고 싶다!”
“……기동요새가 아니라 마장기를요?”
“뭐, 솔직하게 말하면 마장기를 아무리 강하게 만들어봤자 기동요새에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그래도 역시 메카닉의 로망은 마장기가 아니겠느냐? 로스탐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보다 강력한 SSS급 이상의 마장기를 만들어보고 싶다! 전 은하에 존재하는 로스트 테크놀로지들과 신의 금속들을 마음대로 활용하면서 말이다!”
‘이번에는 확실히 소원의 규모가 커지기는 했군.’
전 은하에서도 매장량이 kg단위를 넘어가지 않는다는 신의 금속들이나, 잘못하면 우주의 질서와 균형을 파괴해 버릴 수도 있다고 전해지는 로스트 테크놀로지들을 마음대로 다뤄보고 싶다는 발언에 역시나 드워프, 아니 메카닉이라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류안이었다.
“뭐, 좋습니다. 어쨌든 이 솔론의 수제자는 소고기를 자신의 마음대로 씹고 뜯고 맛보고 싶어서 스승을 배신하고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권력을 차지하고 나자 그는 자신이 소고기를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왜냐면 자신의 곁에 언제든지 소고기를 뺏으려고 포크와 나이프를 갈아대는 굶주린 늑대들이 가득했으니까요.”
“고기를 빼앗아 먹으려고 하다니 이런 쳐 죽일 놈들!”
소고기가 빼앗긴다는 말에 지나치게 격하게 반응하는 그녀의 모습에, 류안은 언젠가는 꼭 소고기를 배터지게 먹여줘야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이야기를 다시 원래의 논점으로 진행시켜 나갔다.
“그가 소고기를 빼앗길까봐 두려워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했습니다. 왜냐면 그 소고기는 원래부터 그의 물건이 아니었고 속임수로 빼앗아 온 거니까요. 그러니까 원래 주인들이 소고기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게 두려워졌고, 누군가가 소고기를 빼앗아 가는 것도 두려워졌으며, 누군가가 자신이 했던 것과 똑같이 소고기를 빼앗아 갈 까봐 두려워졌습니다. 마치,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고 소고기를 가져가려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죠. 그런 상황이라면 누가 제정신으로 소고기를 즐기고 있겠습니까?”
“으음, 그, 그건 생각해보니까 무섭기는 하구나……”
고기 파이터들에게 둘러싸인 상상이라도 했는지, 아니면 힙겹게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들고 돌아가는 도중에 밥 사달라고 외치는 후배들에게 포위당하는 상상이라도 했는지,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는 소고기를 다시 내놓으면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나는 이 소고기를 혼자서 독식하려고 여러분들에게서 빼앗은 것이 아닙니다. 단지, 여러분들이 소고기를 두고 다투는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공정하게 나눠드리기 위해서 소고기를 가져간 겁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우리 스승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따라서 공평하게 소고기를 나눠먹도록 합시다.”라고요……”
“……뭐, 그렇게 웃기는 녀석이 다 있느냐?”
“웃기기는 하지만 독재자들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만들어내는 방법에는 그렇게 많은 수단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곧 국가라던가,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면서도 국민들에게는 자신만이 그들을 지킬 수 있고 그들을 위하는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니까요. 가끔씩은 그런 거짓말에 자기 자신마저도 속여 넘기는 게 독재자들과 권력자들의 특성입니다.”
“……으음, 그렇게 생각하니 조합의 이사들이 왜 그렇게 나왔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어리석은 놈들……자신들의 뿌리를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을……”
“네, 그리고 솔론의 수제자도 그런 아이러니에 당면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솔론에게 의지하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왜냐면 당시에 아테네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그의 배심원 제도를 악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올바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그가 만드는 법과 제도만이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왜냐면 그야말로 아테네에서 누구보다도 올바른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
그쯤에서 그녀는 류안이 하려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쯤에서 눈치를 채지 않으셨습니까? 카프, 이 솔론이라는 사람이 바로 당신과 똑같은 겁니다. 모든 조합원들이 당신이 올바르다는 사실을 알고, 당신의 이상이 숭고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합의 이사들이 나쁜 짓을 저지르려고 하면서도 당신의 눈치를 보면서, 당신에게 허락을 받으려고 계엄령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겁니다. 왜냐면 당신이 허락해준다면 어떤 나쁜 짓을 저질러도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너무도 안일하게 솔론과 마찬가지로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욕망이나 추악한 면을 외면해버리고 그저 알고 보면 착한 사람들이 왜 저러는지를 모르겠다고 말입니다……차라리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십시오! 통제되거나 견제 받지 않는 권력기관이 정의롭게 운영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무리 선량해도 바보라는 소리밖에는 듣지 못하는 겁니다! 카프, 당신의 이상과 정의를 관철하고 싶다면 강해지십시오, 독해지십시오, 교활해지고 준엄해 지십시오! 사람의 탐욕은 끝이 없고 악당들도 끊임없이 성장해가는 겁니다! 그러니 그에 맞서는 정의는 절대로 어설퍼서도 안 되며 어리석어도 안 됩니다. 성장해가는 악에 맞서서 끊임없이 성장하며, 성숙해지며 필사의 각오로 싸워야만 쟁취할 수가 있는 게 바로 정의라는 것입니다!!”
신랄하기 이를 데 없는 류안의 주장에 그녀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완전히 압도당해서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하면서 긴장하는가 싶더니, 이내 무겁기 이를 데 없는 표정으로 변하면서 질문을 던져오는 그녀.
“……그는, 솔론은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느냐?”
“아테네를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 잃어버린 민주주의는 그가 죽을 때까지도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아테네에는 왕이 생겼고 그는 자신이 쌓아올린 모든 것을 정면으로 부정해버린 그를 위해서 일했습니다. 뭐, 현실과 타협해서 아테네의 시민들을 위한 차악의 길을 선택했다고 평가를 해 줄 수는 있습니다. 역사도 그의 한심한 일면보다는 그의 대의와 사상을 인정해주고 있으니까요……하지만 당신은 어떻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이대로 내버려두면 누군가가 카슬란 조합을 끝장내버리고 권력을 차지할거라고 생각됩니다만……그것을 지켜보실 겁니까? 아니면 이상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발버둥을 쳐보실 겁니까? 개인적으로는 후자를 선택한다면 얼마든지 도와드릴 의향이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그대는, 그대는 도대체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모든 사람들이 욕망을 가지고 있다면 그대에게도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 목적이 있을 게 아닌가……”
그 질문에 류안은 유쾌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까 전에 말했던 SSS급의 마장기 말입니다……거기 파일럿 자리에 입후보하고 싶다면 어쩌시겠습니까?”
그 말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멍청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카프는 이태 호탕하게 웃으면서 소파에서 일어나 그의 책상을 짚고는 악수를 건네어 왔다.
그리고 목격해 버렸다.
류안의 ‘현자’타임의 실체를…….
***
다음 날.
카슬란 조합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책임을 회피하던 태도와 수동적인 대응방식을 버리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며 서머벨 정거장의 시민들과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을 불러 모아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개최했다.
그리고는 희생자들의 영전을 걸어놓고 헌화하면서 레더 조합장과 카프를 비롯한 모든 이사진들이 참석해서, 상복을 차려입고 영전에서 예의를 갖추었으며 유가족들을 향해서 엎드리며 사죄를 빌었다.
또한 레더를 비롯한 사령부의 책임자들은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시민들의 재판을 통해서 어떤 처벌이라도 감수하겠다는 자신들의 뜻을 밝혔다.
[……모든 것은 제 부족함과 미숙함이 원인이었습니다. 저의 어리석음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저의 어리석음이 시민 여러분들을 위험에 빠트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저는 그 모든 책임을 지고 어떤 처벌이라도 감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그의 모습에 유가족들도 동시에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덕분에 카슬란 조합에 대한 반감으로 흥분하고 있던 시민들의 태도도 누그러졌으며, 엄숙하면서도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식이 진행되어 나갔다.
이후, 새로운 조합장으로 취임한 카프는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탑을 건설하는 한편으로 매년 그들을 기리는 추모식을 카슬란 조합의 이름으로 개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는 조합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시민들을 보호하겠다는 목적으로 조합을 설립했습니다. 하지만 그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모르고 나태해졌고, 교만했으며, 어리석었습니다. 그리고 그 실태가 오늘날의 비극을 만들어냈습니다. 지켜야할 사람들에게 총을 겨누었고 동료들을 배신했으며 자신들만의 잇속을 챙기기에 급급해서 현실을 외면했습니다. 누군가는 조합이 해체돼야만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은 누구에게도 견제 받지 않았고 모든 것을 독점하면서 관리해 왔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정의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하지만 그것은 틀렸습니다. 그리고 그 오만이 바로 오늘의 형벌이 되어서 우리들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녀는 시민들을 향해서 평소의 하대나 건방진 태도를 버리면서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태도로 이야기를 해 나갔다.
그러면서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 대한 보상과 사죄, 재발 방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 카슬란 조합의 구체적인 개혁방안과 구조조정에 대한 청사진을 이야기하면서 시민들이 공감할만한 구체적인 쇄신방안을 제시해보였다.
또한 공정하면서도 신속한 법집행으로 빠르게 질서와 치안을 회복시키는 한편으로, 조합의 창고를 열어서 생필품과 식료품을 나누어주며 땅바닥까지 떨어졌던 신뢰도와 지지도를 단기간에 V자 형태로 회복시키는데 성공해 보였다.
그리고 그 개혁의 대미大尾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자치령과의 연합정부를 구성하겠다는 발표였다.
[카슬란 조합은 기술자들을 대변한다. 하지만 우리는 기술자들만을 대변하는 것이 사회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우리가 전체를 이끌어 갈만한 역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들은 같은 제국인들이 만들어낸 자치령의 도움을 빌려서 서로가 상생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우리들의 새로운 수호신으로서 서머벨 정거장을 지켜내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류안 중령에게 모든 군사지휘권을 위임할 것을 이 자리에 선언한다!]
우와아아아아아!!
카프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순식간에 일치단결한 서머벨 정거장의 시민들은 그녀의 발표에 열광적인 찬사와 지지를 보냈다.
그리고 연설을 마치고 빠져나오는 그녀의 앞에는 가면을 쓴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하우저……우리는 그대가 이끄는 감시대가 도시를 장악하는 것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왜냐면 우리 기술자들만이 모든 시민을 대표할 수 없듯이……그대가 이끄는 경찰 조직이 모든 시민들을 대표해서는 안 되는 거니까.”
[그것 참 아쉽게 되었군요.]
스르릉.
그렇게 대답하는 하우저의 검집에서 새하얀 검신이 뽑아져 나왔다.
============================ 작품 후기 ============================
이렇게 해놓고 다음 편과 다음 다음 편은 번외편입니다. 헤헷...(도망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