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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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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베이스와의 전쟁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세력은 황당하게도 감시대였다.
류안이 그의 본대와 싸우고 있을 무렵, 시가지에서는 증기병들을 탑재한 드릴 라이더들이 요격을 피해서 급습을 감행해 광기의 스테이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당시에 시민들을 보호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던 세력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카슬란 조합이었지만, 사령부가 앞장서서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태는 점점 더 심하게 악화되기만 하고 있었다.
‘사실, 레더 조합장의 경우에는 불쌍한 측면도 있지만 말이야……’
그를 광란에 빠트린 사람은 놀랍게도 같은 조합의 이사 출신으로 제국에게 사로잡혀서 기계강화병으로 인체개조를 당한 드보르작이라는 남자였다.
그는 드릴 라이더에 탑승해서 레지스탕스들의 요격을 피해 시가지로 진입해 들어왔는데, 그를 처치하려고 몰려든 수비대에게 무저항으로 항복하면서 주저 없이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나는 카슬란 조합의 이사 드보르작이다. 비록 내 몸은 제국군에게 개조 당했지만 나의 정신은 온전하게 나의 것이다. 그러니 동지들이여, 형제들이여, 나의 이름과 신념을 기억하고 있다면 부디 목숨을 걸고 도망친 나의 의지를 레더 조합장에게 전달해다오. 그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극비 정보를 가지고 도망쳐 왔다.]
그의 호소를 듣고, 그가 진짜 드보르작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수비대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대부분은 기계강화병을 믿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면서 반대하고 나섰지만, 평소에 강직하기로 유명했던 그의 명성과 인품, 그리고 그의 비참한 몰골을 보고는 독하게 마음을 먹지 못했던 수비대의 지휘관이 레더에게 그의 말을 그대로 전달해주고 말았다.
같은 동정심에 휩싸이기는 그 또한 마찬가지.
드보르작과는 개인적으로 30년 지기의 친구이자 뜻을 같이하는 동지였던 그는 연민의 감정에 휩싸이면서, 자신의 식구를 별다른 의심도 없이 사령부로 들여보내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자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건가……]
[미안하네, 친구. 이게 다 자네를 위한 일일세……]
펑!
그리고는 아니나 다를까 그와 대면하자마자 체내의 수증기 폭탄을 터트려버리는 드보르작.
덕분에 현장에 있던 사령부의 컨트롤 센터는 완전히 광기에 사로잡혀서 레이더와 통신기능을 장악하고는 온갖 정신 나간 명령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그 혼란을 감지하고는 콘트라베이스가 심어놓은 공작원들이 차근차근 사령부를 제압해 나가기 시작했는데, 덕분에 미니게임의 효과로 광기의 스테이지가 내려간 이후로도 레더는 사령부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무력화되어 미쳐 날뛰는 카슬란 조합을 대신해서 혼란을 수습하고 민간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낸 세력이 바로 하우저가 이끄는 감시대였다.
그는 류안과 마찬가지로 증기가 광기를 만들어내는 매개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신속하면서도 정확한 조치를 내렸고, 이성이 남아있는 조합원들과 감시대원들을 이끌고 적의 증기병들과 레지스탕스의 광란에 맞서서 질서를 회복시켜 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령부를 탈환해서 레더를 확보하는 전과를 올렸는데, 덕분에 그는 서머벨 정거장을 구원한 진정한 영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끄응, 재주는 내가 넘었는데 또 엉뚱한 놈이……이거야 완전히 율리안 때하고 판박이잖아? 젠장, 눈앞의 활약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가장 큰 전공을 세웠지만 또다시 스포트라이트의 바깥에서 활약했다는 이유로 손수건을 물어뜯으며 질투로 몸부림치는 류안.
어쨌든 이번 전투에서 그가 목표로 삼은 것은 그를 반신반의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전쟁수행능력을 입증해 보이는 것이었고, 그 목표는 훌륭하게 달성되었지만 성과는 성과였고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었다.
하우저와 감시대가 그렇게 부각된 이유는 당연하지만 카슬란 조합의 폭주로 발생에 피한 반대급부라고 볼 수가 있었다.
이번 전투로 제국군이 입은 피해는 사상자 2만에 포로가 2만.
거기에 20만의 드릴 라이더들이 절반 이상이 파괴당했으니 적의 선봉대는 사실상 궤멸 당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었지만, 이 수치는 서머벨 정거장에 있는 동맹군들이 입은 피해에 비교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한 수치였다.
그나마 자치령 연합군이나 6사단은 적은 피해로 제각각 성과를 거두었으니 논외로 친다고 하더라도, 레지스탕스가 입은 피해는 사망자 6만에, 부상자가 10만.
이들 중에서 절반 가까이는 아군에게 총격을 당해서 입은 상처였기 때문에, 전투가 끝나고 난 다음에도 서로에 대한 불신감과 조합에 대한 배신감에 휩싸인 이들이 도망치듯이 조합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성을 잃어버린 사령부의 광기어린 명령 때문에 민간인 학살까지 자행되고 말았는데, 그 명령을 의심 없이 수행한 사람들 때문에 무려 5만 명이 넘는 무고한 시민들이 학살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나중에 이성을 수습한 조합은 재빠르게 제국에 의한 계략으로 발생한 불행한 사고라고 해명하고 나섰지만, 가족을 살해당한 시민들에게는 불에 기름을 부어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어설픈 태도로 공분을 사고 말았다.
급기야 지난밤에는 수십만에 이르는 시민들이 몰려나와 조합의 본부를 포위하고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민간인들을 학살한 레더 조합장을 처형하라! 카슬란 조합을 해체하라!!]
[무능한 레지스탕스는 물러가라!]
[사로잡은 제국의 포로들을 모조리 처형해라, 가족들의 원한을! 동지들에 대한 복수를!!]
급기야는 흥분한 메카닉들이 워커나 드론, 총기까지 가져와서 수비대를 공격하면서 총격전으로까지 발전해버리고 말았다.
조합의 진압대가 악전고투 끝에 수백 명의 사상자를 만들어내면서 어떻게든 그들을 물러나게 만들었지만, 성난 군중들은 밤새도록 거리를 휩쓸고 다니면서 카슬란 조합의 지점과 배급소를 공격하며 약탈과 방화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조합원들을 붙잡아서 거리로 끌고나와 그 자리에서 총살, 또는 화형까지 벌이는 마녀사냥을 시작했는데, 급기야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사태를 진정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그들은 6사단과 자치령 연합군, 심지어는 감시대에게까지 지원을 요청해서 간신히 그 난리를 진정시킬 수가 있었다.
조합의 회의에서는 계엄령을 선포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카프가 분노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외쳤다고 한다.
[네놈들이 그 따위 짓거리를 저지른다면 나도 더 이상은 조합에 연연하지 않겠다! 지금 네놈들이 대립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네 친구들이자, 연인, 가족, 동료들이 아니냐! 상처를 입고 아프다면서 울부짖고 있는데 그것을 치료해줄 생각은 하지 않고, 거기에 총구를 겨누겠다고?! 그게 조합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꺼낼 말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마땅한 대안이……]
난색을 표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던 그녀는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류안의 대대본부를 찾아왔다는 소리다.
‘그렇게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치고는 느긋해 보이지만 말이지……’
집무실 의자에 앉아있던 그는 여전히 아트리에게 펠라치오 봉사를 받고 있었다.
그 나름대로는 이런 행위가 복잡한 머리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는 행위였지만, 만약에 카프가 알았다면 그 성질머리에 두 번 다시는 류안을 찾아오지 않을만한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일.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그녀는 소파에 앉아서 인내심을 겨루는 것처럼 그에게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무언의 압박을 보내오고 있었다.
[나를 스카우트하고 싶으면 현재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을 내놓아라!]
“……조직을 운영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는 걸 이해하셨습니까?”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원래는 다들 성실하고 좋은 녀석들밖에 없었는데……어쩌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지……이사라는 놈들이 다들 자신의 안위밖에는 생각하지 않고, 파벌이나 만들어서 권력다툼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도대체 뭐하자는 짓거리들인지……”
“사실, 제가 보기에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지만 말입니다……제대로 된 제도도 없이, 어설프게 민주주의를 흉내 내면 금방 바닥을 드러내니까요.”
“……내가 알기로는 자치령이나 공화국의 상태도 딱히 좋아보이지는 않는다만?”
“그래도 우리 연맹은 제국에서 독립해서 수백 년 동안이나 다양한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해 왔습니다. 뭐, 그래도 현재 연맹에서 언론의 자유나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국가가 20%도 안 된다는 게 한심스럽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음, 생각해보니 마스터 카프에게 들려줄만한 좋은 이야기가 있군요.”
“좋은 이야기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깜찍하게 의문을 표시하는 그녀에게 류안은 웃으면서 전생에 존재하던 한 역사적인 사례를 들려주었다.
“먼 옛날에 어떤 나라에 아테네라는 조그마한 도시국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솔론이라고 불리는 아주 훌륭한 입법자가 살고 있었죠, 그는 역사상 최초로 배심원제도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재판을 할 때 다수결로 판결이 결정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왜냐면 그는 자신과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시민들은 선량하다고 믿었고, 다수결이야말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류안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프는 솔론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왜냐면, 그녀 또한 순박하기 짝이 없는 메카닉들이 펜져스들의 착취에서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것을 목격하고는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조합을 설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고통을 겪은 메카닉들로 이루어진 조합이 그들을 위해서 일할 거라고 믿었고, 15구역의 도시들을 해방시키면서 조합이 권력을 잡는다고 해도 그들의 정의는 계속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펜져스보다는 나은 조직일지는 몰라도 그들의 행동이나 의사결정은 자신의 이상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결정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지?”
“결과적으로 그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다수결로 모든 정의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파벌을 만들어서 다수를 차지하려고 권력다툼을 시작했으니까요. 같은 파벌에 속한 사람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무죄로 만들어버리고 다른 파벌에 속한 사람은 죄가 없어도 재판으로 찍어내려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솔론의 정신을 거의 유일하게 이해하고 있던 수제자는 그가 만든 제도를 악용해서 민주주의 자체를 끝장내버리고 말았죠.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 사건이 민주주의 실험에서 일어난 첫 번째 비극이자, 아직까지도 제기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카프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마를 붙잡더니 류안을 무시무시한 눈초리로(그의 입장에서는 그것마저도 귀엽게 보였지만)째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지금 네놈은 민주주의에는 희망이 없으니까 조합의 다른 멍청한 놈들처럼 계엄령을 선포하라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그렇게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니까 아직까지도 당신이 미숙하다는 소리입니다. 당신이나, 카슬란 조합 자체가 말입니다……”
“……끄응, 알았으니 계속해 보거라.”
“뭐, 상황적으로 보면 솔론이 실패했고 독재자가 탄생했으니 민주주의가 패배한 게 아니냐고 볼 수도 있지만……정말로 재밌는 상황은 그 다음부터 일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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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화까지는 스토리 진행하고 202화부터 번외편을 보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