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198화 (198/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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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그람의 충격으로 매몰지에는 거대한 원통형의 통로가 만들어졌다.

통로의 외곽부위는 용광로에서 꺼낸 시뻘건 쇳덩어리처럼 붉게 달아올랐다가 공기와 접촉하면서 차갑게 식혀지며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사방이 아지랑이와 연기로 가득해지면서 한 치 앞도 확인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적과 아군, 그 누구도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 모두가 오직 그 상황을 만들어낸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크하하하핫! 이 무슨 괴물 같은 녀석이……]

‘살아남았나? 콘트라베이스……’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하반신과 왼쪽의 팔이 날아가 버린 오르카에 탑승하고 있는 콘트라베이스였다.

그는 그람의 표적이 된 괴물 전차에 탑승하고 있었지만 동물적인 감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는 긴급탈출로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처럼 재빠르게 도망칠 수 없었던 수천의 제국군들은 그 공격에 휘말려서 흔적도 없이 소멸 당했고, 대부분의 중무장 열차들과 마장기들이 상전이포와 함께 박살나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그들이 전멸을 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류안이 처음부터 대량살상을 피하기 위해서 마장기 같은 거대병기를 기준으로 조준점을 높게 잡았던 것이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는 그람이 워낙에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태양처럼 뜨거운 고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덴프로스트 효과를 일으키면서 접촉면 바깥의 제국군들을 살려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멸을 면했다고 전의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 악마다……]

[전능하신 헨드릭 황제시여 제발 구원을……]

[퇴, 퇴각! 전군 퇴각하라!]

콘트라베이스가 만들어낸 광란으로 이성을 잃어버리고 날뛰던 제국군은 미니게임의 효과로 정신을 되찾는 것과 동시에, 로스탐이 만들어낸 파괴의 결과물에 공포에 사로잡혀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기계강화병들과 콘트라베이스의 친위대로 보이는 제국군들은 전열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누가 봐도 대세는 이미 기울어진 상황.

하지만 류안은 다시 한 번 그람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딱 한 방으로 오른쪽 팔이 날아가 버리고 말았어. 게다나 마나를 90%넘게 빨아먹다니……정말로 터무니없는 물건이군.’

원래대로라면 검의 형태로 소환해야만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류안의 능력으로는 지금처럼 순간적으로 힘을 개방시키는 게 한계.

과거 신화시대에는 신들에게 선택받은 용사들이 그람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고 전해지지만, 그것은 인간의 규격에 맞춰서 재구성한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그가 사용하는 것과는 출력부터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브륜힐트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면 은하를 정복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는 않을 텐데……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지.’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류안은 타이밍을 놓쳐버리기 전에 기체를 후진시키고는 제국군을 완전히 끝장내기 위해서 워게임을 가동시켰다.

[미헌 대령님.]

[뭐, 뭔가?]

[실례가 아니라면 자치령군과 함께 6사단을 제가 통제해도 되겠습니까? 적들이 도망치고 있습니다만……]

[……아, 아니. 그게……미, 미안하네. 철썩! 크, 크흠! 내가 잠시 한눈을 팔고 말았군. 자네가 사용하는 워게임이라는 건가……대략적인 데이터는 받았네. 알겠네. 6사단의 지휘권을 이양해주지.]

그람의 파괴력에 어지간히 놀랐는지 자신의 뺨을 때리면서 정신을 차린 그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협조적으로 6사단의 지휘권을 넘겨주었다.

덕분에 여차하면 강압적인 방법까지도 동원하려고 했던 류안은 미소를 지으면서 단숨에 10만이 넘게 불어나버린 자신의 군대를 거침없이 지휘해 나가기 시작했다.

[자치령 연합군의 총사령관인 류안 중령이다. 6사단의 임시 사령관님으로부터 지휘권이 이양되었다는 소식은 전달받았으리라 믿는다. 지금부터 각 중대장들에게 코드를 발령해 줄 테니 이제부터 모든 명령과 보고는 나를 거쳐서 수행하도록. 이상!]

웅성웅성

[중대급의 모든 보고를 단독으로 처리하겠다고……?]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그런 오퍼레이팅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아무리 전쟁터의 상황이 혼란스럽다지만 이런 무리수라니……]

류안의 능력을 보지 못한 우회로를 지키는 6사단 지휘관들은 어리둥절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그의 가공할만한 능력을 현장에서 목격한 지휘관들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이 사람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국군방송에서도 나왔잖아. 일개 중대로 13구역을 독립시킨 영웅이라고!]

[……확실히 들어본 적이 있어. 게다가 그 율리안 중장이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사람이잖아? 어쩌면 가온공화국 최강의 기사의 제자, 아니. 수제자일지도 몰라!]

[오오오오! 율리안!!]

[율리안, 율리안, 율리안, 율리안!!]

[류안, 류안, 류안, 류안!!]

빠직.

자신의 필살기를 보여줬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과 도매금으로 율리안(그것도 더 높게 평가되어서)울려 퍼지는 것을 목격한 류안의 이마에서 굵은 힘줄이 솟구쳐 올랐다.

그도 그럴 듯이 공화국에서는 거의 신화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면서 그 무력에 대한 위상이나 평가도 부풀려질 대로 부풀려진 남자였으니,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다크호스가 어떤 능력을 보여준다고 그래도 챔피언보다 강하다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정상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몇몇 눈썰미 있는 사람들의 평가는 다를 거라고 생각하면서 위안을 찾으려고 했지만, 미헌을 비롯해서 바로 그 몇몇 눈썰미 있는 사람들의 대화도 입맛이 씁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터무니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군. 보좌관, 조금 전에 류안 중령이 사용했던 터무니없는 병기……아니, 리엑터 시스템으로 방출시킨 충격파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 게 있나?]

[죄송하지만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중령님께서 그 기술을 사용하실 때 모든 카메라와 탐지장치가 먹통이 되는 바람에……아마도 전자기 교란파를 발생시키는 것 같지만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끄응, 레지스탕스라고는 해도 제국의 인재가 개발한 마장기로 저런 터무니없는 기술을 사용하다니……파괴력도 파괴력이지만 전자기 교란파가 제국의 신기술이라면……게다가, 워게임이라고? 하아, 이 사실을 원정대 상부에 어떻게 보고해야 하는지 막막해지는군.]

자신에게 워게임이 설치되면서 도청장치도 함께 세팅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미헌은 류안이 듣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지 그렇게 중얼거렸다.

‘쳇, 역시나 숨겨주는 매너를 발휘하지는 않는군. 뭐 좋아, 어차피 언젠가는 들킬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해놓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이제는 더 이상 단순하게 소모품으로 여기지는 못할 테니까.’

이번 전투에서 승리하고[죽음]을 처단하는 데 성공한다면 원정대도 더 이상은 류안을 쓰고 버리는 패로 취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가치를 더 확고하게 다져놓기 위해서라도 이번 전투에서는 반드시 펜져스 사냥 마크를 추가시켜야만 할 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류안은 부하들을 조종해서 워 게임에 접속해 도망치는 적들을 쉴 새 없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

투쾅! 투쾅! 투쾅!!

투타타타타타타!!!

[크아아아아악!!]

친위대를 주축으로 하는 제국군과 기계강화병들은 적의 노도 같은 파상공세에 맞서서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그 무리의 구심점이라고 볼 수 있는 존재는 부하의 시라이온으로 기체를 바꿔서 지휘를 계속하고 있는 존재는 콘트라베이스.

그의 전략과 전술의 핵심이라고 볼 수가 있는 아르고스 시스템을 회수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전쟁터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자신이 만들어내는 광란을 제어하는 것도 불가능해졌지만 그는 광기에 취한 상태에서도 정확하게 판세의 흐름을 읽어내고 있었다.

“승산이라고는 도무지 보이지를 않는군요. 사랑하는 나의 친위대 여러분들……나를 위해서 여러분들이 힘을 합쳐서 적의 발목을 잡아주십시오! 만약의 경우에는 저 혼자만이라도 살아서 돌아가야 합니다!!”

[그, 그런……콘트라베이스님! 부디 저희들을 버리지 마십시오. 당신이 만들어내는 광란이라면 아직 기회가……]

[맞습니다! 본대는 밀렸지만 저희들에게는 아직 증기병들과 공작병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적 레지스탕스의 사령부가 손아귀에 있지 않습니까? 그것으로 다시 광란의 바람을 일으킨다면 승산이……]

“CLAP! CLAP! CLAP! 이 스테이지는 이미 바닥까지 떨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저 괴물이 만들어낸 공포가 모든 광기를 집어삼켰죠. 퇴장할 시간은 진작 지났습니다. 그리고 그 때를 모르는 배우들은 삼류조차 되지 못하는군요.”

그렇게 말한 콘트라베이스는 빔 캐논을 들어서 자신의 명령에 항변한 두 명의 친위대를 그대로 날려버렸다.

투콰아아앙!

“자신의 배역을 모르시는 분들이 더 있습니까?”

[없습니다, 콘트라베이스님!]

[당신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KAHAHAHAHAHA!!!]

비교적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극소수의 부하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그의 광신도로 이루어진 친위대의 군인들은 유쾌하게 웃으면서, 그의 명령을 따라서 6사단과 자치령군의 연합군을 발목을 잡기 위한 공격을 계속해 나갔다.

그렇다고는 해도 불과 200기가 조금 넘는 마장기들과 1천의 기계강화병들이 전부였으니, 워게임의 버프를 받는 그들에게는 추풍낙엽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작정하고 후퇴를 결심하면서 드랄 라이더들과 증기병들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소모시켰기 때문에 진군에 상당한 걸림돌을 만들어 냈다.

“증기병들을 집합시키십시오! 마지막 상전이 포를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의 명령을 따라서 자기부상레일로 퇴각해가던 증기슈츠를 입은 보병들이 통로를 메우면서 일사분란하게 정렬했다.

그것은 노도처럼 돌진해 들어오던 연합군의 마장기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었지만, 카메라를 통해서 제국군의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대가 상전이포를 들고 있는 것을 발견한 파일럿들은 화들짝 놀라면서 외쳤다.

[사, 상전이포가 대기하고 있다. 전원 산개!!]

단 1기의 상전이포였기 때문에 산개로 피해서 지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으로 외친 것이었지만, 다음 순간에 콘트라베이스가 내린 명령은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목표는 아군의 증기병들입니다! 상전이포 발사!!”

[뭐라고?]

지이이이이이잉!!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그리고 모든 시야를 메워버리는 엄청난 규모의 수증기 폭발이 통로 전체를 뒤흔들어 버렸다.

드릴 라이더들이 만들어냈던 폭발처럼 통로 자체를 전부 다 메워버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거의 전부를 뒤덮으면서 적들을 매몰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생각으로 미소를 지어나가던 콘트라베이스.

하지만 다음 순간에 그의 귓가로 들려온 것은 사신의 목소리였다.

[설마 같은 수법에 당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뭐, 뭣……크으으아아아아악!!”

그의 조종석과 동체를 반쯤 박살내는 것과 동시에 류안이 로스탐의 광학위장을 해제시키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르고스 시스템이 사라지니까 금방 장님이 되어버리는군……서모그래피(열화상 카메라)라도 사용했다면 내가 스텔스 기능을 사용하고 있다는 건 금방 눈치를 챘을 텐데. 방심하니까 이런 꼴을 당하는 거야. 뭐, 이번 전투에서는 나도 할 말이 없기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자치령의 마장기 부대가 그를 수행하고 있던 마지막 친위대와 후방의 부대를 완전히 박살내버리기 시작했다.

“핫, 하하하하하하! 나의 마지막을 장식해주실 분은 괴물이군요, 좋습니다! 당신이라면 제 목숨을 가져가시는 데 그보다 합당하신 분은 없죠. 하지만……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시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저에게는 다음 심연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펜져스들이 언제나 남긴다는 최후의 저주.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류안은 별다른 감정의 감흥이 생기지 않는다는 듯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 죽일 생각은 없는데……왜냐면 나는 네놈들이 별로 무섭지 않거든. 그래서 죽이는 것보다는 보다 유용한 방식으로 사용하고 싶어. 네가 아르고스 시스템을 사용하는 방식도 인상적이었고 말이야. 그 비법을 알아냈으면 좋겠는데……어때? 협조해 줄 생각이 있나?]

“하하하하하하!! 정말이지 나약한 인간답지 않게 위트가 넘치는 분이시군요. 하지만 당신을 위해서라도 충고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펜져스들은……가능하면 살려두지 말고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죽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오늘 만났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광란의 바람이 당신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가져가버리고 말 겁니다. 게다가 저는 이미 당신의 소중한 물건을 가져갔으니까요……후후후후후.”

[……뭐?]

깜짝 놀란 류안이 그렇게 질문하자 콘트라베이스는 웃으면서 자신의 권총을 꺼내서 턱으로 겨냥해 나갔다.

“광기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당신의 피앙세에게 안부를 전해주십시오……”

탕!

============================ 작품 후기 ============================

여러분들의 말씀대로 확실히 조금 쉬면서 쓰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오늘은 2편 분량의 내용을

진도를 조금 빨리 나가느라고 한 편으로 축소시켜 버렸습니다.

덕분에 전투장면이 조금 싱거워졌는데...

컨디션도 좀 안 좋아서 글도 더 잘 안 써진 것 같기도...크흠.

진도가 조금 더 천천히 진행되어도 괜찮다면 죽음과의 전투 장면은 조금 더 재밌게 써보겠습니다.

코멘트로 의견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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