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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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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의 전황을 전달받은 류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로스탐을 세팅해 나갔다.
카프의 걱정과는 다르게 제국군은 카이오 정거장을 공격할 때와 똑같은 수법으로 쳐들어왔고, 레지스탕스는 그에 대한 충분한 대비를 갖추고 있었다.
적들은 오히려 그 때보다 적은 규모의 군대를 동원했고 반면에 서머벨은 조합의 총본산다운 충분한 군사력과 인력, 그리고 이번 자치령과의 교류를 통해서 충분한 전쟁 물자까지 확보해놓은 상태다.
‘어쩌면 이번 전투에서는 자치령군이 나설 기회는 없을지도 모르지.’
혹시라도 변수가 발생한다면 2가지.
죽음과 콘트라베이스가 이끄는 증기蒸氣병이라는 정체불명의 병사들.
하지만 이때의 류안은 텔넷에서 얻은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나머지, 과거에 가지고 있던 전투에 대한 공포심과 전략적인 감각을 잃어버리고 적의 능력을 지나치게 깔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음 순간에 날아온 아트리에의 급전으로 산산이 깨져버리고 말았다.
[비, 비상입니다. 대장님! 적의 군대가 3차 저지선을 돌파하고 파죽지세로 돌진해오고 있습니다!!]
“……뭐?”
[서둘러서 귀환해 주십시오. 서둘러……치지지직!]
갑작스럽게 통신이 꺼져버린 이유는 4차 저지선이 작전지역으로 들어가면서 재밍이 걸려버렸다는 뜻.
그제야 정신을 차린 류안은 다급하게 카프를 향해서 소리를 질렀다.
“지금 당장 출격해야만 합니다! 추가 무장은 내버려두고 곧바로 정비를 마무리해 주십시오!!”
[저, 적들이 벌써 쳐들어온 것이냐? 아, 아니. 알겠다! 지금 바로 마무리를 짓겠다!!]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탈리아를 비롯한 부하들이 위험에 빠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평소의 여유를 완전히 잃어버리고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회전시키면서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젠장.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마지막으로 들은 전황에서는 분명히 통로를 무너트리고 500명 남짓의 적을 레지스탕스가 포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는데……전세가 역전된 걸로도 모자라서 3차 저지선까지 뚫려버렸다고? 아직 30분도 지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1차 저지선과 2차 저지선을 수비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레지스탕스의 군대다.
지휘체계가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치령군은 자치령군대로, 원정대의 6사단은 6사단대로 3차 저지선과 4차 저지선에 수비군을 전개시켰지만, 지하도시의 방어시스템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주류군은 레지스탕스들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들이 최전선에 서게 되었다.
5차 저지선은 지하 도시와 직결되어있는 중앙정거장으로 다층구조의 모든 선로들이 교차하는 교류지이자, 도시의 심장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지역이었다.
때문에 그 장소가 타격을 받으면 도시기능 전체가 마비되어버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에, 레지스탕스들은 1차 저지선과 2차 저지선에서 반드시 적들을 막아내겠다는 필사의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거기에 3차 저지선을 수비하고 있는 나레드 준장도 추락해버린 원정대의 이미를 쇄신하겠다는 각오로, 거의 전 사단병력을 동원해서 군대를 전개시켜놓은 상태.
‘그 작자는 레지스탕스가 패배하지 않을 거라는 계산을 하고는 그런 보여주기를 위한 쇼를 펼쳤을 거야……하지만 그렇다고 싸워보지도 않고 퇴각하지는 않았을 텐데. 설마, 카이오 정거장처럼 죽음이 다시 개입을 시작한 건가? 젠장, 그렇다면 부하들이 위험하잖아?!!’
쿵!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초조함을 억누르지 못하고 조종석을 내려치면서 분노하는 류안.
그런 그의 심정을 알아채기라고 했는지 때마침 정비완료의 신호가 떨어졌기 때문에, 그는 주저 없기 지지대를 박차고 뛰어나가면서 마장기 수송로의 자기부상 레일로 기체를 띄워 올렸다.
쿠콰콰쾅!
[꺄아아아아악!!]
지나치게 서두르는 바람에 여기저기가 박살나면서 사고에 휘말리는 메카닉들의 비명.
[머, 멍청한 놈! 아무리 상황이 급하다고는 해도 지나치게 서두르지 않느냐?! 진정하고 잘 들어라, 절대로 풀 스로틀은 밟지 말거라. 안전 운전이……]
카프의 통신을 받은 류안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풀 스로틀을 밟아버렸다.
쿠와아아아아앙!!!
제트엔진이 터져나가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단숨에 RPM을 올려나가면서 음속을 돌파해버리는 로스탐.
소닉붐으로 카프의 공방을 한 차례 뒤집어버리는 국지성의 민폐급 재해를 발생시켜버리고는, 주저 없이 4차 저지선을 향해서 질주해 나가기 시작했다.
주변의 풍경이 쏜살같이 흘러지나가며 마구잡이로 흐트러지는 시계.
터무니없는 속도로 가속해가고 있었지만 류안에게는 모든 것이 거북이처럼 느리고 답답하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더 빠르게!’
[푸, 풀 스로틀은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느냐? 멍청한 녀석! 지금이라도 스피드를 줄이거라! 아무리 자기부상 시스템이라도 미사일까지 잡아당기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다음 대회전 구간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밖으로 튕겨져……]
하지만 류안은 조금도 스피드를 줄이지 않으면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대회전 구간의 코너를 단숨에 돌아버리고 말았다.
[복선 드리프트라고?!!]
스타트를 끊은 지 불과 30초.
5km가 넘는 운송로를 단숨에 통과해버린 류안은 4차 저지선으로 통하는 외부 반입로의 격벽 입구로 도착할 수 있었다.
[자, 잠시만 기다리거라 지금 게이트를 오픈해 줄 테니……]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소리냐? 네놈, 서, 설마……]
투시용 열 감지 카메라를 통해서 격벽의 바로 건너편에서 아군과 교전을 펼치는 적 마장기들의 열원을 확인한 류안.
그는 로스탐의 오른쪽 어깨에 장착되어 있는 동력로를 맹렬하게 회전시켜서 곧바로 충전을 완료하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게이트를 향해서 주먹을 내질러 버렸다.
그라비티 쇼크웨이브.
투콰콰콰콰쾅!!
[뭣, 크아아아아악!!]
두께 5m의 강철 대문을 단숨에 날려버리면서 거기에 휩쓸려지는 적들의 마장기들.
[뭐, 뭐야, 저 괴물 같은 마장기는?!]
[아군인가?]
[류안?]
[대장님!]
난생 처음으로 목격하는 특이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로스탐의 등장에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상황을 확인하고 놀라기는 류안도 마찬가지였다.
“적들이……제국군이 아니라 레지스탕스라고?”
아군과 교전을 펼치고 있는 적들은 충격적이게도 녹색의 피아식별띠를 착용하고 제국 장비를 사용하는 군대, 즉. 레지스탕스들이었다.
[젠장, 어디에서 튀어나온 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어라!!]
로스탐을 확인하고는 특공을 감행해오는 2대의 C급 마장기 블루 마린(청새치).
퍼펑!!
그 2기의 머리를 양쪽으로 후려치면서 벽으로 날려 보낸 류안은 자치령군의 보안회선으로 주파스를 변경하고는, 워게임으로 아군을 서포트하고 있는 레드폭스에게 현재의 상태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지금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일이지?”
[죄, 죄송하지만 저희들도 잘 모르겠어요. 갑작스럽게 전방에서 2차 저지선을 수비하고 있던 레지스탕스들이 나타나서 갑작스럽게 공격을 퍼부어대고……]
‘반란인가? 하지만 2차 저지선의 부대가 3차 저지선을 넘어서 공격해 들어오다니. 그것도 겨우 이 정도의 숫자로…….’
눈앞에 있는 적들의 규모는 불과 1천을 넘기지 못했고 무장도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굳이 류안이 서둘러서 달려올 필요도 없이 자치령군 3만으로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을 규모였지만, 그런 전력으로 덤벼들었다는 것도 이상했고 3차 저지선을 통과해서 나타났다는 사실도 수상쩍기 이를 데 없었다.
‘소수의 병력을 우회로로 돌려서 왔다고 해도 방어포탑과 감시망을 피해오지는 못했을 거야. 그렇다면 레지스탕스의 사령부에서 연락을 해줬어야 하는데……뭐가 어떻게 된 일이지?’
“아트리에. 3차 저지선이 돌파 당했다는 정보는 누구에게 들었지?”
[레지스탕스의 전투 사령부였습니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류안은 최악의 가정을 떠올리고는 곧바로 카프에게 통신을 보냈다.
“마스터 카프! 누가 배신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투사령부가 적들에게 장악당한 것 같습니다. 혹시 거기에 있는 군대를 지휘해서 탈환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사령부는 레더 조합장이 직접 지휘를 맡고 있다. 그를 통과하지 않는 명령을 조합원들이 따를 리가 없지 않느냐. 그러니 전투사령부가 적들에게 넘어갈 리는……]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항변하는 순간에 전군의 공용회선으로 사령부의 믿을 수 없는 통신이 날아들었다.
[전 군에게 알린다. 마스터 카프가 레지스탕스를 배신하고 제국과 내통을 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시가지를 지키는 수비대는 지금 즉시 마스터 카프의 공방을 포위하고 그녀를 체포하도록! 저항한다면 사살해도 좋다!!]
웅성웅성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농담이라고 생각하면서 웃어넘길만한 내용이지만 문제는 그런 명령을 내린 당사자가 다름 아닌 레더 조합장이라는 데 있었다.
[마스터 카프가 적과 내통했다고?]
[그럴 리가……]
[하지만 지금 목소리는 분명히 레더 조합장님이었잖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통신단말 너머에서 메카닉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그녀 또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는지,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레더가, 레더가 나를?]
“정신 차리십시오!!”
[!!]
“적이 사용한 방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군에게 혼란을 일으키려는 수작이 분명합니다. 카프님은 지금 즉시 제가 거쳐 온 운송로로 대피하셔서 자치령군에 합류하십시오. 사령부의 문제는 저희들이 해결하겠습니다.”
[아, 알겠다. 지금 합류하도록 하마.]
그의 말을 듣고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면서 대답해오는 그녀.
류안은 남아있는 적들을 정리하고는 부하들을 바라보면서 곧바로 다음 명령을 내렸다.
“레드 폭스! 자치령군과 강화몬스터 군단을 조종해서 3차 저지선의 방비를 굳혀라. 전방이든 후방이든 공격해 들어오는 적들은 모조리 쓸어버려!”
[알겠습니다.]
“아트리에, 스피아! 정글레인저들과 함께 나를 따라와라! 우리들은 앞으로 전진한다!”
[……사령부로 회군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전진합니까?]
“이대로 회군한다면 레더 조합장은 틀림없이 우리들이 배신했다고 주장하면서 최후집결지를 지키는 레지스탕스들에 우리들을 공격하라고 명령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동맹군에게 앞뒤로 공격받을 수도 있는 일. 우리들은 전방에 있는 아군들의 혼란을 수습하고 그들을 규합해서 콘트라베이스를 쓰러트린다.”
[알겠습니다.]
반란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죽음이 어디까지 개입하고 있는지, 하우저가 이 사태에 관련되어 있는지, 다양한 의문과 불안감이 엄습해오고 있었지만, 류안은 불안을 떨쳐버리고는 소수의 특공대를 결성했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최소한 2차 저지선과 3차 저지선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을 게 틀림이 없었다.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를 분간할 수 없는 상황.
스피아, 아트리에, 탈리아, 카티아등을 데리고 약 500여기의 마장기 부대를 이끌고 전진해가던 류안은, 어째서인지 공포영화에서 따로 떨어져 멋대로 행동하다가 킬러싸이코에게 하나둘씩 죽어나가는 스토리가 떠오르면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