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191화 (191/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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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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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의 침공을 확인한 카슬란 조합의 레지스탕스는 곧바로 주둔하고 있는 6사단과 자치령군에 출격요청을 보내어 왔다.

류안의 빈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트리에는 곧바로 매뉴얼대로 4차 저지선으로 군대를 전개시켰고, 그를 호출하기 위해서 군용 통신 단말기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막상 그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니 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려오면서 손이 멈춰버리고 말았다.

“빠, 빨리 연락을 해야 되는데……”

[하앗, 하으으응! 하아아앗! 너무 좋아요, 대장님! 사랑해요오오옷!!]

던전에서 저질렀던 온갖 행위들이 떠오르면서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져버린 그녀.

정신을 차린 순간부터 밤새도록 부끄러움과 창피함으로 몸부림을 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신을 주체할 수 없이 들뜨게 만드는 열기는 도무지 가라앉지를 않았다.

어떻게든 정신을 수습하면서 겨우겨우 아침 조회에 출석했지만 그의 얼굴, 아니 가면을 바라보는 순간에 모든 것이 도로아미타불.

예전에는 보기만 해도 짜증스럽던 그의 새하얀 가면이 너무나도 매끄러웠고, 윤기가 반짝반짝 흐르고, 눈부신 광채가 번쩍거리는 착각에 보좌하는 내내 한 번도 그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면서 얼굴을 붉혀버리고 말았다.

[오, 오, 오, 오늘 이, 일정은요옷! 그, 그게, 그러니까……]

[응? 그렇게 말하면 오늘 일정을 확인할 수가 없는데? 자아, 어서 오늘의 예정을 말해보라고……후후후후.]

[가, 가까이 다가오지 마세요! 가까이 다가오면 스케쥴표를 찢어버릴 거예요?!]

그런 그녀의 반응을 엄청나게 즐기면서 놀려대는 류안.

심술궂기는 했지만 미워하려고 해도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고, 오히려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심코 끌려버리는 그의 마력에 아트리에는 자신이 바닥없는 늪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기분에 사로잡혀버리고 말았다.

‘도저히 연락을 못하겠어. 나란 여자는 어쩔 수가 없나봐…….’

1분 1초가 다급한 상황에서 순정만화에 나오는 사춘기 소녀주인공처럼 자아도취에 빠져버리는 그녀.

하지만 연락을 포기하려는 순간에 류안의 가면이 갑작스럽게 통신 단말기의 너머에서 튀어나와 버렸다.

[아트리에!]

“꺄아아아악!!”

갑자기 나타난 그를 발견하고는 자지러지는 비명을 내지르면서 화면을 꺼버린 그녀.

잠시 후[VOICE ONLY]만으로 연결되어진 단말기의 너머에서 어딘가 불만스럽게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바퀴벌레 보듯이 비명을 질러댈 필요는 없잖아? 어제 던전에서는 그렇게 귀여웠으면서……]

“귀,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도 깜찍하다니! 사모님이 계시는데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돼요!!”

[아니,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는데……끄응, 어쨌든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똑바로 들어! 지금 당장 2사단에 연락해서 아시모프 수송선을 발착장으로 보내달라고 말해. 전군, 철수한다!]

“……네?”

꽃밭에서 뛰어놀며 부끄러워 하다가 터무니없는 명령을 듣고는 화들짝 놀라버리는 그녀.

어째서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렸느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통신 단말기의 너머에서 절규에 가까운 카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 무슨 명령을 내리는 것이냐?! 아무리 신형 마장기를 넘겨 줄 수 없다고 그랬다지만 그것 때문에 군대를 철수시키겠다니……]

그리고 그에 맞서는 류안의 쪼잔한 외침.

[흥! 목숨 걸고 도와주려고 찾아왔더니 저런 정체도 모르는 수상한 가면남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니까 이러는 게 아닙니까?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전쟁 못합니다! 저 삐졌어요, 자치령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삐, 삐졌다니……끄응! 부, 부탁이니 제발 싸워주지 않겠는가? 사실 지원군도 지원군이지만……그것보다는 어떤 수단을 사용해올지 모르는 펜져스를 상대하려면 한 번 승리해 본 경험이 있는 그대의 수완이 절실하다는 말이다.]

[그러면 지금 이 자리에서 선택하세요. 제 핸섬한 가면이 좋습니까? 아니면 저 하우저라는 정체도 모르고 근본도 없는 시장판 짝퉁 가면이 좋습니까? 좋아하는 쪽에게 그 앙증맞은 입술로 키스를 해주십시오, 자! 쪼옥!!]

[제정신이냐앗?!!]

“……”

거기까지 듣고 있던 아트리에는 무심코 통신을 종료해버리고 말았다.

“뭔가 이상한 명령을 받은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응, 대장님은 곧 이쪽으로 오실 거야. 하하하하……”

그렇게 웃어대는 그녀의 눈동자에서는 어쩐지 초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

한 편,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끝에 신형 마장기를 강탈하는데 성공한 류안.

“아, 알겠다! 그렇게까지 나온다면 넘겨주겠다. 그러면 될 게 아니냐?!”

“감사합니다. 그러면 약속대로 키스를…….”

양팔을 벌리면서 접근해오는 그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뒷걸음질 치는 카프.

“그만 둬! 아무리 내가 거절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는 성숙한 여인이라고는 하지만, 젊음의 충동에 휩싸여서 실수를 저지르지는 말라는 말이닷!!”

성숙한 여성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철컹철컹하고 위험한 풍경이 펼쳐지는 상황.

진담이 반쯤 섞여져 있기는 했지만 농담도 반쯤 섞여져있는 희롱을 자연스럽게 받아넘기지 못했기 때문에, 류안은 상황을 고려해서 헛기침을 하고는 흑염룡을 칼집으로 되돌려 넣기로 했다.

“크흠, 큼. 어, 어쨌든 약속을 하셨다면 신형 마장기는 저에게 넘겨주시는 겁니다?”

“……그만두는 것이……크, 크흠! 아, 알겠다! 이야기가 이렇게 되었으니까……이번에는 네 쪽에서 참아주기를 바란다. 하우저!”

어느 사이엔가 공방으로 도착해서 두 사람의 대화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바라보고 있던 하우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카슬란 조합으로 찾아가서 새로운 배속지를 배정받도록 하죠.”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리는 남자.

‘으음, 기분 탓인지 누군가와 지나치게 닮은 것 같은데……가면도 그렇고 혹시? 아니야. 설마…….’

하우저가 서머벨 정거장에 등장한 것은 불과 2주일 전이라고 한다.

그 전까지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는지 아무것도 밝히지 않는 수수께끼의 낭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단시간에 신뢰를 쌓아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처음에 레지스탕스에 합류할 때, 몇몇 조그마한 거점을 지키고 있는 제국군의 수비대를 단신으로 격파하고는 제국군 장교들의 목을 들고 찾아와서 임관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그는 제국과의  사소한 무력충돌에서 앞장서 싸우면서 눈부신 전공을 세웠고, 과묵하지만 남자다운 믿음직스러운 태도로 제국의 전형적인 무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너무나도 손쉽게 신뢰감을 쌓아올렸다.

그렇다고 정체도 모르는 남자에게 마스터 카프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최신형 마장기를 넘겨준다는 건, 류안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그만큼 제국의 사람들이 펜져스들이 만들어낸 숭무崇武사상과 그에 대한 환상에 뿌리 깊이 사로잡혀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단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면모는 카프의 신형 마장기를 미련 없이 포기하는 쿨한 모습에서 더욱 더 부각되었다.

[역시 남자라면 저래야지. 무인이라면 누구라도 탐낼만한 최신형 마장기인데. 물욕에 초탈한 모습이라니……]

[그에 비하면 자치령군의 사령관은 조금 깨지 않냐? 아무리 욕심이 난다지만 어린아이도 아니고……]

그리고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깊어져가는 그늘처럼 나락으로 추락하는 류안의 평가.

‘쳇, 재수 없게 혼자서만 멋진 척을 하다는……너 같은 놈은 조만간 내 부하로 스카우트해서 죽을 때까지 부려먹어 주겠어!’

메카닉들의 수군거림을 정신 승리로 이겨낸 그는 얼굴에 철판을 깔면서 카프의 안내를 받아, 신형 마장기가 메인터넌스를 받고 있는 정비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신형의 모습.

“자, 봐라! 사내답지 않느냐, 우람하지 않느냐, 멋지지 않느냐?!!”

“그 말을 제 하반신에다가 대고 한 번만 더……”

“응? 왜 그런 말을 하반신에가 대고 하느냐?”

“아, 아닙니다. 그냥 순순하게 멋진 광경을 목격하면 저도 모르게 허갤러의 피가 끓어오르는 바람에…….”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회색빛의 터프한 동체를 가지고 있는 신형 마장기를 목격한 류안은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남자의 로망은 신형이지.’

잡티하나 없이 막 뽑아낸 스포츠카처럼 매끈한 광택을 뽐내고 있는 기체.

비늘처럼 보이기도 하며 물결처럼 갈라져 내려오는 근육질로 보이기도 하는 판넬들이, 등과 팔, 허리의 라인을 따라서 도미노처럼 일사분란하게 펄럭거리고 등 뒤에서는 4개의 분사구가 새파란 화염을 뿜어내면서 출력을 테스트하고 있다.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지만 어디에서도 느껴본 적이 없는 야생적인 잠재력이 느껴지는 미지의 마장기.

당장에라도 지지대를 박살내면서 뛰쳐나올 것 같은 야수와도 같은 모습에 류안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면서 카프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마장기의 이름은 뭡니까?”

“로스탐이라고 한다. 뭐, 저렇게 보여도 아직 완성하려면 한참은 손을 봐야겠지만……지금 상태라도 A급의 하이엔드 수준의 활약은 거뜬히 해주겠지. 어쨌든 쿼드코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쿼드코어 시스템이 뭔지는 정확하게 모르는 류안이었지만 로스탐이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란 최강의 영웅인가……후후후후.’

흔히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헤라클레스에 비견되는 이란(흔히 페르시아라고 더 잘 알려져 있는)의 영웅 로스탐.

지나치게 힘이 강해서 지면을 밟으면 발이 땅에 박혀버렸기 자신의 힘을 약하게 해달라고 신들에게 기도를 올렸다던가, 헤라클레스의 12과업과 비슷한 7대업을 완수해서 이름을 떨친 영웅 중의 대영웅이다.

카프가 그 이름을 자신의 마장기에 붙인 이유가 발할라의 도전자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딘가에서 흘려들은 이름을 붙여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눈앞의 마장기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곤란하구나……기껏, 리액터 시스템을 장착해 놨는데. 네놈이 탑승한다면……다른 무장으로 교체해야 되는데 시간이……”

“그대로 두십시오.”

“응? 하지만 리액터는 마나를 집어삼키는 효율이 나쁜 시스템이다. 어지간히 출력제어에 자신이 있는 무인이 아니라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물건이…….”

리액터 시스템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무인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독문무공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특수한 장비다.

류안이 목격한 리액터 시스템의 대표적인 활용법은 율리안이 바라모스를 쓰러트리면서 보여주었던 창槍막.

그처럼 거대한 괴물조차도 단숨에 쓰러트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현대병기보다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리 마나증폭장치의 서포트를 받는다고는 해도 인간 크기로 사용할 때의 수천에서 수만배의 출력을 뽑아내야만 사용할 수가 있기 때문에 사용하기도 힘들고 제어하기도 힘들다고 알려진 시스템이다.

하지만 류안은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니까 그대로 두시라는 말씀입니다.”

============================ 작품 후기 ============================

으음, 앞으로는 질문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답변을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괜히 신경쓰여서 글쓰는 게 어려워지는 기분이...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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