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182화 (182/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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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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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거미족의 여왕 로피아는 다섯 부족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서머벨 던전의 지배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후우우우웅!

최고의 자리에 군림하면서 성지聖地에서 의식을 치르자 그녀의 약지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녹색의 반지.

“이것이……던전 마스터만이 소지할 수 있다는 지배의 링인가? 과연, 여왕이 지니기에는 손색이 없는 물건이로구나. 호호호호호!!”

그것을 착용하는 순간에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었던 강력한 힘이 전신에서 용솟음치면서, 던전의 모든 몬스터들이 그녀에게 무릎을 꿇으며 복종을 맹세해왔다.

[LONG LIVE THE QUEEN! LONG LIVE THE QUEEN!!]

머리로는 이치를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그 링을 소유하게 된 순간부터 그녀는 서머벨 던전과 하나가 되었다.

집결지에서 흘러나오는 방대한 마나는 그녀에게 강력한 파워를 선물했으며, 던전의 몬스터들을 종속시켜서 그녀의 하수인으로 만들어줬다.

그녀는 반지가 속삭이는 대로 마나집결지를 지키는 던전(둥지)를 건설하고, 그 작은 세상의 절대적인 지배자로 군림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언제나 순간에 불과했다.

“여왕님, 여왕님. 그라프 쉬페 산맥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수상한 무리들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대처할까요?”

부하들의 보고를 들은 로피아는 코웃음을 치면서 옥좌를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훗. 어리석은 이방인 놈들이 또다시 우리들의 둥지를 노리면서 얼쩡거리다니……좋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지상을 정복하고 주홍거미족들을 위한 낙원을 건설해주마! 가자, 제 2차 종족 전쟁의 시작이다!!”

우오오오오!!

수백 년 동안 서머벨 던전에서 외부의 침입자들을 격퇴하면서 승승장구해온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대군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은 펜져스도 아니었으며, 제국군도 아닌 부하가 보고해 온 수상한 무리들.

그들은 그라프 쉬페 산맥의 광맥을 탐지하기 위해서 파견된 지질학자들로 평범한 학자들이었지만, 그런 지대에 자연적인 던전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을 보호하는데 충분한 자위수단을 확보하고 있었다.

주력 무장은 B급 마장기인 시라이온 구형이 5대.

그리고 대 몬스터 진압용의 독가스 폭탄이 전부.

주홍거미족의 전사들은 신장이 3m를 넘는 거구를 가지고 있지만 표범처럼 날렵하게 움직이면서, 송곳니에 신경 독과 강철처럼 단단한 실을 무기로 사용하는 타고난 사냥꾼들이었다.

태양빛에 약한 그들은 산의 그늘을 따라서 침입자들을 향해서 돌진해 들어갔지만, 그들의 역사상 처음으로 조우하는 인간이라는 종족은 그들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강력한 파워를 지니고 있었다.

투타타타타타타!!

[키에에에에엑!!]

어설트 라이플의 한 발, 한 발에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 주홍거미족들의 행렬.

강철 실의 포박을 종잇장 찢어내듯이 찢어내는 무시무시한 괴력과 송곳니가 관통되지 않는 두꺼운 장갑.

거인들의 터무니없는 전투능력도 전율할만한 수준이었지만, 진정한 악몽은 생화학 보호복을 착용하고 있는 지질학자들이 대량의 독가스를 살포하면서 시작되었다.

[모, 몸이 굳어버린다. 안 돼……]

[살려주십시오, 여왕님! 여왕님!!]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마치 안개처럼 지면에 깔리면서 순식간에 일대 전체를 덮어버리는 독가스 연기.

조금이라도 접촉하면 여지없이 생명을 강탈하는 그 무시무시한 병기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주홍거미족 전사들의 시체가 마치 훈증熏蒸으로 몰살당한 벌레들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자신의 건설한 왕국이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두려움에 몸서리치는 여왕.

“도,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이냐? 이 무시무시한 독 연기는……전군 퇴각, 퇴각하라! 둥지로 도망쳐라! 부화장만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켜내야만 한다!”

그렇게 외친 로피아는 살아남은 부하들을 지휘해서 독가스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던전을 봉인했지만, 그들은 튜브를 연결해서 차근차근 독가스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부화장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오염시켜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부화장을 감싸는 공사를 하느라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중독 당해버린 여왕.

“크으윽, 커억, 컥! 이, 이런 터무니없는 독이라니……설마 이 내가……이런 방식으로 허무하게 최후를 맞이하다니……”

호적수를 만나서 생사를 건 일전을 치르다가 사망한다면, 여왕다운 체통과 위엄을 지키면서 왕국의 몰락을 맞이했다면 적어도 억울하지는 않았겠지만, 설마 이런 방식으로 어이없게 당해버릴 줄은 몰랐기 때문에 서러움으로 눈물이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몸속에서 급속도록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서서히 죽어나가는 그녀의 앞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침략자들.

[모리아! 서둘러서 치료제를 가져와! 던전 마스터가 죽어가고 있다고!!]

생화학보호복을 착용한 조그마한 여자가 방방 뛰면서 그렇게 외치자 뒤따라 걸어오던 커다란 여성 지질학자가, 모리아의 상태를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중얼거렸다.

[흐음, 보아하니까 아직 3차 탈피도 경험하지 않은 꼬마 여왕이군. 그러니까 모스키토 화학 작용제만으로도 이 꼴이 나는 거지……]

[야! 지금이 한가하게 곤충관찰이나 하고 있을 때야? 얘가 죽어버리면 다음 던전 마스터가 태어날 때까지 몇 년이 소모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후후후후. 카프는 키만큼이나 인간성도 작아서 귀엽구나.]

[뭐?! 누가 밴댕이 소갈딱지만한 키를 가지고 있다고?! 그래, 오늘 너 죽고 나 크자! 네년의 허리를 반으로 접어서 키 140cm이하만이 맛볼 수 있는 신선한 공기를 주입시켜주마!!]

[저번에 키가 140cm를 넘었다고 자랑하지 않았나?]

[다, 당연히 넘지!! 지금은 작지만 언젠가는 내면에 잠들어있는 하이엘프의 피가 각성해서 쭉쭉 빵빵한 섹시 미녀 언니가 될 테니까, 두고 보라고!!]

참고로 이 사건이 벌어졌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의 일이다.

로피아가 난동을 부릴 것을 대비해서 그녀를 옴짝달싹할 수 없도록 포박한 그녀들은 해독제를 주입해서, 그녀의 목숨을 살려주고는 몬스터 통역장치를 사용해서 거절할 수 없는 요구를 건네어 왔다.

“잘 들어. 여왕! 네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딱 2가지 밖에는 없어. 하나는 제국이 자랑하는 세뇌장치를 사용해서 자유의지를 제거당하고 꼭두각시 노예로 전락하는 거야. 또 하나는 네년의 의지로 노예계약서에 서명하고 제국을 위해서 봉사하는 셀프 노예가 되는 거지. 자, 어떤 것을 선택할래? 참고로 나는 2번을 추천해 줄게.”

“차, 차라리 죽여라! 이런 사악한 악마들 같으니라고…….”

“죽으면 편할 것 같지? 네가 죽으면 주홍거미족은 끝장이야. 저기 부화장에 있는 애들은 전부 다 연구소로 끌려가서 해부당하거나 수집가들에게 곤충 표본으로 전시당할 걸? 셀프 노예가 되면 적어도 네 종족들의 목숨은 보존시킬 수 있어. 물론, 개체 숫자는 조절 당하게 되겠지만……”

그 협박에 화들짝 놀라면서 외치는 로피아.

“부, 부탁이니 부화장만은 건드리지 말아다오! 부화장만은…….”

[주홍 거미족이 동족애랑 모성애가 강하다더니 생각보다 협상이 잘되겠는데?]

[후후후. 굳이 설득할 필요 없이 세뇌장치를 사용하면 되는데……하여간에 카프는 작은 주제에 착하다니까?]

[여, 여기에서 키는 상관이 없잖아! 키는! 이런 재수 없는 년이!!]

두 사람의 잡담이 제멋대로 진행되기는 했지만 동족들의 목숨을 인질로 잡혀버린 로피아는 여왕으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노예계약서에 서명하고야 말았다.

무소불위의 권력자에서 하루아침에 부당계약의 근로 몬스터로 전락해버린 그녀.

하지만 인간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무시무시함을 뼈저리게 실감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수한다거나 지상을 정복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잊어버리고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로부터 150년.

오늘도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그녀.

“사랑합니다, 고객님! 모험자들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두근두근 던전 대모험’에 찾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입장료는 현재의 정책상 화폐 대신에 배급권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들었어, 탈리아? 나 보고 사랑한대.”

“미친 새끼가 영업용 멘트를 듣고서는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크, 크흠. 그냥 농담하는 건데 왜 그렇게 과민반응을 하고 그래? 세 명입니다. 사랑스러운 아가씨…….”

“저기……실례지만 민정시찰이 끝났다면 저는 복귀해도 괜찮습니까?”

“……세, 세장이십니까? 손님. 지금 바로 티켓을 발권해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랜만의 손님이라는 생각에 던전 마스터인 그녀가 직접 나와서 접수를 받았지만, 어째서인지 데자뷰가 느껴지는 제멋대로의 대화를 들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한기를 느끼며 억지웃음을 지어보이는 그녀.

아니나 다를까 배급권을 받으려는 순간에 가면을 쓴 남자가 자신의 손을 덥썩 붙잡고는 성희롱을 하는 아저씨처럼 기분 나쁨을 흘려대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대로 손이 참 부드러우시군요. 후후후후. 주홍 거미족의 여성분들은 전부 다 당신처럼 아름다우신 겁니까? 일개 종업원이 이 정도라면 던전 마스터는 어떨지……하악하악.”

“히이이익! 이,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손님!”

퍽!

그리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 남자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여자.

“이런 발정난 새끼가! 죄송합니다. 우리 류안이 평소에는 얌전한데 예쁜 여자만 보면…….”

“네, 네.”

남자 친구를 터치할 때는 사나웠지만 자신에게는 마치 강아지의 잘못을 사과하는 사람처럼 얌전하게 사과해왔기 때문에, 그녀도 성희롱에 대한 잘못을 크게 나무라지는 못하고 그녀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의 처량한 처지에 한숨을 내쉬는 로피아.

‘이번 손님들은 아무래도 진상들이 확실한 것 같아. 에휴……내 신세가 어쩌다가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된 건지.’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앞의 커플들은 그런 그녀는 내버려둔 체 계속해서 아웅다웅하고 있었다.

“너 자꾸 이러면 데이트고 나발이고……”

“크, 크흠. 아, 알았어. 알았다니까……나는 그냥 주홍거미족이 이렇게 예쁘게……아, 아니. 인간처럼 생겨서 신기하니까 그랬지. 자, 이제 본격적으로 던전 모험을 시작해보자고!!”

그렇게 외치면서도 자신의 손에 은밀하게 통신 단말기의 전화번호를 쥐어주고 떠나가는 집적남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로피아는 짙은 한기를 느끼면서 150년 전의 악몽이 살아나는 것 같은 불길한 느낌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어린이날 연휴가 시작되네요.

저도 쉬는 날이니 열심히 써서 연재보유분을 확보하도록 하겠습니다!

성실 연재를 위해서 분량을 살짝 훔쳐간 건 안 비밀...

아, 그리고 무협편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하자면...

처음 기획에는 트라이엄프 무협편이 있었는데

쓰겠다고 나섰던 분이 바빠서...설정만 남아있고 실재로 쓸 예정은 없습니다.

사실 지상편을 쓰는 게 상당히 힘들고 다른 작품을 쓰고 싶다는 유혹도 생기는 게 사실이라...

우주편을 쓰기 전에 쉬어가는 느낌으로 가볍게 쓸 만한 소설로

무협편을 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소설을 쓸지는 고민하는 중입니다.

참고로 전혀 다른 소설은 전연령판에 이능 배틀물입니다.

무협편은 트라이엄프 무협편이라는 느낌이고, 다른 소설은 전혀 다른 느낌에 액션 위주의 소설이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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