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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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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프 쉬페 산맥처럼 거대한 지맥이 흐르는 장소에는 마나집결지들이 만들어지기 쉽다.
그런 특이점들은 주변의 몬스터나 동물들을 불러 모으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장소에 정착한 생명체들이 수세대에 걸쳐서 진득한 마나를 섭취하면서 성장하다보면 터무니없이 강력한 존재로 거듭나는 경우가 있다.
진화론자들은 이렇게 태어난 돌연변이들이 드래곤이나 던전 마스터로 성장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말이 정말인지 아닌지는 아직 학계에서 확인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이런 마나집결지를 근거지로 삼는 던전이 형성되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그런 던전 마스터들을 인간들이 통제하면서 던전이 거대한 오토 작업장, 아니 채굴장으로 변해버렸다는 소리지?”
난생 처음으로 들어본다는 듯이 되물어보는 류안의 태도에, 아트리에는 오히려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 그런데 이런 작업은 제국에서만 행해지는 게 아니라 연맹에서도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방식으로 알고 있었는데……혹시 처음 들어보시는 건가요?”
“당연히 처음 들어보지! 그렇게 신나는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었다면 처음부터 광부로 취직해서 24시간 레이드를……우으으읍!”
그렇게 노발대발하면서 날뛰는 그의 입을 양손으로 붙잡는 사람은 탈리아였다.
“하하하하! 뭐,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우, 우리 류안이 워낙에 곱게 자라서 의외로 일반 상식들을 잘 모르는 것 뿐이야……따, 딱히 지하도시에 흥미를 가지고 조사를 하는 모습을 보다가 이 게임 폐인 새끼가 현실하고 게임을 구분하지 못해서 던전 죽돌이가 되어 버릴까봐 두려워해서, 던전에 대한 정보를 차단하지는 않았다고!!”
‘너였냐, 탈리아!!’
혼란에 빠져서는 자신의 범죄(?)를 술술 자백해버리는 여자 친구의 모습에 진한 배신감을 느끼면서 온몸을 부르르 떠는 류안.
어쨌든 새삼스럽게 아트리에의 설명을 통해서 파악한 던전 시스템을 살펴보면, 이 장소들은 먼 옛날의 검과 마법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모험자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활극을 펼치는 무대였다고 한다.
하지만 기계문명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 이르러서는 그런 로망은 사라져버리고 오토와 매크로가 판을 치는, 자원채굴의 작업장으로 전락해버린 것이 현실.
“……광물 타입의 몬스터들을 워커로 효과적으로 쑤시고, 자르고, 분해하며, 해체하는 무한 노가다의 공간이라고?”
“물론, 광물 몬스터들이라고 숫자가 무한한 건 아니니까 수량은 조절하고 있어요. 그들 나름대로의 생태계도 갖추고 있고요……제가 그쪽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서 정확하게 설명드릴 수는 없지만, 분자 단위로 해체되는 바람에 재생시킬 수 없는 엔트로피 변화가 일어난 금속들을 다시 환원시키는 방식이라고……”
“복잡한 이야기는 됐어. 그렇다면 팔란티오 행성에서 자원이 고갈되는 일은 없다는 소리잖아?”
던전 시스템을 사용해서 자원을 무한대로 재활용하는 게 가능하다면 자원이 영원히 소모되지 않는다는 소리나 마찬가지.
팔란티오 행성의 자원 보유량에 따라서 존폐가 결정된다고 하던 공화국의 입장에서 보면 대대적으로 환영할만한 내용이지만, 그렇게 무한대로 재활용하는 게 가능하다면 어째서 전 우주에서 자원들이 모자라다고 아우성을 치는 지 이해하기 힘든 시스템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트리에는 류안의 그런 궁금증에 대한 답변을 줬다.
“그게 꼭 그렇지도 않아요. 이 법칙이 적용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맥의 흐름처럼 거대한 마나의 영향권 내부에서만 적용되거든요. 그러니까 지상이라던가, 행성 외부로 수송된 광물이라던가, 우주에서 소모되는 광물들은 던전 시스템으로 재활용하지 못하는 거죠. 이런 내용들은 전부 다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내용들인데 어째서……”
“아, 젠장. 그놈의 유식하다고 잘난 척하는 건……미안하지만 류안이나 나나, 학교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거든? 쳇, 하여간에 제국에서도 팔자 좋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랄까봐 재수 없게 굴기는……”
탈리아의 비아냥거림에 지상, 그것도 군벌 집안에서 태어난 엘리트 출신인 아트리에는 당황하면서 발끈했다.
“따, 딱히 잘난 척을 할 생각은……아, 아니. 사람이 기껏 설명해줬는데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크흠, 두 사람 다 진정해. 무식하면 모를 수도 있는 거지……그거 가지고 그래.”
류안은 그렇게 말하면서 점잖게 말렸지만 내심으로는 두 여자들의 태도가 많이 온화해졌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었다.
탈리아의 변화야 지속적으로 조금씩 변화한 것이지만, 아트리에의 경우에는 15구역 대표들과의 협상을 계기로 그를 대하는 태도가 확실하게 달라진 상태.
물론, 아직까지는 까칠한 모습을 많이 드러내기는 했지만 다음에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자는 기대심을 가지고 쳐다보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러니 기본적인 상식도 모르는 모습에 실망해버린 거겠지. 후후후후. 그만큼 나를 의식하고 있다니 좋은 변화야.’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류안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그러면 옛날 방식으로 모험을 즐길 수 있는 던전은 없다는 소리야?”
“아니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작업장과는 별개로 백병전을 훈련하는 군사적인 목적으로나, 유령의 집처럼 어트렉션 용도로 사용하는 유희용 던전이 따로 구성되어 있거든요. 참고로 아무리 백병전 실력이 뛰어나도 마지막 지역까지 통과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데……골인 지점에 도착하면 던전 마스터가 소정의 상품을 준다는 소리도……”
“던전 마스터는 여자 몬스터야?”
“그건…….”
“이런 발정난 미친 새끼가!!”
퍽!
대답을 듣기도 전에 곧바로 여자 친구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류안.
설상가상으로 서머벨 정거장 지하 던전의 던전 마스터가 여자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치 생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탈리아를 향해서 졸라대기 시작했다.
“한 번만 가자. 응? 어트렉션 기능을 가지고 있는 좋은 데이트 코스라고 하잖아? 유령이 무서우면 오빠가 꼭 끌어안아줄게. 그러니까……오빠 믿지?”
“너는 믿는데, 니 흑염룡은 너 이상으로 확실하게 신뢰(?)하거든? 이 미친 새끼가 짐승년들하고 붙어먹는 것도 모자라서 몬스터랑 붙어먹으려고 들어? 안 돼, 절대로 안 돼! 데이트를 하러 나왔으면 순수하게 데이트나 즐기면 될 것이지. 무슨 놈의 던전질이야? 이런 미친 중독자 새끼가……”
“그러지 말고 딱 한 판만……응? 딱 한 판이면…….”
“자꾸 그러면 아트리에도……우으으읍!”
“??”
“아, 알았어. 하던대로 데이트나 하자. 제길…….”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자칫하면 아트리에마저 놓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류안은 다급하게 탈리아의 입을 가로막으면서 예정대로의 데이트 행보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서머벨 정거장의 지하도시가 데이트 코스로는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술집이나 매춘업소를 제외한 유흥시설은 찾아보기가 힘들었고 카페는커녕 제대로 된 음식점조차 찾아보기 힘든 답답한 장소.
“아니, 무슨 놈의 음식점이 저 따위야? 벽돌처럼 딱딱한 브릭Brick인지 뭔지를 식사랍시고 주지를 않나. 더럽게 달기만 한 단백질 블록을 식사로 주지를 않나……딱딱하거나, 단 음식밖에 없다니 무슨 복불복이야?”
식당을 나온 탈리아는 그렇게 투덜거렸다.
“작업부들을 위한 식사라서 그렇습니다. 열량이 높고, 당분이 함유되는 음식들을 섭취해야만 작업을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죠. 맛보다는 기능을 중시한 결과물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기계처럼 연료를 주입받는 생물도 아니고 말이야. 해도 너무하잖아? 서비스도 엉망이고…….”
“나도 탈리아가 만든 밥이 먹고 싶더라.”
“그렇지?”
자치령의 식량을 대대적으로 사들였기 때문에 못 먹어도 정글식으로 점심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아직 배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전투식량만도 못한 식사를 마치고는 부랴부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직장에서 작업에 열중하는 시간대였고, 카프의 작업장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관계자 외 출입불가의 지역들이었기 때문에 데이트도, 민정시찰도 할 수가 없는 상황.
최후의 수단으로 배급권을 화폐로 사용하면서 옥수수로 다이아몬드와 교환할 수 있다는, 물물거래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하필이면 그 시기에 맞춰서 카슬란 조합이 집회를 열고 있었기 때문에 시장은 진작 파장되어버린 상황이었다.
[펜져스들에게 맞서서 싸웁시다! 그들은 우리 기술자들에게 국가공휴일을 제외한 모든 날들에 하루 18시간이라는 가혹한 노동을 강요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카슬란 조합은 다릅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에게 주 6일 근무에 하루 16시간의 노동을 보장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4대 보험은 적용되지 않고 야근은 별도입니다, 여러분!!]
연사의 외침에 격렬하게 환호하는 사람들.
[오오오오오! 하루 16시간 노동이라니……저게 실현된다면 집에 들어가서 아이들이 자는 모습은 볼 수가 있겠군!]
[그것만이 아니야! 집에 돌아가고도 2시간의 자유시간이 남으니까 씻고 나면 VR머신을 사용해서 끔찍한 현실에서 벌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가 있다고! 게다가 일주일에 하루는 자유라니……이것이 혁명의 성과인가?!]
[카슬란 조합 만세! 레더 조합장 만세! 펜져스를 타도하자! 제국 만세, 황제폐하 만세!!]
우오오오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류안은 황당함으로 말문을 잇지 못했다.
“……아니, 뭐 저렇게 근면한 노예들이……끄응, 역시 처음부터 너무 잘해주면 안 돼는 건가? 사람이 어려워봐야 저 정도의 처우 개선에도 감사하는데 말이야. 우리 부대원들도 보고 배워서 하루 평균 15시간 근무를 정착시키면…….”
“그런 짓을 저질렀다가는 소원 수리함이 임신해버릴걸?”
탈리아의 핀잔을 들은 그가 과연 그렇겠다는 듯이 혓바닥을 차기 시작했다.
“쳇……방위군의 다른 부대에서는 15시간 이상씩 노예처럼 부려먹어도 잘만 운영……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쳇, 쳇, 쳇…….”
“하아, 진짜로 애도 아니고……”
“실례지만 트라이엄프 부대 병사들의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이 어떻게 됩니까?”
“12시간. 오전 4시간, 오후 4시간. 당직이나 기타등등의 특근 포함해서 4시간. 토, 일요일 주말에는 특근 4시간 빼면 자유시간이고…….”
노동 조건이 그렇게까지 좋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제국 출신인 아트리에의 입장에서는, 눈이 동그랗게 떠질 만큼 호사스러운 조건이었던 모양이다.
“……그걸로 부대 운영이 됩니까?”
“우리 부대가 활약하는 거 보면 알잖아?”
“맞아. 그리고 류안은 하루 종일 빈둥거리면서도 제대로 성과를 낸다고.”
“크흠, 부, 부대장 좋다는 게 뭐야? 잡무는 부하들에게 넘기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는 게 효율이 좋단 말이야. 무, 물론, 고용주만 그렇다는 거지. 무식한 부하들은 놀면 뭐해? 조금이라도 일해서 월급 주는 만큼 일해야지……”
“……”
사악한 고용주가 되고 싶어는 하지만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기 위해서 사악해지지 못하는 그를 바라보면서, 아트리에는 그가 15구역을 식량을 인질로 삼아서 착취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현재의 상황에서 데이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탈리아는 어쩔 수 없이 류안과 함께 어트랙션용의 던전을 탐험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잘 들어. 어디까지나 데이트를 위해서야……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던전 마스터인지 뭔지 하는 몬스터 년에게 집적거리면 안 되니까 말이야! 내 말 알아들었지?!!”
“하하하하! 걱정하지 말고 믿으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여자만 보면 환장하는 변태인 줄 아나…….”
“……어째서 나까지……”
별로 신뢰성이 없는 류안의 웃음소리와 함께 모험가의 복장으로 갈아입은 세 사람은 어트렉션 용도의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 발걸음을 내딛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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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조절 실패...
오늘도 1~2kb는 훔쳐가야 성실연재를 할 수가 있을텐데 아쉽...크흠. 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