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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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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를 하겠어!”
“……어떤 년이랑?”
류안의 외침을 들은 탈리아가 자연스럽게 멱살을 붙잡아 왔다.
“그거야 당연히 사랑하는 여친님, 아니. 자기랑 하는 거지.”
“그래? 나도 사랑해.”
화사하게 웃으면서 안기는 그녀에게 어째서인지 개목걸이가 채워진 기분을 느끼기는 했지만, 엉덩이가 착 달라붙은 훈련복이 타이트하게 조여지면서 매혹적인 라인을 드러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용서할 수가 있었다.
흑염룡과 결합하면서 더 이상은 누군가의 보호를 받을 필요가 없게 된 류안.
덕분에 탈리아도 그의 경호원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강해지는 데 쏟아 붓고 있었다.
마치, 뭔가를 예감하고는 대비하는 것처럼.
어쨌든 그런 그녀의 노력을 무시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SHM마나 연공법을 전수하면서 물심양면으로 전폭적으로 지지를 한 덕분에,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실전능력을 제외한 격투기 능력으로만 따지면 스피아에게도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
‘후후후후. 그래봤자, 나보다는 약하지만.’
과거에는 여자 친구보다 약하다는 사실 때문에 주눅 들어서 서러운(?)나날들을 보내던 류안이었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녀들보다 아득하게 높은 경지에 있으면서도 아량(?)을 베풀어서 같은 수준으로 놀아주고 있었다.
현재 그와 순수하게 백병전으로 맞서서 호각으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율리안이나 루치아 정도.
두 사람이 숨겨놓은 역량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를 가늠할 수가 없으니 1대 1로 격돌한다면 쉽사리 승패를 장담할 수가 없지만, 그 또한 자신의 전투능력과 한계가 그들에게 쉽게 파악되지는 않을 거라는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나에게는 비장의 수단이 있으니까 말이야……’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류안은 자연스럽게 탈리아의 엉덩이를 주무르려고 시도하다가 손등을 꼬집히고 난 다음에, 본격적으로 데이트를 나섰다.
“생각해보니까 데이트를 하는 건 이걸로 2번째네?”
“그것밖에 안 했나?”
“같이 붙어 다닌 시간은 길었지만 일이 바빴으니까 말이지. 게다가 류안은 허구한 날 게임 아니면……야한 일 밖에는 하지 않았으니까.”
탈리아는 주변 사람들이 들을 것을 염려해서인지 뒷부분에서는 목소리를 낮췄다.
“정말로 그러네? 일하고 성교, 게임밖에 하지 않았다니 지나치게 성실한 인생을 살아왔잖아?!”
“입은 삐뚤어져도 말을 똑바로 하라는 이야기는 알고 있지? 그나저나,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는 데 꼬리는 왜 달고 온 거야?”
그녀가 [꼬리]라고 표현한 사람은 2걸음 쯤 뒤에서 쫄래쫄래 따라오고 있는 아트리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크흠, 부하들은 전부 다 일하고 있는데 나만 팔자 좋게 놀러 다니면 미안하니까 말이야. 데이트를 하면서 동시에 언더월드를 시찰하고 민심을 파악하는 것도 나름대로의 직무라는 소리지. 그러니까 보좌관이 따라오는 건…….”
“너 혹시 쟤도 건드릴 속셈이냐?”
“……크흠.”
‘어떻게 내 속마음과 계획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는 거지? 혹시 관심법이라도 수행하는 것인가? 젠장, 더러운 애꾸눈 같으니라고……’
언제나 그랬지만 자신을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는 그녀였기 때문에, 류안은 백주대낮에 발가벗겨버린 기분을 느끼면서도 가면으로 표정을 숨기면서 최선을 다해서 시치미를 떼기 시작했다.
“따, 따, 따, 딱히 그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데? 뭔가 자, 잘못 생각한 건 아닐까? 잘못 생각했을 거야. 잘못 생각했다고 하자. 아니, 해주세요. 제발…….”
하지만 다음 순간에 돌아온 대답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좋아, 봐줄게.”
“……흑흑흑흑. 죄송합니다. 벗으라면 벗을 테니 제발 폭력만은……네?”
남들이 전부 쳐다보는 백주대낮의 길거리에서 여자 친구에게 얻어맞는 것을 각오하고 있던 류안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관대한 제안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나도 저 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 남의 남자 친구를 함부로 무시하고 말이야……크흠, 우, 우리 류안이 가면을 쓰고 다니는 건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 건데. 저 망할 년이 그것도 모르고…….”
“……”
아무래도 탈리아는 그가 가면을 쓰고 다니는 이유가 자신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가면만 벗고 다니면 프레이야와 흑염룡의 권능을 사용해서 대놓고 하렘부대를 차릴 수도 있는데, 성욕의 화신이라고 할 수가 있는 류안이 그런 행동을 자제하고 있으니 전부 다 자신을 위한 행동이라고 착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상황.
설마, 그것이 보다 즐거운 헌팅(사냥)을 즐기기 위한 셀프 구속플레이의 일환일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눈치라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탈리아는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덕분에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끌어안아버린 류안.
“사랑해.”
“……치, 이럴 때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너라고 말했던가?”
“……크흠, 아, 아부는 그쯤에서 그만해도 괜찮으니까. 저 년은 적당한 수준으로만 가지고 놀아……알지? 적. 당. 한. 수준에서 말이야.”
“후후후후. 맡겨만 줘.”
여자 친구에게 합법적(?)으로 H이벤트를 발동시키는 것을 허락받은 류안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뒤따라오는 사냥감을 바라보면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터트렸다.
***
한 편, 한 쌍의 늑대 커플에게 노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아트리에는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당당하게 끌어안다니……나도 한 방, 너도 한 방 죽창스럽게 부러운……아, 아니. 부끄러운 행동을 태연하게……’
강력한 FEMDOM여전사들이 대부분인 정글레인저의 대장이면서도 아직까지 연애는커녕, 남자의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그녀.
조금이라도 야한 이야기가 나오면 덜컥 겁먹으면서 자리를 피해버리고, 혹시라도 소개팅을 권유받으면 통금시간을 핑계로 도망쳐버리는 안쓰러운 마인드의 소유자.
무력으로 쓰러트리면 쓰러트렸지, 침대에서 쓰러트린다는 참신한(?)발상 따위는 해본 적이 없는 상상 속의 환상동물 같은 존재가 바로 아트리에다.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니 평소였다면 두 사람의 파렴치한(?)행위를 목격하자마자 자리를 피해버렸겠지만, 류안을 보좌하면서 그를 경호하는 게 임무였기 때문에 도망치지도 못하고 여과 없는 음란행위(?)에 가슴을 두근거리고 있었다.
“미, 민정시찰 도중에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그, 그런 일은 두 분 내외가 단 둘이 있으실 때만 하시라고요!”
“뭐라는 거야, 이 미친년은?”
“……재롱?”
“여, 연맹에서는 그렇게 문란하게 애정을 과시하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제국에서는 아니라고요! 예, 예의와 품격을 갖춰주세요!”
“어제는 리어를 무릎에 앉혀놓고 회의를 진행했는데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면서……겨우 이 정도를 가지고 뭐라고 그래?”
“……? 리어 양을 무릎에 앉혀놓은 게 여기에서 왜 나오죠? 귀여운 걸 귀여워하는 것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차, 참신한 해석이다!”
앞뒤로 느낌표를 붙이면서 놀라움을 표시하는 류안이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는 대번에 눈매가 사나워지는 사람이 옆자리에 있었다.
“흐음, 그래? 마장기 정비를 하는데 리어가 왜 모습을 안 보이나 그랬더니……그런 자리까지 데리고 갔구나? 그랬구나? 나는 빼놓고 갔으면서…….”
“진정해, 탈리아. 여자 친구와 귀요미는 먹는 배가 다르다……자, 잠깐만요, 누님! 머리카락은 안 됩니다. 제발 머리카락만은 살려주세요. 흑흑흑흑.”
머리카락을 붙잡히자 한없이 약해지는 남자친구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져버린 탈리아는 슬그머니 인질을 해방시켜 주었다.
“아, 알았으니까 일어나. 크, 크흠. 아무튼 말이야……이제는 번듯한 중령님이고 사령관님이잖아? 나도 함부로 손찌검을 하는 행동을 고쳐야 되겠지만……너도 그 경박한 태도는 좀 고쳐달란 말이야. 하여간에 남세스러워서…….”
“마, 말도 안 돼. 탈리아가 어른스러운 말을 하다니……크흑! 너마저도 나를 내버려두고 혼자서 어른이 되어버리려는 거지?! 이런 배신자……”
“뭐라는 거야? 이 화상이!!”
참다못해서 폭발하는 탈리아의 모습을 희희낙락하면서 바라보던 초딩, 아니 류안과 일행은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도 자기부상레일의 운송판을 타고 언더월드의 지하도시를 구경해 나갔다.
제철소, 지열발전소, 재생금속공장, 전자부품공장, 채석장, 자원채취구역, 정제소, 가스발전소, 등등.
도시의 중앙 천장에는 용광로처럼 뜨거운 인공 태양이 시간대에 맞춰서 가림 막으로 조도照度와 열기를 조정해나가고 있었고, 도시 전체에 설치되어서 끊임없이 순환되고 있는 컨베이어벨트며 톱니바퀴, 캐터필러들이 맞물려져 있는 공간은 거주공간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시계장치 속에 들어온 것처럼 장엄하면서도 어딘가 답답한 기분이 느껴졌다.
“제국에서 이런 지하도시를 만들 때 1세대로 죄수들을 정착시켜요. 그래서 처음부터 도시 자체가 감옥이자 작업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죠. 그들에게서 3세대가 태어나면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생활공간의 개선작업이 끼워 맞추기 식으로 이루어져요. 하지만……지하 도시에 태어난 사람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몇 세대가 교체되어도 자신들의 거주 지역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아트리에의 설명을 들은 류안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채굴자원이 떨어지면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지 않나?”
“군대에 동원시키는 경우는 있어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보시면 되요. 왜냐면 이 정도의 인프라를 다시 구축하는 게 어렵기도 하고, 자원량이 적어지기는 해도 고갈되는 일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자원이 바닥나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깜짝 놀란 류안이 질문을 던지자 아트리에가 오히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반문해 왔다.
“던전 시스템을 모르시는 건가요?”
============================ 작품 후기 ============================
던전에서 야한 것을 추구하면...크흠.
분량이 줄어든 건 기분 탓이 아닙니다.
조삼모사일지는 모르겠지만 성실한 1일 1연재를 지키기 위해서 분량을 조금씩 빼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밤 독자분들의 분량을 훔쳐가도록 하겠습니다.
천사 청년(!) 흑맥주 올림...
아, 참고로 쿠라가 누구인지를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깜빡하고 답변을 못 드려쎈요;
쿠라는 예전에 썼다가 지운 특별편에서 등장한 캐릭터입니다.
아직 안 나온 미래의 캐릭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