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175화 (175/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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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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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본부로 향하는 도중에 커티스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원정대와 레지스탕스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게 된 류안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카이오 정거장의 패배는 자연스럽게 중계역을 포기하고 달아나버린 6사단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상전이포가 작동하지 않았으니 원정대의 2만 지원군이 도착했다고 상황을 역전시킬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도주로를 확보하면서 시간을 끌어주었다면 수많은 시민들과 레지스탕스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콘트라베이스가 이끄는 제국군 선봉대에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버린 레지스탕스는 대부분의 도주로를 봉쇄당하고, 시가지로 내몰려져 독안에 든 쥐처럼 사냥당하는 신세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는 와중에 수많은 민간인들이 전투에 휘말려서 살해당했기 때문에 그 분노는 고스란히 제국군과, 원정대 양쪽 모두에게로 분출되게 되었다.

레지스탕스와 언론, 양쪽 모두가 그런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린 6사단장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그는 일언반구의 입장표명도 없이 도망치듯이 궤도사령부로 귀환해버리고 말았다.

그를 대신해서 지휘권을 이양 받은 것은 현재 나이 57세의 부사단장인 나레드 준장.

“만나서 반갑네, 류안 중령! 생각대로 신수가 훤……가면? 어, 어쨌든 소문대로 용맹하게 생겼구만. 하하하하하!! 자, 자! 자리에 앉게! 당번병은 뭐하고 있나? 어서 탕비실에 연락해서 커피를 타오라고 해야지.”

“네, 알겠습니다!”

류안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순간적으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갑게 반겨주는 모습이 어지간히도 궁지에 몰려있는 모습이었다.

‘뭐, 대접해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지.’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이라면 사단장을 마주해도 조금도 주눅들 이유가 없었던 그였기 때문에, 느긋한 마음으로 상대하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의중을 떠보는가 싶더니 곧바로 한숨을 내쉬면서 불쌍한 척, 자신의 신세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나레드.

“자네도 레지스탕스의 반응을 목격했으니 알겠지만 요즘 들어서 6사단의 체면이 말이 아니라네. 사단본부에는 매일처럼 시위대가 찾아와서 집회를 열고 언론에서는 그 모습을 비추면서 우리들이 무슨 악의 축이라도 되는 것처럼 비아냥거리고 말이야……”

“뭐, 진실이야 언젠가는 밝혀지겠죠.”

귀찮은 이야기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대충 받아넘겼지만, 그는 무슨 대단한 답변이라도 얻어냈다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지?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하하하하하! 역시나 13구역의 영웅이라면 그렇게 말해줄 거라고 생각했네. 그래서 말인데 자네의 부대가 6사단을 조금 도와주면 안 되겠나? 이런 상황이라면 제국군과 싸워보기도 전에 레지스탕스와 충돌하게 생겼는데, 그것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함께 전재주의자들에게 맞서서 싸우는 동지들이니까 말이야.”

애매모호하게 도와달라는 요구를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라는 명령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거절하기 힘들도록 은근하게 압박을 주는 모습이 “미력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기라도 하면 사사건건 간섭하려는 심보가 너무나도 뻔히 드러나는 수작질이었다.

‘율리안을 핑계로 거절해 볼까? 아니야, 내 뒤에 누가 있는지를 알면서도 이렇게 작정하고 나오는 걸 보면 뭔가 노리는 게 있어. 대답해서는 안 돼.’

가정을 세워보자면 이 요구를 거절하면 사상이 의심스럽다느니,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등의 핑계로 궤도사령부나 헌병대에 지원을 요청해서 제재를 해올 가능성이 높았다.

나레드가 자신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한다고 생각한 류안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외쳤다.

“죄송하지만 화장실이 어디입니까!”

“응?”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정말로 죄송하지만 급똥의 기운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제가 괄약근이 약해서 서두르지 않으면 이 고급스러운 소파에 대형 참사를 저질러 버릴지도…….”

“아, 알겠네! 당번병! 류안 중령을 화장실로 안내해주게. 거 참, 젊은 사람이…….”

진지한 모습으로 무시무시한 협박을 당해버린 나레드가 순순히 자신을 보내주자, 당번병과 함께 그 장소에서 빠져나온 류안은 주저 없이 걸음을 돌려서 사단본부를 벗어나려고 시도했다.

“중령님? 화장실은 이쪽입니다만…….”

“집에 가스불을 켜놓고 나온 것 같아서 신경 쓰여 안 되겠어. 미안하지만 이대로 돌아가겠다고 전해드려.”

터무니없는 대꾸에 당번병이 얼이 빠져버리는 것도 잠시, 사태를 깨달은 그는 다급하게 그의 앞길을 가로막으면서 외쳤다.

“도,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어쭈, 일반 사병 주제에 중령의 앞길을 가로막아? 요즘 군대가 많이 좋아졌구나. 하극상도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처, 처벌을 원하시면 처벌을 하시더라도 지금은 얌전하게 돌아가 주십시오. 이렇게 돌아가 버리시면 나중에 제가 부사단장님에게 죽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그래? 살려달라는 놈 치고는 눈치가 비상하게 빠르네. 돌아가는 상황을 재빠르게 파악하는 거 보니까, 군대에서 눈칫밥 좀 먹으면서 산 놈이구나! 그렇게 머리가 좋으면 니 똥은 니가 알아서 치울 수 있겠지. 저리 비켜! 형님은 내 똥을 치우려고 집으로 간다!”

“그게 도대체 무슨 터무니없는……”

후우우웅!

다음 순간에 류안은 당번병의 눈앞에서 사라져 그를 통과하고는 사단본부의 건물을 빠져나가고 말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느긋하게 걸어가는 것 같지만 지면을 압축해서 걸어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멀어져버리는 그.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그를 붙잡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당번병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헐레벌떡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십중팔구 준장에게 가서 내가 도망쳐버렸다는 사실을 고자질하겠지. 그렇다면 정문으로는 빠져나가지 못하겠군. 대놓고 체포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를 발견하면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다시 데려가려고 할 테니까.’

yes라고 대답하면 노예로 전락하고 no라고 대답하면 사상이 불순하다면서 반역자로 몰려버리는 터무니없는 이지선다.

물론, 이렇게 가타부타 없이 돌아가 버리는 것도 실례라면 실례였지만 무례하다고 욕할 수는 있어도 함부로 군법재판에 회부하거나 반역죄로 몰아버리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빠져나오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다.

굳이 나레드의 머리가 비상하다고 할 필요도 없이 조금만 권력판에서 굴러봤다고 하는 장군들은 누구라도 습관적으로 사용해버리는 카드였기 때문에, 류안은 그런 장단에 놀아주고 싶은 생각을 눈곱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디서 남이 힘들게 긁어모은 재산을 날로 먹으려고 수작질이야? 반대로 내 쪽에서 날로 먹는다면 모르겠지만. 이번 일은 몇 곱절로 되돌려주마. 빌어먹을 놈…….’

내로남불의 근성을 발동시킨 류안은 그렇게 다짐하면서 곧바로 사단 본부를 이탈하기 위해서 정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당번병의 고자질로 인해서 대응체계가 갖추어진 것인지, 삼엄한 경계태세를 갖춘 헌병대가 출입하는 사람들의 차량을 철저하게 검문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는 걸음을 멈추고 인적이 없는 외벽으로 접근했다.

윤형 철조망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뛰어넘기에는 충분한 높이.

벽의 앞뒤로는 동작감지센서가 장착되어 있는 기동 지뢰들이 매설되어 있지만, 단순하게 그것만이라면 국가대표 높이뛰기 선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류안의 신체능력으로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다.

문제는 초고속 감시카메라가 장비되어있는 센트리 건들이 물샐 틈 없이 외벽을 꼼꼼하게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

그 탄환이야 피하면서 넘어갈 수 있다고는 해도 감시카메라에 찍히는 것은 피할 수가 없으니, 월담을 저질렀다는 증거를 손아귀에 쥐면 나레드가 류안을 고발할 수 있는 명분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카메라를 파괴해야 되겠지만 그런 짓을 저질렀다가는 곧바로 알람이 울리면서, 경계레벨도 올라가기 때문에 외벽에서도 지금 존재하는 것 이상의 까다로운 장애물들이 튀어나오면서 사단본부 전체가 요새처럼 변해버린다.

하지만 류안은 그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영체화!”

후우우웅!

프레이야의 사도가 되면서 얻은 능력이자 흑염룡과의 결합으로 확실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낸 고유능력.

유령 상태로 변해버리면 당연하지만 인간의 기술로 만들어낸 아르고스 시스템으로도 감지를 할 수가 없으며, 마찬가지로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 조형물을 통과하는 일도 식은 죽 먹기였기 때문에 이 정도의 감시망을 돌파하는 일은 문제도 아니었다.

참고로 유령 상태라고 해도 자연이 만들어낸 암벽이나 지면을 통과하지는 못하는데, 그 이유는 자연이 만들어낸 단단한 지형지물에는 마나와 비슷한 기운들이 촘촘하게 응집되어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에너지 덩어리라고 할 수가 있는 신성력의 집결체인 유령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이라고 브륜힐트가 가르쳐 주었다.

‘죽음이 사용하는 완벽한 스텔스 능력도 영체화일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단순하게 그것만이라면 율리안이나, 길로틴이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이유는 없어. 영능력자를 구하는 게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말이야. 으음, 도대체 무슨 꼼수를 부리는 거지?’

그런 고민을 하면서도 영능력자가 없는 사단본부를 손쉽게 빠져나온 류안은 어느 정도 안전한 장소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영체화를 풀고는, 통신 단말기를 통해서 자신의 부관 겸 비서로 일하고 있는 아트리에게 연락을 보냈다.

뚜르르르르르-달칵.

[네, 무슨 일이십니까……사령관님.]

“하악하악. 아가씨. 지금 무슨 색의 팬티를 입고 있지?”

[장난전화라면 끊겠습니다.]

“크흠, 장난전화라니 무슨 실례되는 소리를……나는 그냥 직장상사로서 부하들의 속옷상태를 체크하려는 것…….”

달칵!

개드립을 이어나가자 주저 없이 통화를 끊어버리는 아트리에였지만, 브륜힐트에게 조교(?)를 당하게 된 영향인지 살짝 M의 성향을 가지게 된 류안은 그런 차가운 반응에 오히려 싱글벙글 웃으면서 다시 한 번 통신을 시도했다.

뚜르르르르르-달칵.

[……쓸데없이 연락하셨다면 단말기의 선을 뽑아버릴 거예요.]

“레더 조합장에게 연락해서 잠시만 시간을 내달라고 이야기를 해 줘. 원정대는 무시하고 자치령과 1대 1로 대화하자고 말이야.”

[……진심이십니까?]

원정대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원정대를 제외하자는 류안의 말에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대꾸를 했다.

“나는 언제나 진심이야. 그러니까 이제 슬슬 팬티의 색을 가르쳐……아, 잠깐만 끊지 마! 끊지 마! 조합장과 만나는 건 만나는 건데. 협상 테이블에 한 사람 더 동행시켜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어.”

[……그게 누구입니까?]

아트리에의 질문에 커티스를 통해서 정체를 알게 된 천재 귀요미와의 만남을 기대하면서, 류안은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범죄자의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마스터 카프……반드시 우리 자치령으로 영입해야만 하는 1순위 스카우트 대상이지.”

============================ 작품 후기 ============================

펜져스와 주인공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신다면

주인공이 조금 더 유쾌하게 미쳤다는 거죠.

참고로 저는 안 미쳤습니다.(정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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