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3 ----------------------------------------------
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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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구역 최대의 지하정류장을 가지고 있던 카이오가 제국군에게 함락당한 일은 불과 5일 전의 일이다.
당시에 이 지역은 메카닉 조합의 이사인 드보르작이라는 남자를 중심으로 레지스탕스를 결성했고, 6사단의 연합군을 보내서 지원군을 합류시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적으로는 여전히 열세였지만 언더월드의 특성을 이용해서 비좁은 통로를 차단하고, 요새화를 통해서 방어에 이점을 적극적으로 살리는 방식으로 제국군에 맞섰다.
특히나 선로가 15개나 집중되어 있는 중앙역의 경우에는 강력한 상전이포를 설치.
지하철의 선로를 이용해서 막무가내로 돌격해 들어오는 제국군의 중무장 열차를 몇 대나 녹여버리면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리사 슈미트가 이끄는 펜져스의 별동대가 참전하기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그녀가 이미 다른 정거장을 함락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에 레지스탕스와 원정대는 모두 비상체제로 전환하고, 5분 대기상태로 무장을 갖춘 체 제국군의 침략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된 적들의 공격.
“이, 이사님! 적들이 드릴 라이더를 동원해서 정거장의 외벽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숫자는 얼마나 되지?”
“어림잡아도 5만은 넘는 것 같습니다!”
“당황하지 마라. 이 정도의 사태는 미리 예상했던 일. 천공선이라면 모르겠지만 기껏해야 드릴 라이더라면 문제 될 건 없다.”
드릴 라이더는 지하자원을 탐색하기 위해서 개발된 드론으로 땅속을 마치 수영하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비집고 돌아다닐 수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5~6세의 어린아이보다 조금 더 큰 동체를 가지고 있으며 지나간 자리는 금방 매몰되어 버리기 때문에, 땅굴을 판다기 보다는 말 그대로 땅 속을 헤엄쳐 다닌다는 것이 어울리는 기계 장치들.
가끔씩 암벽의 붕괴로 그 자리에서 매몰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조종사로 사용하는 원소의 정령들은, 죽지 않고 정령계로 역소환되기 때문에 탑승자들의 목숨을 고려하지 않고 대량으로 생산하는 녀석들이다.
하지만 싼 녀석들은 어제나 싼 이유가 존재하는 법.
“이쪽도 드릴 라이더를 출격시킬까요?”
“아니, 고작해야 4~5천대 밖에 없는 녀석들을 출격시켜봤자 쓸데없는 피해만 커질 뿐이다. 그것보다는 마스터 카프의 발명품을 한 번 시험해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레이더를 통해서 수만의 붉은색 점들이 카이오 정거장을 감싸고 있는 쉘터로 진군해 들어오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들이 저지선으로 돌입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곧바로 명령을 내리는 드보르작.
“극초단파 발생기 가동. EMP 전자망을 가동시킨다!”
“가동!!”
후우우우웅!!
쉘터를 감싸고 있던 극초단파 발생기들이 일제히 가동하면서 전자기기를 무력화시키는 강력한 EMP가 저지선에 접근한 드릴 라이더들을 제압해 나갔다.
파지지지직!
그러자 전기 철조망에 걸린 새들처럼 일제히 부르르 떨다가 제자리에서 정지해버리는 적들.
그 모습을 확인한 레지스탕스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좋았어! 전멸이다!”
“하하하하하! 꼴좋다, 펜져스 놈들……”
“다시는 우리 기술자들을 무시하지 마라! 이것이 바로 현장직의 위엄이다, 크하하하하하하!!”
한 번 쓰면 파괴되는 EMP폭탄과는 다르게 마스터 카프가 설계한 극초단파 발생기는 충전을 통해서 몇 번이라도 EMP를 발생시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카트리지를 교환하는 것처럼 전기 충격으로 대체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땅 속에 연결된 연결망으로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이 가능한 기술.
펜져스에게는 대대손손 착취당하는 노예로서 부려 먹히던 기술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병기로 그들에게 복수했다는 생각에 환호성을 질러싿.
하지만 그것은 잠시의 기쁨에 지나지 않았다.
지지지직, 지지지직, 지이이이잉!
“!! 드, 드보르작 이사님! 저, 적의 드릴 라이더들이 다시 활동을 재개합니다!”
“무슨 소리야?!”
“모,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정지했다고 생각했던 적들이……다시 한 번 진입을 시도해옵니다. 겨, 격벽까지 남은 거리는 200M!"
“젠장! 멀뚱하게 있지 말고 카트리지를 교환해서 전기 충격으로 교체해!”
“하지만 아직 재충전이…….”
“상관없으니까 지금 당장 발사해!!”
파지지지지직!!
카트리지 교환을 통해서 발전기처럼 변형되어버린 극초단파 발생기는 이번에는 전기 충격을 흘려보내어 드릴 라이더들을 공격해 들어갔다.
무리하게 동력을 끌어올리는 바람에 몇몇 장치들에서는 이상이 발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정상적으로 전기를 방출해내며 5만이 넘는 드릴 라이더를 감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움직임을 멈추는 드릴 라이더들.
“휴우, 이번에야말로…….”
잠시 동안 침묵에 잠겨서 그들을 예의주시하던 드보르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맹렬하게 드릴을 회전시키면서 격벽에 달라붙어 버렸다.
지지지직, 지지지직, 지이이이잉!
“드, 드릴 라이더들이 격벽을 공격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극초단파 발생기들이 파괴당했습니다. 더 이상은 대응 수단이…….”
“마, 말도 안 돼! 녀석들은……불사신이라는 것인가?!”
***
격벽을 뚫고 돌입해 들어간 드릴 라이더들은 변형을 통해서 마네킹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신하고는, 머신건을 난사하면서 레지스탕스의 후방을 교란하고 있었다.
“적들의 수비군이 물러나고 있습니다! 기회에요, 리사님!”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기 힘든 조그마한 체구의 예쁘장한 꼬마가 호들갑을 떨면서 외쳤다.
하지만 호기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리사는 하늘색의 무희복장으로 불량스럽게 다리를 꼬면서 불만스럽다는 듯이 입술을 삐죽거리고 있었다.
“시끄러워 캐스터네츠. 하여간에 질리지도 않고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꼴이라니…….”
“에엣! 너, 너무하세요. 리사님! 맨날 이유도 없이 저한테만 뭐라고 하시고…….”
“다물어라, 똑딱이. 리사님이 불쾌하신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느냐?”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남자는 검은색의 무복차림에 한 자루의 롱 소드를 등 뒤로 짊어지고 있었다.
“흐응, 파고토는 내가 화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데?”
“그거야 당연히 브라스가 빠져서 속상해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헤헤헤헤.”
하지만 진중해 보이는 태도는 그의 주인이 관심을 보이는 순간에 180도 태도를 바꾸어서 꼬리를 살랑거리는 강아지의 모습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쉭- 쉭- 쉭- 쉭!”
그 꼴이 우습다는 듯이 쇠를 긁어내는 것 같은 바람소리를 내면서 들썩거리는 3m가 넘는 근육질의 거구를 가지고 있는 남자.
그의 목소리가 이상한 이유는 그가 sm에 나오는 노예들이나 착용할 법한 검은색의 가죽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볼 개그를 입에 물고는 양팔을 쇠사슬로 묶어버린 상태에서 리사를 자신의 왼쪽 어깨에 태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튜바, 이 새끼가……리사님을 태우는 영광을 누리면서도 나를 비웃어? 좋아, 너 죽고 나 죽자. 오늘 이 하울링 소드가 네놈의 피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지이이이이잉!
그의 비웃음에 발끈한 파고토가 그렇게 외쳤지만 다음 순간에 귀청을 찢어버릴 것 같은 일레트릭 기타의 현을 튕겨대는 것 같은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 구따라라, 스따라라! 이 세계는 러브 & 피스라고 나의 소울 브라더 새끼들!! 그런 의미에서 한 곡 어때? 나의 잔잔한 콘트라베이스라도 들으면서 가슴을 진정시키는 것이…….”
“너 같으면 진정 되겠냐, 이런 미친 전자 콘트라베이스 새끼가!”
“오 마이……이런 쿨하지 못해서 미안한 새끼들…….”
들고 있는 악기 그대로 콘트라베이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남자가 한탄하면서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도찐개찐으로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닌 부하들의 불협화음을 바라보는 리사의 입술에서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괜히 텐저린(댄서)들을 빼고 무지크(음악대)들을 데리고 왔나봐. 아무리 루나틱 댄서라지만 악기들이면 악기들답게 하모니를 만들어야지. 소음공해만 만들어내는 거야? 이러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하는지 모르잖아?’
그렇게 생각하고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의 불만사항을 직접 끄집어내는 그녀.
“하여간에 카트린 언니도 그렇고 아버님도 지나치게 참견 쟁이라는 말이야. 나 혼자서도 충분히 당해낼 수 있는데 겨우 이 정도의 적들을 상대하는데 죽음이니, 꼭두각시 병단이니 하면서 억지로 지원해주는 이유가 뭐야?”
“아아아아! 그게 불만이셨군요!”
“정확하게 말하면 꼭두각시 병단이 아니라 형상기억재생금속 오토봇 군단인데요…….”
“닥쳐! 똑딱이! 리사님이 꼭두각시라면 꼭두각시인 거야! 우리 루나틱 댄서들이 전부 다 리사님의 손바닥에서 춤을 추는 꼭두각시들인 것처럼!”
“그, 그건 안 좋은 표현인 게……”
“닥치고 내 노래나 들으세요단강 건너!!”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는커녕 다시 한 번 제멋대로 떠들어대는 모습에 삐쳐버린 리사는 튜바의 어깨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외쳤다.
“아, 됐어! 남이 떠먹여주는 밥이거나 말거나 맛있게만 먹으면 되는 거지. 가라, 콘트라베이스! 선봉으로 돌격해서 중앙역을 점령해! 그리고 무능한 전직 슈발츠 장군 새끼가 두려워하던 상전이포로 얼굴을 처박고는 자살해버려!!”
“왓(what)! 명령을 받들겠습니다나까?!”
대답하는 것인지 질문을 하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토해낸 콘트라베이스는 붉은색의 피부와, 레게머리를 휘날리면서 곧바로 A급 마장기인 오르시누스 오르카(범고래)의 조종석으로 뛰어들었다.
후우우우우웅.
그가 시동마나를 주입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자기 부상을 시작하는 중무장 열차들의 행렬.
“저희들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선봉대의 진군준비가 갖추어지자 곧바로 리사에게 무릎을 꿇은 무지크의 대원들 중에서 파고트가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차크람을 착용하고 있는 손바닥을 펼쳐보이며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500명.”
단지 그것뿐인 명령이지만 대답은 일제히 돌아온다.
“Si vis pacem, para bellum!!”
***
카이오 정거장에는 약 100만 명의 민간인이 살고 있다.
그중에서 약 50만 명의 시민들은 당장에라도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전쟁병기가 모자라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레지스탕스에 참가해서 제국에 맞서는 사람들의 숫자는 2~3만에 불과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이 레지스탕스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직접 물어본다면 약 70% 이상의 사람들은 슈발츠 제국이나 펜져스라는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면서 분노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개중에는 밑도 끝도 없이 황제폐하 만세를 외치면서 레지스탕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도 없는 건 아니지만, 기술자들은 특히나 제국에게 가혹한 착취를 당하는 계층의 사람들이어서 그들의 분노가 곧 제국 국민들의 분노라고 봐도 과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대손손 너무나도 오랫동안 패배만을 학습해온 국민들은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간접적으로는 열성적으로 후원을 하면서도 막상 총대를 메라고 요구하면 난색을 표하면서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이 대부분.
늘 그래왔듯이 그들이 일치단결해서 독립을 갈망했다면 전황이 바뀔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드릴 라이더들은 시가지를 습격해서 머신건을 난사하며 시민과 레지스탕스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학살을 자행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한 길은 창문과 문을 걸어 잠그고 지하실로 대피하는 것이었다.
마치 폭풍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 작품 후기 ============================
류안이 스피아를 어떻게 제압했는지는 죽음과 싸울 때 밝혀집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강해져서 건방져졌다고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강해졌다고 안 구를 리가...
연재 주기는 조금만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1일 1연재가 부담스럽기는 한데 괜히 또 쉬는 날을 만들면 게을러질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