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167화 (167/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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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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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력 533년 7월 23일

팔란티오 행성의 점령전이 시작되고 2개월이라는 시간이 경과했지만 공화국의 1차 원정대가 거둔 성적표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우주함대의 우위를 바탕으로 무혈제압에 성공한 자원위성들은 둘째 치더라도, 지상의 52개 지역에서 평정에 성공한 지역은 불과 8개 지역.

행성점령전 초기에 쿠테타를 성공시킨 레지스탕스의 활약으로 확보한 5개 지역과, 류안이 이끄는 트라이엄프 부대가 독자적으로 제압해버린 13구역을 제외하면 원정대의 개입으로 독립시킨 지역은 겨우 두 곳에 불과했다.

반면에 같은 기간 동안에 제국의 별동대가 레지스탕스를 전멸시키고 제압한 장소는 무려 7개 지역.

이로써 총 13개의 분쟁 지역 중에서 레지스탕스가 살아남아서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는 지역은 불과 3개 지역에 지나지 않았다.

종합적인 스코어로 따지면 41: 8.

3개 지역이 경합 중.

비록 원정대의 숫자가 적었다고는 하지만 궤도포격이라는 전략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거둔 성과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초라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독립을 위해서 희생당한 레지스탕스와 제국의 국민들의 숫자는 거의 100만을 넘어가는 반면에, 원정대가 거둔 손실은 불과 1만 2천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제국군과의 충돌을 겁내고 있다는 비난들을 피할 수가 없었다.

[원정대는 전제주의를 타도하고 국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찾아온 구원자인가, 아니면 싸움 구경이나 하려고 찾아온 더러운 위정자들인가?]

[방위군의 개혁은 허상에 불과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주군에 지원을 요청하고 제국의 잔당들을 소탕하자!]

[무능하기 짝이 없는 마크넬 원수를 사임시켜라!!]

쿵!

쏟아지는 여론의 비난과 조롱들에 분노한 마크넬 원수가 억울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책상을 내리치고 말았다.

“이런 빌어먹을 개자식들 같으니라고……정치인들, 언론, 심지어는 부하라는 녀석들까지 모두가 한통속으로 나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어. 바키, 그 작자가 가지고 노는 쓰레기 언론사들이라면 몰라도 연맹에서 파견한 외신 기자들마저도 이 따위 기사들을 양산하고 있다니……정녕, 돈 맛에 환장했다는 것인가?!”

“고정하십시오, 사령관 각하.”

총사령관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참모장인 로미오 소장은 태평한 모습으로 차를 들이키면서 그렇게 대꾸했다.

“고정, 지금 고정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각하. 조금 전에 각하께서도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돈과 권력에 아첨하는 언론사들이 떠들어대는 말은 결국에는 개들이 짖어대는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합니다. 그것보다는 루퍼트 의원의 약속을 신뢰하고, 기다리십시오. 그가 말했지만 1차 원정대의 역할은 단순하게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흥! 고작해야 국회에서 탁상공론이나 지껄여대는 정치꾼이 뭐를 안다고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애초에 일이 이 지경으로 되어버린 것도 전부 다 그 자의 수하인 길로틴이라는 작자가 율리안과 결탁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뭐가 죽음을 경계하고, 뭐가 제국군의 저력을 경계하라는 것이냐? 전쟁터에서 위협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 군인조차도 아닌 겁쟁이들이 이렇게 쓸데없는 참견을 해오니까 이길 수 있는 전쟁도 이렇게 지지부진해지는 것이다!”

열변을 토해내는 마크넬 원수의 반응과는 대조적으로 로미오는 차를 들이마시면서도 차분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었다.

“지상의 전투에는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괜히 죽음이라는 암살자가 날뛰고 있는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지상군을 투입시켰다가는 장군들의 반감만 커지지 않겠습니까?”

“내 말이 바로 그것이다. 율리안, 지금까지 그 젊은 애송이 녀석에게 그렇게까지 많은 특권들을 부여해줬던 이유가 무엇이라는 말이냐? 일개 암살자 하나도 처리하지 못하는 녀석에게 공화국 최강의 기사라는 칭호를 수여하다니……아니, 하지만 녀석의 무술 실력만은 진짜다. 그 놈이 엄살을 피우는 이유는 전부다 전면전을 피하고 시간을 끌려는 속셈이 틀림이 없어.”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요. 그랜드 마스터의 의중을 일개 범인들이 어떻게 이해한다는 말입니까?

“제길……”

지상으로 강하했던 원정대 중에서 사망자는 불과 1만 2천에 불과했지만 그들 중에서 죽음에게 암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관급 이상의 장교들이 무려 50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그 희생자들의 명단에는 안전한 사령부에서 지휘를 하던 사단장급의 장군들도 무려 3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는데, 웬만해서는 사망하지 않는 장군들이 그렇게 속절없이 죽어나가자 그들이 지상으로 강하하는 일을 꺼리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물며 죽음의 수법에는 공화국 최강의 기사인 율리안 중장마저도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군의 지휘권을 가진 장군들이 지상전을 기피하면서 레지스탕스에 대한 군사지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답답한 난국을 타개시킬 수 있는 카드는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뇌신, 뇌신이라도 발동시킬 수 있다면 하찮은 암살자 따위에게 구애받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확실히 그렇기는 합니다만……율리안 중장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그 장치들을 보호하기 위한 항공 전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엔포서들이 파악한 제국군의 항공 전력도 그렇고……여기서는 답답하더라도 기다리는 것이 순리가 맞습니다.”

“하지만 본국에서 지원군을 보내지 않는다면 탁상공론에 불과하지 않은가? 가뜩이나 원정대에 대한 여론도 형편이 없는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수단이…….”

“그 건에 대해서입니다만……사실은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있는 희생양이 존재한다는 모양입니다.”

“희생양이라고?”

“그렇습니다. 각하께서도 이미 보고를 들어서 알고 계시겠지만 얼마 전에 1개 중대로 13구역을 제압했다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들었던 것 같군. 확실히 율리안 중장이 중령의 자리까지 막무가내로 진급시켜버린 인물이라고……설마?”

“바로 그 설마가 맞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진급시킨 이유가 희생양으로 화려하게 소모시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하더군요.”

“하, 그것 참. 바키 대통령의 사위가 되더니 비슷한 수법을 배워먹은 모양이군. 지금까지는 겉으로 공명정대한 척을 혼자서 다하더니만……뒤에서는 호박씨를 까고 있었다는 게 아닌가? 모략이라니……”

“하지만 국민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확실히……젊고 잘생긴 영웅이 부당하게 암살당하면 상당한 명분을 확보할 수는 있겠지. 아니, 설마. 지금 이렇게 모든 언론들이 원정대의 실패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는 것도……”

“아무래도 대통령 각하께서 직접 개입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위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으음……”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추론이었기 때문에 마크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원정대의 실태를 조명하면 조명할수록 류안의 성공을 부각시키기 쉬워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그렇게 부각시키지 않아도 그가 13구역을 제압한 사건은 유라디스 은하 전체를 살펴봐도 유례가 드문 대단한 업적이었지만, 단순하게 입소문으로 퍼져나가는 것과 언론사들의 기획을 통해서 조명하는 것과는 소문의 여파가 차원이 달라질 것은 틀림이 없었다.

예를 들면 포장하기에 따라서는 율리안 중장이 인정했고, 그를 뛰어넘는 재능과 인성을 겸비한 젊은 영웅이 탄생했다는 식으로 선전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은 상황.

하지만 무서운 것은 그렇게 띄워주고 난 다음에 죽음에게 먹이로 던져준다면…….

젊은 영웅의 탄생은 순식간에 젊은 영웅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포장되어 대중들에게 공분을 이끌어내는 공정이 가능해진다는 소리다.

“일이 그렇게 진행되는 것이라면 확실히 내가 나서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겠군. 원정대의 실패를 조명하는 것이 윗분들이 합심해서 공모한 작전이라면……함부로 개입했다가는 큰 일이 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크흠.”

이야기가 위험해진다는 판단이 들자마자 곧바로 태도를 바꿔버리는 모습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찻물을 들이키는 로미오가 비웃음을 흘려 나갔다.

‘이제야 겨우 자신의 주제파악이 가능해진 모양이군. 하여간 귀찮은 작자라니까……말이 좋아서 중립이라는 거지. 사실은 어느 파벌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외톨이 박쥐같은 신세가 함부로 설쳐대다가 뒤늦게 현실을 파악하는 꼴이라니……’

마크넬 원수가 돌발행동을 저지르지 못하게 만들라는 상부의 명령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그는, 얼마 후에는 적당한 핑계를 대면서 사령관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날을 기점으로 가온공화국만이 아니라 연맹 전체에서 류안의 성공을 포장하는 대대적인 미디어 공세가 시작되었다.

***

류안이 복귀한 이후로 13구역의 체제는 빠르게 정비되어 나갔다.

지방정부의 조인식을 가진 모건과 카스티야는 13구역의 이름을 슈발츠 제국이 부여한 넘버가 아니라, 마그누스 자치령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으며 공화국과 협조해서 전제주의를 타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자치령 군대의 규모는 30만.

강화몬스터 군단의 규모는 500만.

트라이엄프 대대는 인원 보충을 통해서 1200명의 독립부대로 재편되어서 규모만으로는 그럴 듯한 구성을 갖추게 되었지만, 셋 모두 숫자만 갖추었을 뿐 본격적으로 전쟁에 동원하기에는 수많은 불안 요소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큰 불안 요소는 한 사내의 멘탈이었다.

“원하는 대로 유명해졌네. 축하해, 류안.”

[……고마워. 탈리아.]

“지금 밖에서 외신 기자들이 취재를 한다고 줄을 서고 있는데……한 번 나서보는 게 어때? 쭉쭉빵빵한 미녀 리포터들이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내고 있더라.”

[그렇게 예뻐? 아, 아니야. 역시 지금은 됐어. 미안하지만 돌아가라고 이야기 해줄래? 지금은 몸 상태가 좀 안 좋아서……]

“몸이 아니라. 머리카락이 안 좋은 거겠지. 크크크큭! 도대체 어디에 가서 그렇게 예쁘게 밀어가지고 돌아온 거야? 가발이라도 쓸래? 그렇지 않아도 내가 얼마 전에 우리 류안이 하도 안쓰러워서 하나 구입하기는 했는데…….”

[아니야. 나는……복면만 쓰고 있어도 괜찮아. 자라나라 머리머리……]

탈리아의 놀림에도 불구하고 평소와는 180도 달라진 소극적인 태도로 복면을 착용하고는 힘없이 머리카락을 두드리고 있는 류안.

날아가 버린 모발이 자신감도 전부 가져가 버렸는지 막강하기 이를 데 없는 능력들을 소유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로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덕분에 처음에는 그를 놀려대었던 탈리아도 살짝 미안해져버리는 상황.

“크, 크흠. 뭐 그래도 예전보다 훨씬 멋있어졌으니까 괜찮은 거 아니야? 너무 그렇게 축 늘어져 있지는 마. 의사선생님이 한 일주일만 있으면 스포츠머리 수준까지는 자라난다고 하셨잖아? 요즘 발모제들 효과가 얼마나 좋은데…….”

[그 일주일이 내 인생 최고의 일주일이 될 수도 있었는데.]

“…….”

카메라의 플래시 세례, 인터뷰, 언론의 주목, 군중들의 환호.

주목받기를 좋아하는 류안은 그동안 그토록 간절하게 원해온 언론사들의 모든 러브콜을 일신상의 이유로 거절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대머리인 류안도 괜찮은데……대머리 연예인들도 많아? 눈썹까지 없는 경우는 드물기는 하지만……”

[자꾸 대머리, 대머리 하지 말아줄래? 듣는 대머리 기분 나쁘거든……]

“으, 응.”

어떻게든 기운을 나게 해주려고 했던 시도가 정색하는 태도로 돌아오는 바람에 탈리아는 머쓱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하고야 말았다.

그날 밤.

혼자서 외롭고 쓸쓸하게 잠자리에 둔 류안은 베개를 끌어안고 훌쩍거리면서 밤을 지새웠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아주 작고 사소한 꿈이…….

그것은 찰랑거리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언론의 플래시 세례를 받아서, 지난 날 율리안의 배경으로 취급당하던 서러움을 앙갚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 복면을 풀어도 되었을 때는 그를 취재하러 몰려들었던 기자들은 전부 다 우주로 돌아가 버리고 난 이후였다.

============================ 작품 후기 ============================

사실 대머리 드립과 복면 드립으로 한 편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웃픈 에피소드라 스킵했습니다!!

그래도 다음 편에는 복면 드립을 조금...크흠.

하지만 일단 내일은 하루 쉬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아픈 것도 아니고 바쁘지도 않지만 연재보유량을 만들기 위한 휴식입니다.

사실 매일 한 편씩 쓰다보니까 생각했던 것처럼 글이 나오지를 않는 것 같아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

내일 모래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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