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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계약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프레이야님이 발할라의 규칙을 무시하고 저와 독자적으로 계약을 체결했던 것처럼 브륜힐트님도 저와 독자적으로 계약을 체결하자는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그대가 도대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인가!]
“정말로 그럴까요?”
[……크읏.]
시종일관 자신을 가지고 노는 그의 태도가 얄밉기 이를 데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그가 그렇게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순간마다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을 느끼는 브륜힐트였다.
분하기는 했지만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속담처럼 그녀는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해주기를 바란다.]
‘존댓말로 부탁하라고 명령하고 뒤에 주인님. 냥!까지 붙이면 금상첨화겠지만……그렇게까지 몰아세우면 성질머리 때문에라도 자살을 선택할 것 같군. 아쉽지만 이쯤에서 딜(deal)을 해보도록 할까?’
그녀의 태도가 많이 누그러졌다는 사실을 간파한 류안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풀어드려, 사브리나.”
“네.”
꼴사나운 모습으로 계속할만한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류안은 브륜힐트를 풀어주고는 손바닥을 쳐서 그녀에게 다시 의상을 입혀주었다.
“발할라를 달성했을 때의 특권을 드리겠습니다.”
[……뭐?]
“예전에 스쿨드가 저한테 알려주었죠. 발할라의 임무를 완수하면 그 임무를 내린 당사자와 직접 만나서 소원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그것을 당신에게 넘겨드리겠습니다.”
[그런 터무니없는!]
“서방님?!”
발할라에 도전하는 목적 자체를 고스란히 양도한다는 류안의 파격적인 조건에 두 여자가 동시에 경악스러운 비명을 질러대었다.
“왜 그렇게까지 놀라십니까? 알다시피 저에게는 소원을 이루어주기로 약속한 분이 두 분이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하나를 양도하겠다는 겁니다……물론, 공짜는 아니지만요.”
발할라가 완성된 이래로 발키리들이 가장 답답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오딘과의 소통이 단절되어버렸다는 것.
다른 신들이나 발할라를 완수한 영웅들과는 교류를 하면서도 정작 그녀들에게는 임무만을 내려놓고, 어떤 회견도 거절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충성심에 금이 생기는 상황이었다.
[확실히……그 특권을 양도받을 수 있다면 우리 자매들의 의심도 해소될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소원이라는 빌미로 아스 신의 신격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하지만 그것은, 그런 거래를 해버린다면!]
“그렇죠. 발할라의 도전자에게는 간섭을 하지 않는다. 룰 위반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당신들이 안 되는 겁니다. 정말로 간절하게 원하는 게 있다면, 자신들의 처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자기 자신의 손과 발이 더러워지는 정도는 감수하면서 맞서보십시오!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항의조차도 하지 못하는 처지면서 필멸자들을 깔보시는 겁니까? 원숭이도 부당하면 바나나를 집어던지면서 항의를 합니다. 이런 원숭이 이하의 노예근성녀 같으니라고!!”
[!!]
신랄하게 비판하는 류안의 비하에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면서 분노하는 브륜힐트였지만, 정곡을 찌르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수치심과 분노로 부들부들 떨면서도 대꾸하지는 못했다.
‘좋아, 반응이 있어! 단숨에 끝내버리면 좋겠지만 괜히 더 몰아세웠다가는 역효과만 나올지도 모르지. 이쯤에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줘보도록 하자.’
“뭐, 갑작스럽게 이런 제안을 받았다고 그래도 당장은 받아들이기 어렵겠죠. 앞으로 며칠 동안은 생각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마음이 정해지면 다시 한 번 저를 찾아오십시오. 그리고 그 때는……스스로의 의지로 처녀성을 협상 테이블로 올리는 각오 정도는 보여주십시오. 오딘이 이루어주는 소원 따위에는 관심조차 생기지 않을 정도로 화끈하게 말입니다.”
[……]
그의 제안에 한동안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면서 찡그린 표정으로 서있던 브륜힐트는 이내, 순간이동을 사용해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괘, 괜찮을까요? 이렇게 막무가내로 일을 벌였다가 나중에라도 문제가 되는 건……”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걱정스러운 태도로 질문을 던지는 사브리나.
“걱정하지 마. 문제가 생기려면 진작부터 문제가 발생했을 거야. 오딘의 꿍꿍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그가 발키리들의 처지에 관심이 없다는 것만은 확실해. 장담하는데 브륜힐트가 발할라의 규칙을 어긴다고 그래도 눈썹 하나도 까딱하지 않을 걸?”
“으으으으. 저는 서방님이 그렇게까지 자신만만한 이유를 모르겠어요. 도대체 무슨 근거로 하시는 말씀인지……”
“아, 글쎄 두고 보라니까? 후후후후. 그나저나 다음 만남이 기대되는군. 발키리의 처녀라니……음헤헤헤헤.”
염원하던 발키리의 처음을 접수한다는 생각에 헤벌쭉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리는 그였지만, 사브리나는 뭔가를 고민하는 듯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그 건에 대해서 말인데요, 서방님.”
“응?”
“서방님의 계약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발할라의 완수 특권을 발키리들이 원하는 게 사실이라면……굳이 브륜힐트님이 서방님과 거래를 할 필요는 없는 게 아닌가요? 다른 발할라의 도전자들과 거래를 하는 편이 그분에게는 훨씬 이득인 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류안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표정으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새, 생각하지 못했어! 제, 젠장! 이렇게 된 이상에는 오딘의 권능을 사용해서 억지로라도 강간, 능욕, 조교를……”
“꺄아악! 그, 그만두세요. 서방님. 그런 방법을 사용하시면 정말로 발키리님과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거라니까요?”
브륜힐트의 처녀가 다른 도전자들에게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류안은 한동안 광분하면서 날뛰었지만, 이내 이성을 되찾고는 오딘의 권능을 사용해서 그녀의 활동을 감시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명상을 통해서 계속해서 뭔가를 고민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브륜힐트.
그 틈에 류안은 유라디스 은하로 돌아가기 전에 이쪽 세계에서 정리할 문제들을 하나둘씩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잘 들어, 사브리나. 가온 공화국의 류안 중령이야. 뭐, 네가 이민해서 넘어올 무렵에는 계급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서방님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고 헤매면 나중에 혼쭐을 내줄 테니까! 잘 찾아와야 돼. 알았지? 그리고 다른 놈팡이한테 한눈팔면 그냥……크르르르르.”
“네, 물론이에요. 주인……아니, 서방님! 서방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히잡을 쓰고 다니면서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게요. 헤헤헤헤.”
브륜힐트와 계약을 맺는다고 그래도 발할라의 시스템 자체에 간섭하지는 못한다.
덕분에 유라디스 은하로 넘어가면 사브리나가 마왕군의 진영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한동안은 생이별을 경험해야만 하는 것이 운명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사하스 연맹과는 상호불가침의 조약을 체결하고 있는 세력이기 때문에, 약간은 절차가 까다롭더라도 이민해서 넘어오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물론, 다크 엘프의 특성상 인간 세력권에서의 차별은 피할 수 없겠지만 사브리나와 류안이 힘을 합친다면 그 정도의 난관은 난관이라고도 볼 수가 없는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두 사람의 시련은 로라와 크리스가 선택한 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들은 놀랍게도 류안을 따라서 유라디스 은하로 넘어오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그러니까, 달링. 능력을 A급까지 단련시키면 우리들도 발할라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취득할 수 있다는 거잖아? 모처럼 영혼 상태로 생활하는 방법도 터득했는데……한 번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 달링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 그게 말이지……”
솔직하게 말해서 그녀들이 따라온다면 류안으로서는 자신의 여자들이 늘어나는 것이니 대대적으로 환영할만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 한없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사브리나가 남겨놓고 가는 사령술을 공부해서 능력의 등급을 A급까지 올려도 유라디스 은하로 넘어올 수 있는 보장은 없어. 게다가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고……유라디스 은하에서는 잠깐만 기다리면 되는 일이라지만, 너희들은……”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지 말입니다! 한 번 스승님은 영원한 스승님입니다. 그러니까 격려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두고 간다거나나……그런 서운한 말을 하지 말아주시지 말입니다. 저는, 저는……흐윽.”
씩씩하게 대꾸하던 크리스가 마지막에는 눈물을 글썽거리더니 결국에는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옆에서 태연한 척 팔짱을 끼고 있던 로라도 입술을 깨무는 모습이 감정이 복받치는 것을 억누르고 있는 모양.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그녀들과 헤어지기로 결정한 사람은 류안이었기 때문에, 그는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고는 두 사람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당기면서 토닥거려주었다.
“무신경한 남자라서 미안해. 크리스의 말이 맞아. 한 번 맺어놓은 관계는 그렇게 쉽게 끊어버려서는 안 되는 거지. 좋아, 최선을 다해서 뒤따라오도록 해. 나도 너희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동원할 테니까……절대로 포기하지 마, 그러면 나도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달링!”
“스승님!”
세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으면서 애정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그런 정리들이 대충 마무리되어질 무렵.
마침내 결정을 내린 브륜힐트가 한 밤중에 류안을 비밀스럽게 호출해 왔다.
3명의 여자들은 텔넷을 떠나기 전에 추억을 만들자는 그의 강력한 요구로 하드코어한 성행위에 희생당하고, 전부 다 녹초가 되어서 실신해버린 상태.
덕분에 그녀들을 내버려두고 혼자서 에이르의 샘으로 발걸음을 옮긴 류안은, 무장을 해제하고서는 정갈하기 이를 데 없는 흰색의 무복 차림으로 정좌하고 있는 브륜힐트를 발견하고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 올렸다.
그녀는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 오딘을 배신하고 류안과의 독자적인 계약을 체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훗날에 이 일로 오딘에게 어떤 문책을 받더라도 감수하겠다. 자매들을 위해서……그리고 발키리의 긍지를 위해서……나는 오딘을 버리고, 한 명의 아스 신으로써 당당하게 그의 앞에 서겠노라!]
“후후후후. 멋지십니다. 이제야 겨우 제 눈앞에 있는 여성이 신화 속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로써 보이는군요. 그렇다면 저도 올마이티라는 긍지에 걸고 계약에 임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당신의 각오를 보여주십시오. 무엇을 바라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죠?”
크오오오오!
그렇게 말하면서 류안은 주저 없이 흑염룡을 끄집어내서 브륜힐트의 눈앞으로 들이밀었기 때문에, 그녀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면서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버렸다.
[정말이지 그대라는 남자는……처음부터 지금까지 너무나도 본능에 충실하군. 그, 그렇게까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인가? 나의 처녀성을……]
“당연히 원합니다! 엄청나게 원합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들어서 당신에게 제 사랑이 뭔지를 철저하게 가르쳐드리고 싶습니다! 오딘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정열적인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드리죠! 사랑합니다, 브륜힐트님!!”
자신의 어깨를 붙잡으면서 열렬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구애자에게, 그녀는 평소와는 다르게 자신의 목소리로 수줍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까지 원한다면 좋다. 나의 처녀를……받아다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대가 직접……”
그 말과 함께 류안은 한 마리의 늑대로 변신해서 그녀를 쓰러트렸다.
============================ 작품 후기 ============================
몇줄 후기.
원래 이번 편에 브륜힐트 H장면을 넣고 텔넷을 끝내려고 했지만...
13일의 선거를 독려하기 위해서 일부러 다음 편으로 푸시했습니다!
당신이 어떤 정당을 믿던지, 누구를 지지하는지는 상관없습니다.
투표하세요!
그러면 저도 기분 좋게 브륜힐트와의 h편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비바 데모크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