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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납득할 수 없어요! 안전한 길을 내버려두고 그렇게 위험한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니……이번 부탁만은 아무리 서방님이라도 들어드릴 수 없어요!”
류안의 열정적인 설득에도 불구하고 사브리나는 의외로 끈질기게 그의 작전을 반대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의 생명을 건 도박이 지나치게 위험하다는 것이었지만, 진짜 이유는 유라디스 은하로 떠나버리면 한참 동안이나 그와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하기야 2700년 동안이나 친구도 한 명 없이 쓸쓸하게 생활했으니까……모처럼 생긴 남편이나 친구들과 생이별하는 게 싫을 법도 하지.’
언젠가 그가 예상했던 대로 사브리나가 속했던 사령술사 집단은 텔넷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금욕주의와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독립적인 환경이었다고 한다.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개인의 숙소 겸 연구실에서 하루 종일 사령술을 연구하고 사령술로 노는 게 일상.
가끔씩 사령술사들끼리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는 경우도 있었지만,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진행하는 게 아니라 사역귀를 아바타처럼 사용하면서 대리로 진행.
대화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논문과 편지를 교환하면서 서로의 연구에 의견을 표시하는 게 전부인 사무적이고 무미건조한 관계가 당연한 사회였기 때문에, 2700년이나 살면서도 가족은커녕 친구조차 없는 외톨이 인생을 살아왔다고 한다.
그런 순진한 소녀에게 갑자기 혁명(?)처럼 등장한 사람이 류안.
편지 교환이나 원거리 통신으로 차분하게 서로를 알아가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던 사브리나에게, 만난 지 1일 만에 결혼해버리고 첫날밤으로 시작되는 4주간의 기초 조교 훈련으로 육체의 커뮤니케이션이 뭔지를 가르쳐준 사람이다.
덕분에 그녀는 인간으로서의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는 느낌과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정도로 수치스러운 일들을 경험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음란하기는 해도 유쾌하고 자상한 남편인 류안과의 생활은 달콤한 허니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꿈만 같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물론, 신혼생활을 만끽하면서도 당당하게 세컨드와 서드인 로라를 데리고 들어와서 주지육림을 향유하는 모습이 지금까지 없었던 미움과 증오, 질투와 원망 같은 마이너스적인 감정도 일으켜 세웠지만.
어쨌든 두 사람의 성격도 기본적으로는 소탈하고 활발했기 때문에 사브리나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가서 친구가 되어주었고, 사랑하는 남편과 좋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생활이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류안이 그것을 부숴버리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계속, 이대로 계속해도 괜찮잖아요? 100년……아니 10년만이라도……서방님이 말씀하시는 더 큰 세계 따위는 알고 싶지 않아요. 이대로 여기에서 네 사람이 영원히 행복하게……”
“이불 속에서 쟁취할 수 있는 영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나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멈춰 서지 않는 것이야말로 영원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어.”
“하, 하지만 사령술의 길에도 끝이 없다고요? 여기에서 저와 둘이 함께 도전하면……”
“자꾸 서방님에게 말대꾸를 하다니 조교가 모자랐던 모양이군. 좋아, 조교 페이즈 2로 진행을……”
“따라갈게요, 서방님.”
“……”
논리나, 이성, 법보다 가까운 육체적인 협박(?)에 굴복해버린 사브리나는 재빠르게 태세전환을 사용해 류안의 계획에 협조하게 되었다.
***
오기조원을 완성시키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지만 현실의 류안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프로모션이 완성되면 오기조원의 경지는 사라져버리고 만다.
2만의 마나와 환골탈태를 아득하게 뛰어넘은 경지의 소실.
그것은 비유하면 전설의 무기를 1회용 이벤트 아이템으로 쓰고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인 행위였다.
죽음의 힘에 저항하기 위해서 강력한 힘을 소망했던 류안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던 것과는 동떨어진, 단순하게 프로모션을 완성시키는 소모성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발버둥을 쳐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브륜힐트는 이 세계의 끝이 오기조원의 달성으로 정해져있으며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가르쳐주었다.
류안의 기준으로는 거의 전지전능에 가까웠고 어마어마한 능력들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말에 한동안은 완전히 속아 넘어갔지만, 사브리나를 만나서 사령술을 학습한 그는 그 말이 완벽한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단지 이 세계를 만들어낸 오딘의 권능과 법칙에 충실하고 있을 뿐이니까.
“하지만 그 규칙 자체를 바꿔버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오딘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발키리를 오딘의 명령으로 조종할 수 있다면 말이야. 후후후후후후후…….”
브륜힐트가 자신의 노예로 전락하는 광경을 떠올리면서 류안은 사악한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100% 될거라는 보장은 없어요. 미니게임이라는 권능이 서방님의 강력한 소망으로 발동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재구성하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소망과 힘의 원천을 사용해야만 하거든요. 현실의 법칙에 간섭을 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계획을 실행시키기 위해서 그가 가부좌를 틀고 있는 장소를 중심으로 오망성의 복잡한 수식들이 들어간 사령진을 그려나가던 사브리나가 그렇게 충고를 했다.
“그래서 내가 내 내면에 잠들어있는 흑염룡과 대화를 하겠다는 거잖아. 2가지 조건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는 건 녀석밖에는 없으니까……”
“최, 최악의 경우에는 촉수들이 다시 한 번 뛰쳐나올지도 모른다고요? 아무리 안전장치를 사용해서 실행한다고는 해도 그런 괴물과 대화하시겠다니……게다가 브륜힐트님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괜찮아, 괜찮아. 그 고지식한 여자가 훔쳐보기 같은 품위 없는 짓을 할 리가 없지. 그리고 나는 말이야……흑염룡을 믿어. 녀석은 내 자식이니까……설마 썩시딩 유 파더를 시전 하겠어? 우리는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소울 브라더라고……그렇지, 염룡아?”
크오오오오오!!
자신의 하반신과 뜨거운 우정의 악수를 나누면서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찬 류안의 모습에 사브리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어쨌든 이 도박이 실패로 돌아가서 최악에 상황이 발생한다고 해도 재빠르게 도망쳐서 브륜힐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지만, 그것은 다시 말하면 그녀에게 자신들의 죄를 자백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두 번의 시도는 불가능했다.
그러니 이 시도가 성공한다고 해도 실패한다고 해도 달콤한 신혼생활이 종말을 맞이할 것은 명약관화한 일.
덕분에 사브리나는 모든 준비를 끝내고도 한참을 망설이고 말았지만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어버렸기 때문에, 류안의 뜻을 따라서 그를 내면에 봉인되어 있는 흑염룡과 접촉시키는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뒤덮는 밤의 그림자시여, 영혼을 거두어들이는 황혼의 왕이시여, 그대의 미천한 종인 사브리나의 이름으로 청하옵건데……”
그녀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려 퍼지면서 류안의 의식도 점점 더 현실에서 멀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서방님!]
사브리나의 외침에 류안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감옥을 연상하게 만드는 벽돌로 둘러싸인 어두컴컴한 외길의 통로.
빛이라고는 그에게 길을 인도하기 위해서 조그마한 요정 도우미로 변신한 사브리나가 뿜어내는 랜턴 수준의 불빛이 전부였고, 자신의 복부에는 여차할 때 이 장소를 탈출하기 위해서 묶어놓은 로프만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여기가 흑염룡이 봉인되어 있는 내면의 심상세계야?”
[네, 맞아요.]
“으음, 내 심상세계는 분명히 온 세상의 미녀들과 즐거운 게임들이 가득찬 이상향일거라고 생각했는데……설마 나치들이나 튀어나올 것 같은 이런 칙칙하고 답답한 공간이라니……”
[나치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계를 변형시켜 버린 건 서방님이 아니라 브륜힐트님이세요.]
“나도 알아.”
사브리나가 사전에 알려준 정보에 따르면 이 심상세계는 흑염룡을 봉인시키기 위해서 브륜힐트가 만들어낸 공간으로, 크레타 섬에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어 놓았다는 다이달로스와 비슷한 미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나저나 조그마한 우리 새색시도 귀여운데? 설마하니 피규어 사이즈라니……하악하악. 또, 또다시 내 중2가 자극을…….”
[헤헤헤……귀엽다니 그런……앗! 갑자기 치마를 잡아 올리시면 안 돼요. 정말이지……서방님도 참.]
부끄러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붉혀버리는 사랑스러운 반응에, 류안은 흑염룡을 찾으러 떠나기 전에 미니사이즈의 그녀를 가지고 여러 가지 음란한 장난을 시도하고 싶은 격렬한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기 전에 한 그룹의 스켈레톤 병사들이 그들을 향해서 다가왔다.
달칵달칵.
“이 녀석들은 뭐야?”
[서방님의 잠재의식이 만들어낸 파수꾼들이에요.]
“내 부하들이라는 소리야?”
[안타깝지만 아니에요. 그들은 단순하게 정신세계로 침입한 이물질을 배제하려는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에 불과하거든요. 약화주문을 걸어놨으니 대단한 적들은 아니지만……흑염룡과 접촉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공격해 들어올 거예요.]
하필이면 그런 파수꾼들이 스켈레톤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약간 서운하면서도 아쉽기는 했지만, 최근 들어서 그가 가장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테마가 테마가 사령술이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쭉쭉빵빵한 미녀들이 파수꾼으로 등장한다면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시간을 빼앗겨버리고 말 테니까. 차라리 이편이 나을지도 모르지.’
만약에 예쁜 여자들이 류안의 앞길을 가로막는다면 쓰러트리는 의미가 전혀 다른 의미로 변질되어버리고, 여자들의 타입에 따라서 콜렉터(?)의 근성이 발동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흑염룡과는 영원히 접촉하는 게 불가능하지도 모르는 일.
그런 의미에서 스켈레톤처럼 개성 없고 쓰러트리기 쉬운 적들은 단순하고 루즈해지기 쉬운 미로 탐험에 조그마한 양념을 첨가해주는 향신료 같은 녀석들이었다.
“뭐, 좋아. 덕분에 흑염룡을 찾아서 떠나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겠네. 무기를 소환하고 길을 안내해 줘, 사브리나. 내가 직접 처리하면서 전진할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소환해 드릴게요!]
훌륭한 서포터인 사브리나는 곧바로 류안에게 태양의 무늬가 들어간 갑옷과 검을 착용시켜 주었다.
후우우웅!
투콰콰쾅!
VR머신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감각으로는 상당히 익숙한 장비들이었기 때문에 착용하는 것과 동시에 문답무용으로 검을 휘두르는 류안.
별 거 아니라는 사브리나의 말대로 검법이나 스킬도 없이 단순하게 횡으로 휘두르는 일격에도 맥없이 쓰러지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자, 그의 입가에서 미소가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흑염룡을 발견했어요, 곧바로 이쪽으로 달려가시면 되요!]
“좋아, 진격하자. 태양 만세! 기다려라, 흑염룡!!”
대화가 통할지는 장담을 할 수가 없다는 문제는 존재하고 있었지만, 브륜힐트를 쓰러트릴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흑염룡과 접촉하기 위해서 류안과 사브리나는 스켈레톤을 쓰러트리면서 미궁을 질주해 나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요즘 메니에르 증후군 때문에 짬짬이 운동하면서 건강관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약 덕분인지, 운동 덕분인지 어지러운 건 별로 없는데 이명은 진짜 성가시네요. 정신 집중도 잘 안되고 ㄷㄷ
그러나저나 이렇게 일도 열심히 운동도 열심히 하니까 몸도 정신도...
죽을 것 같네요. ㄷㄷ 아, 안 돼. 몸에 해로운 것들을 흡입하고 싶어...스트레스를 발산하고 싶어...타락하고 싶어.
흑흑흑흑. 뭔가를 즐기려면 일단은 건강하고 봐야 되는 것 같습니다. 진짜...
그나저나 코멘트 답변은 힘들어서 요즘 외면하고 있었는데 으음...
저도 햇님이라고 썼었는데 우리 츤컴오피님께서 자꾸 햇님은 오타니까 교정하라고 츤츤거리시더라고요.
저는 네비나 맞춤법교정기 같은 기계에게도 굴복하는 쉬운 남자라서 그렇게 표기했습니다.
그러니 저런 의문에 정확한 답변을 얻으시려면 검색이 빠르실거에요.
참고로 저는 검색같은 기계에 굴복하지 않는 강한 남자라서 안함(뻔뻔)
다른 코멘트 관련해서는
저도 정글레인저 여자 대원 관련시켜서 복상사 드립을 쓸까 말까 그랬는데, 괜히 또 그런 드립을 쳐버리면 나중에 수습하기 힘들 것 같아서 슬그머니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복상사로 하는 암살은 복상살인가요?
나중에 그런 테마로 엉덩이 엉덩이 안에 신조 미니 게임이라도 만들어 봐야겠네요.
우리 죽음찡은 일단 그런 건 안 쓰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