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154화 (154/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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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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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못한 일격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류안은 결국 더 이상의 진도를 진행하지 못하고 일단은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다, 다음에 오시는 걸 기다릴게요. 서방님.]

양쪽 검지를 꼼지락거리면서 수줍은 새색시처럼 동굴 밖까지 배웅하러 나오는 사브리나.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던 로라가 뭔가 거슬린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기 ㅣ시작했다.

[서방님이라는 호칭은 조금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니?]

[그러는 로라님은 스승님을 달링이라고 부르시지 말입니다?]

[아니, 그게 말이야……그냥 호칭으로만 부르는 느낌이라면 상관없는데, 저 다크 엘프년의 태도에서는 어쩐지 진심이 느껴진다는 말이지. 달링이 다 잡은 고기를 두고 허겁지겁 돌아가자고 그러는 것도 수상하고 말이야……느낌이 안 좋아.]

뜨끔

귀신이 따로 없는 그녀의 날카로운 추론에 류안은 도둑이 제 발을 저리는 심정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로라와 크리스.

지금까지 두 사람과는 언젠가는 헤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ENJOY한 영체관계만을 가지는 심플한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그것도 사브리나라는 변수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이야기.

유라디스 은하로 함께 떠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두 사람의 질투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는데, 거기에 결혼까지 끝나버렸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멀리 있는 탈리아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 장소에서 수라장이 펼쳐진다고 그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지나친 생각이겠지 말입니다? 한 눈에 봐도 세상물정을 모르는 아가씨로 보이던데, 분명히 키스를 하면 결혼해야 한다는 식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틀림이 없습니다. 아까 그 유치한 대사에 눈동자가 하트 모양으로 변하는 걸 보셨지 않습니까?]

[그런가? 으음,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앞뒤가 맞는 것 같기는 한데……뭔가 찝찝하다는 말이지. 그렇겠지? 에휴, 살아있을 때는 척하면 척이었는데 죽으니까 여자의 감도 무뎌지는 것 같아.]

다행스럽게도 단순한 신경 쓰이는 정도에 불과한 내용으로 대화가 중단되었지만, 실재로 결혼을 당해(?)버린 류안의 입장에서는 잠시 동안 바늘방석에 올라가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젠장, 하여간 꼭 쓸데없는 부분에서 날카롭다니까……여자의 감이라니,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기왕이면 사고를 치기 전에 발동시키라는 말이야! 미리 알고 있었다면 이런 일은……잠깐만, 미리 알고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자신이 사브나와 접촉하는 것을 우려하던 인물을 떠올리면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브륜힐트.

‘설마 그녀가 나에게 경고를 했던 이유가 이런 상황을 염려해서 그런 건 아닐까? 아니, 그 냉혈녀가 나를 걱정했다고? 에이, 설마……아니, 어쩌면……진짜?’

“왜 그래, 달링?”

“왜 그러십니까, 스승님!”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으로 멍하니 서있는 류안을 염려한 두 사람이 질문을 던졌지만 자신의 가정에 확신은커녕, 혼란스러움만 커져나가던 그는 그렇게 더듬거리면서 대답하고 에이르의 샘으로 향했다.

잠시 후.

두 사람과 헤어지고 난 이후에 어김없이 오기조원을 수련시키기 위해서 다가오는 브륜힐트를 바라보는 류안.

물어볼까 말까, 잠시 동안 고민했지만 못 먹는 감은 찔러보기나 하자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알고 있었습니까?”

[……]

가타부타 대답은 없었지만 그가 던지는 질문의 의도를 이해했는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기왕에 경고를 해주시는 거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해주시는 건 안 됐습니까?”

[사령술이 위험하다는 경고는 말해주지 않았는가.]

“사령술이 아니라 다크 엘프의 능력에 당했습니다. 엘론의 축복이라니……”

[엘론의 축복이라……그 의식 자체는 텔넷에 살아가는 다크 엘프들의 전통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을 그런 방식으로 왜곡시켜버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의지와 사령술이 만들어낸 것..]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튀어나왔기 때문에 류안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왜곡이라고요?”

[그렇다. 그녀는 다크 엘프라는 처지 때문에 2000년이 긴 세월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고독한 외톨이로 살아왔다. 그래서 자신과 동병상련의 슬픔을 나눌 수 있는 것은 동족들밖에는 없다는 생각으로,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과도하게 미화시켜버렸지. 그래서 자신의 사령수로 그런 의식들을 왜곡시켜버리고도 그런 사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크리스의 생각도 틀리지는 않았잖아?’

단순하게 착각이라는 발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도 사실이지만 더 황당한 것은 그것을 현실로 바꿔버리는 사령술이라는 능력 자체였다.

“원래 의식은 어떤 겁니까? 어쨌든 다크 엘프들이 결혼식을 치룰 때 나누는 것은 틀림이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적어도 키스만으로 상대방을 자신의 배우자로 만들어 버리거나, 능력 자체를 향상시키는 일은 다크 엘프들의 통상적인 의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애초에,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들이 텔넷에서 멸망당하지는 않았겠지.]

‘과연…….’

경황이 없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이지만 다크 엘프들과 결혼하는 것이 사브리나와 똑같은 축복의 효과를 부여한다면, 그들이 멸망당하는 것도 뭔가 이상하기는 했다.

아무리 불길하다고 탄압당해도 쓸모가 있다면 권력자들이 성노예라도, 가축처럼 잔인하게 부려지더라도 살아남아야 정상.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민족 청소를 부르짖으면서도 유태인들을 노동력으로 동원하던 나치들의 행태를 생각한다면, 다크 엘프는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살아남아서 자신들의 종족을 보전시켰다는 것이다.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이 세계의 사람들이 다크 엘프가 쓸모가 없다는 선고를 내려버렸기 때문.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머릿속이 어느 정도 정리된 류안은 자신을 손바닥에 올려다놓고 내려다보는 것 같은 브륜힐트의 통찰력에, 슬그머니 위기감을 느끼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제 생각을 다시 읽을 수 있게 되신 겁니까?”

[단순하게 그렇게 진행되었을 거라고 추측했을 뿐이다. 어찌되었든 나는 한 때나마 그대들의 과거와 삶의 궤적들을 전부 조사했으니……]

그렇게 대답하면서 말꼬리를 흐리는 그녀의 표정은 평소처럼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약간 씁쓸해하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것이 류안이 결혼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아니면 그런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로드스타의 승률이 형편없다는 사실 때문인지는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어쨌든 그녀의 내면에서 뭔가 변화가 일어나기는 한 모양.

그 사실을 눈치 챈 그의 눈동자가 살그머니 가늘어졌다.

‘어쩌면 그녀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인간적으로 변했을지도 몰라. 단순하게 그동안 추구해오던 합리성이라던가 효율성과는 분명하게 달라. 확실하게 뭔가 차이가 있어. 그게 어떤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좋아, 시험해 볼 가치는 있겠어…….’

한동안 고민을 계속하던 류안은 뭔가를 굳게 결심하면서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수련은 중단하도록 하겠습니다. 갑작스럽지만 외로움을 잘 타는 아내가 생겼다니 당분간은 그녀의 곁에서 생활하도록 하죠,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별로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고……오기조원을 완성시킬 수 있는 단서도 찾았거든요.”

[그게……정말인가?]

“제 의견에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건 브륜힐트님이 더 잘 알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제 생각이 틀렸다고 해도 돌아오면 24시간 수련에만 집중하겠습니다. 그동안 그토록 갈망하시던 대로 원래의 임무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드리죠.”

[……]

브륜힐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누가 보더라도 한 눈에 파악할 수가 있을 정도로 불안한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

다시 사브리나의 동굴 앞.

불과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그 장소로 돌아오게 된 류안은 정문을 지키는 새로운 보초병들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잠시 동안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키기기기기긱!

크워워워워워워!!

‘데, 데스 나이트에 리치라니……진심이냐? 아니, 능력 자체로는 그런 녀석들을 부린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기는 했지만……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선량하고 착하던 사브리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골다공증이 의심스럽던 나약했던 녀석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포스를 뿜어내는 보스급의 언데드 무리.

들고 있는 무기 자체는 비살상을 위해서인지 몽둥이나 조잡한 나무 스태프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어쭙잖은 기사단으로는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도 못할 정도로 섬뜩한 기운들을 뿜어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열심히 주변을 둘러보는 그였지만 머릿속의 내비게이션은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를 반복하고 있을 뿐.

‘잘 생각해보니까 SS급의 사령술사랑 부부싸움이 일어나면 압도적으로 깨질 것 같잖아? 어쩐지 나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 것 같은데 얌전하게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 내 처지에 무슨 사령술이며 발키리 공략이냐……오기조원이나 마저 수련하고 얌전하게 집으로 돌아가자…….’

압도적인 파워차이를 실감한 류안은 좋은 경험이었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리면서 걸음을 돌려서 도망치려고 시도했지만, 다음 순간에 시커먼 쉐이드(shade)들이 그를 포위해버리고 말았다.

[어, 어서오십시오. 류, 류, 류안님……크크크케케케케케!]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벗으라면 벗을 테니 제발 소멸만은…….”

꿈속에서 나올까봐 무서운 끔찍한 면상에 끔찍한 웃음소리를 터트려대는 괴물의 등장에 자동으로 무릎을 꿇으면서 항복을 선언하는 류안.

하지만 다음 순간에 더 끔찍하고 거대한 스컬 헤드가 바닥에서 솟아오르면서 그의 주변을 빙글빙글 날아다니면서 즐거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어서 오세요, 서방님!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헤헤헤헤!]

“사, 사브리나님? 뭐, 뭔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우, 우리 이러지 말고 문명인답게 평화적으로 해결합시다. 아, 아니 그렇게 하게 해주세요, 제발. 다이아몬드를 드릴 테니 옥수수를…….”

지옥에서 찾아온 것 같은 환영인사에 부들부들 떨면서 횡설수설 떠들어대는 류안이지만, 사브리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그렇게 무서워하시는 거죠? 아까 전에 쓰러져버린 애들을 대용하느라고 임시 보충으로 사용하는 애들이기는 한데……약간 사나운 게 탈이기는 하지만 알고 보면 다들 귀엽고 착한 애들이라고요, 한 번 쓰다듬어 보실래요?]

쿠에에에에에에엑!!!

그녀의 말에 쓰다듬어(?)달라는 듯이 사납게 울부짖으면서 면상을 들이미는 스컬 헤드의 모습에 류안은 약 3초 동안 서있는 자세로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서, 서방님? 괜찮으세요, 서방님?]

깜짝 놀란 사브리나가 그렇게 외치면서 데스나이트가 다가와서 그를 부축했지만 그 섬뜩하면서도 서늘한 감촉에 오히려 전신으로 소름이 끼쳐버리고 말았다.

‘이게 귀엽다고? 사령술사의 센스를 이해할 수가 없잖아……젠장, 이 결정이 올바른 걸까? 아니야. 일단은 침상에서……주도권을 잡자. 그러면 어떻게든 될 거야. 부, 부부싸움은 가능하면 피하도록 하고……가능하면 이혼을……’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로체, 비나? 서방님을 데리고 안쪽으로 들어와. 일단은 침실에서 상태를 조금 살펴야 되겠어.]

“사, 살려…….”

키가 약 4m를 넘는 거대한 스컬 자이언트 2명이 류안을 손아귀로 붙잡고 마치 지옥으로 끌고 데려가는 것처럼 사브리나의 동굴 내부로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유라디스 은하로 복귀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 몸상태도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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