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1 ----------------------------------------------
지상편
“지옥의 선율이여 울려퍼져랏! 인페르노 레조넌스!!”
투타타타!!
현란한 몸짓과 함께 스텔레톤 보초병들이 터져나갔지만 그가 사용한 능력은 단순하게 염력이다.
“뒤따르겠습니다. 로드! 창염의 바람이여 휘몰아쳐라, 템페스트 플레어!”
투타타타!!
크리스 또한 화려한 스킬명을 외치면서 다른 보초병들을 쓰러트렸지만 역시나 사용하고 있는 능력은 염력.
휘오오오오오!
때마침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이 산산이 부서져버린 뼛가루를 흩날리는 가운데 등을 맞대고 선 두 사람은, 제법이라는 듯이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서로간의 실력을 인정한 라이벌들처럼 중2, 아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크크큿, 제법이구나. 이노센스 타이거!”
“훗, 다크 플레임 드래곤 로드야말로…….”
“적들의 숫자는 무한에 가깝다. 따라올 수 있겠나?”
“나의 검은 로드를 위한 검. 이 세상의 모든 빛이 황혼에 잠드는 순간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사악한 불사자들이여, 각오해랏!”
달칵달칵달칵?!
능력자 놀이에 완전히 심취해버린 두 사람은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다는 나만의 중2병 인생 대사들을 외치면서 공격을 시작했다.
덕분에 딱히 사악하지도 않았고 무한하지도 않은 소수의 스켈레톤 보초병들은 대패닉.
펑!
하지만 그 잔당들을 용서 없이 단숨에 날려버린 노라는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흐아암~. 저기 말이야, 두 사람 모두 그 이상한 놀이는 언제까지 계속하는 거야? 염력을 사용하는 건 금방 지치니까 가능하면 빨리 끝내자고?”
“아앗! 한참 좋았는데, 너무합니다, 노라님!”
마지막 사냥감을 빼앗겨버린 크리스는 그렇게 외치면서 절규했지만 덕분에 겨우 중2병을 벗어나서 현실로 돌아온 류안은, 자신의 오글거리는 행동을 떠올리고는 철면피인 그답지 않게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크, 크흠. 스켈레톤을 굳이 염력으로 쓰러트리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사, 살짝 능력자 놀이에 심취하기는 했지만 전부 다 치밀한 계산이 바탕에 깔린…….”
“갑자기 왜 그러시는 겁니까, 다크 플레임 드래곤 로드님! 전생의 기억을 되찾으신 거잖아요? 이제 와서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물러나라, 리얼충!”
“그, 그만둬! 그 이름으로 나를 부르지마. 젠장, 흐, 흐콰한다!”
“고지가 눈앞입니다. 전진하시죠, 다크 플레임 드래곤 로드!”
“빨리 끝내고 돌아가자, 다크 플레임 드래곤 로드 달링!”
“……크르르.”
자신을 놀려대는 동료들 덕분에 내면에 잠들어있는 흑염룡이 살짝 각성해버린 류안은 그녀들을 이끌로 동굴의 내부로 진입을 시도했다.
[크, 크흠! 스켈레톤을 무찌르다니 영혼치고는 대단하시네요! 하,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입니다. 이 앞은 통과하지 못하실 거예요!]
“뭐야? 저 귀여운 생물체는…….”
어느 정도 걸음을 옮기자 검은색의 테디베어가 튀어나와서 삿대질을 하기 시작하는 바람에 맥이 풀려버린 류안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귀엽죠? 제 애완용 사역귀인 마릴린이라고 합니다.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스승님, 스승님! 해치워도 됩니까?”
[마, 마릴린을 해치우다니 무슨 잔인한……여, 역시 사악한 촉수남의 부하들답게 발상이 무시무시하군요! 반성하세요!]
침략자에게 설교를 늘어놓는 그녀의 태도에 류안은 문답무용으로 혼돈과 파괴를 불러일으키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아직까지는 대화를 나누는 쪽으로 무게를 실어놓고 있었기 때문에 크리스를 자제시키기로 결심했다.
[가능하면 평화롭게 해결하자고. 나야 미운 털이 박혀버린 모양이지만 너희들은 아직 아니잖아? 어떻게든 싸우고 싶은 의사가 없다는 걸 어필해서 중재를 좀 해달라고……]
[문답무용으로 범하실 생각이 아니었습니까? 스승님답지 않습니다!]
[맞아, 달링. 우리들한테 그랬던 것처럼 문답무용으로 범해버리라고!]
[내, 내가 언제 너희들을 강제로 능욕했다는……크, 크흠. 아무튼 잘 좀 부탁할게.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서 그래.]
두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는 나름대로 신사적으로 시도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류안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녀들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서 일단은 자신의 의견을 접어두기로 했다.
‘확실히 대화보다도 먼저 신접으로 육체의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자기들도 좋아했으면서 사람을 음수 취급하고 있다니. 쳇, 쳇.’
속으로는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우리 스승님이 가능하면 평화롭게 해결하자고 그러는데 어떻게 좀 안 되겠습니까, 사브리나님?”
[죄송하지만 그럴 수는 없어요. 여러분들의 눈에는 그가 평범한 영혼으로밖에 보이지는 않을지는 몰라도……제 눈을 속일 수는 없어요. 그의 내면에 잠들어있는 괴물은……아아……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잠들어 있으니까 괜찮은 거 아닙니까? 제 능력을 봉인해주신 분도 브륜힐트님인데…….”
[잠들어 있으면 사자들이 우글거리는 우리에도 들어가실 수 있나요? 저는 못해요!]
‘논리적으로 빈틈이 없군. 제길.’
동물사육사들은 밥 먹듯이 들어가지 않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일반인에게는 강요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류안은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내면에 잠들어있는 흑염룡을 원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잘 숨어있지. 녀석! 아니면 촉수라도 좀 빌려주던가!’
남아있는 선택지는 강행돌파밖에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일단은 사브리나님의 시험을 모두 통과하도록 하겠습니다. 면전까지 찾아가서 제가 정말로 해코지를 할 목적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돌아가 주시면 믿어 드릴수도 있는데……]
“그러면 두 번 다시는 만나주지 않을 거 아닙니까?”
[사, 사람이 꼭 얼굴을 마주하면서 살 필요는 없잖아요? 일단은 펜팔 친구부터 시작하는 게……]
“실체화!!”
후우우우웅!
프레이야에게 받은 고유능력을 사용해서 일시적으로 살아있는 육체를 구성한 류안은 신접 능력을 응용해서 두 사람의 손을 붙잡고, 영혼들을 쫓아내는 결계를 강제로 통과하기 시작했다.
“어, 어지러워. 이쪽 방향으로 가는 게 틀린 거 같은데. 왜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거야? 달링.”
“하늘이 빙글빙글 돕니다, 스승님!”
똑바로 걸어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붙잡고 있는 두 사람은 방향감각에 문제가 발생했는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예상대로 영혼들만 쫓아내는 함정이었군.’
[시, 실체화라니 비겁해요.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능력을……아얏!]
순식간에 자신의 함정을 통과해버리는 류안에게 당황한 사브리나의 사역귀가 아장아장 달려오다가 땅바닥에 넘어지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잠시 후에는 날아가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류안의 앞을 지나치는 마릴린.
다음 함정은 짐승들이 싫어하는 악취가 풍겨져 나오는 정체불명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사령술사의 텃밭이었다.
[여기까지입니다! 여기는 제가 사령술을 연습하는데 필요한 약재들을 키우고 있는 텃밭이에요, 만드라고라에서 피안화까지.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견딜 수 없는 지독한 악취들을 풍기고 있죠. 어때요? 벌써부터 코가 마비되는 거 같죠. 이대로 돌아가시면……]
“영체화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
2번째 함정은 첫 번째 함정보다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혹시 이게 사브리나가 준비해놓은 모든 함정이 아닐까하는 낙관적인 희망에 사로잡혔던 류안이지만, 아무리 그녀라도 그렇게까지 조심성이 없는 건 아니었는지 다음 함정이 존재하고 있었다.
말랑말랑
“……푸딩?”
먹음직스러운 비쥬얼을 여과없이 과시하고 있는 거대한 푸딩의 덩어리가 그들의 진입로를 막아서고 있었다.
“하으윽! 너무 아쉬워, 아쉬워, 달링! 죽어서 제일 아쉬웠던 게 저렇게 달콤한 음식들을 먹지 못하는 건데. 흑흑흑흑. 위로해줘, 달링!”
“이거 만질 수도 있지 말입니다? 엣? 아, 안 떨어지고 끈적끈적……기분 나빠!”
[후후후후, 기분 나쁘시죠! 얼핏 보면 먹음직스럽게 보이지만 이 젤리들은 불법으로 침입해오는 영혼들을 쫓아내기 위한 끈끈이들입니다! 몸에 달라붙으면 씻어내는 것도 힘들다고요, 끈적끈적해요! 아, 그래도 물속으로 들어가면 떨어지니까 얌전하게 돌아가시면…….]
“성분이 뭡니까?”
[아, 설명 드리자면 약간 복잡하기는 한데 인화성 물질들을 다양하게 섞어놓은 화학물질 덩어리에요. 그러니까 화기를 사용하시면 절대로 안…….]
“흐음, 그렇군요. 공략법을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화르르륵!
“오오오옷! 손길에서 불이 뿜어져 나온다니, 비겁합니다. 스승님! 혼자서만 초능력을 사용하지 말고 저한테도 가르쳐 주십시오!!”
‘만약을 대비해서 오행의 주물呪物들을 가져오기를 잘했군.’
크리스의 외침을 무시한 류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맨손에서 화염을 뿜어내는 마법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목생화木生火의 원리를 이용하는 술법의 일종. 그의 양손에는 물푸레나무를 태워서 만들어낸 조그마한 숯가루들이 주물로 사용되고 있었다.
커다란 불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도화선을 불태우는 것처럼 질주하는 불길이 인화물질에 달라붙으면서 대폭발.
콰콰콰콰콰쾅!!!
살아있는 육신이라면 위험할만한 사나운 불길이 일어났지만 거기에 살아있는 생명체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으로 다친 사람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정신적인 타격을 입어버린 사브리나를 제외하고.
[꺄아아악! 너, 너무해요! 그 함정들을 만드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전부 불태워버리다니……아, 아니. 그 이전에 지금 사용하신 능력의 정체가 뭐죠? 평범한 사람의 영혼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보는데……]
“궁금하면 가르쳐 드릴수도 있습니다만……슬슬 진지하게 대화를 해보실 생각은 없습니까? 농담이 아니라 발할라의 난이도를 생각하면 우리들은 서로에게 협력해야만 합니다!”
‘겸사겸사 육체적으로도 협력을……크흠.’
겉으로는 한없이 선량한 사람처럼 호소하는 류안이지만 사실 그는 지나치게 난이도가 낮은 던전을 공략하는 일에 시간을 빼앗기는 일에 적잖은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었다.
하루에 12시간동안 오행의 수련에 집중하고 나머지 12시간동안 쌓여있는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것이 하루의 낙.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노라와 크리스 2명의 여자들과 3p를 하면서 프레이야의 사도로서 충실한 시간을 보냈을 거라는 생각에, 그는 계속해서 튕기면서 비싸게 구는 사브리나의 장난에 어울리는 것이 지겨워지고 있었다.
‘미인이라는 소문이 자자해서 참는다. 미인이라는 소문이 자자해서 참는다. 젠장…….’
[거, 거짓말하지 마세요. 그렇게 안심시켜놓고 촉수를 끄집어내서 저를 능욕하려는 속셈이잖아요! 부탁이니까 제발 돌아가 주세요. 이 이상으로 들어오면 저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니까요!]
“에헤이, 사람이 속고만 살았……아, 끊어졌네.”
통신을 중단한 사역귀는 허겁지겁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태도와 행동에서 사브리나와의 거리가 별로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 류안.
“좋아, 사역귀를 쫓아가자!”
허겁지겁 달려가는 와중에 각종 실험도구들과 생활력이 넘쳐나는 사령술사의 연구실까지 접근하게 되었지만, 다음 순간에 그들을 낚아 올리는 그물망이 류안과 여자들을 한 덩어리로 뭉쳐버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사브리나.
“그, 그러니까 얌전하게 돌아가라고 했잖아요!”
하지만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류안은 심봤다는 표정으로 환호하기 시작했다.
“다크엘프 미소녀가 떴다!!”
============================ 작품 후기 ============================
2줄후기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이비인후과에 가지 않고 한의원에서 다시 약을 받아왔습니다만...
며칠 쉴 수 있었는데 아쉽...아, 아닙니다.
코멘트 답변
당분간은 자제하라고 그러더라고요. 의사선생님이 그러지는 않았지만 자가진단으로...크흠.
참고로 저는 그 위대한 작품을 견식하지는 못했습니다. 아쉽...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빨리 좋아진 거 같아요. 훌쩍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