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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사브리나가 도전하는 세계는 다름 아닌 유라디스 은하다.
그것도 마왕군의 일원으로 참가하게 된다는 정보를 들은 류안은 그녀가 발할라로 떠나버리기 전에 먼저 자신의 편으로 영입하기로 결심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십시오.”
[거절한다.]
브륜힐트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하고 말았다.
“어째서입니까?”
[오기조원을 달성하는 것이 그대의 목표. 다른 도전자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존재한다면 우선은 그대의 임무를 달성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뭔가 수상한데?’
시대의 갈망을 해결하는 것이 발할라를 도전하는 가장 큰 목적이고 두 사람의 목표가 서로의 임무를 도와주라고 구성되어 있다면, 브륜힐트가 두 사람의 만남을 가로막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발할라 자체에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닐까하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던 류안이지만, 그녀가 반대한다면 사브리나와 접촉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는 끈질기게 브륜힐트를 설득해서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허락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그대가 진심으로 사령술사와 동맹을 맺고 싶다면 간섭하지는 않겠다. 하지만……사령술만큼 개인의 욕망으로 타락하기 쉬운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조심하도록.]
협조는 하지 않겠지만 방해도 하지 않겠다.
동시에 상당히 의미심장한 경고를 던진 브륜힐트였지만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는 듯이 행동하던 그녀가 그렇게 경계하는 사령술이라는 능력은, 오히려 그의 호기심을 더욱 강하게 부채질하는 결과를 불러오고 말았다.
‘처음에는 사브리나를 이용해서 브륜힐트를 공략할 수 있는 단서를 얻어낼 생각이었는데……이참에 사령술 자체를 직접 배워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어. 유라디스 은하에서 함부로 마법을 사용하거나 시체들을 일으키고 다니면 천족들이 이단이다 뭐다 시끄럽기는 하지만 말이야……그래도 몇 가지 배워두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거지. 들키지만. 후후후후후’
사악한 웃음을 터트리면서 흉흉하게 회오리치기 시작하는 혼탁한 류안의 오오라를 확인한 브륜힐트는 자신의 충고가 역효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
그리고 다시 현재.
이 세계에서 포섭한 2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사브리나가 틀어박혔을 가능성이 99.9%에 육박한다는 동굴의 입구를 살펴보던 류안은 잠시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가능하면 대화로 해결하고 싶은데…….’
브륜힐트와 텔넷의 영혼들에게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그녀는 사령술사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게 어수룩하면서도 선량하기 이를 데 없는 순진한 처녀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이다.
문제는 낯가림이 심한 방구석 폐인이라는 사실.
“정면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스켈레톤 병사들은 보다시피 대단한 애들은 아니야. 문제는 동굴 내부로 통하는 진입로에 영혼들을 쫓아버리는 강력한 결계가 펼쳐져 있다는 건데……정면 돌파는 상당히 어려울 거야, 달링.”
“확실히 그렇게 보이네.”
생전에는 제법 이름을 떨치던 도적이었다는 노라의 조사 보고를 받은 류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달칵달칵달칵.
그녀의 말대로 동굴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스켈레톤 보초병들은 생김새는 무시무시했지만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 피라미들의 조건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영혼들에게는 따끔한 수준의 고통을 선물해준다는 나무 곤봉이며 나무 갑옷, 나무 활과 화살로 무장하고 있는 녀석들.
하지만 그런 가벼운 무장마저도 제대로 감당하기가 힘들었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휘청거리는 모습이, 마치 골다공증에라도 시달리는 것 마냥 안쓰럽기가 이루 말할 데 없었다.
“어째서 저런 녀석들을 보초로 쓰는 거야?”
“사브리나님이 원래 피만 보면 졸도하는 성격이지 말입니다. 게다가 이 근방에 있는 시체들은 죄다 땅에 파묻히고 수만 년은 지나가버린 화석들이지 말입니다! 스승님한테 배운 염력의 힘이라면 한 방에 성불시켜버릴 수 있습니다!”
맡겨달라는 듯이 팔을 걷어 보이는 크리스였지만 류안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이마를 부여잡고야 말았다.
‘조약돌을 움직이는 수준의 염력으로도 파괴할 수 있는 녀석들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허약하다는 거야?!’
데스나이트나 리치급의 마물들이 등장한다면 곤란하겠지만 골다공증에 시달리는 스켈레톤 군단이라는 것도 맥 빠지기는 마찬가지.
덕분에 잠시 동안 사령술이라는 능력에 대해서 깊은 회의감에 사로잡혔던 류안이지만 발키리가 두려워하던 능력이 설마 이게 전부는 아닐 거라면서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그래, 설마 이게 전부겠어? 썩어도 준치라고 신들조차도 처리하지 못하는 안개의 망자들을 만들어낸 괴물들이야. 아무리 선량하다고 그래도 SS급의 사령술사를 얕보면 큰코다치겠지.’
생각 같아서는 3인 파티를 구성해서 순식간에 던전을 공략해버린 다음에 이런 허술한 던전을 만들어낸 던전 마스터를 끌어내서, 여러 가지로 교육적인 지도를 해주고 싶다는 충동이 무럭무럭 솟구쳐 올랐지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일단은 신사적으로 협상을 시도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내가 직접 가서 대화로 해결해보고 올게.”
“화이팅입니다, 사부님!”
“힘내, 달링!”
두 사람의 배웅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스켈레톤 보초병들을 향해서 걸어가는 류안이었지만 잠시 후에 그는,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그들에게 대화를 시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덜컥덜컥?
말 그대로 뼈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사를 표시하는 녀석들.
정상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흥겨운 각기춤이라도 추면서 답장해줘야 할까를 고민하던 류안은, 잠시 동안 고민을 반복하던 끝에 국제적으로 먹힌다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시도했다.
“사브리나님을 만나 뵈러 왔습니다만 어, 그러니까 두유 노우 김……”
[실례지만 누구신가요?]
천만다행으로 그 단어가 꺼내지기 전에 먼저 대답을 해주는 여성의 목소리가 스켈레톤의 입속에서 흘러나왔다.
“류안이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본인이 맞으신지……”
[네, 제가 사브리나 본인입니다.]
“생각보다 많이 마르셨군요. 피골이 상접하신 게 꼭 해골 같…….”
[네?]
드립을 시전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기 때문에 그는 재빠르게 태도를 바꿔서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 아닙니다. 그나저나 유라디스 은하의 발할라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것과 관련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어머! 그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알아내신 거죠? 발할라에 대한 건 전부 비밀이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훨씬 더 수월하게 풀릴지도 모르겠는데?’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고 들었던 것 치고는 생각보다 훨씬 더 호의적으로 응대를 해주는 눈치였기 때문에 류안의 입가에서 슬그머니 기대어린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저도 같은 유라디스 은하에 배속받은 발할라의 도전자입니다. 그 이야기를 해주신 분도 다름 아닌 브륜힐트님이거든요. 실례가 아니라면 사브리나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만…….”
얼굴을 마주하면서 대화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순순히 받아들일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의외로 답변이 돌아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야 말았다.
[으음, 실례지만 잠시만 기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낯가림이 심해서 아무래도 먼저 얼굴을 확인해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요……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스켈레톤으로 영시靈視를 하는 기술은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서요.]
“네, 괜찮습니다. 천천히 하셔도 상관은 없어요. 어차피 시간은 넉넉하니까요…….”
유라디스 은하에서는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 이쪽 세계에서는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기 때문에 류안은 느긋한 마음으로 그렇게 답변을 해줬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잠시잠깐의 시간도 낭비할 수 없다는 초조한 마음에 사로잡혀있는 것도 사실이기는 했지만, 유라디스 은하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작업을 시도할 때는 첫인상만큼이나 느긋한 여유를 보여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된 그였다.
하지만 그 첫인상이 최악이라면?
[아, 이제야 보이네요.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제가 아직 영혼 상태로 능력을 사용하는 게 익숙하지가 않아서……꺄아아악! 다, 당신은 설마, 초, 초, 초, 촉수남?!!]
‘뭐라고!’
갑작스럽게 정체(?)를 간파당하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버린 류안이지만 지금까지 만난 영혼들 중에서 그가 촉수를 뿜어낸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면서 입을 열었다.
“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저, 저를 속이려고 하셔도 소용없어요! 다른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제 눈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브, 브륜힐트님의 이름까지 들먹거리면서 기어이 저를 능욕하려고 찾아오다니……죄송하지만 돌아가 주세요! 돌아가지 않으시면……]
달칵달칵달칵!
골다공증에 걸린 스켈레톤 무리가 류안을 둘러싸면서 사나운 태도로 그를 위협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순순히 돌아가시면 공격하지는 않을게요. 몽둥이로 맞으면 아프다고요? 설마 죽어서까지 고통을 느끼고 싶으신 건 아니죠? 그러니까 순순히 돌아가 주시면……]
무섭다고 하기보다는 어째서인지 가슴이 훈훈해지는 따듯한 풍경.
어째서 SS급의 사령술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그렇게 약한 보초들을 세워놨는지가 밝혀지는 순간이었지만, 유라디스 은하에서부터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전쟁터의 생리를 배워온 류안에게는 한숨이 저절로 새어나오는 나약함이었다.
‘아무래도 그녀에게는 발할라의 난이도가 얼마나 지독한지를 가르쳐줄 필요가 있을 것 같군.’
현재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무기는 당연하지만 브륜힐트가 가르쳐준 오행을 운용하는 능력이다.
신성력이 아니라 마나를 소비하는 기술로 직접적인 타격보다는 오행의 기운을 제어해서 자연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술법의 일종.
어지간한 마나를 소비시키지 않으면 효율적인 공격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술법을 만들어내는 절차도 상당히 까다롭다는 단점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류안은 굳이 그녀가 만들어낸 스켈레톤을 상대하기 위해서 그런 방법을 동원해야만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는 자주 초능력자가 되고 싶다는 상상을 했습니다만…….”
[가, 갑자기 유언이라도 남기시는 건가요? 위협해서 죄송해요, 살짝 물러나게 할 테니까 이대로 얌전히 돌아가 주시면……]
“아니요, 딱히 유언을 남기려는 건 아닙니다. 그냥 어느 순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중2병 시절에 꿈꾸었던 자신이 이미 현재의 모습에서 실현되어 있더라고요.”
[……네? 그게 도대체 무슨……]
“크크큭, 울부짖어라 흑염룡! 나의 깊숙한 리비도 속에 숨어있는 어둠의 화신이여, 지금 이 순간에 그대의 능력을 개방해서 눈앞에 어둠의 존재들을 쓰러트리라! 받아랏, 앱솔루트 사이오닉 포스!!”
투콰콰콰쾅!
양손을 뻗으면서 염력을 발산시키는 류안의 공격에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요란하게 터져버리는 칼슘 부족의 스켈레톤 무리들.
[꺄아아악! 죠세핀, 마르티나, 루피!!]
“아아아앗! 치, 치사합니다. 스승님! 혼자서만 능력자 놀이……아, 아니. 어둠의 존재들을 쓰러트리다니! 저도 힘을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다크 플레임 드래곤 로드시여!”
“……어, 저기. 혹시 나도 뭔가 외쳐야만 하는 건 아니지? 달링.”
중2병 놀이에 심취하고 있는 그의 곁으로 재빠르게 합류해오는 노라와 크리스 콤비.
“크크큿, 좌청룡, 우백호! 어둠의 다크니스의 부름을 듣고 찾아왔는가? 진군하자, 전사들이여! 지금이야말로 저 사악한 불사의 왕을 쓰러트리고 이 세계에 신성한 홀리데이를 가져올 시간이다!”
[이, 이 사람들 뭔가 이상해! 꺄아아악!!]
자신의 거주지를 멋대로 침략해 들어오는 중2병 군단의 공격에 사브리나의 비명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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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줄 후기
써놓고 생각해보니까 제가 아프기는 아픈 모양입니다.
코멘트 답변
약을 먹고 나름대로 열심히 쉬었는데도 왼쪽 귓가에서 계속해서 이명이 들리고 어지럽네요.
내일 이비인후과에 한 번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