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9 ----------------------------------------------
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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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술사들의 왕 무하크가 연구하던 망각의 샘이 폭주하면서 그의 실험을 도왔던 사브리나도 여파에 휩쓸리고 말았다.
안개의 망자로 변해서 헤아릴 수도 없는 오랜 시간을 떠돌아다녔지만 그 동안의 기억은 꿈결처럼 희미하기 이를 데 없는 것.
대략적으로나마 떠오르는 것들은 너무나도 추웠기 때문에 항상 따듯한 무엇인가를 쫓아서 끊임없이 방황했다는 사실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정신을 차리게 된 순간.
뀨우우우?
사브리나를 휘감고 있는 분홍색의 촉수가 그녀를 바라보면서 수줍게 고개를 갸우뚱했다.
“꺄악?! 도, 도대체 뭔가요, 이 생물은……이, 이건 꿈인가요?”
깜짝 놀라면서 발버둥치는 사브리나였지만 영혼으로 변해버린 그녀를 단단하게 붙잡고 있는 촉수의 몸체는 요지부동이다.
설상가상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면서 그녀를 포위해버리는 또다른 촉수들.
뀨우우우, 뀨우우우! 뀨우우우우우!!
사냥감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떠들썩하게 울음을 터트리면서 기쁨의 춤을 추직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습격.
촤아아악!
“꺄아아악! 이, 이러시면 안 돼요! 싫어어어엇!!”
뀨우우우~ 뀨우우우~ 뀨우우우!
상의를 찢어버리면서 폭발하듯이 터져 나오는 가슴을 휘감는 촉수들이며 유두에 달라붙어서 아기들처럼 빨아들이는 촉수들, 손목과 발목을 결박하고는 자신들의 동체를 쓰다듬으면서 애교를 부리는 녀석들이며 은근슬쩍 속옷을 파고들면서 음부와 엉덩이로 기어들어오는 녀석들까지.
완벽한 팀 플레이였다.
“보, 본 월(bone wall), 크흐읍!”
아그작 아그작.
다급하게 뼈의 방벽을 만들어내서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시도했던 사브리나였지만 그것을 너무나도 간단하게 씹어 먹어버린 촉수들은, 그녀의 입이 열리기가 무섭게 단숨에 입속으로 파고들어서 피스톤 운동으로 딥 스로트를 하기 시작했다.
뀨우우우~ 뀨우우우!
귀여우면서도 음란한 소리를 내면서 성희롱을 즐기며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을 즐기며 유영하던 촉수들이 마침내 음부와 항문으로 동시에 도착.
그들의 목적을 깨달은 사브리나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리는 느낌을 받았다.
‘거, 거기는 안 돼요!! 남자하고 해본 적도 없는데 촉수들한테 앞쪽과 뒤쪽을 동시에 당하다니……싫어, 누군가가 제발 도와줘!’
절체절명의 순간.
그녀의 기도가 통한 것인지 허공에서 새하얀 머리카락을 휘두르면서 달의 여신과도 같은 형상을 한 전사가 강림했다.
투쾅!
뀨우우우우!!
단 일격으로 사브리나를 습격하고 있는 모든 촉수를 소멸시켜버리는 브륜힐트.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의 분신.
[무하크의 제자인 사브리나인가?]
“네, 네! 제가 바로 사브리나입니다. 당, 당신은 도대체 누구신가요?”
머릿속으로 직접 들려오는 목소리에 멍하니 넋을 잃어버리고 있던 사브리나가 다급하게 대답을 했다.
[그렇군, 심판을 내리기 전에 먼저 기억을 살펴보도록 하지.]
후우우웅!
"흐읍, 흐으으읏, 흐키야아아아악!!“
강제로 뇌 속을 헤집어버리는 힘의 파동에 그녀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휩싸이면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나오고 온몸의 구멍이라는 모든 구멍에서 체액들이 빠져나오는 것 같은 감각. 숨을 쉬지 않아도 상관없는 영혼상태에도 불구하고 호흡곤란과 동일한 고통을 경험하면서 꺽꺽거리는 신음을 뱉어내면서 바닥을 기어다녔다.
평소에 발키리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훨씬 더 신사적이고 부드러웠지만 당시에 브륜힐트는 자신의 힘 대부분을 프레이야의 몸속에서 백색의 기사단에게 쏟아 붓고 있던 상태.
필멸자의 사정을 봐줄만한 여력 따위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조사방식도 거칠어졌다.
그녀가 우려하고 있는 사태는 백魄만이 아니라 혼魂의 영역까지도 조예가 깊은 사령술사들이 다시 한 번 안개의 망자들을 만들어내는 사태가 벌어지는 일과, 혹시라도 그 힘을 이용해서 발할라의 신들에게 적대하는 세력들이 등장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 때문에 무하크의 기억을 강제로 조사해서 연구 성과를 파악하고 그를 소멸시켜버린 브륜힐트는, 그의 프로젝트에 참가했을 뿐만이 아니라 비슷한 수준의 사령술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사브리나를 찾아내서 이런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파칭!
거대하기 이를 데 없는 힘의 파동에 삼켜져버린 그녀의 영혼은 잠시 후에 조각조각 깨져나가면서 사령술로 숨기고 있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다크 엘프인가? 과연…….’
다크 브라운의 피부에 금발의 머리, 길쭉한 귀를 드러내면서 알몸으로 쓰러져버리는 사브리나.
그녀의 나이는 2700살.
자신의 영혼마저도 거짓된 인간의 모습으로 덮어 씌워야만 살아갈 수가 있었던 탄압받는 종족의 일원이었던 그녀는, 고아로 떠돌아다니다가 무하크의 눈에 띄어서 2500년이 넘는 긴 세월을 오직 사령술만을 연마해왔다.
그녀의 소원은 자신들의 동족을 사령술로 부활시키고 싶다는 것.
‘무하크와는 다르게 순수하군. 그는 개인의 탐욕과 명예욕을 위해서만 망각의 샘을 건드렸지만 사브리나는 정말로 이 세계와 자신들의 동포를 위해서 연구를 진행시켰어. 게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스승의 실수를 깨닫고는 막으려고 시도했지만……]
거기까지 조사한 브륜힐트는 작업을 멈추고 그녀의 영혼을 회복시켜주었다.
“콜록, 콜록! 타, 타인의 영혼을 이렇게까지 정교하게 컨트롤하는 게 가능하다니. 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신가요?”
사령술을 통해서 대략적이나마 브륜힐트의 기예를 알아본 사브리나가 고통으로 콜록거리면서도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나의 이름은 브륜힐트. 오딘을 섬기는 발키리의 일인이다.]
“브, 브륜힐트라면……설마 신화 속에 등장하는 종말의 천사…….”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필멸자여……그대는 그대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발할라의 시련에 도전할 의사가 존재하는가?]
거대한 순백의 날개를 드러내면서 자신에게 손을 뻗어오는 신화적인 존재의 강림에 그녀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
[필멸자의 대답은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것이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다. 이번 대답을 마지막으로 그대가 질문할 수 있는 기회는 전부 사라졌으니까……]
“그러면 한 판 더 합시다. 지금까지의 전적은 776전 452승 224패. 100무승부. 한 게임만 더 플레이하면 깔끔하게 777전을 채우고 잭팟이지 않습니까? 설마 전쟁이라는 분야에서는 적수가 없다고 자신하던 분이 모의전에서 밀리는 상황을 그냥 두고 보고만 있지는 않으시겠죠?]
[……]
자신을 도발하는 의사가 분명한 류안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브륜힐트는 미간을 찌푸리는 것 밖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가 없었다.
사건의 발단이 된 것은 그가 자신과 게임을 플레이하자고 제안을 건넸던 것이 계기.
처음에는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지만 그가 자신의 수련의 성실도를 내기의 대가로 내세우면서 조건을 던지자 마지못해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가 고안해낸 게임은 다름 아닌 오행의 기운으로 즐기는 리얼판 로드스타.
플레이하는 방법은 로드스타 자체와 동일하지만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하는 대신에, 점토를 빚어내서 만들어낸 미니사이즈의 유닛들을 오행의 기운으로 조종하면서 플레이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게임 자체의 세세한 구성이나 이펙트, 데이터, 프로그램, 디자인 등은 브륜힐트의 술법으로 구성했지만, 유닛을 컨트롤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오행의 기운을 얼마나 섬세하고 정밀하게 운용하느냐가 관건.
오행의 수련도 자체가 = APM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능력에 대한 클래스 자체가 다른 브륜힐트가 절대적으로 유리했지만 류안은 자신만만하게 그녀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대가 말한 세세한 구성은 이해했다. 확실히 전쟁과 오행의 수련 자체를 유희의 일환으로 승화시키는 건 흥미로운 발상이기는 하지만……아무리 생각해도 그대가 내 적수가 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 전쟁지휘관으로서나 유희에 관련해서는 제법 자신이 있는 모양이지만 전쟁 그 자체를 지배하는 발키리에게 전쟁으로 승부를 보자니……]
“훗,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이죠. 그러면 이건 어떻습니까? 혹시라도 제가 이긴다면 처녀를 저에게…….”
[그런 조건이라면 응하지 않겠다.]
“쳇……”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미니게임의 권능이 류안을 적극적으로 서포트하도록 그녀를 제약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스쿨드보다 더 협조적이고 수많은 비밀들을 경솔하게 발설해버리는 브륜힐트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 영역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결국 그가 받아낸 것은 이 세계에 남아있는 영혼들 중에서 발할라에 도전할 수 있는 존재들에 대한 정보를 듣는 것이 전부.
그리고 류안은 보기 좋게 브륜힐트를 로드스타로 관광시켜버렸다.
[이, 이럴 수가……]
“하하하하하!! 그것 보십시오. 이 게임은 APM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발키리의 전략이나 전술도 대단한 것은 없네요. 하하하하하!!”
‘내 전략이나 전술이 모자라다고? 아니야. 아무리 처음해보는 모의전이고 이제는 그의 생각을 읽어내는 게 불가능하다고 해도, 나는 과거에 이 남자의 기억을 살펴봤고 그가 사용했던 모든 전략과 전술을 파악하고 있는 상태다. 그에 대한 대응책도 전부 파악하고 있고, 오행의 운용력 자체도 그를 압도하고 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계산을 뛰어넘어버리는 이 남자의 저력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필승조건을 모두 확보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믿을 수 없는 패배의 연속.
브륜힐트는 자신의 역량이 류안에게 밀린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그대가 가지고 있는 정체불명에 능력의 일종인가? 그대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지?]
“누가 그러는데 찰리 채플린이래요. 뭐, 저는 그 별명보다는 올마이티라는 이름을 더 좋아하기는 합니다만…….”
[……]
그가 농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했기 때문에 조롱당한 브륜힐트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입술을 깨물고 분을 삭이는 수밖에 없었다.
777번의 모의전을 승리로 장식한 류안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의 숫자는 총 3가지.
“일단은 아까 전에 하던 질문을 이어나가도록 하죠. 사브리나는 어째서 이 세계에서 영혼상태로 계속해서 머물러있는 겁니까?”
[이 세계는 현재 사령술을 단련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필멸자는 영혼이라는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사령술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자신의 능력을 보다 향상시키고 난 다음에 발할라로 떠나고 싶다는 것이 필멸자의 의지였다.]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신 겁니까?”
[물론, 거절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자신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어리광을 들어준다는 생각이 듣기는 했지만 사령술사라는 특이한 직업의 조건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류안이었다.
그는 잠시 고민을 한 끝에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면서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사브리나가 도전할 수 있는 발할라의 세계가 어디입니까?”
[……!]
잠시 멈칫했던 브륜힐트였지만 잠시 후에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에게 정답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류안의 입가에서 사악한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짧은 후기
사실 지난 며칠 동안에 이명증상과 어지러움 때문에 글이 좀 이상해졌습니다.
어제 하루종일 누워서 쉬었는데도 안 낫더라고요. 오늘 한의원에 다녀왔습니다만 허열이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일단 약먹고 쉬기는 했습니다만 아직도 이명이 들리고 열도 좀 나네요.
당분간은 글만 올리겠습니다. 걱정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