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라이엄프-146화 (146/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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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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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아아아앙! 필멸자의 아이를 임신해버렸어. 미안해, 오드. 헤픈 여자라서 정말로 미안해. 흐아아아앙!”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서 전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대성통곡하는 프레이야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아원자의 영역까지 분해되었던 양심이라는 녀석이 입자의 영역까지 찢어져 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여신을 임신시켰다는 사실 자체는 수컷으로서의 묘한 성취감과 정복감을 느끼고 있지만, 조금만 머리를 굴려서 이성적으로 판단해보면 대형 사고도 이런 대형 사고가 없는 초유의 사태.

여러 가지 두려움이 몰려들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탈리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무서워졌다.

‘그녀한테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되지?’

1.남자답게 당당하게 고백한다 -> NICE BOAT!

2.가만히 입 다물고 있다가 들킨다. -> NICE BOAT!

3.거짓말로 무마하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들킨다. -> NICE BOAT!

4.프레이야를 소개시켜주고 발할라의 숭고한 사명에 대해서 설명해본다. -> 뱃속에 아무것도 없잖아요. -> NICE BOAT!

열심히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어째서인지 칼빵, 죽빵, 총빵, 식빵(?)등의 다양한 빵식으로 살해당하는 자신의 모습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마치 어떤 루트를 공략해도 사망엔딩밖에 결론이 나오지 않는 쓰레기게임을 강제로 플레이하는 기분이랄까?

덕분에 우울함과 더 큰 우울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온갖 현실도피로 시간을 보내려고 하다가 극심한 자기혐오에 시달리게 된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꿈이라고 생각하고 저지르기는 했지만 흑염룡의 범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전과가 있으니 이제 와서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발뺌하는 것도 구차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 어차피 저지른 거 외면하면 어쩌겠어? 탈리아한테 살해당할 때 살해당하더라도 내가 저지른 일에는 책임을 져야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곧바로 여신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외쳤다.

“결혼해주십시오, 프레이야님. 평생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흐아아아앙! 필멸자가 주제도 모르고 프로포즈를 하고 있어. 천만년은 빠르다고 멍청아! 흐아아아아앙!”

단숨에 차여버리기는 했지만 울음을 터트리며 생떼를 쓰는 프레이야가 귀찮다기보다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이것이, 미녀의 특권이라는 것인가?’

잠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나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으면서 강하게 나가기로 결심했다.

“딱히 농담으로 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동안 흠모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니까요. 제가 여러모로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알지만 프레이야님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훌쩍훌쩍. 이번에는 그래도 좀 낫네.”

성의를 담아서 이야기했더니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프레이야가 겨우 울음을 멈추면서 대답해주었다.

“제 청혼을 거절하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그 대가로 제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뭔가 패널티를 주시겠다면 달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저에게 주신 임무나 은총을 회수하신다고 그대로 받겠습니다. 다만…….”

“다만 뭐야?”

브륜힐트와 마찬가지로 생각을 읽을 테니 내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겠지만, 그녀는 굳이 끝까지 듣고 싶다는 듯이 그렇게 쏘아붙이듯이 되물어 왔다.

“제 자식만은 살려주십시오.”

“…….”

스스로 생각해도 겁 없는 부탁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신기하게도 뱉어놓고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자식을 위해서 머리를 조아린다고 생각하니 아깝지가 않다고 할까, 그 순간만은 어째서인지 어떤 처분이 내려진다고 해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달게 받아낼 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꿈속에서 본 스테파니의 미소에 첫눈에 반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고, 생전 처음으로 느끼는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혀버린 나는 그렇게 간청을 했다.

그리고 내 요구에 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던 프레이야는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네가 뭔가를 희생하지 않아도 애초부터 아이를 죽일 생각은 없었어. 인간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신들은 낙태를 시키지는 않거든. 물론, 나처럼 계획되지 않은 아이를 임신하는 것은 신들의 역사에서 유래가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그래도 나는 내 자식을 죽이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엄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딱히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프로포즈라면 진저리가 날 정도로 많이 듣기는 했지만 남자들의 세레나데를 듣는 건 언제라도 즐거운 법이거든. 비록, 그게 나를 향하는 게 아니라 내 자식에게 향하는 노래라고 해도 말이야.”

자식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프로포즈를 했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비난하는 소리였기 때문에, 머쓱함을 느낀 나는 헛기침을 하면서 애써 쑥스러움을 감췄다.

“좋아. 나도 이미 엎질러진 물을 가지고 구차하게 연연하지는 않겠어. 으음, 프로포즈는 미안하지만 정중하게 거절할게. 미안하지만 나는 아직도 오드 이외의 남자와는 결혼을 할 생각이 없거든. 솔직하게 말하면 너라는 존재가 상당히 끌리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건 호기심이나 즐거움 이상의 영역은 아니니까.”

거기까지 말한 프레이야는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이 어느새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서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톡, 톡, 톡, 톡!

그러다가 마침내 결론이 내려졌는지 손가락을 멈추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결론을 내리겠어. 이 아이는 10살이 될 때까지는 내가 직접 키우도록 하겠어.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너한테 양육을 맡기도록 할 거야. 데미갓의 규칙상 아스가르드에서 영원히 키울 수는 없거든. 물론, 이 아이가 시련을 뛰어넘어서 신의 반열에 도달한다면 언젠가는 아스가르드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프레이야의 눈동자에는 어딘가 안타까워하는 것 같은 눈빛이 어렸다.

‘그러고 보니 프레이야의 두 아들은 아스가르드에서는 영원한 비주류로 외면당했지? 아니, 이건 어디까지나 전생의 이야기니까 진실이 아닐 수도.’

“네가 생각하는 대로야. 나는 원래부터 아스 신의 일족이 아니었거든……이런저런 사연들이 있어서 지금은 아스 신들과 동등하게 대접받고 있지만 내 자식들까지 그런 대접을 받지는 못했어. 아니, 대접을 받지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없는 존재로 취급을 해버리고 말았지. 내 남편도 말이야……인간들의 세계에 전해지는 신화속의 이야기들은 대부분이 비유와 상징이지만, 실제로 파고들면 더 잔혹하고 끔찍한 이야기들이 많아. 나도 말이 미의 여신이지……실제로는 트로피 취급을 받고 있으니까. 신들이라도 필멸자들과는 크게 다를 바가 없어. 오히려……그런 작자들이 일으키고 다니는 재앙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필멸자들의 죄악은 오히려 사랑스럽게 느껴질 정도니까.”

어쩐지 깊은 어둠이 느껴지는 것 같은 프레이야의 토로에 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토닥거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로 돌아가면 앞으로는 신들의 이야기에는 두 번 다시는 끼어들지 말자.’

동시에 그런 다짐도 하게 되었지만…….

“그러고 보니 세계마다 시간이 흘러가는 기준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아스가르드의 10년이면 유라디스 은하에서는 얼마나 기다려야 합니까?

“3개월이야.”

“……네?”

“네가 현실로 돌아가고 3개월이 지나면 아스가르드에서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물론 우리들의 아이가 뱃속에서 있는 기간도 3년은 걸리지만, 반인반신이 평범하게 태어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수명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공포심이 전신을 휘감았지만 그것보다도 다른 내용이 더 신경쓰였다.

“……어, 그러면 설마 모습도 남들과는 다른가요?”

“그거야 태어나봐야 알지. 뭐……명색의 미의 여신인 나의 유전자를 물려받는 건데. 외모야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잘생긴 드래곤이 태어날지, 예쁜 유니콘이 튀어나올지는 낳아봐야 알지.”

‘스테파니 힘내! 아빠는 네가 SD캐릭터의 모습으로 태어나도 대환영이다! 드래곤만은 안 돼, 드래곤만은!’

어쩐지 흑염룡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지만, 파충류가 자식으로 태어나서 아빠라고 부르며 달려드는 것만큼은 어떻게 해서라도 피하고 싶다는 절박함이 들었다.

물론, 신체부위의 몇 군데만 드래곤의 특성을 물려받은 미소년, 미소녀라던가 SD캐릭터처럼 가분수의 귀여운 마스코트 같은 외형을 가지고 있다면 상관없지만, 전고 200M의 파충류가 아빠라고 부르면서 포효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큐멘터리는 안 돼! 버라이어티가 좋단 말이야!!’

소리 없는 절규를 질러대는 나를 바라보면서 고소하다는 듯이 키득거리던 프레이야는 처음보다 훨씬 더 자상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 그렇게까지 걱정된다면 미래를 살짝 엿보는 일도 가능하기는 하지만. 뭐든지 미리 알아버리는 건 매너 위반이잖아. 가끔씩은 모르는 게 훨씬 더 평화로운 일도 있어. 오딘처럼 끊임없이 자신의 옥좌에 집착하면서 두려움 속에서 살면 무슨 재미야? 기왕에 신으로 사는 거 즐기며 사는 게 최고지…….”

다시 한 번 신경 쓰이는 이야기가 튀어나오기는 했지만 신들의 이야기에는 더 간섭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어쨌든 관대한 조치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임무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할게요. 프로모션을 마치는 대로 스쿨드도 곧바로 접수를…….”

“아, 그거에 관련해서 말인데…….”

스쿨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운을 띄우는 프레이야를 바라보면서 혹시 임무를 취소하는 게 아닐까하는 불길한(?)상상이 들었지만 다음 순간에 여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 상상을 뛰어넘는 훨씬 더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

“나를 임신시킨 대가로 SSS급의 성교 능력을 가진 영혼은 영원히 내가 소유하도록 하겠어. 네가 발할라를 성공시켜서 자체적으로 영혼의 능력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고 해도 말이야.”

“……네?”

“걱정하지 마. 네가 발할라를 마치거나 죽을 때까지는 간섭을 하지 않을 생각이니까. 하지만 네 영혼과 너의 능력에 대한 권리는 앞으로 내가 영원히 소유하도록 하겠어. 후후후후. 걱정하지는 마. 나쁘게 대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말이야……남편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앞으로 나는 네 거야. 직접적으로 발할라를 도와줄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만나게 될 때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쾌락을 듬뿍 맛보여주도록 할 게…….”

그렇게 말하면서 프레이야는 자신의 이마에 있는 검은색의 빈디를 붉은색으로 변화시켜버렸다.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면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면서 웃음을 터트리는 그녀.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이 저승에서 온 나찰처럼 두려운 무엇인가로 형상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신과 인간은 서로를 너무 가까이하면 안 된다.

인간은 자신의 눈앞에 존재하는 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극복하려고 하는 습성을 지닌 생물이고, 신은 인간들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버거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발할라를 만들어낸 오딘이 했다는 연설로 브륜힐트에게 들은 내용이지만 나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뼈저리게 느껴버리고 말았다.

‘아, 젠장. 큰일 났네…….’

두 번 다시는 신들에게 관여하지 않으려고 마음먹기가 무섭게 여신에게 자신의 영생을 저당잡히게 된 날의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1줄 후기

약간 쉬어가는 의미로 쓴 번외편입니다. 다음편 부터는 스겜할게요.(아마도...)

코멘트 답변

단일 편으로 34개의 코멘트가 달리다니 ㄷㄷ하네요.

그래서 스킵합니다.(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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